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69화
광산 국가답게 토란의 국토는 대부 분이 험준한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 었다. 이런 지형에 사람들이 모여 왕국을 이뤘다는 게 신기하게 생각 될 정도로 바위 협곡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고, 필연적으로 산을 올라야 만 했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내뱉던 호의 눈동자 가 아래를 향했다가 가늘게 흔들 렸다. 산맥의 초입에 있는 나무들이 조그마한 점처럼 보이고 있었다.
산과 숲에 익숙한 종족인 SSS랭크 의 엘프 보병 실버 문들의 말에 따 르면 지금의 높이는 고도 약 3100 미터 정도라고 했다.
“미친. 한라산보다 천 미터나 더 높잖아.”
심지어 백두산보다 더 높이 올라 온 셈이었다.
갑자기 고산병이라도 걸린 듯 머 리가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 러나 호가 찾는 던전의 입구는 코 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협곡은커녕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돌과 나무.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 이었다.
힘이 쭈욱 빠진 호가 바위 협곡까 지 길 안내를 맡은 토란 왕국의 남 성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조금 쉬면 안 되겠나?”
“이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됩니 다, 폐하. 그곳에서 쉬는 게 몸이 덜 피곤하실 겁니다.”
“후우우. 아까도 비슷한 말을 들었 던 것 같은데……?”
“그만큼 협곡까지 조금 더 가까워 지긴 했습니다. 약 한 시간 정도만 더 올라가면 세기도 힘든 숫자의 꼬마 골렘들로 이루어진 장관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제엔장……
욕설과 함께 호는 힘겹게 발을 옮겼다. 죽을 것 같다고 여기서 멈 출 수도 없는 노룻이었다.
협곡 안내인의 뒤를 따라 호는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지는 무기를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 다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주 위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함께 산을 오르는 실버 문들은 마치 고향에 온 것 마냥 몸놀림이 가벼웠다. 검과 두터운 갑옷까지 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그들의 한 방울의 땀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브뤼헤아 비쉬와 드래곤 라이더들은 마녀 빗자루와 드레이 크를 탄 채로 공중으로 이동하고 있 었다. 산맥의 지형 따위는 전혀 상 관이 없는 모습이었다.
“……왠지 굉장히 억울한 상황인 것 같은데.”
호는 잠시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등산을 했을까?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가파르던 길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길이 점점 평평해지더니 멀리 푹 꺼진 지형이 보이고 있었다. 바위 협곡이 었다.
행여나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걸 음을 옮겨 깊은 골짜기인 협곡 아 래를 바라보니 셀 수도 없을 정도 로 많은 점들이 꾸물거리며 움직 이고 있었다. 점 하나하나가 바퀴 크기의 동그란 꼬마 골렘 들이었
“대단하지 않습니까? 폐하?”
“정말 어마어마하군. 저 녀석들은 바위 협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호가 길 안내를 한 남성에게 물 었다.
“아닙니다. 종종 튀어나와 사람들 을 공격하곤 합니다.”
“그래? 저렇게 많은 숫자가 한꺼 번에 협곡에서 등장한다면 재앙이 따로 없을 텐데……
“다행스럽게도 막상 협곡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숫자가 몇 안 됩니 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산을 타는 국민들이 종종 습관처럼 바위 협곡을 들려 꼬마 골렘들 을 처리하곤 합니다.”
남성의 말에 호는 고개를 갸웃했 다. 저 정도 숫자의 꼬마 골렘을 상대하는 게 쉬어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약한 꼬마 골 렘이라고 해도 위협적인 몬스터였 다. 까닥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 다.
그런 호의 반응에 남성은 말 대신 행동으로 자신의 말을 증명했다. 사 방에 놓여 있는 바위를 들어 그대로 협곡 아래로 던져 버린 것이다. 그 리고 잠시 후, 콰자작하며 돌이 부 서지는 소리가 호의 귀에 들려왔다.
보지도 않고 대충 던졌지만 골렘들 의 숫자가 워낙 많은 터라 몇 녀석 이 맞고 죽은 모양이었다.
“오호라. 직접 상대를 하는 게 아 니라고 그렇게 처리하는 거로군.”
“어휴. 저렇게 많은 놈들을 평범 한 저희들이 어떻게 직접 상대 하 겠습니까? 게다가 바위로 이루어 진 단단한 놈들이라 둔기가 아니 면 제대로 타격을 주기도 힘듭니 다.”
호는 고개를 주억였다. 하기야 꼬 마라고 해도 골렘은 골렘. 약하다 고는 해도 물리 내성이 있는 까다 로운 몬스터였다.
어쨌든 본격적인 던전 공략을 위 해 꼬마 골렘들의 서식지로 가려 면 다시 능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 가야만 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 던 도중 호가 순간적으로 몸을 멈 칫했다. 띵동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귀에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던전에 진입했다는 것을 말하는 알 림이 었다.
‘어라? 아직 저 녀석들이 있는 곳 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는데……
처음보다는 확연히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한참을 내려가야만 꼬마 골렘들과 자리를 잡고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 메시지는 지 금부터 바위 협곡 던전에 진입했 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던전이 시작되는 건가?”
아래서 움직이는 점들을 내려다 보던 호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마녀 빗자루를 타고 하강 하던 브뤼헤아 비쉬와 눈이 마주쳤 다.
“그 상태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 나?”
“물론이죠, 호님. 골렘을 향해 공 격 마법을 사용할까요?”
“그래. 아, 범위 마법이 좋을 것 같군.”
“알겠습니다. 루루 팡! 루루 피! 알르드의 왕을 위하여!!!”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브뤼 헤아 비쉬가 스태프를 움직이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곧 마력 이 요동치면서 붉은색 화염구가 배구의 강 스파이크처럼 협곡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쾅!
요란한 폭발과 함께 검은 연기가 위로 솟아올랐다. 폭발로 생겨난 크 레이터의 크기를 보아하니 얼추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꼬마 골렘들 이 박살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몇 마리가 죽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 니었다.
호는 바로 정보창을 열어 퀘스트 의 내용을 확인했다.
“……나이스.”
꼬마 골렘의 죽음과 함께 ‘리그너 스-온리 원’의 승급과 관련된 퀘스 트 목록이 갱신되고 있었다. 지금은 몇 백의 적을 물리쳤을 뿐이지만, 천만이 넘는 적을 물리치고 전투에 서 승리를 거두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협곡의 아래로 보이는 꼬마 골렘들은 수만, 수십만 아니 그 이 상의 숫자를 자랑했다. 꼬마 골렘의 위로 또 다른 꼬마 골렘이 돌아다닐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지금부터 전 병사들은 안전한 곳 에 자리를 잡고 협곡 아래로 마법 을 난사한다.”
굳이 협곡 아래로 내려갈 필요도 없었다. 브뤼헤아 비쉬는 공격 마 법을 사용할 수 있었고, 실버 문도 위력적이지는 않지만 간단한 바람 마법은 사용할 수 있었다. 드래곤 라이더? 하늘에서 바위를 떨어뜨 려 골렘들을 박살낼 수 있었다.
콰쾅! 쾅!!!
폭발마법이 연달아 시전 되며, 먹 구름이 이글거렸다. 마치 작은 화 산이 분화한 것 같았다. 드래곤 라 이더가 옮기는 커다란 바위도 하 늘에서 비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퀘스트 창에 있 는 숫자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둥산은 힘들었지만, 보람은 있 네.”
이렇게 수월하게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다면, 이 정도 높이의 산 정도는 충분히 탈 의향이 있었다.
콰작! 콰자자작! 콰자자작!
과자가 부스러지는 것처럼 바위 골렘이 박살나는 소리가 협곡에 메 아리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공세는 자비가 없었다. 여기서 모든 마력을 소모하려는 듯 브뤼헤아 비쉬들은 미친 듯이 마법 을 난사했고, 드래곤 라이더들도 쉴 새 없이 바위를 옮겼다.
콰자작!!!
보스급 몬스터로 보이는 골렘 하 나가 드래곤 라이더가 떨어뜨리는 바위에 얻어맞고는 비명과 함께 박살이 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으로 꼬마 골렘 무리들이 꾸역 꾸역 쏟아져 내렸고 공간을 메웠 던 꼬마 골렘들이 다시 마법에 얻 어맞고 박살이 났다.
공격 명령을 내리고 한 시간 가 량이 지났지만, 바위가 부서지는 소리는 여전히 요란하고 들려왔고, 꼬마 골렘들의 숫자 또한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슬슬 마법을 사용하는 병사들이 힘 겨워하는 게 보이고 있었다. 짧은 시간동안 계속해서 범위 마법을 난 사한 까닭이었다. 아무리 랭크가 높 은 마법병이라 해도 마력의 한계는 있었다.
“1, 2, 3 브뤼헤아 비쉬 부대는 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4, 5, 6부대와 교대. 7, 8, 9부대 역 시 마찬가지로 한 시간 동안 쉬고 10, 11, 12부대와 교대한다.”
아군의 상황을 확인하면서 호는 명 령을 내렸다.
생각보다 박살이 나는 꼬마 골렘의 숫자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마법만 사용해서 공격을 하는 것 때문이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으 로 봐서는 직접 내려가서 자리를 잡 고 싸웠더라면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 같았다. 그만큼 꼬마 골렘이 예상보다 단단했다.
하지만 몬스터들은 지금 아군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그란 몸통을 하고 있는 까닭에 아군 병 사들이 있는 오르막을 올라오지 못 하는 것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거친 소 리와 함께 요란하게 움직이고는 있 었지만, 올라왔다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었다.
콰아앙! 쾅!
계속해서 마법이 꼬마 골렘들을 박살냈다. 요란하면서도 평화롭게 느껴지는 그 모습을 보며 호는 자리에 앉아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 다. 마치 자동 사냥처럼 이렇게 있 다 보면 언젠가는 퀘스트를 완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 고 있었다.
띵동.
- 리그너스-온리원 (EX) 의 전직에 성공했습니다.
- 등급 변경에 따라 능력치의 한계 가 상승했습니다.
- 신비로운 깨달음에 영향을 받아 세부 능력이 새로이 설정됩니다.
-업적 ‘신위를 손에 넣은 자’를 달 성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카오스 큐스 50개를 획득합니다.
“드디어 전직했네.”
전과는 달라진 정보창을 확인하 며 호는 씨익 웃었다. 갑작스러운 호의 변화에 병사들도 눈을 깜빡였 다. 온몸에서 강력한 패기가 느껴졌 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미솔로 지’와의 차원이 다른 능력이었다. 무력은 EX, 지력은 EX+, 정치도 EX 로 전보다 등급이 높아져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통솔 능력이었다. 통솔계 클래스답게 ‘리 그너스-온리 원’이 가진 통솔 능력 의 한계는 EX+등급을 뛰어넘은 G 등급.
무려 9999까지 능력을 높일 수 있 었다. 쓸 데가 전혀 없어 무지막지 하게 쌓아놓은 경험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인가? 한계 돌파라는 ‘리그너 스-온리 원’의 고유 스킬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위력에 대해서는 검 의 왕좌에서 약화되기는 했지만 고 대신 운트리온을 때려잡으면 톡톡히 경험했던 바 있었다.
“그러면 끝을 보고 산을 내려가도 록 하지.”
보유한 경험치를 전부 투자해 통 솔 능력을 높인 호가 아래를 내려 다보며 말했다.
띵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