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72화
“폐하, 군을 물리시지요. 한때나마 이 땅은 폐하가 다스리던 땅이옵니 다. 폐하의 이러한 행동에 골든 크 로우의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아시옵니까? 그들을 생각하셔 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백성들 이 나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고? 체 넬 자작?”
“……그렇습니다.”
“후후.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을 어디 데리고 와보라. 아니, 좀 더 제대로 말해 보지. 내가 이곳 으로 군대를 이끌고 오는 동안 무엇 을 보았겠는가? 그대는 아는가?”
기사왕이 짓씹듯 물었다.
다 쓰러져가는 집. 물건과 사람이 없는 적막한 시장. 낱알 하나 보이 지 않는 부서진 농장. 굶주린 백성.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골든 크 로우의 상황은 너그럽게 봐도 좋은 편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가 왕이었 다면 결코 그냥 두지 않았을 모습들 이었다.
그에 반해 귀족들은 여느 때와 다 름없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 다. 그녀가 점령했던 네 개 성의 영 주들은 모두 그랬다.
“그, 그건 군비로 인해……! 알르 드의 위협에 이은 불가피한 희생이 었습니다.”
“하! 왕국민들을 위한 신성한 의무 를 지니고 있다는 귀족이 지금 그걸 핑계라고 말하는 건가?! 차라리 그 렇다면 이 이레네 아르티아가 네 놈 들의 손에서 다시 골든 크로우의 이 름을 찾아오겠다!”
기사왕의 목소리가 거칠게 체넬 자
작을 때렸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분 노한 음성이었다.
“이 땅의 인간들도 그대들의 밑에 서 굶주리고 수탈당하는 것보다는 알르드의 이름 아래에 있는 게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나 를 폐하라 부르지 마라!!! 이제 나 는 그대들의 왕이 아니다!”
말과 함께 이레네 아르티아는 마장 기의 송신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는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귀족들의 이러한 모습은 예 상했던 바였다.
자신이 떠난 이후 골든 크로우가
이렇게 변질될 것이라는 건 이미 짐 작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의 밑에서 힘겨워 하는 인간들에게 미안할 뿐 이었다.
그녀가 다시 통신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아군의 마장기사들에게로 향하는 통신이었다.
“적들을 모두 섬멸한다. 내가 앞장 서겠다. 단, 한 기의 마장기도 서 있게 두지 마라.”
명령과 함께 기사왕의 전용기 블루 세이버가 검을 들고는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 폐하! 제기랄! 전투
준……?! 카아아악!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힌 블루 세이버가 검을 휘둘러 체넬 자작의 마장기를 단숨에 뒤로 날려 버렸다. 화려하게 외관을 장식한 골든 크로 우의 대장기가 기사왕이 달려왔던 반대편 언덕으로 날아가며 굉음과 함께 파묻혔다.
콰쾅! 콰아아아!
그것을 신호로 브뤼헤아 비쉬의 조 명 마법이 환하게 주위를 밝혔고, 강철 거인들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막아! 저들이 몰려온다!
-우측! 우측에 마장기 1 개 편대
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리핀 기사 단의 상급 기사들은 순식간에 전투 에서 이탈한 체넬 자작을 대신해 다 급하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일으 키며 기사단의 마장기를 쓰러뜨리는 푸른색의 라이온레인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뒈져라아앗!
뒤에서 달려드는 마장기를 향해 블 루 세이버의 푸른 검이 가공할 파찰 음과 함께 허공에 휘둘러졌다. 그러 자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던 마장기의 팔이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휘두르려던 검이 그대로 쥐어진 채 였다.
“공격이 어설프다. 아국의 수습기 사도 이런 공격은 하지 않겠어.”
마치 휘하의 기사에게 충고라도 내 려주는 것 같은 담담한 목소리와 함 께 그녀는 자신을 공격했던 마장기 의 조종석을 향해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몸체를 발로 차 검을 빼내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기 사왕은 폭발 소리를 배경삼아 계속 해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그렇게 얼마나 휘둘렀을까? 주위의 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블루 세이버 로 아군의 통신이 들어왔다.
-……군단장님. 적들의 마장기를 모두 섬멸하였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몇 기가 도망친 것으로 레이더에 잡히던데, 그놈들 은 어떻게 되었지?”
-중파 1기, 반파 7기입니다. 대승 입니다. 그리고 도망친 적의 마장기 는 기사단장인 체넬 자작을 포함해 총 세 기입니다. 바로 추격할까요?
“아니다. 그냥 두어라.”
코웃음과 함께 이레네 아르티아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하밀레온에서 다시 만날 이 들. 그런 쓰레기들을 위해 이곳까지 힘겹게 달려온 소중한 병사들을 고 생시킬 필요는 없었다.
골든 크로우의 주력 기사단인 그리 핀 기사단을 몰살시킨 이레네 아르 티아는 그 다음 날까지 하루 간 병 사들에게 휴식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병력을 이동시켰 다. 하밀레온의 귀족들에게 압박감 을 주기 위해서였다.
“알르드의 군대가 몰려오고 있다!”
“그리핀 기사단이 손도 못 쓰고 박
살이 났다더군! 곧 큰 전투가 벌어 질 거야! 여기서 도망쳐야 돼!”
“알르드의 기사단을 지휘하는 영웅 이 누구인지 알아? 전투에 나갔던 귀족의 말에 의하면 그 기사왕 이레 네 아르티아 폐하라고 해!”
“그, 그게 무슨! 골든 크로우의 수 호자였던 기사왕에게 우리를 공격하 다니!”
기사왕의 군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 에 하밀레온이 술렁였다.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 인간들의 수호자, 기사왕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의 명성에 겁을 먹은 하밀레온의 시민들이 전투를 피해 성 을 떠나기 시작했다.
권력을 차지한 귀족들의 행태에 질 릴 대로 질린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 과 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 도 가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도망을 치고 있다고? 당 장 성문을 닫아라! 도망치는 놈들도 모두 죽여!!!”
“병사들을 훈련시켜라! 뭐, 돈이 없다고?! 그렇다면 시민들을 강제로 징집해!!! 왕국의 위기 상황이다!”
도시가 혼란스러워지자 성의 방어 를 담당하는 귀족들이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귀족의 명령을 들을 병사들마저도 시민들과 함께 사라지는 판국이었다. 상황이 최악 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어떻게 전투를 치르란 말이냐?!”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사라졌 다. 하지만 시민들과 다르게 귀족들 은 도망을 칠 수가 없었다. 하밀레 온의 지리적인 위치 때문이었다.
골든 크로우의 수도인 하밀레온은 그들의 영토를 기준으로 서쪽에 위 치해 있었다.
과거 아이리스 성국이 있던 땅과
근접한 위치였다. 그리고 현재 아이 리스 성국의 땅은 알르드의 지배 아 래에 있었다.
당연히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일 찌감치 수많은 병사들과 방어 시설 들이 전진 배치되어 그들을 압박하 고 있었다. 자신들의 재산을 가지고 도망을 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이다.
그리고 기사왕이 이끄는 군대가 하 밀레온에 도착했다.
콰아앙! 쾅!
마장기의 마력 엔진이 전장을 요란
하게 울리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수도인 하밀레온의 저항은 싱거울 정도로 무기력했다. 전투가 벌어진 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아, 좌측의 성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두려움에 찬 눈으로 성벽 위에서 무기를 들고 있던 병사들도 처음에 비교해 사 분의 일가량이 죽어나자 빠졌다. 마장기 또한 보이는 족족 마력 폭탄에 얻어맞고 파괴되었다.
“성 안으로 진입한다!”
이레네 아르티아가 블루세이버를 움직이며 앞섰다. 대장기가 확실한 푸른색의 마장기가 성 안으로 들어섰지만, 적들은 막아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캬아아아악!!!
그러나 점점 왕성과 가까워질수록 어떻게든 기사왕을 향해 달려드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부 어설픈 공격들이었다.
카아앙!
블루 세이버의 검이 상대의 무기를 튕겨내더니 적 마장기를 상, 하로 분리시켜 버렸다. 강철과 휴머니온 합금으로 이루어진 장갑을 통짜로 베어내는 힘든 일이지만, 기사왕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적들의 저항이 조 금씩 세지고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신경 쓸 필요 없다. 저런 이들의 손에 당한다면 기사왕이라면 명성을 버려야 할 터.”
근심하듯 말을 꺼낸 마장기사는 조 용히 입을 다물었다.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은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였 고, 그녀는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가장 강했다.
따당! 따당! 따다다다당!
높은 건물 위에 배치된 궁병들의 화살이 블루 세이버의 장갑을 두들겼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간 지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력포를 들어 그들을 쓸어 버리려던 기사왕은 겁에 질린 그들 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무기를 내렸 다. 이미 끝나버린 전투. 괜한 생명 을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계속 전진한다!”
블루 세이버를 위시한 알르드의 마 장기 편대가 대로를 따라 이동했다. 중간중간 저항을 하는 병사들이 나 타났지만, 라이온레인이 마력 폭탄 을 터뜨리자 잿더미로 변해 사라졌 다. 후방에서는 이미 실버 문들의 의해 전장이 정리되고 있었다.
남은 것은 왕성이 있는 내성을 지 키는 부대들뿐이었다. 마력포 MLC 를 겨누는 마장기들도 군데군데 눈 에 들어왔다. 하지만 초라한 발악에 불과할 뿐이었다.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이 우수수 떨어지며 적들의 방어선 일대를 초 토화 시켰다.
그리고 생겨난 먼지구름을 뚫고 블 루 세이버를 위시한 에이스급 오너 들이 진입을 시도했다. 요란한 소리 가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가 얼마 지 나지 않아 사라졌다.
이레네 아르티아가 하밀레온의 왕
성에 들어섰을 때, 늙은 왕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헐떡이는 왕의 심장 어림에는 황금 색의 단검이 박혀 있었다. 자살이라 도 하려고 했다가 잘못 찌른 모양이 었다. 다른 귀족들은 코빼기도 보이 지 않았다.
“고작 이런 모습을 보이려고, 천족 과 손을 잡고 군사를 일으킨 건가?”
“나, 나는……
왕의 입술이 달싹거린다. 잠시간 풀어진 그의 눈을 응시하던 기사왕 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는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영웅들에게 말했다.
“황금 까마귀 깃발을 내리고 알르 드의 기를 올려라. 그리고 나 기사 왕 이레네 아르티아가 돌아왔다는 것을 하밀레온의 시민들에게 외쳐 라. 비록 골든 크로우의 이름은 사 라지지만 알르드의 이름으로 내가 다시 그대들을 수호하겠노라고 알려 라.”
바라테이온에서 골든 크로우의 수 도 하밀레온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 다. 두 도시가 팔 왕국의 대각선 끝과 끝에 있다고 할 정도의 지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가 슘 강을 건너서 골든 크로우 공격을 시작한 보고를 들은 게 벌써 열흘 전의 일 이었다.
빨리 그녀와 합류해 골든 크로우를 공격하려고 했건만. 기사왕의 능력 과 양 국의 전력의 차이를 생각하면 조만간에 전쟁이 끝날 것 같았다.
“이레네 아르티아가 패할 일은 없 을 테고. 지금부터라도 천족들의 영 토로 방향을 돌려야 하나……
하지만 그렇기에는 너무 먼 거리를
이동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기사왕과 합류한 후 천족의 북쪽을 압박하는 게 나을 것 같았 다. 다행히 다른 군단들은 천족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고 있 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호가 흙으 로 대충 만들어진 대로를 걷던 도중 이었다.
-띵동
호가 마장기에 자동 이동 명령을 설정해놓고 조종석에서 늘어지려고 하던 참에 갑자기 메시지의 알람이 떴다.
뭐, 별건 아닐 것이다. 보나마나
아직까지도 저항을 하는 바라테이온 의 잔당 놈이 섬멸되고 귀족 영웅 하나가 목숨을 잃었겠지라는 내용일 것 같았다. 몇 번 알람이 있었지만, 전부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었었다.
하지만 이번 알람은 달랐다.
-SSS등급 영웅 ‘이레네 아르티아’ 의 승급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그녀 와의 만남을 통해 한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업적 ‘나도 황금이 세 개!’를 달 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카오스 큐브 2개를 획득합니다.
“어……? 어어어?”
조종석에서 급하게 몸을 일으키던 호가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 졌다. 부딪친 무릎이 눈이 핑 돌 정 도로 아파왔지만, 아픔보다는 메시 지의 내용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와! 개꿀!”
그리고 다시 한 번 메시지의 내용 을 확인한 호가 미소를 만들었다. 정말 희소식도 이런 희소식이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