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45화
알르드의 영웅들이 밴호스의 초상 화 앞으로 모였다.
그리고 호가 가리키는 장소를 확인 하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그들의 눈 에도 초상화에 그려진 왼쪽 눈이 부 자연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특히나 프리지안 출신의 마(馬)인 영웅인 서러브레드의 놀람은 그 누 구보다도 컸다.
“히히힝! 수십 번이나 밴호스의 미
술관을 방문했는데 저런 장치가 숨 겨져 있었다니…… 예술작품에 대한 부족한 안목이 제 눈을 멀게 했던 모양입니다. 히히힝.”
“멍멍. 정말로 수상하게 보이는군 요. 역시 호님의 안목은 대단합니다. 바로 확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호를 향해 찬사를 늘어놓은 로우덴 이 곧바로 병사들을 불렀다.
실버 문들이 기다란 사다리를 가지 고 오기 시작했고, 사다리의 끝이 초상화의 왼쪽 눈동자에 대어졌다.
“제가 직접 올라가 보겠습니다. 멍 멍!”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함께 로우덴 이 사다리로 올라섰다.
하지만 마음만 앞서서였을까?
두어 발짝 위로 올라서던 로우덴이 깨깽하는 소리와 함께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견인족의 둥그런 손이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탓이었다.
“멍멍멍! 이거 못난 꼴을 보였군 요. 멍! 시, 실수였습니다. 멍멍!”
로우덴이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다 시 사다리를 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로우덴의 둥그런 손은 계속
해서 사다리에서 미끄러졌고, 그럴 때 마다 로우덴은 비명과 함께 밑으 로 추락했다.
몇 분 뒤, 로우덴이 자신에게 집중 되는 영웅들의 시선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주저앉았다.
“푸하하하하! 저런 사다리도 못 오 르다니. 에헴! 이런 것쯤은 눈 감고 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는데 어디 얼마나 잘하나 봅시다! 멍멍!”
“홍!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브로리가 로우덴을 향해 폭소를 터
뜨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날 렵한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사다리의 끝까지 올라가더니 거침없이 초상화 의 왼쪽 눈을 손바닥으로 꾸욱 하고 눌렀다.
“어……? 어어?!”
볼록 튀어나온 초상화의 눈동자는 착시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깊숙하게 손이 쑤욱 들어 가는 느낌에 놀란 브로리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확 뒤로 뺐다. 그 때문 에 크게 몸을 움직인 탓일까? 사다 리의 균형 또한 크게 흔들리기 시작 했다.
“으아아악! 나 잡아줘! 잡아줘! 안 돼!!!”
브로리의 비명과 함께 기우뚱하던 사다리가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가 전시실을 울렸다.
하지만 소란에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신경을 쓸 정 신이 없었다. 전시실에 모인 영웅들 의 눈동자는 모두 밴호스의 초상화 에 꽂혀 있었다.
“저게 대체……
“신기하네요. 초상화에 저런 장치 가 숨겨져 있었다니.”
“대체 어떤 원리인 거지?”
브로리가 눈동자의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밴호스의 초상화 전체 에 노란색의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하나, 둘씩 초상화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빛은 곧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초상화에 불빛이 생겨날 때 부터 눈동자가 커지고 있던 호가 지 도와 로우덴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로우덴. 저 지도가 나타내는 위치 가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나?”
초상화의 빛이 만들어낸 지도는 분
명 마인족의 전설급 마장기인 프리 지안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임이 틀림없었다.
“멍멍!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
“레트랙. 레트랙이 분명합니다. 히 히힝.”
로우덴이 움직이기도 전에 뒤에서 답이 들려오자 호는 목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시실의 뒤쪽에 서있던 마인족의 장로가 놀란 얼굴로 지도를 가리키 고 있는 모습이 호의 눈에 들어왔 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얼굴에 도 놀라움이 가득한 것을 보니 오랜 시간동안 초상화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낸 이는 이제껏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레트랙?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폐하. 저는 백여 년이 넘는 시간을 이 땅에서 살아왔습니 다. 밴호스 님의 초상화에 그려진 장소는 레트랙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레트랙이라는 지 명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흐음. 어디에 위치한 장소지?”
호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마인족
의 장로를 바라보았다.
“프리지안에서 반나절가량 북쪽으 로 이동하면 발견할 수 있는 장소입 니다. B 등급의 던전이지요.”
“던 전?”
마인족 장로의 대답을 들은 호는 곧바로 정보창을 열었다.
그리고는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 본에서 레트랙이라는 이름의 던전을 찾았다. 마인족 장로의 말대로 호올 스에는 레트랙이라는 이름의 B 등 급 던전이 존재했다.
‘맞는 거 같은데?’
위치 또한 밴호스의 초상화에 나타
난 빛의 지도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 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밴호스의 초상화에서 프리지안이 숨겨져 있는 지도를 찾은 호는 바로 일 만의 병력을 이끌고 레트랙으로 향했다.
레트랙은 동굴 형태의 던전으로 타 락한 렛맨들이 서식하고 있는 던전 이었다.
위험난이도 B 등급의 던전 정도는 SSS 랭크의 병사들만으로도 손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설급 마장기가 관련된 퀘
스트인 만큼 던전 내에서 어떠한 사 건에 휘말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런 이유로 호는 이번 던전의 공략 에 에이스급 오너들을 총출동시켰 다.
?캬아아아악!
-키에엑! 적! 적이다!!!
당연하지만 레트랙의 렛맨들은 호 가 지휘하는 병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보스급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유 멘트와 함께 호기롭게 등장한 보스급 몬스터들은 에이스급 오너로 이루어진 마장기 편대가 나서자마자일 분도 버티지 못하고 리스와 식량 그리고 아이템을 내뱉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몸 풀기도 안 되는 녀석이라며 툴 툴거리는 브로리의 투정을 한 귀로 흘리며 호는 계속해서 동굴의 안쪽 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가 프리지안이 숨겨져 있는 장소 같습니다. 멍멍.”
“나도 그렇게 생각해.”
로우덴이 가리키는 장소를 보며 호 는 고개를 주억였다.
둘의 눈앞에 수상한 기운을 물씬 풍기는 커다란 철문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던전의 최종 보스급 몬스터가 있을 법한 느낌을 주는 철문이었지만, 조 금 전 호는 던전을 클리어 했다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눈앞의 철문은 B 등급 던전 레트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 는 오브젝트라는 이야기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마인족의 전설급 마장기인 프리지안이 숨겨져 있는 장소가 분 명했다.
“오빠. 수호자가 있을까요?”
“그거야 모르지. 일단 철문의 안쪽
으로는 마장기 편대만 진입시킬 생 각이야. 안에 어떤 녀석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적이 나타 나게 된다면 브로리나 기사왕이 어 그로를 잡을 때까지 달려들지 않도 록 해.”
마장기사들이 준비를 시작했고, 셰 비트리들이 먼저 나서서 철문이 열 기 시작했다.
레트랙의 커다란 철문은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출입하지 않은 장소로 보였다. 덕분에 문을 이루는 철들이 녹이 슬었는지 셰비트리들이 잡아당 기거나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라이온레인도 함께 투입이 되
었고, 마력 엔진이 과열될 정도의 소음이 동굴 내를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고 나서야 마장기 한 기가 지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생겼고, 가장 먼저 브로리의 코우랄라가 안 으로 진입했다. 혹시 모를 공격을 대비해 양 손에 메이스와 방패를 든 모습이었다.
“지원하겠습니다.”
기사왕이 바로 뒤를 따랐고, 한시 진의 데스 사이더도 곧 철문의 안으 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호 역시 라이온레인-플레임을 움직여 철문 의 안으로 들어섰다.
-띵동.
그 순간, 던전의 공략에 성공했다 는 메시지가 호의 눈앞에 나타났다.
“뭐, 뭐야?”
힘겹게 철문을 열었더니 갑자기 나 타난 공략 성공 메시지에 호가 황당 한 기분을 느끼며 손을 휘저었다. 그렇게 메시지를 치우고 나니 반인 반마 형태의 마장기가 눈에 보이고 있었다.
켄타우로스와 닮은 형태의 마장기.
마인족의 전설적인 영웅 밴호스의 전용기 였다는 프리 지 안이 었다.
그리고 프리지안의 주위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리스가 가득 쌓여 있었다.
마인족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수인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수왕 밴 호스가 남긴 금은보화로 보였다.
띵동.
?마장기 ‘프리지안’이 SS등급 영웅 서러브레드에게 귀속됩니다 .
-전설의 실마리가 이어지면서 서 러브레드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습 니다. 그는 앞으로 소환자 윤호를 자신의 유일한 주군으로 생각할 것 이며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겁니다.
-전설의 마장기 프리지안을 획득 하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프리지안의 획득으로 당신을 향 한 마(馬)인들의 충성도가 크게 상 승합니다.
“종족 만족도가 순식간에 올라가
네.”
프리지안의 집무실에서 호가 정보 창을 확인하며 말했다.
마인족들의 고향인 호올스는 알르 드의 영토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땅이었다.
수인 왕국이 무너지면서 마인족 영 웅들이 다수 알르드에 투항하기는 했지만, 영웅들을 제외한 일반인들 이 바로 알르드의 구성원으로 어울 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호 역시 마인족들을 포함한 수인들 이 다른 종족들과 어울리며 알르드 의 구성원으로 지내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서로간의 앙금과 원 한이 무시 못 할 수준이기 때문이었 다.
그래도 바닥을 찍고 있는 종족의 만족도를 조금씩 높이다 보면 알르 드를 이루고 있는 다른 종족처럼 새 롭게 합류한 수인들도 알르드와 동 화될 거라는 게 호의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랬던 고민이 아주 쉽게 해결이 됐네.”
호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다름 아닌 마인족의 전설급 마장기인 프리지 안이었다.
프리지안은 현재 주도 프리지안의 광장에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마인들에게 프리지안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마인족의 만족도가 하늘을 뚫어버릴 기세로 급상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족도가 높아질수 록 호는 마인들의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프리지안에서 임무를 수행 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호는 마인족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 해 프리지안을 찾은 게 아니었다.
“멍멍.”
집무실의 열린 문을 통해 한 견인 이 들어오더니 잰걸음으로 다가왔 다. 그리고는 하나의 지도를 건네었 다.
“방금 전 프리지안에서 탁본을 뜬 지도입니다. 멍멍!”
“바로 스타냥의 지도와 연결해봐.”
“알겠습니다. 멍멍.”
로우덴이 바로 지도를 연결하기 시 작했고, 호를 비롯한 집무실의 다른 영웅들은 그 모습을 응시했다. 그렇 게 상하좌우로 지도를 움직이던 로 우덴이 탄성과 함께 지도를 붙였고 바로 모두가 볼 수 있게 칠판에 지 도를 붙였다.
“선의 간격이 짧네요. 경사가 가파 른 산으로 보여요.”
지도를 본 한시진이 말했다.
프리지안의 지도가 추가되면서 알 바트로스는 경사가 가파른 산 밑의 어디인가에 숨겨져 있는 것으로 확 인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자그마한 언 덕과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림드 산맥이라면 모를까, 지도를 딱 보는 순간 번개처럼 떠오르는 지 명은 없었다.
“경사가 가파른 산 옆에 펼쳐진 넓 은 평야라…… 어디인지 알겠어?”
호의 물음에 모두들 침음만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다들 멍한 표정만 하고 있는 와중 집무실의 수인 영웅들은 생각나는 곳들이 있는 모양인지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생각나는 곳이 있긴 해? 아쉬카토 르‘?”
집무실의 가장 뒤쪽에서 팔짱을 끼 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를 바라 보는 호인 여성을 향해 호가 물었 다. 뚫어질 정도로 지도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탓이다.
호의 말에 아쉬카토르의 표정이 한 층 더 굳어졌다.
하지만 곧 생각을 정리한 모양인지 그녀가 자세를 바로하며 말했다.
“제 생각으로 지도가 나타내고 있 는 장소는 세렝게티로 보입니다.”
“세렝……게티?”
귀에 익숙한 지명에 호의 얼굴 근 육이 꿈틀거렸다.
거기는 알바트로스가 숨겨져 있는 장소가 아니라 누, 가젤, 얼룩말들이 뛰어다니는 국립공원이 아니었나? Korea 사나 여기나 진짜 이름을 짓는 센스는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 다. 아니, 이 세계가 Korea 사의 게 임 속 세계였지.
아쉬카토르의 대답에 수인 영웅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쉬토가 끼어들었다.
“내 누이동생의 말이 맞다. 넓은 평야. 세렝게티가 분명하다. 그리고 세렝게티의 서쪽에는 아주 높고 가 파른 것으로 유명한 운고로 산이 있 지. 어흥.”
아쉬토는 운고로 산이 호인들에게 있어 신성한 산이라 불리는 장소라 고 했다. 또한 성인식을 치르기 위 해 운고로 산의 정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하는 호인들의 전통도 함 께 설명했다.
“그런데 운고로 산에 알바트로스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어홍. 운고 로 산에는 던전도 아무것도 없을 텐 데?”
말을 하고도 의아한 듯 고개를 흔 드는 아쉬토의 모습을 뒤로 하고 호 는 눈앞의 지도를 바라보았다. 아무 래도 다음 목적지는 세렝게티의 운 고로 산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