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너스 대륙전기-439화 (439/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39화

아쉬토가 등장하자 브로리의 조그 마한 입술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 어보였다.

“짐승신의 전당이 어디에 있는지는 바로 저기 있는 아쉬토가 알고 있 다!”

“……뭐라고?”

호가 고개를 번쩍 돌려 아쉬토를 바라봤다. 무려 육 개월이 넘도록 정보망을 동원했어도 아무런 실마리도 잡지 못했던 장소였다. 그런데 아쉬토가 그것을 알고 있다고?

‘아니, 그보다도 내가 짐승신의 전 당을 찾고 있는데 왜 이제까지 아무 런 얘기도 하지 않았던 거지? 설마 몰랐던 건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 랐다. 그리고 아쉬토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후비며 말했다.

“쿠워엉. 이 꼬맹이가 짐승신의 전 당이 어디에 있는지 시끄럽게 외치 고 다니더군. 듣자하니 꽤 오랫동안 이나 짐승신의 전당을 찾았다면서?”

“으음. 그랬지. 설마 몰랐던 건가?”

“아니, 듣기야 했다만.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곳 을 찾지 못했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 서 찾아왔다. 크워엉.”

아쉬토를 바라보며 호 또한 허탈하 게 웃었다. 이렇게나 쉽게 짐승신의 전당에 대해 알고 있는 영웅을 찾을 줄이야.

“그래서 정말로 짐승신의 전당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물론이지.”

역시나 수인들의 왕! 일찌감치 아 쉬토에게 짐승신의 전당에 대해 물어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머 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육 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긴 했지 만 지금이라도 이렇게라도 찾은 게 어디인가?

아쉬토가 자신의 커다란 어깨를 으 쓱이며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짐승신의 전당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이해가 안 가. 짐승신의 전당은 이 사파리 에 있지 않은가? 그대도 몇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을 텐데?”

“뭐, 뭐?!”

충격적인 말에 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브로리도 입을 쩍 벌 리고는 헉하는 소리를 내었다.

“사파리에 있는 ‘수인의 제단’ 말 이다. 과거에는 그곳을 짐승신의 전 당이라고 불렀었다. 하기야 엄청나 게 오래된 일이라 기억하고 있는 이 가 없어서 그런가? 나도 전대의 수 왕인 빅 푸에게서 듣기 전까지 다른 이름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그, 그런! 정말이야?”

“……설마 이 몸이 너에게 거짓말 을 할 거라고 생각하나?”

호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굳이

아쉬토가 그렇게 행동할 이유가 없 었다.

수인의 제단은 호도 알고 있는 장 소였다.

사파리의 동남부에 있는 커다란 신 전으로 수인들에게 큰 복이 찾아오 거나 화가 생길 때 수왕이 나서서 공물을 바치기 위해 사용되는 장소 라고 들었던 곳이었다.

덕분에 구경이라도 할 겸 한시진과 함께 몇 번 방문한 적도 있었다.

띵동.

-‘타락한 짐승신의 전당’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어? 어어?!”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메시 지. 곧 내용을 확인한 호가 빽 소리 를 질렀다.

“뭐, 뭐야? 설마 너 짐승신의 전당 을 찾았다고 나를 피할 생각을 아니 겠지?”

심각한 표정을 짓는 호의 모습에 브로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 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호에게서 짐 승신의 축복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호는 그런 브로리의 말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조금 전에 나타난 메시지에 아주 충격적인 내 용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인 왕국에서 가장 커다란 제단 을 차리고 있는 짐승신의 전당은 아 주 오래 전 수인들의 안전을 바라는 창조신 리그로우의 또 다른 이름인 짐승신이 만든 전당입니다.

그러나 창조신 리그로우가 잠든 이 후 짐승신의 전당을 지키던 창조신 의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차츰 줄어들기 시작했고, 호시탐탐 리그너스 대륙을 노리고 있던 고대신 파 이가론이 짐승신의 전당 아래에 자 리를 잡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 다.

파이가론은 짐승신의 전당에 있는 창조신의 힘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 로 만드는 한편, 짐승신의 전당을 찾아온 수인들을 타락시켜 자신의 부활에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창조 신의 힘을 흡수한 파이가론은 강력 합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습니 다. 완벽하게 부활한 파이가론의 재 앙이 수인 왕국에 펼쳐지기 전에 그 를 막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메시지의 내용을 전부 확인 한 호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 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계속해서 굳은 표정을 하는 호의 모습에 브로리가 재차 물었다. 그리 고 호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 며 말했다.

“한시진과 이레네 아르티아를 포함 해 에이스급 녀석들을 모조리 이쪽 으로 불러와야겠어. 브로리, 당장 전 서구와 통신을 보내줘. 그리고 아쉬 토, 킹 타이거는 어떻지?”

“조심스럽게 길을 들이고 있는 중

이지만 실전에 나서도 큰 문제는 없 을 거다. 쿠워엉.”

갑작스러운 호의 명령에 아쉬토는 흥미롭다는 모습을 보였다.

“킹 타이거에 대해 묻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군. 이 몸이 나설 일인가?”

“던전 토벌이다. 사파리가 위험해.”

“하! 사파리가 위험하다고? 대체 누가 이 땅을 위협하는 거지? 천 족? 마족? 아니면 약해빠진 귀쟁이 들? 설마 인간들은 아니겠지?”

아쉬토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리그너스 대륙의 세력 중에서 알르드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건 한 때 나마 이 대륙의 패권을 다퉜던 자신 이 장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아쉬 토의 눈에 들어온 이들의 군사력은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고대신이다. 고대신 중 한 놈이 수인의 제단을 차지하고 짐승신의 힘을 흡수해 부활을 하려고 하고 있 어.”

“뭐, 뭐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아쉬 토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대신이라고? 정말이야? 쿠워어

엉? 창조신과 대륙을 놓고 싸우던 그들이 이 땅에 아직도 남아있다고? 전부 봉인이 된 게 아니라고?!”

아쉬토가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창조신이 잠든 이후 고대신들은 창조신의 봉인에서 깨어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고대신을 추종하는 이들을 상대로 싸워온 전적이 있어. 이레네 아르티 아도 우리와 함께 고대신의 부활을 막기 위해 몇 번이나 전투를 벌였었 지.”

“……쿠워엉. 그렇단 말이지.”

“어쨌든 당장 움직여야겠어. 수인 의 제단을 통제하고 출입을 막아. 그리고 그 근방에 살고 있는 수인들 을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도 록.”

“쿠우웡. 나? 나보고 그런 행동을 하라고?”

아쉬토가 멈칫하더니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리고 가 만히 아쉬토를 바라보던 호가 단호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옛날에는 수인들의 왕이었겠지만, 지금의 아쉬토는 알르드에 소속된 일개 영웅에 불과했다.

호의 명령을 받은 영웅들이 속속 사파리로 귀환했다.

수인의 제단은 출입이 통제되었고, 근방 1킬로미터에 살고 있던 영지민 들이 모두 소개되었다.

그리고 실버 문을 비롯한 알르드의 군대가 수인의 제단 방향으로 방어 진형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이곳은 짐승신을 모시는 성스

러운 제단입니다! 많은 수인들이 짐 승신을 섬기고 있는데 제단을 통제 하다니요?!”

“우리의 전통을 무시하지 마시오! 수인의 제단은 우리들의 역사나 다 름없는 곳이요! 우리는 계속해서 제 단을 오가며 짐승신에 대해 기도를 올릴 겁니다!”

“소환자가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 다! 우리들을 너희들의 노예로 만들 셈이냐!”

갑작스러운 통제에 반발을 하는 수 인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나 신전 제사장들의 불만이 엄청났다. 무력 충돌도 있었다. 수인의 제단을 지키는 제단 전사들이 알르드의 병사들 을 먼저 공격한 것이다. 제단을 참 배하려는 수인들의 길을 열겠다는 이유였다.

수인 영웅들도 불안에 빠졌다는 메 시지가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충성 심이 크게 하락한 영웅들도 있었다. 대부분이 알르드가 수인 왕국을 점 령했을 때 투항한 이들이었다.

“우리 집 앞마당에 지뢰, 그것도 대전차 지뢰가 있었다니……. 바보 인가? 어떻게 이걸 모르고 있었지?”

“칼라시니코프의 용광로와 비슷한 상황인가요?”

막사 밖을 살펴보다가 들어온 한시 진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호에게 물었다.

뜬금없을 정도로 갑자기 병력을 동 원해 수인의 제단을 포위하라는 호 의 명령에는 모두가 당황했었다. 그 러나 호가 아무런 이유 없이 병력을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릴 일도 없었 다.

결국 명령에 따라 마장기까지 동원 해 수인의 제단을 포위하기는 했지 만, 생각보다 격하게 반항하는 수인 들의 모습에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 었다.

그래도 고대신이 등장한 것 같고, 현재의 상황이 칼라시니코프의 용광 로와 비슷하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아니. 그거보다도 더욱 심각한 상 황이야.”

“설마요. 고대신이라도 나타난 거 예요?”

“딩동댕. 정답입니다! 빌어먹을! 농 담이 아니라 진짜로 나타났다고. 파 이가론 녀석이 수인의 신전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어.”

“네에?”

시진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

었다. 하지만 호의 모습이 너무나도 진지했다.

“대체 언제요? 언제 고대신이 사파 리에 침입을……

“그거야 나도 모르지. 비야르키나 와 우리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 몰래 숨어들었을 수도 있 고. 아니면 그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을 수도 있고. 일단 중요한 것 은 그게 아니잖아? 문제는 고대신이 이 사파리에 있다는 거지.”

“정말로 저 건물 안에 고대신이 있 는 건가요?”

“그래. 혹은 고대신이 있는 장소로

향하는 시공의 회랑 같은 게 있을 수도 있고.”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전의 내부로 병사들을 진입시켜야 만 했다.

하지만 수인 제사장들의 반발이 만 만치 않았다. 게다가 그에 동조하는 수인들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격하게 반발을 하는 수인들 중에 는 분명 고대신의 타락한 힘에 영향 을 받는 이들도 있을 거야. 시간을 지체하면 정말로 도시가 두 세력으 로 분열되는 사단이 벌어지겠지. 그 전에 제단의 내부로 진입해서 고대신의 흔적을 찾아야 해. 무력을 쓰 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큰일이네요.”

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위급 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시진은 그 누구보다도 호의 말을 전적으로 신 뢰하는 여인이었다.

“당장 병사들을 동원해야겠어요.”

“로우덴도 데리고 가. 무슨 일이 생기면 크게 도움이 될 거야.”

“알겠어요, 오빠.”

한시진이 이끄는 드래곤 라이더 편 대가 곧바로 수인의 제단으로 진입 했다. 그러자 수인 제사장과 제단 전사들이 득달같이 나서 한시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요! 여기는 수인들 의 성스러운 제단이요!”

“고대신의 흔적이 제단에서 발견되 었어요. 그것을 확인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그렇게 생각해도 딱히 할 말은 없 어요. 거부하겠다면 베고 지나가겠 습니다.”

이어서 한시진이 뒤에서 앞으로 손 으로 흔들며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 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녀의 명령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캬아아악! 으아악!

드래곤 라이더의 무기가 휘둘러지 며 한시진의 앞을 가로막았던 수인 들이 비명과 함께 피를 흩뿌리며 쓰 러 졌다.

“저, 저게!”

“죽여라! 우리 수인들의 역사와 전 통을 지켜라! 신전을 진입하려는 적 들을 물리쳐라!”

드래곤 라이더의 공격을 목격한 제 사장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려드는 제단 전사들을 보

며 한시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호의 말 대로 확실히 이 제단은 뭔가 이상했 다.

“적들의 포위를 뚫고 제단으로 진 입한다! 19 편대는 뒤로 돌아 아군 의 지원을 요청한다!”

한시진은 빠르게 명령을 내리고, 루디안 소드를 빼들어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수인을 베었다.

그리고 죽어나자빠지는 수인 전사 의 모습에 그녀는 자신이 느낀 괴리 감에 대한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 다.

제사장의 명령을 받아 알르드의 앞 을 가로막는 수인들은 눈동자가 모 두 피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