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79화
“이제 좀 살 것 같네.”
평범한 병사의 식사량을 기준으로 다섯 배는 되는 양을 먹어치운 브로 리가 자신의 배를 두들겼다. 슬슬 해가 하늘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밥도 먹었으니 운동도 할 겸 몸을 좀 풀어야겠어.”
“커엉. 직접 출격하실 생각입니 까?”
“응. 라헬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지.
있으면 상관없지만, 없으면 그것대 로 곤란하잖아?”
브로리의 답을 들은 컹컹이는 곧 코우랄라를 준비시키라는 명령을 내 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깨에 철퇴 를 걸치고는 말했다.
“컹컹. 슬슬 비둘기의 날개를 하나 쯤은 뜯어버릴 때가 되었는데요.”
“오늘도 힘들지 않을까? 죄다 눈치 만 빠른 놈들만 있어서 잘 안 낚인 단 말이야. 일단 기사왕에게 좀 더 서두르라고 재촉해 봐. 그쪽에는 뭐 아무도 없다면서?”
“십 천사 둘이 있기는 한 모양입니
다만……. 커엉.”
“여기에 있는 놈들에 비하면 애송 이들이네.”
전쟁이 시작된 지 몇 달이 지났지 만, 2군단의 영웅들도 적들의 주력 이라 부를 수 있는 영웅들도 아직 건재한 상황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서로에게 비수를 꼽기에 는 부족한 소모전의 양상에 불과했 다. 그만큼 서로의 전력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EX등급의 영웅 투신 브로리가 있 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전부 여신 라헬의 존재 때문이 었다.
천사들에게 강력한 힘을 내려주는 라헬의 버프와 오호신장이라는 또 다른 실력자의 등장은 알르드의 강 력한 군단과 브로리가 지닌 EX등급 의 능력을 억제하는 데 부족함이 없 었다.
물론, 브로리에게는 비장의 한 수 가 있었다.
조금의 틈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적들의 목숨을 끊어낼 수 있는 필살 기와 같은 능력이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무력을 뻥튀기해주는 투기 발산 스킬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타이밍이 안 나 온단 말이지. 그리고 투기 발산은 남발해서는 안 되는 힘이야.’
적들이 방심했을 때 최대한의 피해 를 주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깨달음 이 스킬 사용을 자제하게 만들고 있 었다.
브로리는 적어도 라이프린이나 오 호신장이라는 실력자 혹은 라헬을 쓰러뜨릴 수 있을 때나 투기 발산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팽팽 한 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자, 가자!!”
마장기의 마정석이 교체되었고 모
든 준비가 끝난다는 보고를 받은 브 로리는 마장기 편대를 이끌고 전장 에 나섰다.
이미 아군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 던 모양인지, 멀리 천족 마장기사들 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장기 의 숫자로만 따지면 적들이 아군보 다 조금 더 많았다.
하지만 마장기의 질적 수준으로 보 면 알르드 군의 압승이었다. 적들은 대다수가 B등급 마장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 박살내 주마!”
적들을 앞에 둔 브로리의 움직임에
는 거침이 없었다. 그녀의 마장기, 코우랄라가 지나간 곳에 천족 마장 기의 부서진 파편들이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EX클래스를 보유한 영웅답게 브로 리의 전투력은 가공할 만했다. 거기 에 무력 능력은 EX+. 십 천사가 나 서도 천사들의 여왕인 라이프린이 나서도 감당해 낼 수 없는 능력이었 다.
-괴, 괴물 년!!
-모두 피해! 단독으로 막아서지 마라!
해일이 갈라지듯 천족의 마장기사
들이 브로리의 진격 방향에서 벗어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흩어져 알르드의 마장기 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적의 대장 을 상대할 수 있는 마장기사는 따로 있었다.
“오늘이야 말로 네년의 버릇을 고 쳐주마!”
순백색으로 빛나는 천족의 전용기 가 코우랄라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 었다.
여신 라헬의 신실한 종이자 천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를 가진 영웅 라이프린의 전용기였다.
그와 함께 다양한 형태를 한 마장 기들이 라이프린을 지원했다. 십 천 사와 오호신장의 마장기였다.
“흥! 혼자서는 덤비지도 못하는 쫄 보 주제에! 오늘도 떼거지로 몰려나 왔구나!”
어마어마한 기세가 코우랄라의 전 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무력 능력 3982! EX+의 한계에 다다른 투신의 힘이었다.
전용기에 탑승한 천족의 영웅 하나 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적들이었지 만, 브로리는 거침없이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끄으으으윽!”
코우랄라와 맞부딪친 라이프린의 전용기가 엄청난 힘을 이기지 못하 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곧바로 천족의 마장기 중 두 기가 나서 라이프린의 전용기를 붙잡았 다.
또 다른 마장기들은 브로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매번 볼 수 있는 모습 이었다.
“오늘은 꼭 한 놈이라도 박살을 내 주겠다!”
그렇게 외치며 브로리는 다시 천족 의 마장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코우랄라의 두 주먹에 벼락과도 같 은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곧 강 철의 거인들이 만들어내는 폭발과 금속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브로리는 오늘의 전투에서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천족의 마장기를 박살내는 데 실패 했다.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하고 스 킬을 발동하려고 했을 때 여신 라헬 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전투로 소모된 영웅들의 체력과 마 력을 포함해 마장기의 부서진 부위까지도 단숨에 원래의 상태로 되돌 리는 라헬의 말도 안 되는 능력으로 인해 브로리는 어쩔 수 없이 아군의 마장기와 함께 뒤로 물러나야만 했 다.
오늘도 무승부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공격이 무산 된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기사왕이 합류하면 혹은 자신이 알 르드에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마장 기사들이 합류하게 된다면 그때는 라헬이 나선다 하더라도 균형을 깨 뜨릴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잠시 간을 보는 시간일 뿐
이었다.
“빨리 왔으면 좋겠네.”
브로리가 알르드에 소속된 영웅 몇 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빨리 적들을 상대로 자신의 모든 힘을 폭발시키고 싶었다.
“흐아아압!”
마력이 밑 빠진 독의 물처럼 줄어 들더니, 알바트로스의 창끝에 맺히 기 시작했다. 그렇게 솟아오른 마력의 칼날을 확인하며 호는 정신을 집 중해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반인반마의 마장기인 알바트로스가 창을 꽉 쥔 채 앞으로 내달렸다. 그 리고는 훌쩍 하늘을 도약해 그의 앞 을 가로막는 강철 괴물을 향해 내려 쳤다.
-흥! 이 정도 공격 따위!
금속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괴물의 팔이 맞부딪치며 서로의 귀를 쨍하 고 울렸다. 그리고 연달아 두어 번 의 공격을 더 시도한 호는 소토스가 반격을 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뒤로 물러났다.
“후, 후우우……. 진짜 괴물 자식이 네.”
호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 나왔 다. 계속된 공격으로 슬슬 마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알바트로 스의 조종석에도 노란 등이 점멸하 고 있었다.
확실히 파신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놈답게 제압을 하는 게 쉽지 않았 다. 한계 돌파에 영향을 받는 병사 들의 활약으로 소토스의 분신들은 어떻게든 물리치는 모습이었지만, 본체를 쓰러뜨리는 건 지금의 상황 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더욱이 슬슬 타락 보호막이 조금씩 눈에 선명하고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락 보호막이 파신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면, 소토 스의 본체에 타격을 주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건 분명했다. 이미 이제르 론은 사용이 불가능했다.
“아이씨. 브로리라도 있었으면
투기 발산을 사용하는 그 괴물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저 녀석도 단숨 에 박살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브로리는 2군단을 지휘하며 여신 라헬을 비롯한 천족의 주력을 상대하고 있었다.
-꼬꼬댁! 호 님! 적의 보호막이 곧 생겨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르 론은…….
-어홍!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니냐?
동시에 들어오는 팔쿤과 아쉬토의 통신에 호는 이를 악 물었다.
타락 보호막이 소토스의 몸을 감싸 면 그때부터는 그의 본체에 타격을 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아 무리 알바트로스의 공격이라도 금속 으로 만들어진 파신의 단단함을 뚫 어내기엔 부족했다.
“EX등급의 영웅이 한 명 더 있었
더라면……
브로리는 2군단에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는 3군단을 지휘하고 있었 다. 그리고 로우덴은 정령 왕국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순간 아쉬토의 킹 타이거가 호의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저 녀석 도 황금색 재능을 지닌 영웅이었다. 괜히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라가 아 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 녀석이라도 승급을 시키는 건데……
파신에게 이용당했던 아란티아느의 복수 때문인지 아쉬토는 부족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소토스 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용맹한 수왕다운 모습이었다.
물론, 결과만 따지면 킹 타이거만 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그래도 위기의 순간마다 파신의 발 을 붙잡고 늘어졌기에 계속되는 전 투에서 호에게 큰 도움이 되고는 있 었다. 팔쿤의 치르넬도 마찬가지였 다.
-……음!
주변 수십 미터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릴 정도로 호의 일행들과 격 렬하게 전투를 치르던 강철의 거인이 행동을 멈추고는 주위를 둘러보 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얼굴을 일그 러뜨렸다.
소토스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적들의 병사들뿐. 어느새 자신이 만 들어낸 분신들은 모두 소멸해 있었 다.
여신 라헬이 지원했던 천족의 마장 기도 파괴된 지 오래로 보였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적의 손에 포위 가 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소토스 는 자신의 분신들을 공격하던 적 병 사들의 능력을 떠올렸다.
-빌어먹을. 상황이 좋지 않군.
말과 함께 소토스가 자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알르드의 병사 들이 서 있던 땅의 밑에서 그의 힘 으로 소환된 괴물들이 나타나 난동 을 부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지며 전장이 다 시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소토 스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강철 거인의 외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엄 청나게 재빠른 행동이었다.
“후. 이건 운이 좋았는데……?”
갑자기 물러나는 소토스의 모습을 보며 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전투가 계속되었다면 상황이 더욱 곤란해졌을 건 그가 아닌 자신 이었다.
비록 퀘스트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시간 제약이 있는 퀘스트도 아니었기에 실패 또한 아니라 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이길 수 있을까?’
자신에게 그렇게 질문을 던진 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 자 신이 없었다.
알바트로스와 무력 능력 EX의 힘 으로는 소토스의 단단한 본체에 타 격을 주는 게 쉽지 않았다.
아직 올릴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전부 올린다 하더라 도 바뀌는 건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을 도울 수 있는 마장기사와 시간이 충분하다면 알음알음 피해를 누적시킬 수는 있겠지만, 소토스의 본체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그 를 감싸고 있는 타락의 보호막이 사 라졌을 때뿐이었다.
한계 돌파도 한계가 있었다. 소토 스의 단단한 신체는 G랭크 스킬에 영향을 받은 병사들의 공격력으로 피해를 주는 게 힘들 것 같았다.
로우덴도 함께 있어 G랭크 스킬끼
리의 시너지가 생겨나면 모를까, 본 인의 힘만으로는 힘들어 보였다.
결국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실력 있는 영웅이 필요했다. SSS등급 그 이상의 영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커허허헉.
-괜찮습니까? 꼬꼬댁? 아쉬토?
그러던 도중 아쉬토의 거친 숨소리 와 팔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통신 구를 타고 연달아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파신과의 전투에서 아쉬토가 크게 무리를 했던 모양이 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SSS등
급의 영웅인 아쉬토는 칠제라는 보 정으로 인해 무력 능력이 EX등급이 기는 했지만, 2000까지 높일 수 있 는 한계에 비해 지닌 능력 자체는 높지 않은 편이었다.
낮춰 말하면 무력 능력이 SSS등급 의 영웅들과 비교해 전투력 면에서 는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었다.
스킬까지 사용한다면 그나마 차이 가 생겨나겠지만, 소토스라는 강력 한 적 앞에서는 다른 영웅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캬아오오오오오오!!
파신에게 상대도 되지 못했던 자신
의 현실 때문인지 분노에 찬 아쉬토 의 포효가 호의 귀를 울렸다. 그리 고 잠시 고민을 하던 호는 아쉬토의 마장기 킹 타이거에게 시선을 주었 다.
“뭐, 확인만 하는 거면……
그리고는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카오스 큐브 주머니를 매만졌다.
띵동
-카오스 큐브가 아쉬토의 황금색 재능과 공명을 시작합니다.
-황금색 재능의 공명에 2개의 카 오스 큐브가 사용됩니다.
-공명이 끝나면 아쉬토의 EX 승 급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카오스 큐브는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 았다.
다만, 아쉬토를 EX등급으로 승급 시키느냐는 조금 더 생각해 볼 요량 이었다. 오너 시스템을 이용해 설득 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그의 충성 심과 관련된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 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EX등급으로 향하는 승급 퀘스트는 진행만 해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지금처럼 파신과 손을 잡은 천족과 전쟁 중인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 잠깐만. 이, 이게 이렇게 된다고?”
하지만 잠시 후, 아쉬토의 승급 퀘 스트를 확인한 호는 정신이 번쩍 드 는 정보와 마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