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40화
단말마의 비명 소리, 날카롭게 부 딪치는 병장기 소리, 그리고 거친 호흡 소리.
한시진은 엉망진창 뒤섞인 소리들 을 꿰뚫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한시진의 앞을 제단 전사들이 가로막았다.
그들은 웅족, 호인족, 다람쥐족 등 다양한 종족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도 공통점이 하나 있긴 했다.
‘오빠의 말대로야. 확실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한시진은 자신을 노려보는 제단 전 사들의 눈을 바라봤다.
많은 수인들을 만나봤지만 핏줄이 터진 것마냥 두 눈이 붉게 물든 수 인들은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제사 장을 비롯한 제단 전사들은 불길한 느낌을 주듯 모두가 눈이 피처럼 붉 어져 있었다.
콰앙!
측면에서 달려든 드래곤 라이더의 랜스가 한 수인의 눈동자를 꿰뚫더니 그대로 두개골을 박살냈다.
SSS랭크의 병사답게 드래곤 라이 더들은 양떼 속에 뛰어든 늑대처럼 제단 전사들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였 다.
그러나 수인의 제단을 지키는 이들 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약이라도 한 것마냥 조금의 두려 움도 없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제단 의 안쪽으로 향할수록 눈이 붉게 물 든 수인 무리들은 계속해서 점점 더 많은 숫자를 이뤄 나타나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멍멍! 5, 7편대는 이 자리를 사수 하고 나머지는 안으로 향하는 길을 뚫는다!”
“제가 앞장설게요.”
말을 끝내자마자 한시진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차피 자신의 검을 막아낼 수 있는 이는 없어 보였다.
“캬아아아악!”
마치 괴물처럼 눈이 돌아간 수인 하나가 한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시진은 검을 휘둘러 무기를 든 수인의 팔을 베어버리고는 가슴 을 발로 냅다 차버렸다.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향
해 달려들던 수인 무리가 함께 뒤로 넘어졌다. 곧바로 그녀의 검이 다른 목표로 향했다.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덩 치를 한 웅족 수인이 턱이 박살난 채 앞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꿈틀거 리며 움직이는 그를 향해 한시진의 검이 떨어졌다.
“크롸라라락!”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는 시진을 향 해 혀를 길게 내민 조인족이 날카로 운 발톱을 앞세우며 달려들었다. 울 음소리가 정말 던전 속에서나 등장 할 법한 괴물과 흡사했다. 그리고 시진은 곧바로 검을 휘둘러 자신을 공격한 조인족을 날개채로 베어버렸 다.
“군주님을 따라라! 제단 내부로 진 입한다! 멍멍!”
기세들은 흉흉했지만 한시진을 위 협할 만한 적은 아무도 없었다. 그 렇게 거침없이 길을 뚫는 한시진을 뒤를 따라 로우덴과 드래곤 라이더 들이 빠르게 안으로 이동했다.
안으로 진입할수록 모습을 드러내 는 수인들의 숫자도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이제까지 마주친 수인들의 숫자만 해도 대략 사’, 오천은 될 것 같았다.
확실히 이 신전은 너무나 이상했 다. 하지만 아직까지 고대신의 흔적 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주위의 벽을 둘러보던 시진은 찌릿하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위험신호에 재빠르 게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날카로운 무 언가가 한시진의 검을 스치고 지나 갔다.
“호인족?”
이제껏 마주했던 제단 전사들과 똑 같은 복장을 한 수인이었다. 아니, 수인이 아니었다. 생김새는 분명 호인족과 비슷했지만, 거대한 덩치는 호인 아니 수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수인들 중에 덩치가 가장 큰 우 (牛)인이나 웅족도 눈앞의 호인보다 는 작았다. 그러나 갑작스레 나타난 녀석은 소형 마장기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놈이었다.
“한시진 군주님을 지켜라! 6편대가 선제공격한다! 멍!”
로우덴이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고, 드래곤 라이더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드레이크들이 성큼성큼 앞으로 달
려 나갔고, 그 위에 탑승한 라이더 들이 덩치를 향해 랜스를 세웠다. 그 틈을 타 한시진은 뒤로 물러났 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드래곤 라이더의 돌격이라면 눈앞의 녀석도 성치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워어어어엉!
드래곤 라이더의 돌격에 덩치는 고 함과 함께 자신의 팔을 제멋대로 휘 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숭이마냥 길게 늘어진 덩 치의 팔이 드레이크의 얼굴을 후려 치자 그대로 드레이크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엄청난 힘에 단단한 용의 머리뼈가 박살이 난 것이다.
“크아악!”
“아아아악!”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파괴력에 공격을 감행하던 드래곤 라이더 편 대가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 했다.
이제까지 만났던 상대와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네 기의 드래곤 라이더가 목숨을 잃 었다.
“멍?!”
자신의 명령에 따른 눈앞의 참사를 목격한 로우덴이 눈을 부릅떴다. 한 시진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저런 괴물이?!”
눈앞의 괴물은 이제까지 나타난 다 른 수인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위험 한 녀석이었다.
이대로 전투가 벌어지면 분명 엄청 난 희생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로우덴에게는 이러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이 하나 있었다. 기회 가 없던 터라 군신이 된 이후로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스킬이었다.
“머우우우웅! 군신 로우덴의 이름
으로 그대들의 진격을 허락한다!”
로우덴 셰필드의 긴 하울링이 주위 의 드래곤 라이더들을 향해 울려 퍼 졌다.
띵동.
-로우덴 셰필드가 ‘군신의 진격’을 발동했습니다. 1시간 동안 그가 지 휘하는 부대의 공격력, 방어력이 1000% 상승합니다.
“어, 어어?”
군신의 진격? G랭크 스킬을 사용 했다고?
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군 병 사들은 어디에선가부터 계속해서 나 타나는 제단 전사들을 상대로 순조 롭게 신전의 내부로 길을 뚫고 있었 다.
아군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의 전투 력은 조잡한 수준. 높게 쳐줘봐야 B 랭크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지에는 로 우덴이 자신의 필살기라 할 수 있는 군신의 진격을 사용했다고 나와 있었다.
분명 신전 안쪽에서 어떤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었다.
‘아니면 고대신이 있는 던전으로 진입 했다던가……
호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한시진과 로우덴 에게는 마장기가 없었다. 어쨌든 그 둘과 빨리 접촉해야만 했다.
“속도를 높인다! 브로리! 전력으로 길을 뚫어!”
과거 짐승신의 전당이라 불렸던 수 인의 제단을 지키는 이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단 병사들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아직까 지도 반신반의하는 영웅들이 적지 않았다.
덕분에 진입 속도가 조금씩 늦어지 고 있는 상황.
그러나 호는 퀘스트의 내용을 통해 수인의 제단이 확실하게 고대신에게 잠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 었다.
분명 고대신과 관련된 무언가가 한 시진과 로우덴을 위협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군신의 진격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고대신의 강력함을 떠올리
면 지금처럼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뒤로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가 윤 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 한 브로리가 자신의 주먹을 쾅쾅 맞 부딪치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좋아. 나만 믿으라고! 오라! 오라 오라오라오라!”
황금의 펀치가 사방을 수놓기 시작 했고, 회색 복장을 입은 제단 전사 들이 비명과 함께 하늘을 날았다.
마장기에 탑승하지 않았다 하더라 도 전력을 다하는 브로리의 공격을 B랭크 수준에 불과한 병사들이 막아낼 리 없었다.
“전력으로 길을 뚫는다! 머뭇거리 는 녀석들은 내가 직접 벌을 버리겠 다!”
화염왕이라 불리는 윤 호의 서릿발 같은 명령에 병사들도 분주하게 움 직이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콰앙! 쾅!
제사장과 제단 전사들이 실버 문을 앞세운 호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단 지 그뿐이었다.
정신을 차린 영웅들과 버프를 받은
SSS랭크의 병사들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종이처럼 구겨버리 며 앞으로 진격했다.
“192, 193, 194 실버 문 편대와 91, 92 브뤼헤아 비쉬 편대는 이곳에 서 진지를 구축한다! 접근하는 적들 을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하물며 호는 이번 진입에 삼 만이 나 되는 병력을 투입했다. 신전 밖 에서 감시하고 있는 병력들도 그대 로 존재했다.
사파리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이 적 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분 나쁜 마력이 느껴진다. 절대
로 수인들이 섬긴다는 짐승신의 마 력은 아니야.”
신전의 안으로 달려가면서 이레네 아르티아가 말했다. 같은 칠제인 아 쉬토도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이 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서도 미친 듯이 덤벼드는 수인 녀석 들이라……. 확실히 이상해. 크워엉. 게다가 전에 내가 왔었을 때와는 신 전의 분위기가 전혀 달라. 아무래도 네가 말했던 고대신과 관련된 게 분 명해 보이는군.”
“만약 정말로 고대신과 연관이 되 어 있다면 이 정도의 전력으로는 상 대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마장기라도 가지고 오는 게 낫지 않을까?”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지금은 먼저 진입한 한시진과 로우덴의 구출이 우선이에요.”
둘의 상태에 문제가 생겼다는 메시 지는 없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빠졌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답답한 마음이었다. 드래곤 라이더 부대를 모두 잃어도 그 둘만큼은 무사했으 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브로리와 이레네 아르티아와 같은 알르드의 맹장을 앞세운 호는 거침 없이 신전의 내부로 돌격했다. 중간 중간 고대신의 타락에 영향을 받은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호의 앞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그런 호가 진격을 멈춘 것은 호가 이끄는 군대가 신전의 내부로 진입 하고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저건……
강렬한 스파크와 함께 사방이 검은 색으로 물든 공간이 붉은색의 기운 으로 소용돌이처럼 회오리치고 있었 다. 회오리치는 홀 사이로 붉은색의 촉수가 징그럽게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호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가상현실게임을 즐기 다보면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오브젝트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포 탈이었다. 고대신 파이가론이 있는 던전과 연결된 포탈이 틀림없었다.
“오빠!”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 려왔다. 한시진이었다. 그리고 그 옆 으로 견인 하나가 헥헥 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이상한 괴물들 때문에 고전을 하 기는 했는데, 로우덴의 도움으로 쉽게 물리칠 수 있었어요.”
하기야 군신의 진격 버프를 받은 드래곤 라이더라면 단단한 장갑의 마장기라도 박살낼 수 있을지도 몰 랐다. 공격력만 해도 무려 3000이 넘어갈 테니까.
“그런데……
한시진의 눈동자가 포탈이 있는 방 향으로 향했다.
“내부로 진입할까도 했는데, 혹시 나 하는 생각에 그만뒀어요.”
“멍멍. 호님의 말씀대로 이 신전은 고대신과 관련이 있는 게 틀림없습 니다. 싸늘한 마력이 신전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짐승신의 마력은 확실히 아닙니다.”
“고대신 파이가론의 마력이야. 파 이가론 녀석이 이 내부에서 부활을 준비 중인 게 틀림없어. 아, 진짜. 얘들은 마가 씌었나?”
정말로 신전 내에 흉물스러운 포탈 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멍한 표정 을 짓는 수인 영웅들을 바라보며 호 는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루베릭 대륙의 파신 비야르키나에 게 엄청난 수의 수인이 희생되며 수 도가 박살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대신이라는 무시 무시한 괴물이 사파리 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고대신이 부활한다면? 사파리는커녕 그 주위의 영토 몇 개 가 고통에 빠질 게 분명했다. 당연 히 그 땅들은 알르드의 땅이었다.
띵동
-고대신 파이가론의 요새에 진입 합니다. 진입 조건을 확인 합니 다……. 실패.
-진입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습니 다.
-진입 조건에는 S등급의 마장기 한 기 이상이 필요합니다.
“뭐, 뭐?!”
알림음과 함께 나타난 메시지에 호 가 두 눈을 끔뻑이며 더듬거렸다. 그런 호의 시선에 포탈 내로 진입했 다가 튕겨져 나간 것으로 확인되는 금발 머리의 소녀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