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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66화 (466/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66화

‘설마 두 종족 모두 던전 공략을 거부하지는 않겠지?’

선택의 신전에서 만날 수 있었던 쉐르난비체와 골드 스트리안의 모습 을 떠올리며 호는 자신의 턱을 쓰다 듬었다. 계속된 던전 공략으로 면도 를 하지 못한 까닭에 만져지는 수염 이 까끌까끌했다.

가령 던전 공략에 필요한 이유라 해도 두 종족 모두 자신들의 영토에 자신이 군대를 끌고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서로의 미묘 한 관계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게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호는 마족은 몰라도 드워프 들 만큼은 어떻게든 구워삶을 자신 이 있었다.

“종족의 특성답게 드워프 녀석들은 진귀한 아이템에 맥을 못 춘단 말이 지.”

고대신을 물리치면 손에 넣을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인 카오스 큐브. 그것이 바로 해결의 키였다. 카오스 큐브를 사용하면 드워프들의 정신을 빼놓을 수 있는 진귀한 아이템인 SSS등급의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리그너스 대륙에서 종족의 보물 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SSS등급의 아이템이라면 드워프들은 틀림없이 관심을 보일 게 분명했다. 이를 이 용하면 던전 토벌의 허가도 어렵지 않게 받아내리라.

행여나 아이템 하나로 안 되면, 두 개를 대가로 제공하면 그만이었다. SSS등급의 아이템으로 변환할 수 있는 카오스 큐브는 정령 왕국의 고 대신을 물리치면서 많이 얻을 수 있 었다.

그러고 보니 광산 국가인 토란에도 호가 원하는 조건을 만족하는 던전이 한 곳 있었다.

바위 협곡이라는 이름의 던전이었 는데, 그곳의 몬스터를 물리치면 특 이하게 광석 특산품을 얻을 수 있었 다.

다만, 특산품의 획득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들과의 사이가 별로 좋 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군 사를 이끌고 던전을 토벌하겠다는 제안을 토란이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호는 일찌감치 토란의 던전 은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일단 알르드로 복귀하고 나면 드 워프들에게 사신을 보내야겠다.”

이 후, 던전을 토벌하고 나면 EX 등급의 클래스 ‘리그너스-온리 원’ 으로 전직할 수 있으리라.

이왕이면 카오스 큐브를 여러 개가 아닌 한 개만으로 골드 스트리안을 설득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 았다.

인간들의 팔 왕국 중 하나인 토란

은 광산 국가라는 이름답게 국토 전 체가 험준한 산으로 이루어져 있었 다.

자연스레 산맥의 광물을 캐는 광산 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제련기술도 굉장히 뛰어났다.

그런 토란의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무기는 드워프 왕국의 소워드에서 생산되는 명품과도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이름 높았고, 시미터라는 무 기 상점 또한 토란이 자랑하는 것 중 하나였다.

다만, 국토의 특성으로 인해 왕국 의 식량 생산량은 국민들의 숫자에 비교해 턱없이 부족했기에 토란의 국왕인 말트는 질 좋은 광석으로 제 련한 물품들을 판매해 다른 국가들 에게서 식량을 수입해오곤 했다.

주로 골든 크로우나 미피츠가 거래 상대였지만, 미피츠가 무너진 이후 말트는 골든 크로우하고만 식량을 거래하고 있었다.

“그런 우리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 이 서신에 적힌 양의 식량을 보내달 라고? 벼룩의 간을 빼 먹어도 유분 수지!”

토란의 왕 말트가 이를 갈며 말했 다. 그러자 골든 크로우에서 보내온 귀족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인간들을 위해서입니다, 폐하. 미 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셔야 합 니다. 저희 골든 크로우는 수많은 국민들이 인간의 이름을 지키기 위 해 무기를 들었습니다. 토란의 국민 대신 피를 홀릴 이들입니다.”

“하!”

거뭇거뭇하게 탄 왕의 얼굴이 조금 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곡괭이를 사용해 눈앞에 보 이는 정신 나간 귀족의 얼굴을 반으 로 쪼개버리고 싶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 리와 손을 잡은 천족들은 벌써부터 군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폐하. 그 들과 맞춰야지요.”

말트의 살기가 느껴졌을까? 골든 크로우의 귀족이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천족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대놓고 협박을 하는 모양새였 다. 그리고 말트는 그런 협박에 굴 복할 수밖에 없었다. 토란의 전력만 으로는 천족을 당해내기란 불가능했 다.

“……후! 알겠네. 생각을 해보도록 하지.”

“좋은 대답을 기대하겠습니다, 폐 하.”

물러나는 골든 크로우 귀족의 뒷모 습을 보며 말트는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는 귀족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들이 보낸 서신을 구겨서 뒤로 집 어던 졌다.

“돌아버리겠군.”

절로 나오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 개를 좌우로 젓던 말트는 잠시 시선 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왕성의 천장에 그려진 여덟 개의 문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팔 왕국의 문장이었다.

“인간의 굳건한 동맹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질돼 버렸는지……. 이 모든 게 나의 불찰이다. 선조들을 뵐 낯이 없구나.”

“폐하께서는 잘못한 게 없으십니 다. 골든 크로우의 귀족들이 정신이 나간 것이죠.”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말트 왕이 잘 아는 목소리였다.

“오오, 내 사랑 피오나, 왔느냐?”

말트의 유일한 자식이자 토란의 공 주인 피오나였다.

광산 국가라 불리는 토란의 공주답 게 그녀는 어깨 위에 곡괭이를 하나 짊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키와 비슷 한 크기의 커다란 곡괭이였다.

피오나가 땅에 떨어진 서신을 펼쳐 서 그 내용을 확인하더니 어이가 없 다는 말투가 말했다.

“이건 무리한 요구입니다. 왕국에 비축된 식량을 전부 합한다 하더라 도 이 서신에 적힌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팔 왕국 아니 사 왕국 연합은 이 서신에 적힌 양 을 요구하고 있다. 골든 크로우의 왕 같지도 않은 늙은 놈이 천족과 손을 잡았다. 그들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토란에 어떤 일 이 벌어질지 몰라.”

“왕국이 처한 상황은 저도 들은 바 가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 폐하의 근심 또한 어디서 나오는지 말입니 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힘든 상황입니다. 이럴 때는 믿을 만한 영웅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도움을 요청해? 우리를 도와줄 만 한 세력이 있던가?”

피오나와 눈을 마주친 말트가 의아 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공주는 픽 웃으며 어깨 위의 곡괭이를 쿵하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 인간들을 수호자인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폐하가 아직 건재하시지 않습니까?”

“기 사왕?”

공주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이름에 말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한 때 상업국가라 불렸던 미피츠는 현재 알르드의 영토 중 하나로 편입 되어 있었다.

미피츠는 예로부터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많은 상인들이 도시를 찾았 는데, 알르드의 실버 문과 드래곤 라이더들이 순찰을 돌고 상인들의 무역선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띤 도 베르만 제독의 해상 함대 또한 활동 을 시작하면서 상업 왕국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상인들이 미피츠로 모 여들고 있었다.

그런 미피츠의 영주관으로 한 대의 마차가 미끄러지듯 멈췄다.

광물과 무기류를 주로 취급한 중형 규모의 상단 마차였다.

하루에도 여러 곳의 상단이 영주관 을 방문했기에, 마차에서 내리는 상 단주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 는 아무도 없었다.

“광석 유통에 관한 면담을 요청하 셨지요? 영주님께서는 안에서 기다 리고 계십니다.”

영주관을 찾은 상인에게 이곳에서 일하는 엘프 여성이 안내를 시작했 다. 그런 엘프 여성을 따라 상인은 발걸음을 옮겼다.

집무실은 영주관 안쪽에 있는 까닭 에 제법 먼 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리고 집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 던 한 여성이 그를 향해 말했다.

“보사이트. 은빛을 띄는 희귀한 광 석이지. 또한 대륙 내에서는 유일하 게 토란에서 생산되는 광석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쉬렉 상단은 토란의 국왕이 운영하는 상단인가? 토란의 왕실 상단은 다른 상단으로 알고 있 는데……?”

미피츠의 영주이자 한때는 인간들 의 수호자라 불렸던 대륙의 칠제,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가 자신을 찾은 상인을 향해 물었다.

그러고는 상인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탁탁 서류를 정리하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뭐, 그냥 궁금했던 것에 불과하니 질문에 크게 신경 쓰지는 말게. 어 쨌든 미피츠에서 보사이트를 판매하 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은 패왕 윤호를 대신해 미피츠를 관리하는 나 이 레네 아르티아의 이름으로 허락하겠 다.”

“……감사합니다.”

도시 내에서의 거래 허가가 떨어졌 음에도 불구하고 집무실을 찾은 상 인의 반응은 무미건조했다. 아니, 건 조하기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음. 할 말이 남아 있나?”

“그, 저는 토란의 국왕 말트님의 명령으로 이레네 아르티아님을 찾았 습니다.”

“……보사이트 거래는 핑계에 불과

했군.”

“아닙니다. 지금부터 쉬렉 상단은 미피츠에서 보사이트를 거래를 시작 할 겁니다. 이미 첫 판매 분량을 상 단 마차에 싣고 왔습니다. 다만, 다 른 이들의 눈을 피해 기사왕님을 뵈 어야 했기 때문에……

이레네 아르티아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뭔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그리 고 그녀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예상 할 수 있었다.

“말트 왕께서 나한테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군.”

“그렇습니다. 토란은 이레네 아르

티아 폐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상인으로 가장한 토란의 사신의 말 에 이레네 아르티아는 진지한 표정 을 지었다.

광산 국가인 토란의 말트는 왕의 자리에 어울리는 무게감 있는 영웅 이었다. 그런 그가 도움이 필요하 다? 토란에 커다란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골든 크로우의 왕이 아닌 알르드의 영웅 중 한 명. 비록 윤호의 신임을 얻어 알르드의 3군단 장이자 미피츠의 총독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얻기는 했지만, 토란과 관계 되는 것은 자신의 권한을 뛰어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지 만 토란의 일은 토란이 해결해야 했 다.

“그건 내가 아닌 알르드의 왕 윤호 에게……

“골든 크로우의 가짜 왕이 천족들 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사옵니 다. 만약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다면 토란의 국민들은 천족들의 손 에 짓밟힐 겁니다.”

상인이 황급히 기사왕의 말을 끊으 며 말했다. 그리고 이레네 아르티아 는 곰곰이 상인의 말을 곱씹었다.

천족, 무리한 요구 그리고 전쟁. 눈앞의 상인이 말하는 골든 크로우 의 가짜 왕은 그나이 칼츠만의 뒤를 이은 늙은 노귀족으로 생각되었다.

“흐음.”

그녀도 최근 골든 크로우가 천족들 과 손을 잡았다는 정보를 접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골든 크로우 의 왕이라는 이름은 내려놓은 지도 제법 시간이 된 일이었다. 이레네 아르티아는 자신이 떠난 왕국이 무 엇을 하고, 어떻게 무너지던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안위만 중요시하

던 썩어빠진 귀족들이 이제는 인간 왕국 전체를 무너뜨리려는 모양이었 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보나마나 음 모의 천족들이 있었다.

“자세한 상황을 듣고 싶다.”

기사왕의 관심에 토란의 사신은 말 트 왕에게서 전해 받은 말들을 모조 리 이야기했다.

토란의 위기는 천족의 사주를 받은 골든 크로우의 전쟁 행위가 원흉이 었다. 그리고 골든 크로우가 칼을 겨누는 대상은 다름 아닌 알르드였 다.

“정신이 나갔군.”

이야기를 들으며 이레네 아르티아 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골든 크로우? 천족? 그놈들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알르드는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군사강국이었다.

골든 크로우의 귀족들은 알르드의 수도인 림드 산맥 아니, 자신이 지 키는 미피츠의 땅도 지나치지 못할 터였다.

“일단 그대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알르드의 패왕 윤호에게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그래도 이런 적들의 움직임은 자신 만이 알고 있을 게 아니었다. 잠시 후, 미피츠의 영주성에서 드래곤 라 이더 한 기가 카틀라스 항구로 향하 는 배가 정박되어 있는 해안가로 출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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