리그너스 대륙전기 484화
“……네 녀석들은 대체 누구지?”
피투성이가 된 쉐르난비체가 카시 아움에 몸을 기대어 어두운 눈빛으 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마왕성을 침입한 침입 자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그야말 로 압도적이었다.
침입자들을 향해 달려들던 병사들 은 이미 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 용 맹한 마족의 영웅들도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대전에 널브러진 채 미동 이 없었다.
그나마 마왕성에서 정신을 차리고 서 있는 이는 만마의 지배자인 그녀 뿐이었다.
정령 여왕이나 드워프의 대족장, 쉐르난비체가 호적수라 여기는 천족 의 수장을 비롯해 루베릭 대륙의 파 신조차도 이런 압도적인 힘을 발휘 할 수는 없었다.
침입자의 전신에서 휘몰아치는 위 압감은 이미 마왕인 그녀의 격을 뛰 어넘고 있었다.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이렇게
당하고 나서도 아직 깨달음이 부족 한 건가?”
마왕성을 엉망으로 만든 두 명의 침입자 중 남성이 홀로 중얼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불만이 가득한 어 조와 행동이었다.
“설마???????”
그 순간 쉐르난비체의 머리를 스치 고 지나가는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 었다. 아주 오래전에 잊힌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는 쉐르난 비체의 모습에 짜증을 내던 남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한 목소리 로 옆의 여성에게 물었다.
“꼭 이런 미개한 녀석들을 이용해 야겠어? 그냥 우리가 나서서 쓸어버 리면 되지 않아?”
“리그로우. 소환자들은 우리의 예 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강해지고 있 어. 심지어 지금의 힘은 우리를 견 제하던 고대신들과도 맞먹을 수 있 을 정도야. 우습게 여겨서는 안 돼. 게다가 우리는 아직 모든 힘을 회복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 니겠지? 시간을 벌어줄 세력이 필요 하다고.”
그런 여성의 말에 남성이 불만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알바트로스는 넘겨주지 말았어야지. 그게 어디 우리가 만들 어낸 무기야? 나는 애당초 소환자들 을 불러들여 라헬과 고대신을 견제 하겠다는 네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 어.”
“속을 알 수 없는 라헬의 꿍꿍이를 견제하려면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 어. 그건 너도 인정했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그놈들이 라헬보다 도 더욱 까다로운 상대가 되어버렸 잖아? 이제는 우리의 말도 듣지 않 는다고.”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것 같은 두 남녀의 모습에 쉐르난비체가 흠칫 놀랐다.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귀에 들려오는 이름이 있었다.
여성이 남성을 가리키는 이름은 리 그로우.
이 리그너스 대륙을 창조했다는 두 명의 창조신 중 한 명의 이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왕성을 침입한 침 입자들을 징벌하기 위해 나섰던 그 녀가 느낄 수 있었던 상대의 격은 신이라 일컬어도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 결과, 마왕인 그녀를 포함해 다 수의 마족 영웅들이 덤볐음에도 불 구하고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어째서 창조주께서 우리 마족 을……?!’
그런 의문과 함께 두 창조신의 대 화에 언급되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리그너스 대륙에서 여신 라헬을 견 제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는 쉐 르난비체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 았기 때문이었다.
범위를 넓게 잡아 세력으로 본다면
그나마 알르드의 군사력이면 여신 라헬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쉐르난비체가 알고 있는 알 르드의 패왕인 윤 호는 리그너스 대 륙의 칠제와 비교하면 조금 부족한 수준의 영웅에 불과했다.
여신 라헬을 견제할 정도의 깜냥이 되지 못했다.
쉐르난비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 는 동안 창조신으로 여겨지는 두 인 영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남성이 여성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 고 있었다.
“퀘스트를 통해 몇 번이나 알바트
로스를 반납하라고 이야기했지만 아 무렇지도 않게 모른 척하던 녀석이 다. 꿍꿍이가 생긴 게 틀림없어. 당 장에라도 우리가 움직여야 해.”
“신중할 필요가 있어. 그 녀석은 고대신조차도 쓰러뜨린 놈이야. 우 리에게도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다 고. 최악의 가정으로 그 녀석들이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렸을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해.”
“그럴 리는 없다.”
세리너스의 말에 리그로우가 확신 하듯 말했다.
그 사실은 이 대륙의 지배자들조차
도 전혀 모르는 내용이다. 심지어 자신들이 깨어난 것을 아는 이들도 없었다.
눈앞에서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는 마왕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런 만큼 자신들이 소환자들을 불 러들인 이유가 라헬과 고대신을 견 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아무 힘도 없는 그들이 알 리 없었다.
눈치가 빠른 라헬이라면 일찌감치 그 사실을 짐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 또한 자신들이 깨어난 것은 알 지 못했다.
하물며 소환자와 손을 잡았다는 정
황도 없었다. 설령 지금은 서로의 세력이 전쟁까지 벌이고 있었다.
“……혹시 창조주이십니까?”
그리고 힘겹게 서 있던 쉐르난비체 가 둘을 향해 물었다.
먼저 리그로우가 건방진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는 눈치라는 게 생겨난 모양 이군. 하지만 멍청한 것은 변함이 없어. 이렇게나 늦게 우리의 정체를 알아차리다니.”
“그런데 창조주께서 어찌……
쉐르난비체의 눈동자가 널브러진 자신의 부하들에게로 향했다. 뭔가 추궁하는 것 같은 어조에 리그로우 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들이 잠들어 있던 사이 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던 것인가? 피조물 의 행동이 너무나도 건방지게 느껴 졌다.
“무슨 짓이지?”
그리고 그가 자신의 힘을 발휘하려 고 할 때, 세리너스가 그를 말렸다. 그러고는 경고하듯 말했다.
“우리가 이곳을 찾은 목적을 잊지 마, 리그로우. 나는 네가 짜증 내는 모습을 보기 위해 너와 함께한 것이 아니야.”
“. 큭”
냉정한 세리너스의 눈빛에 리그로 우는 쉐르난비체에게 벌을 내리려던 자신의 힘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 는 듯 눈을 감고는 팔짱을 꼈다.
세리너스가 그런 리그로우의 행동을 무시하며 쉐르난비체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내 이름은 세리너스. 너희 들에게는 창조주라 불리는 두 명의 신중한 명이다.”
“먼저 아무 기별 없이 너와 부하들
을 공격한 것은 사과하마.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 다.”
그렇게 말을 하며 세리너스가 손가 락을 튕겼다.
그러자 공간이 찢어지더니 그 안에 서 한 인영의 환영이 나타나기 시작 했다.
인영의 정체를 확인한 쉐르난비체 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인영의 정체는 알르드의 패 왕, 윤 호였다.
“이자는……
“선택의 신전으로 소환된 소환자 다. 그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지도 모르지. 어쨌든 이자는 우리의 힘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는 이 대륙을 혼란에 빠뜨려 손에 거머쥐려는 야욕을 품고 있다.”
“창조주의 힘을 말입니까?”
쉐르난비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냉정히 생각하면 그녀의 말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지만 창조신이라는 이름이 그것을 방해했다.
게다가 세리너스의 마력이 어느새 쉐르난비체의 정신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렇다. s등급의 마장기, 알바트로 스가 바로 그것이다. 고대신과의 전 쟁에서 사용되었던 무시무시한 병기 지.”
“?????? 아.”
머리를 콕콕 찌르는 아픔에 쉐르난 비체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에 세리너스가 만들어낸 반인반마 형태를 한 마장기의 환영 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패왕 윤 호가 특이한 형태의 마장기를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해 고대신을 물 리쳤다는 소문도 함께 말이다. 확실 히 그것이 창조신의 힘이라면 충분 히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세리너스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포 근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을수록 이상 하게도 두통이 계속해서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쉐르난비체는 그것을 격렬 했던 전투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알바트로스의 힘을 손에 넣은 그 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이 대륙의 생명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 을 거다.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잠들어 있는 사이 소환자는 이미 자신만의 강력 한 세력을 구축했구나.”
“……저희가 돕기를 바라시는군 요.”
“그래.”
세리너스가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 다. 그 모습에 쉐르난비체는 응당 그녀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소환자 윤 호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알르드라는 세력이 등장하면서 마 족이 본 피해가 얼마나 되었던가?
붉은 핏빛의 대지도 손에 넣지 못 했고, 서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 또한 막혀 버렸다.
볼 붸르니체스처럼 강성해지는 알 르드의 모습에 불만과 두려움을 가 지게 되었던 부하들도 있었다.
쉐르난비체의 심장이 빠르게 격동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머리에 세리너스의 부 드러운 손길이 닿았다.
“나와 리그로우가 너희들을 돕겠 다. 이 대륙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소환자의 세력을 무너뜨려라.”
“창조주의 뜻대로.”
감았던 쉐르난비체의 눈이 부릅떠 졌다. 마족의 신기이자 마검인 카시 아움을 쥐고 있는 그녀의 몸을 농도 짙은 마기가 폭풍처럼 휘감았다.
띵동.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 오자 호는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확 인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거라곤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뿐이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뭐야……? 요즘 들어 종종 이러 네. 배터리라도 나간 건가?”
혹시 암호인가 싶어 고개를 전후좌 우로 돌려봤지만, 전혀 해석할 수 없 는 메시지의 내용에 호는 머리를 긁 적이며 메시지의 내용을 삭제했다.
아무래도 시스템적으로 뭔가 문제 가 생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태창을 비롯한 편의 사항 을 확인해 보니 호가 사용할 수 있 는 시스템의 기능에는 아무런 문제 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 퀘스트와 오너 시스템도 정 상적으로 작동했다.
뭐, 무슨 문제라도 생겼으면 우주 의 관찰자인 일루미나스들이 조금이 라도 언급해 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호는 괴상한 언어로 날아 든 메시지에 신경을 끄고는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알르드의 모든 군단이 천족의 요새 헤븐즈로 집결했지만, 탄탄한 헤븐 즈의 방어에 제대로 된 공략조차 시 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벌 써 골치가 아파져 오고 있었다.
“그냥 서로가 죽을 때까지 싸워보 는 건 어때? 어떻게든 적의 성벽만 무너뜨리면 되는 거 아니야?”
고심하던 호의 귀로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을 꺼내는 이는 역시나 브로 리였다.
“성벽 전체가 마장기의 장갑으로 사용되는 오리하르콘으로 뒤덮여 있 어. 그 강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지. 웬만한 타격으로는 꿈쩍도 하 지 않을걸?”
“그러니까 꿈쩍할 때까지 공격을 하는 거야.”
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랬다가는 아군이 입을 피해가 상상 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적들에게는 여신 라헬이라 는 존재가 있었다. 신의 군대도 건 재했다. 또한, 루베릭 대륙의 괴물들 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랐다.
‘이거 대비를 해야 할 게 너무 많 은데?’
솔직히 말해 브로리의 계획이 터무 니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대로 희생을 무릅쓰고 한 계 돌파와 버프 스킬에 영향을 받는 병사들을 무차별적으로 투입시키면 요새를 무너뜨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호에게는 대비를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헤븐즈 요새만 점령한다고 해서 이 번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이었다. 여신 라헬 그리고 그녀의 추 종자들은 모조리 쓰러뜨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