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34화
높은 첨탑의 발코니. 한 여인이 밑 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 자에 무장을 한 병사들이 소리를 지 르며 뭉쳤다가 흩어지는 모습이 반 복적으로 비춰졌다.
여인의 뒤로 푸른색 갑주를 입은 데스 나이트가 공손하게 부복을 하 고 있었다.
오랜 단련으로 말미암아 최근 마신 의 축복을 받는 행운을 거머쥐어 자 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SS 등급의 영웅이 된 마족의 군단장 사운더러 스였다.
그런 사운더러스가 부복을 할 정 도로 예의를 갖추는 이는 마족 내 에서 단 한 명. 마왕 쉐르난비체 뿐이었다.
“저번보다는 움직임들이 나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어설픈 모습들 이 보이는군.”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폐하.”
만마의 지배자 쉐르난비체의 말 에 대답을 하는 사운더러스의 눈 동자에 푸른색의 불꽃이 일렁였다. 연병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병사들은 이번에 새롭게 양성한 마 족의 SSS 랭크 병사들이었다. 자원 생산량의 20퍼센트가 넘는 물자를 쏟아 붓는 막대한 투자로 최근에 들 어서야 양성에 성공한 병사들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신병이었다.
“실전에 써먹으려면 적어도 서너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 니다.”
쉐르난비체의 눈동자가 다시 발 코니의 아래로 향했다. 연병장에서 는 여전히 SSS 랭크 병사들의 훈 련이 한창이었다.
“서너 달이라……
병사들의 훈련에 걸리는 시간 치 고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 만 당장이라도 SSS 랭크의 병사들 을 전장에 투입하고 싶은 쉐르난 비체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 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그녀를 섬 겼던 사운더러스는 그런 쉐르난비 체의 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 었다.
“훈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폐 하. 훈련없이 전장에 투입했다가는 오히려 아까운 병사들만을 잃을 것입니다.”
아무리 SSS 랭크 병사들의 능력 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훈련 없이 실전에 투입된다면 SS 아니 S 랭크 병사에게도 밀리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혹독한 연습보다는 한 번의 실전이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실전이 중요하다해 도 실전에 임하기 전까지는 강도 높 은 훈련이 필요했다. 적어도 개죽음 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충성스러운 군단장의 말에 쉐르 난비체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 덕였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SSS 랭크의 보병 블러드 씨커를 운용 하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지는 않 았다.
“좀 더 혹독하게 굴려라. 그리고 던전에 집어넣어. 거기서 살아남는 녀석이라면 충분히 제 역할을 해 내겠지. 아니, 블러드 씨커라면 그 정도는 버텨야 하지 않겠느냐?”
“뜻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사운더러스는 별다른 말없이 쉐 르난비체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에 게 마왕은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존재.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왕성에서 새롭게 양성된 SSS 랭크 병사 블러 드 씨커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이제는 더 볼 생각이 없다는 듯 쉐르난비체가 발코니에서 몸을 돌 리고 나서도 둘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연하겠지만 마족의 상황과 관련 된 이야기들이었다.
“마장기의 생산은 현황은 어떻느 냐?”
“군량으로 사용할 식량은? 최근 씨앗의 수입이 원활하지 않다는 보고가 올라오더군.”
“드워프들의 동태는?”
쉐르난비체의 물음에 사운더러스 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총동 원해 대답했다. 군단장이라면 당연 히 알고 있어야할 사항이기도 했 다. 그렇게 대화를 하던 도중 쉐르 난비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르드가 수인 왕국의 정복에 성 공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정말이 냐?”
“……그렇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습니 다.”
소환자들의 나라인 알르드.
사운더러스는 그들이 리그너스 대륙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깃발을 들어 올렸을 때만 하더라도 채 한 달도 가지 못해 무너질 거라 생각했 었다.
그러나 알르드는 자신들을 도발하 는 세력을 하나둘씩 꺾으며 영토를 넓혔고, 지금은 리그너스 대륙의 남 동부를 장악하는 거대한 국가가 되 어 버렸다.
“후후. 그들이 A 등급 마장기의 생산 체계를 갖췄을 때부터 그렇 게 될 것이라고 느끼지 않았더냐? 사운더러스.”
“그렇긴 합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솔직히 수인 왕 국이 소환자의 나라인 알르드에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 았다.
어쨌든 알르드와 수인 왕국의 충 돌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두 세 력의 사이가 극히 좋지 않다는 것 은 리그너스 대륙에 모르는 이가 없 을 정도였다.
거기에 전쟁의 결과가 알르드의 승 리로 끝날 거라는 사실 역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인 왕 국이 지는 해라면 알르드는 현재 밝게 떠오르는 해나 다름없는 세력이 었다.
“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하지만 쉐르난비체가 두 세력의 전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전 쟁의 결과로 리그너스 대륙의 세 력이 새롭게 개편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첩자의 보고서에는 그녀 에게도 굉장히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잠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쉐르난비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파신 비야르키나가 나타났고, 알
르드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보고가 적혀 있더군. 정말인가? 알 르드의 전력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믿기 힘든 사실 이란 말이지.”
“……아무래도 사실로 보입니다, 폐하. 비야르키나의 시체를 목격한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게다가 루 베릭 대륙의 촉수 괴물과 킬리만자 로의 시체도 다수 목격되었습니다.”
“정말로 알르드와 비야르키나가 충돌했다고?”
쉐르난비체가 놀란 목소리를 내 었다. 리그너스 대륙에 루베릭 대 륙의 놈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쉽게 넘어갈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 다.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이 된 건 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비야르키나 가 사파리의 주민들을 몰살시켰고, 그랜드 라인을 무력화시키는 마법 진을 발동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윤 호와 웅 족의 쿰마가 손을 잡고 비야르키 나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둔 것 같습니다.”
“수왕 아쉬토는?”
“우스꽝스럽게도 그 전에 이미 알
르드 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내가 보고받은 대 로겠군.”
모든 상황을 파악한 쉐르난비체 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결 국 수인 왕국의 영토에서 루베릭 대륙의 파신이 나타나는 커다란 사고가 터졌고, 알르드의 윤 호가 수인 왕국의 군대와 손을 잡고 어 떻게든 그것을 무마한 모양이었다.
하마터면 리그너스 대륙 전체가 전화에 휩싸일 뻔한 일. 그냥 입을 쓱 닫고 넘어가기에는 곤란했다. 만약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게 된다면 루베릭 대륙에 대한 각 세력 들의 결속이 깨질 우려가 있었다. 적어도 파신과의 싸움에서 알르드 가 입은 피해만큼은 각 세력들이 다 같이 보상을 해줘야만 했다.
“그에 대한 보상은?”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 도 돈과 식량에는 크게 관심이 없 을 것 같아 특산품과 A 등급 이하 의 아이템을 다수 보낼 예정입니 다. 이미 우리와 거래 중에 있는 알르드의 상단인 디아린 상단과 논의 중에 있습니다.”
“아이템을 보낸다고?”
쉐르난비체의 미간이 살짝 찌푸 려졌다. 사운더러스의 말대로 마왕 성의 창고에는 처치가 곤란한 A 등급 이하의 아이템들이 셀 수도 없 을 정도로 많이 널려 있었다.
다른 세력들을 상대로 한 전쟁의 전리품들이었다. 거기에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던전을 공략하고 획득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물품들이기 는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
그리고 알르드 역시 별로 대단치 않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기껏 해야 A 등급 아이템 정도나 골라서 영웅들에게 수여해 줄 게 뻔해 보였 다.
한 마디로 알르드의 왕인 윤 호 의 입장에서는 실속 없는 보상이 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잠 시 고민을 하던 쉐르난비체의 시 선이 사운더러스에게 닿았다.
“흐룬팅도 함께 보내도록.”
“흐, 흐룬팅을 말입니까?”
흡혈검 흐룬팅. 수십 년 전, 쉐르 난비체가 무시무시한 바다의 괴물 을 물리치고 획득한 SSS 등급의 보검이었다. 피를 뒤집어쓸 때마다 단단해지는 마검으로 마장기의 장 갑으로도 사용되는 마계의 광석 헬로나이움을 가볍게 자를 정도로 절삭력 또한 높아 사운더러스도 속으로나마 탐을 내던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그래. 알르드가 우리 대신 루베 릭 대륙의 괴물을 물리쳐줬는데, 적어도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줘 야 되지 않겠나?”
SSS 등급의 아이템이라면 패왕이 라 불리는 윤 호도 충분히 관심을 보일 게 분명했다.
비록 소환자가 세운 나라지만 알 르드는 대륙의 동남부를 장악하고수인 왕국까지 흡수한 세력. 지금 부터라도 그들과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할 필요성이 있었다.
“……라고 생각하며 이 아이템들을 보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로우덴은 추임새마 냥 말끝에 멍멍을 덧붙였다. 그리 고 호는 물끄러미 적어도 수백 개 는 되어 보이는 아이템의 산을 바 라보았다.
자신이 파신 비야르키나를 물리
쳤다는 소식이 대륙에 퍼지자마자 각세력의 지원들이 알르드로 쏟 아졌다. 개 중에는 아직 거래를 못 하고 있는 희귀한 특산품의 교역 권한도 있었고, B 등급의 마장기 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알르드와는 원수나 다름 없는 천족들조차도 상당량의 리스 와 식량을 보냈다. 처음에는 영문 을 알 수 없었으나 호는 곧 기사 왕을 비롯한 대륙의 영웅들에게서 이러한 행위들에 대한 설명을 들 을 수 있었다.
‘이건 뭐, 퀘스트 보상도 아니 고……
다른 세력들이 보낸 것들은 전부 자신들을 대신해 파신 비야르키나 를 물리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솔직히 말해 보상의 질은 형편없 었다. 비야르키나를 물리치느라 파 괴된 A 등급 마장기만 해도 열기 가 넘었다. 당연히 이런 아이템 및 자원으로 메꿀 수 있는 수준이 아 니었다. 하지만 굳이 주는 것을 마 다할 필요는 없었다.
비록 별 필요는 없어도 공짜는 공 짜였다.
“쉐르난비체에게 고맙다는 편지는 한 통 써야겠군.”
“흐룬팅에 대해서는 한 번이라도 언급을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 다, 멍멍. 나름 큰 맘 먹고 보낸 모양이니까요.”
“그래야겠네.”
다른 아이템들과는 달리 흐룬팅 은 SSS 등급의 무기였다. SSS + 등급의 무기인 철벽의 장검을 소 유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별 필요 가 없는 무기겠지만, 검을 사용하 는 다른 영웅들에게 준다면 크게 기뻐할 것 같았다.
‘검을 쓰는 영웅이라……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웅은 기사
왕 이레네 아르티아. 하지만 그녀 는 이미 자신의 고유 무기가 있었 다. 한시진 역시 풀강한 루디안 소 드가 있으니 흐룬팅은 필요가 없 었다. 빠르게 다른 네임드들을 떠 올려봤지만 다들 검을 무기로 사 용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어째 마땅히 줄 녀석이 없네.”
결국 호는 흐룬팅의 주인으로 SS 등급의 인간 영웅인 케반스를 지 정했다. 네임드 마장기인 드릴 루 드비히의 오너인 만큼 그에게 좀 더 투자를 할 생각에서 나온 결정 이었다.
그렇게 케반스에게 흐룬팅을 수
여한 호는 마족이 보낸 다른 아이 템들의 처리는 로우덴에게 위임했 다.
그리 대단한 아이템들도 아니었고, 알르드에는 워낙 많은 영웅들이 있 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일일이 영웅들의 정보를 확인하고 필요한 아이템들을 수여하는 행위가 귀찮았 던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호는 아이템 의 수여에 시간을 빼앗길 수 없었 다. 현재 호는 다른 이들은 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 었다. 바로 위험난이도 SSS 던전 의 공략법 작성이었다.
‘빨리 EX 등급의 영웅을 만들어 야지.’
A 등급의 마장기, SSS 랭크의 병 사들.
SSS 등급의 영웅처럼 대단한 능력 을 지닌 전력을 보유하고 있기는 했 지만 언제 파신 비야르키나와 같은 루베릭 대륙의 괴물이 알르드를 공 격해 올지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침략이 본격화되기 라도 한다면 현재의 전력으로는 결 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아니, 부족 했다.
‘사파리 공성전에서 파신 비야르
키나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우 리가 비야르키나 한 녀석에게 모 든 전력을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 이야.’
만약 파신이 둘 이상 있었다면 사파리 공성전은 백 퍼센트 자신 들의 패배였다.
비야르키나 하나를 제압하는데도 브로리, 기사왕, 한시진과 같은 알 르드의 최정예 에이스들을 모조리 투입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를 제압하는데 엄청난 피해를 입 기까지 했다.
A 등급 마장기와 S 등급 이상의 영웅으로 구성된 마장기 편대도 파신의 분신을 상대로 고전을 했 다. 일반 병사들의 피해 또한 어마 어마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SSS 랭크의 병사들이었다. 그만큼 호가 직접 경험한 루베릭 대륙의 전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만약 이게 가상현실게임 ‘리그너 스 대륙전기’였다면 밸런스 붕괴라 는 말이 바로 튀어나올 정도로 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