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44화
‘그렇다면 십이지 중 열두 수인 종 족이 아닌 동물은 뭐가 있는 거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용과 양이 없었다. 아, 용은 좀 헷 갈렸다.
리자드 종족이 용에 속하는지 아니 면 뱀에 속하는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웅족과 묘인족의 위치도 결정이 될 것 같았 다.
“일단 묘인족이 양의 위치라고 가 정한다면……. 원숭이인 코우랄라와 연결되는 거 아닌가?”
십이지의 순서를 생각하던 호가 고 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는 중앙에 걸린 여섯 장의 지도, 특히 묘인족과 원인족의 전설 급 마장기에서 본뜬 지도 그림을 확 인하기 시작했다.
호의 머릿속으로 두 장의 그림이 상, 하, 좌, 우로 움직이며 맞춰지기 시작했다. 오락실 혹은 가상현실게 임 ‘대항해시대’를 통해 이와 비슷 한 퀴즈는 수없이 많이 풀어본 경험이 있었다. 여기서 연결이 된다면 묘인족은 양, 웅족은 용을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찾았다.”
그리고 잠시 후 호가 하하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런 웃음에 모 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멍멍?”
“로우덴. 스타냥에서 본 뜬 지도를 우측으로 60도 정도 기울여 보지 않을래?”
“멍? 이렇게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코우랄라에서 본뜬 지도를 그대로 뒤집어서 왼쪽 부분이 스타냥 지도의 아래 꼭짓점에 닿 게 해서 겹쳐봐.”
호가 시키는 대로 로우덴이 바로 지도를 겹쳤다. 그 순간, 뒤에서 탄 성이 터져 나왔다. 로우덴의 얼굴도 흥분으로 물들었다. 전혀 연관이 없 을 것 같았던 두 지도가 하나로 합 쳐지고 있었다.
“대, 대단합니다! 호님! 멍멍!”
“누구든지 시간이 주어졌으면 다들 알아냈을 사실이야. 어쨌든 나머지 지도까지 연결하고 나면 알바트로스 의 대략적인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 할 수 있을까?”
“확실하지는 않아도 일단 예상 범 위를 크게 좁힐 수는 있을 것 같습 니다. 멍!”
대답과 함께 로우덴이 열심히 지도 를 연결했다.
잠시 후, X 표시까지 포함된 지도 가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산 하나 와 여러 언덕이 포함된 넓은 평야지 역이었다.
네 장의 지도를 집무실에 모인 영 웅들이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 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아무도 짐작 하는 곳이 없는지 별다른 답을 내놓지 못했다. 호의 시선이 아쉬토에게 향했다.
“어때? 머릿속에 확하고 떠오르는 장소는 없어?”
“……없다. 내가 왕국의 모든 지형 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형 태의 땅은 엄청나게 많아. 크워엉.”
“수인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라더 니. 영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일세.”
그래도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지 금 가지고 있는 단서만으로 알바트 로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면, 이와 연결되는 지도를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마(馬)인족의 전설급 마장기를 찾 아야겠어.”
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양의 앞 에 자리하고 있는 십이지는 말이었 다.
-마(馬)인족의 전설적인 영웅 말입 니까? 히히힝.
-히힝! 우리 종족이 배출해낸 가 장 뛰어난 영웅이라면 역시나 밴호 스 님이시지! 밴호스 님이 수왕으로 있었을 때의 수인 왕국은 최전성기 를 누렸었다고. 무려 대륙의 삼분지 일을 차지했을 정도로 영토를 넓혔 었지.
-밴호스 님의 천마 부대는 리그너 스 대륙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마부 대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장기 편대도 당해낼 수가 없을 정도로 엄 청난 무용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마장기 편대를 고작 기병대가 물 리쳤다고? 이 자식들 양념을 쳐도 너무 쳤네.”
마인족의 전설적인 영웅과 관련된
정보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 다.
마인족에는 수인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명한 영웅이 존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이백 년 전의 영웅 으로 밴호스라는 이름의 마인족이었 다. 전전전대 수왕이기도 한 영웅이 었다.
“밴호스 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혹시 그 분과 관련해서 알 고 있는 이야기가 없나? 관련된 유 적 혹은 무덤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더 좋고.”
호의 부름에 집무실을 찾은 수인
왕국의 십이멀 서러브레드가 호의 질문을 들으며 투레질을 했다.
알르드와 수인 왕국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서러브레드는 수인 왕 국이 무너지고 난 이후 웃소의 설득 에 못 이겨 알르드에 투신했다.
그리고 호는 서러브레드에게 나름 대로의 중임을 맡겼었다.
마인족의 시선을 의식한 것도 있지 만, 수인 왕국의 십이멀이었던 서러 브레드가 유능했기 때문이었다. 덕 분에 서러브레드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다.
“히히힝. 우리 종족의 전설급 마장
기를 찾고 계시는 거라면……. 프리 지안이라는 마장기가 있습니다. 밴 호스 님의 전용기라고 알려진 마장 기죠. 뭐, 다른 종족들의 전설급 마 장기처럼 밴호스 님 사후 사라진 마 장기이기도 합니다.”
“프리지 안?”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이름이었 다. 그리고 고민을 하던 호가 아! 하고 소리쳤다.
마인족의 보금자리이자 호올스의 주도가 프리지안이라는 이름을 가지 고 있었다.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우리
종족의 주도인 프리지안은 밴호스 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 름이 니까요.”
“굉장한 영웅이셨나 보군.”
“뭐니 해도 밴호스 님이 집권하시 던 시절은 수인 왕국이 최전성기나 다름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덕분에 밴호스 님과 관련된 사적과 유물은 굉장히 많습니다. 프리지안에도 열 곳이 넘는 사적이 존재할 정도니까 요. 히힝.”
“열 곳이라……
많기는 했다. 하지만 정보가 많은 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 은 상황이었다.
호는 계속해서 서러브레드와의 대 화를 이어나갔다. 당연히 화제는 밴 호스였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 다보면 마인족의 전설과 관련된 퀘 스트가 나타날 거라는 생각 때문이 었다.
마인족이 배출해낸 전설적인 영웅 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서러브레드는 밴호스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 다. 알고 보니 서러브레드는 밴호스 의 열렬한 팬이었다.
띵동.
-‘수인족의 전설-마인’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러브레드와 대화 를 한 지 두 시간가량이 흘렀을 무 렵 호의 눈앞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밴호스의 초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때였다.
“그래서 밴호스 님이 그려진 거대 한 초상화가 어디에 있다고?”
“프리지안의 미술관입니다. 히힝!
미술관이라고 해봤자 밴호스 님과 관련된 그림밖에는 없지만요. 우리 수인들이 예술 쪽으로는 좀 약해서 대단한 것을 기대하시면 굉장히 실 망하실 겁니다. 힝!”
“그래도 당장 그리로 가야할 일이 생겼어.”
“……히힝. 혹시 이번에는 프리지 안을 찾으시려고 하는 겁니까?”
호의 반응을 살피던 서러브레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가 수인 왕국 의 전설급 마장기를 찾고 있다는 소 문은 서러브레드도 귀가 따갑게 들 었었다. 성과도 대단했다. 이제까지 호는 견인족을 시작으로 무려 여섯종족의 전설급 마장기를 찾아내었 다.
“맞아.”
굳이 숨길일은 아니었기에, 호는 서러브레드의 말에 가볍게 답했다. 서러브레드의 얼굴에 기대감이 물들 었다.
“저도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히 힝!”
“그렇게 하도록.”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프리지 안을 얻게 되면 마인족 영웅 중 누 군가가 프리지안의 오너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알르드에서 프리지안의 오 너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영웅은 수인 왕국의 십이멀이었던 서러브레 드밖에 없었다.
나머지 마인족 영웅들은 클래스 등 급이 그리 높지 않았다.
더불어 서러브레드의 충성심도 높 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퀘스트를 받은 호는 바로 프리지안 으로 향했다.
브로리와 한시진, 로우덴과 같은 주요 영웅들도 함께였다. 스타냥의 오너가 된 리셴르나도 이번 탐험에 함께하고 싶어 했지만, 바리안스의 대지를 다스리는 군주인 그녀는 해 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렇게 리셴르나와 아쉬운 이별을 한 호와 일행들은 군트락을 지나 우 인들의 땅을 거쳐 프리지안까지 도 착했다.
바리안스의 대지에서 출발할지 보 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프리지안의 영주는 마인족의 장로 직을 맡고 있는 영웅이었다. s등급의 정치형 영웅으로 마인족의 신망 을 받고 있어 영지를 잘 다스리고 있었다.
“히히힝! 호님께서 프리지안을 방 문하다는 소식에 연회를 준비했습니 다. 부디……
화염왕 윤호가 군대와 이끌고 프리 지안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했던 마인족의 장로가 호를 맞이하기 위 해 나왔다.
“나중에 참석하도록 하겠다. 먼저 밴호스의 거대한 초상화가 그려진 미술관으로 가도록 하지.”
하지만 그의 환대를 받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눈앞에 있었다. 호의 명령을 받은 서러브레드가 힐 끗 종족의 장로에게 고개를 숙여 보 인 후, 호를 안내했다.
서러브레드의 신호를 받은 마인족 의 장로도 바로 연회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호를 따르기 시작 했다.
밴호스의 거대한 초상화가 보관되 어 있는 미술관은 프리지안의 북쪽 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미술관에 도착한 호가 영웅 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프리지안과 관련된 무언가가 이
미술관에 숨겨져 있을 거다. 조그마 한 단서도 놓치지 말고 샅샅이 찾아 내도록.”
호의 명령을 받은 영웅들이 미술관 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다들 진지한 모습이었다.
“히히힝. 프리지안? 밴호스 님의 마장기가 아닌가? 이런 곳에 프리지 안이 숨겨져 있다고?”
함께 미술관에 도착한 마인족의 장 로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밴호스의 거대한 초상화가 보관되 어 있는 이 미술관은 하루에도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장소였다. 만약 밴호스와 관련된 귀중한 무언가가 발 견되었다면, 예전에 알아차렸을 터 였다.
그러나 화염왕이라는 명성을 떨치 고 있는 윤호가 실없이 밴호스의 미 술관을 탐색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리 없었다.
심지어 윤호 조차도 미술관의 작품 을 하나하나씩 감상하듯 살펴보고 있었다.
‘여기서 어떤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는 거지?’
밴호스의 그림이 그려진 장소를 지 나 그 시대와 관련된 그림들을 훑는 호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 었다.
아니, 변화가 있을 수 없었다. 특 별히 느낌을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 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미술관마저도 굉장히 낡았 다.
서러브레드가 말했던 대로 수인들 의 예술적인 감각이 크게 부족한 탓 에 고풍스러운 옛것이 아닌 그냥 낡 아빠진 느낌이었다.
“정복왕 밴호스는 우리 인간들의 역사책에도 수없이 언급될 정도로 대단한 위세를 떨치던 수왕이었다.
그런 영웅의 자취가 고작 이런 곳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 지 않군. 아무래도 그림이 보관된 미술관을 새로 세워야겠어.”
“동감합니다.”
얼굴을 찌푸리며 작품들을 감상하 는 기사왕의 말에 호도 고개를 끄덕 였다.
자신들의 위대한 영웅과 관련된 유 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라는데 이 건 해도 너무했다.
어차피 미술관을 새로 짓는 것은 심시티가 나서면 간단히 해결될 일 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고, 지금은 밴호스의 전용기이자 마인족 의 전설급 마장기인 프리지안의 단 서를 찾는 게 먼저였다.
여러 그림들을 살펴봤음에도 불구 하고 퀘스트를 갱신할 정도의 무언 가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다른 영웅들도 조용 한 모습이었다.
간간히 하품을 하는 이들도 보이고 있었다.
‘정말 여기에 단서가 있는 것 맞 아?’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의문이 들었
다. 하지만 퀘스트가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멍하니 앞의 그림을 감 상하던 호가 우측의 복도를 따라 걷 기 시작했다.
밴호스의 거대한 초상화가 전시되 어 있다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서러브레드가 말했던 거대한 초상 화가 이건가 본데?”
호의 고개가 천천히 들려졌다. 서 러브레드가 말했던 대로 엄청나게 큰 초상화였다.
크기가 A등급 마장기 라이온레인 보다도 큰 것 같았다. 수인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단한 왕을 기 리기 위해 수인 예술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렸던 모양이었다.
물감으로 색칠해진 초상화의 주인 은 당장이라도 대륙을 정복할 기세 의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예술 방면으로는 부족하다면서도 이 그림 하나만큼은 대단하게 그렸 네.”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림을 보 니 절로 감탄이 흘러 나왔다. 그렇 게 아무 생각 없이 밴호스의 그림을 감상하던 도중 문득 눈앞의 그림에 서 위화감을 느껴졌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음에 도 불구하고 초상화에서 뭔가 조화 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뭐, 뭐지?”
위화감에 당황스러움을 느낀 호는 다시 한 번 그림을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뭔가 예술에 대해 아는 게 있어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냥 뜯어보듯 그림을 관찰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호는 곧 자신이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 었다.
“저건??????
초상화에 그려진 밴호스의 왼쪽 눈
동자가 미세하지만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버튼처럼 누를 수 있 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