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75화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는 사내가 흑색으로 만들어진 대검을 뒤에 맨 병사들과 함께 앞을 가로막았다. 우 측으로는 쌍도끼를 든 천사와 천족 의 마장기도 보이고 있었다.
“뭐지? 힘을 얻었으니 새로운 시련 을 받아라. 그런 건가?”
호가 신윤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호의 농담을 이해하 지 못한 모양이었다.
얼굴 가득 긴장한 표정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적들이 들고 있는 무기로 말미암아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는 일은 어렵 지 않았다.
성스러운 엘프의 전사 실버 문과 마력과 원소와 마나의 모든 이치를 알고 있다는 마족의 마법사 브뤼헤 아 비쉬의 생명을 소모시켜야만 만 들어낼 수 있는 괴물, 3파신 크탈나 스와 EX등급의 병사라는 그의 분신 썬더 퓨리들이었다.
“미친! 천족들이 루베릭 대륙의 파 신과 손을 잡았다니……!”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가 파신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눈빛만으로 천 족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 다. 솔직히 말해 호 역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보스와 보스가 손을 잡았군.’
천족과 파신, 라헬과 카테지나. 어 떠한 거래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력한 적 둘이 손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할 준 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일찌감치 여 기서 전투를 벌일 생각이었던 게 분 명해보였다.
“제가 파신을 상대하겠습니다. 기 사왕께서는 대머리 쌍 도끼를 부탁 드립니다.”
호는 정보창을 확인하고는 기사왕 에게 통신을 보냈다. 파신과 썬더 퓨리의 상대는 자신이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리그너스-온리 원’의 능력은 대규모 전투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파신 크탈나스가 덤벼든다 해도 자 신 또한 EX등급의 무력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알바트로스까지 있었다. 뭐, 여차하면 다른 마장기들의 도움 을 받으면 될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 사내에게는 빚 이 있다. 단숨에 갚고 그대를 도와 주도록 하지.”
서늘한 기사왕의 말에 호는 조그맣 게 휘파람을 불었다. 언제나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기사왕이 저렇게나 분노를 하다니. 십 천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거한 트렛슈라도 꽤나 고생을 할 건 틀림없어 보였 다.
더욱이 지금의 기사왕은 그들이 알 고 있던 기사왕이 아니기도 했다. 무려 EX등급의 영웅이었다.
“한 단계 성장을 했다 이 말이지.”
곧바로 부대가 나뉘어졌다. 블루 세이버와 마장기 네 개 편대 그리고 육 만의 병사가 우측으로 빠졌다. 그들을 전장을 크게 돌아 천족의 군 대를 상대할 계획이었다. 천족들도 아군의 움직임을 알아챘는지 부산스 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 다.
“그렇다면 저 남자와 기사들은 우 리가 상대하는 거예요? 숫자가 얼마 되지는 않아 보이는데……. 엄청나 게 강력한 적들이죠?”
“그래. 기사처럼 보이는 괴물 하나 하나가 마장기 수준으로 강력할 거 다.”
“네? 괴물이라고요?”
호의 말에 신윤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대검을 든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루베릭 대륙의 파신 알지? 그놈들이야.”
“앗…… 아아……
윤아가 고개를 푹 늘어뜨렸다. 사 파리에서 있었던 비야르키나와의 처 절했던 전투가 떠올랐던 탓이었다. 더욱이 비야르키나의 촉수들에 의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그런 윤아의 반응에 호는 피식 웃 으며 알바트로스에 탑승했다. 뭐, 행동은 저래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최선을 다해 나설 게 틀림없었다.
시진이나 벨처럼 존재감을 드러내 는 것은 아니어도 1회차가 아닌 이 후 회차의 소환자 중에서는 윤아만 큼 성장한 이도 드물었다. 애당초 소환자중 대다수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내지 못하고 죽어버리긴 했지 만 말이다.
쿠쿠쿵!
파신 크탈나스와 대치하던 상황에 서 멀리서 들려온 폭발음과 진동으 로 인해 전투가 시작되었다.
귀를 울리는 커다란 폭발음은 기사
왕과 트렛슈가 맞붙었다는 것을 의 미했다. 적들이 움직이려는 것을 확 인한 윤아가 곧바로 자신의 마력을 소모해 커다란 소환진을 만들어 내 었다.
“가랏!! !”
소환의 문에서 나온 근육질의 오크 들이 요란한 괴성과 함께 파신의 분 신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강함을 알려주는 턱수염의 매듭을 보았을 때 평범한 오크는 아 니었다. 적어도 어느 산맥 하나 정 도는 주름잡고 있는 부족이리라.
하지만 오크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
은 파신의 분신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인간의 입에서는 흘러나올 수 없는 괴성과 함께 괴물이 오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커다란 손과 발, 무기가 휘둘러지며 오크들이 비명을 질렀 다. 썬더 퓨리의 공격 한 번에 다수 의 오크들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토끼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사자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소환된 오크의 숫자는 무의미했다.
여럿이 달려들어도 썬더 퓨리의 피 부에 생채기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 다. 하지만 윤아의 행동이 완전히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신윤아. 지금부터는 뒤로 빠져서 아군을 지원하기만 해.”
잠깐의 시간이지만, 그 사이 호는 크탈나스의 능력과 적들의 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야르키나와 비 드로처럼 EX 와 EX 의 한계를 살 짝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빠르게 속도를 내던 알바트로스가 가장 앞서서 달려오는 썬더 퓨리를 향해 날아들 듯 뛰어들었다. 그리고 는 앞발을 들어 EX등급의 괴물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단단한 지면이 움푹 파여 나갔다. 조그맣게 구멍이 뚫린 자리에서 걸쭉한 녹색 채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즉사였다.
-……제법이로군. 그게 리그너스 대륙의 창조신이 만들어낸 무기라는 알바트로스라는 마장기 인가?
알바트로스의 움직임에 묵직한 존 재감을 드러내고 있던 존재. 3파신 크탈나스가 읊조리듯 말했다. 조용 한 목소리였지만, 크탈나스의 음성은 정확히 호의 귀에 들려오고 있었 다.
“창조신이 만들어낸 무기? 뭐, 그 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우주 관찰자인 일루미나스의 말에 따르면 알바트로스는 행성 파괴자 리그로우와 세리너스가 아닌 다른 알리우스가 만들어낸 무기라고 했 다.
뭐, 어쨌든 똑같은 놈들이 만들어 낸 무기이니 그렇게까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후후. 그렇단 말이지. 그런 신물을 고작 인간 따위에게 맡기다니. 창조신이라는 작자도 엄청나게 급했던 모양이로군.
크탈나스의 말에 호는 괜스레 기분 이 나빠졌다. 그가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파신의 입장에서 평범한 인 간 하나쯤은 벌레 아니 먼지만도 못 한 존재일 테지. 하지만 그 먼지한 테 쳐 맞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터였 다.
“허? 천하의 파신이라는 작자가 혓 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겁먹었냐? 쫄았냐? 루베릭 대륙에서 놀다 보니 니들이 강한 줄 알지? 그런데 그렇 게 덤빈 파신 중에 두 놈이 내 손에 죽었네? 아, 이제 너까지 세 놈 이겠구나?”
-감히!
콰아아아앙!
분노한 크탈나스의 음성과 함께 마 력의 파동에 그가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갔다.
EX등급의 힘을 지닌 괴물다운 힘 이었다. 하지만 저런 모습에 겁을 먹을 정도로 호는 호락호락하지 않 았다.
-띵동
- 〈아크 스피릿〉A랭크가 발동되 었습니다.
- 〈전장의 노래〉S랭크가 발동되었 습니다.
- 〈스피릿 발할라〉SSS랭크가 발동 되었습니다.
- 〈한계 극복〉SSS랭크가 발동되었 습니다.
통솔 계통 클래스의 존재 의의라 할 수 있는 버프가 호의 지휘아래에 있는 병사들에게 내려졌다.
실버 문을 비롯한 아군의 전신에서
맹렬한 기세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 다. 이것만 해도 이들은 몇 배나 더 높아진 능력으로 전투에 임할 수 있 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가장 강력한 한 방이 남아 있었다.
띵동.
-〈한계 돌파〉G랭크가 발동되었 습니다.
스킬의 발동과 함께 하늘에서 찬란 한 빛들이 알르드의 병사들을 휘감 았다. 그들의 무기에 종족들을 대표 하는 색상의 아우라가 맺히고 있었다.
무려 7340의 통솔 능력과 G랭크 를 포함한 다수의 버프에 영향을 받 는 병사들이다.
이쯤이면 병사 한 명, 한 명이 전 투 병기를 넘어 괴물이나 다름없었 다. 파신의 분신?
붙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겠지만, 자신의 병사들이 밀릴 거라는 생각 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는 준비 끝. 그러면 한 번 싸워 볼까?”
그렇게 자신의 모든 스킬을 사용한 호가 파신 크탈나스를 향해 말했다.
멀리서 누군가의 치사하다는 말이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파지지지직!
검이 휘둘러진 자리에 강기가 넘실 대었다.
그 무지막지한 위력에 노출된 썬더 퓨리들은 비명과 함께 녹색 피를 흩 뿌렸다. 조그마한 개미라 생각했던 병사들의 공격은 그들의 단단한 신 체를 믿고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SSS랭크의 한계를 넘어선 이들. 호 의 버프에 영향을 받은 알르드의 병 사들은 리그너스 대륙을 공포에 떨 게 만들었던 파신의 분신들을 압도 적으로 밀어 붙었다.
그야말로 가공할 전투력. EX 와 EX+를 뛰어넘은 G랭크 스킬의 힘 이었다.
“뭐? 뒤로 빠져서 아군을 지원하라 고?”
윤아가 허탈한 목소리를 내었다. 자신이 나서면 지원은커녕 병사들의 싸움을 방해만 할 것 같았다. S등급 의 클래스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도 1회차 소환자를 제외하면 소환들 중에서는 가장 성장한 편일 텐데…….
그리고 1회차 소환자이자 알르드의 왕, 리그너스 대륙인들에게는 패왕 이라 불리는 윤호는 파신 크탈나스 와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파멸의 돌격!”
공간을 접으며 달려드는 마장기의 거친 돌격에 크탈나스는 받아낼 생 각을 하지 못하고, 몸을 던져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에 스 쳐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게 창조신의 무기가 지닌 힘인 가!
“아니, 오너인 내가 잘 조종하는 것 같은데……
크탈나스의 감탄이 이어졌지만, 오 히려 호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 놈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존재는 들 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기껏 해봤자 능력 2500도 넘지 못 하는 녀석인데. 자신은 통솔 능력만 해도 무려 8000에 가까운데. 능력치 총합만 따지면 두 배가 넘는데. 고 구마를 열 개나 먹었을 정도로 속이 답답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 멍청하고 무지하면 여기서 죽어야지.”
호가 눈을 부릅뜨며 살기를 내뿜었 다.
멍청하면 몸이 고생을 한다고, 굳 이 저 녀석의 머릿속에 자신의 위대 함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알바트로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친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콰와앙! 콰앙!
파신답게 크탈나스는 EX등급으로 성장한 호가 조종하는 알바트로스를 상대로 팽팽한 전투를 벌여나갔다.
호 또한 오직 파멸의 돌격으로만 크탈나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뿐 이었다. 하지만 다른 쪽은 일찌감치 균형이 깨져 있었다.
캬아악!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썬더 퓨리 가 조각난 고깃덩이로 변해버렸다. 사방을 포위한 채 검을 휘두르는 실 버 문의 공격에 당한 것이다.
“이 대륙에 더러운 발을 디딘 루베 릭 대륙의 존재를 소멸시켜라!”
“호 님을 위하여!!! 알르드를 수호 하자!”
“호! 호!! 호!!! 캐피탈리즘 호!!!”
여기저기서 폭발과 강렬한 충격파,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강렬한 원소의 힘을 품은 범위 마법도 곳곳 에서 시전 되었다.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대륙을 공포 에 떨게 만들었던 파신의 분신들.
그중 강함에 있어서는 수위에 꼽힌 다는 크탈나스의 썬더 퓨리들이 알 르드의 병사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죽어나자빠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그리고 늦게야 상황을 알아챈 크탈 나스가 자신의 눈을 천천히 끔뻑였 다. 이 대륙의 생명체들은 가볍게 찢어발길 수 있는 강력한 부하들이 어느새 시체로 변해 있었다.
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