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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83화 (483/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83화

“이루살! 빨리 그 자리에서 피해 라!!”

라이프린의 말과 동시에 이루살의 마장기가 서 있던 땅이 폭발했다. 투기로 만들어진 구체가 그가 있던 자리를 엉망으로 박살내기 시작한 것이다.

먼지 구름이 피어오르는 와중에 옅 은 흰색의 막이 천사들의 눈에 들어 왔다.

다행이도 십 천사라는 실력자답게 그 짧은 시간에 마력을 소모해 보호 막을 구축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루살이 무사한 것을 확인 한 라이프린이 소리를 높였다.

“반격해라!!”

“겁먹지 마라! 상대는 한 놈이다! 여신 라헬 님을 위하여!!”

상대의 기세가 갑작스럽게 강해졌 다고는 하지만 이 자리에 나선 이들 또한 천족의 실력자들이었다.

바닥을 찍고 있는 천사들의 사기를 위해 그냥 물러날 수만은 없었다.

더욱이 십 천사 중 한 명인 오르 비완까지 당한 상황. 이대로 후퇴한 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걷잡을 수 없 이 낮아지리라.

그렇기에 라이프린은 괴물이나 다 름없는 적의 총대장 브로리는 건들 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부관 정도는 여기서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했 다.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브로리의 변화로 잠시나마 소강상태였던 전투 가 다시 재개되었다.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고, 쉴 새 없 이 폭발이 일어나 주위의 지형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도중 폭발 로 일어난 먼지구름 속에서 한 기의 마장기가 눈을 빛내며 모습을 드러 내었다.

이루살에게 투기로 만들어진 구체 를 날렸던 브로리의 코우랄라였다.

콰직!

순간적으로 접근하는 적 마장기의 존재를 확인한 이루살이 반사적으로 조종간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불길한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온 상황이었다. 거기에 마 장기의 균형까지 함께 무너지고 있 었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길!”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욕설과 함께 이루살은 빠르게 손과 발을 움직였다. 이상을 빠르게 알아차리고는 마장기의 움직임을 제 어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달라붙은 마장기는 괴물로 변한 브로리가 조종하는 마 장기였다. 어설픈 움직임으로는 벗 어나는 게 불가능했다.

콰드드득!

막대한 양의 마력이 실린 코우랄라 의 손이 세인테르급 전용기의 장갑을 아무렇게나 움켜쥐고 악력으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마력포를 얻어맞아도 멀 쩡한 장갑이 고작 손가락 힘에 의해 찌그러지고 있는 것이다. 7964의 어 마어마한 무력 능력은 그런 행위를 가능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이루살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조종간을 당겨도 마장기가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마력 엔진이 폭발할 기세로 돌아가 고 있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카아아아악!!”

이제는 마장기의 장갑이 휘어지는 소리가 조종석 내부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참지 못한 이루살이 두려움 가득한 괴성을 내질렀다. 잠시 후, 콰득 하 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조용 해졌다. 코우랄라의 손가락이 그가 탑승해 있던 조종석을 헤집고 지나 간 것이다.

그 장면을 목격한 천족의 영웅들은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마치 호러영화를 보는 것 같은 끔 찍한 광경과 통신구를 타고 들려오 던 이루살의 공포에 찬 비명소리가 그들의 귀를 맴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천사들의 전 의를 높일 말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라이프린 조차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천족 내에서 가장 무용이 대단하다 는 거한 트렛슈? 그와는 느낄 수 있는 압박감 자체가 달랐다. 상대는 진정한 괴물이었다.

마치 파신을 목도한 것 같았다.

쿠웅!

자신을 움직이던 마력의 원천이 사 라진 세인테르급 마장기가 실 끊어 진 연처럼 땅으로 쓰러졌다. 피로 범벅이 된 조종석은 엉망이 되어 있 었다.

그리고 코우랄라가 자신의 손가락 을 쥐었다 펴며 천족의 마장기를 바 라보았다.

“이로써 라헬이 없다는 게 확인됐 네? 그러면 어디 제대로 붙어볼까?”

“제기랄.”

상대를 도발하는 브로리의 목소리 가 통신구를 타고 전장에 울려 퍼졌 다. 그러나 라이프린은 선뜻 아군들 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 다.

환골탈태라도 한 것 마냥 무지막지

하게 강해진 브로리의 능력이 두려 웠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여신 라헬과 마주한 것 같은 압박감 이 눈앞의 괴물 영웅에게서도 느껴 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어물 쩍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그녀 가 보여준 무력과 이루살의 죽음이 충격적이 었다.

‘라헬 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전력 을 보존해야 한다.’

라이프린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특히나 에이스 마장기사들은 훗날을 대비해 어떻게든 살려야만 했다. 거 기까지 생각을 한 라이프린이 아군에게 통신을 보냈다. 후퇴 명령이었 다.

여기서 브로리의 손에 개죽음을 당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라? 여기서 도망을 친다고?! 그 건 아니지!! 이 비둘기 자식들아!”

그리고 몸을 뒤로 빼기 시작하는 천족들의 움직임을 포착한 브로리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라이프린이 이끄는 천족의 주력이

패퇴했다.

라헬이 없는 틈을 타 브로리가 자 신의 실력을 한껏 발휘했고, 그 결 과 십 천사 오르비완과 이루살이 사 망. 오호신장 중에서도 희생자가 한 명 나온 것이다. 다른 마장기사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하지만 천족의 악재는 그것만이 아 니었다. 기사왕을 맞상대하는 북부 전선도 그리고 진격을 시작한 패왕 윤호의 남부전선에서도 계속해서 패 배 소식만이 날아들고 있었다.

“크윽……

결국 라이프린은 막대한 손해를 감

수하고 전선을 크게 뒤로 물려야만 했다.

자신들의 넓은 땅을 그대로 알르드 에게 내어주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적들의 전력이 자신들의 예상을 훨 씬 뛰어넘었기에 전선을 넓히는 것 은 오히려 불리함을 자초하는 일이 었다.

게다가 자리를 비운 여신 라헬이 루베릭 대륙에서 돌아올 때까지 어 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그렇 게 천족의 모든 전력이 요새 헤븐즈 에 모여 새롭게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헤븐즈라……

천족들이 헤븐즈 요새에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호가 중얼거리 듯 말했다. 옛 추억 속에 있는 이름 이었다.

헤븐즈.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천족의 최후 방어 선이나 다름없던 요새였다. 그리고 그 설정은 이곳에서도 똑같은 모양 이었다.

호리병 형태의 지형에서 꼭짓점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요새는 뒤로는 가드랜드의 풍요로운 자원으로 물자 와 병력을 충당할 수 있었고, 양옆으로는 드래곤 브레스 산맥 못지않 은 까마득한 절벽을 끼고 있었다.

결국 높고 두텁게 세워진 요새의 벽을 넘어서야만 천족의 수도 프리 테븐이 있는 가드랜드로 진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Korea사의 제작진이 헤븐 즈 요새를 만든 이유는 게이머들이 천족을 쉽사리 공략하지 못하게 하 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었다.

여신 라헬과 천족이 진정한 흑막이 었기에 그들의 세력을 일찌감치 무 너뜨리는 것은 방지하기 위함이었 다.

덕분에 헤븐즈 요새의 방어 능력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더욱 공략이 까다롭지.”

호 또한 천족의 주력이 지키고 있 는 헤븐즈 요새를 공략하는 것은 이 번이 처음이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에서는 매번 천족의 주력을 전멸시 키고 나서야 요새의 점령을 시도했 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븐즈 요새의 방어력과 지형 때문에 고생을 꽤나 했었다.

하물며 천족의 주력이 아직 남아

있었고, 요새를 지키는 이가 천족의 여왕 라이프린이었다.

“쉽지 않겠네.”

지도를 보며 호가 얼굴을 굳혔다. 요새의 악명을 생각하면 EX등급의 영웅들이 다수 있다 해도 쉽게 넘어 서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장기전을 염두 해야 할 것 같았다.

“윤호!”

그렇게 호가 헤븐즈 요새의 공략 계획을 세우던 도중, 누군가가 지휘 막사의 천을 확 걷어 올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거침없는 발걸음의 주인공은 2군단

장 브로리였다. 천족의 주력을 깨부 수고 천천히 전선을 밀고 올라오던 2군단이 가장 먼저 집결 장소에 도 착한 호의 군단과 합류한 것이다.

“호! 파신을 잡았다고 들었다! EX 등급, 맞지?”

호와 마주하자마자 브로리가 꺼낸 말이었다. 왠지 그녀답다는 생각과 함께 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것 같은데?”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맞잖아! 빨리 그렇다고 대답해!”

백 살이 넘는 나이에 맞지 않게

브로리가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막사가 소란스러워지려고 하 자 호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그래. 맞아. EX등급 ‘리그너 스-온리 원’으로 전직했어. 그래서 왜? 지금 난 헤븐즈 요새 공략법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거든? 그러니 까 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래?”

“왜기는? EX등급도 되었는데, 대 련 한 판 해야지.”

“빨리 나와. 나는 벌써 준비가 끝 났다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브로리

의 행동에 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 다. 그리고는 얼굴을 구겼다.

브로리의 무력은 G랭크 스킬을 사 용하지 않아도 EX+등급의 수준이 었다. 아직 EX에 불과한 자신이 상 대가 될 리 없었다.

만약 이대로 브로리에게 끌려 나간 다면 심한 근육통으로 끙끙 앓아누 울 것은 자명한 사실. 순간 머릿속 을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나 말고. 아쉬토 데려가.”

“아쉬토? 그 녀석은 약해 빠졌잖 아. 수왕이 언제 적 수왕인데?”

“걔 승급했어. ‘전장의 광기’라는

EX등급 클래스로.”

손 사레를 치던 브로리가 호의 말 에 순간 멈칫했다. 이어서 금발이 찰랑이는 조그마한 소녀의 머리통이 귀신처럼 끼기긱 돌아갔다.

그 짧은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했 는지 동그란 그녀의 눈동자에는 원 망과 억울함 그리고 분노가 담겨 있 었다.

“스응급? 어떻게?”

딱딱 끊기며 들려오는 브로리의 말 에 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잖

아? 아란티아느에 대한 복수심이 엄 청났던 것 같아. 파신이 나타나니까 아주 죽을 각오로 덤벼들던데? 오해 하지마라. 내가 뭐 한 거 아니다? EX등급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반사적으로 입이 열렸다. 굳이 해 명할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해 명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 호의 말을 곰곰이 듣던 브로리 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네가 뭘 해준 것은 없다 는 말이지?”

“당연하지. 생각해 봐. 그럴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 파신을 상대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뭐, 성장의 모든 준비를 마친 아쉬토에게 약간의 도 움만을 줬을 뿐이야. 왼손은 거들 뿐? 딱 그 정도 수준?”

“흐음. 어쨌든 아쉬토 녀석이 EX 등급이라 이거지. 그러면 더 강해졌 겠네?”

다행히 아쉬토의 승급과 관련된 꼬 투리를 잡고 물어질 생각은 아니었 던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그녀의 관심사를 긁어주는 게 현명한 선택 이었다.

“전투력만 따진다면 나보다는 훨씬 강할 거야. 알다시피 나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쪽에 일가견이 있잖아. 무력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 로우덴이 머리가 뛰어난 것처럼 말이야.”

“흐으응.”

호의 말에 브로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다리가 오 갈 데 모르고 방황하는 것을 보니 당장이라도 아쉬토에게 달려가고 싶 은 것처럼 보였다.

기사왕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데다 가 아무래도 새로운 EX등급의 영웅 이 나타났으니 그 능력을 확인해 보 고 싶으리라. 합류하자마자 자신에 게 달려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빨리 가봐. 아쉬토도 너랑 대련을

원할 거야.”

미끼는 던져졌다. 그리고 말이 끝 나기가 무섭게 브로리가 밖으로 달 려 나갔다.

언제나처럼 단순한 그녀의 모습에 호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잠시 아쉬토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 냈다.

브로리의 상대가 되기에는 부족하 지만 아쉬토도 EX+의 무력 능력을 지닌 영웅. 서로가 진심이 되기 전 까지는 제법 대등한 싸움이 될 것이 다.

물론, 결과는 뻔했지만.

“그 정도에 만족했으면 좋겠는 데……

뭐, 정 안되면 기사 왕이 도착할 때까지 대련을 하자는 브로리를 피 해 다니는 수밖에.

EX등급 영웅 둘을 붙여주면 그 이 후로는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으리 라.

그렇게 천족의 요새 헤븐즈를 공략 하기 위해 알르드의 주력이 집결하 고 있을 무렵, 대륙의 반대편에 있 는 마족의 영토에서도 큰 사건이 일 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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