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31
펑! 퍼펑!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형형색색의 조명탄이 터지고 있었다.
부서진 건물들을 엄폐물로 삼아 조 심스럽게 이동하고 있던 묘인들도 확인할 수 있는 화려하고도 커다란 불꽃이었다.
“녀석이 등장했나 보군.”
불꽃을 확인한 리셴르나가 안심하 듯 말했다. 이번 작전의 성패는 파신 비야르키나와 타락한 아란티아느 를 마법진의 곁에서 얼마나 떨어뜨 리느냐에 따라 달려 있었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마법진을 파괴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군이 지금부터 파신과 타락한 아란티아느 를 붙잡고 늘어진다 하더라도 사파 리에는 킬리만자로와 촉수 괴물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자신이 이끄는 묘인 부대의 전력으 로는 킬리만자로 한 마리는 몰라도 두 마리가 나타나면 당해낼 수가 없 었다.
‘적들의 움직임은……
파신 비야르키나가 발견되었다는 불꽃이 피어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리 셴르나는 섣불리 병사들을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은밀하게 적들의 움직임에 들키지 않고 사파리의 내성으로 잠 입해야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움직여야한다는 유혹이 밀려왔지만, 리셴르나는 꿋꿋이 유 혹을 참았다.
그렇게 어둠속에 숨어 있는 리셴르 나와 묘인 부대의 앞으로 킬리만자 로를 포함한 촉수 괴물 무리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들 눈을 희번덕거 리며 전투가 벌어지는 쪽으로 황급 히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적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군. 지금부터 빠르게 움직인다.”
리셴르나의 명령이 떨어졌고, 긴장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묘인들이 조금의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어둠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한때 수인 왕국의 중심지였던 사파리의 내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크아악!”
“빌어먹을 괴물 자식! 죽어라!”
사방이 비명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몇 번의 전투를 통해 적들의 전력을 깎아내렸다고 생각했지만, 루베릭 대륙의 괴물들은 병사들이 쉴 틈을 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 었다.
“포격! 적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려 라! 멍멍!”
로우덴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력 폭
탄을 발사할 준비를 마친 라이온레 인 편대가 아군을 향해 달려드는 촉 수 괴물들을 향해 폭탄을 발사했다.
순식간에 화염이 타오르며 반수에 가까운 괴물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어서 실버 문을 비롯해 브뤼헤아 비쉬, 드래곤 라이더의 공격이 이어 졌고, 얼마 안 가 세 마리의 킬리만 자로를 포함해 아군을 공격하던 촉 수 괴물 무리가 모조리 쓰러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에 취할 시간이 없었다.
“전투를 치렀던 선두의 병사들을
뒤로 물리고, 체력이 남아 있는 병 사들을 추려서 방어진을 구성한다! 곧 괴물들이 다시 몰려올 꺼다. 멍!”
“알겠습니다!”
괴물들을 상대로 큰 피해 없이 승 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로우덴은 아 직 전투가 끝나려면 멀었다는 사실 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진이 파괴됐다는 보고가 도착 할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괴물 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어야만 했 다.
“멍.”
그리고 로우덴은 셰비트리와 라이 온레인 그리고 엑스칼리버가 포함된 마장기 전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면 촉수 괴물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 와도 충분히 버텨낼 자신이 있었다.
킬리만자로가 문제이긴 했지만, 그 건 뛰어난 실력을 지닌 아군의 마장 기사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멍멍.’
로우덴의 귀가 멀리서 들려오는 커 다란 폭음을 감지하고는 쫑긋 움직 였다.
아군이 있는 장소에서 삼십분 남짓 떨어진 곳에서는 호가 이끄는 알르드의 엘리트 마장기사들과 파신 비 야르키나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서는 자신의 주군이 호가 비야르키 나를 무찔러줘야만 했다.
아니, 최소한 마법진이 파괴될 때 까지 호가 비야르키나의 발을 붙잡 고 있어야 했다.
“호님의 어깨에 리그너스 대륙의 운명이 달려있는 셈이로군. 멍.”
그렇게 중얼거리며 로우덴은 다시 병사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 고 전투를 끝낸 병사들이 휴식을 취한 지 이십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괴물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정찰을 나갔던 브뤼헤아 비쉬들이 황급하게 달려와 적들의 등장을 알 렸다.
“멍멍! 진영을 유지해라! 상대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진영만 무너 지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체력을 회복한 알르드의 병 사들이 다시 자신들의 무기를 들어 올렸고, 잠시 열을 식히고 있던 마 장기들 또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 직이기 시작했다.
“죽어라!”
파신 비야르키나의 날카로운 손톱 이 호를 향해 휘둘러졌다. 마나의 강기가 5m가 넘게 뻗어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 다.
“크아아앗!”
하지만 호는 비야르키나의 기세에 조금도 밀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자신을 미끼로라도 삼아 비
야르키나를 무조건 이 자리에 붙잡 아 놓을 생각이었다. 이어서 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기합과 함께 라이 온레인-플레임의 거대한 대검이 휘 둘러졌다.
카앙! 캉!
불꽃이 튀기며 요란한 철성이 사방 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게 비야르키나의 공격을 한 번 씩 막아낼 때 마다 호는 자신의 손 바닥이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 아야만 했다.
‘ 빌어먹을!’
루베릭 대륙의 절대자라 불리는 파
신답게 공격 하나하나에 엄청난 위 력이 담겨 있었다.
천에 가까운 무력 능력에도 불구하 고 공격을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였 다.
적어도 자신과 비교해 500…… 아 니, 그 이상의 능력 차이가 나는 상 대.
자신이 탑승한 마장기가 A등급, 그것도 전용기가 아니었다면 버텨내 는 것조차 힘들었을 공격이었다.
하지만 호는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가만히 목을 내놓고 죽어줄 생 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전투는 자신 혼자만 하는 게 아니었다. 호 에게는 이런 파신도 상대할 수 있는 뛰어난 실력의 동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알르드에서 가장 위 협적인 한 소녀의 눈동자가 조금씩 뒤집어지고 있었다.
“캬아아아악!”
띵동.
-브로리 발란스의 ‘달의 분노’가 발동되었습니다.
“모두 물러서!!”
비명에 가까운 괴성과 함께 어떤 스킬이 사용되었다는 메시지가 나타 나자마자 호는 자신을 돕기 위해 주 위로 접근하던 아군들에게 외치듯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마장기의 조종간 을 뒤로 당겼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었다.
아군 마장기 또한 미리 전달받은 게 있던 터라 빠르게 뒤로 물러났 다.
후우웅!
그렇게 호의 라이온레인-플레임의 동체가 살짝 기울어지며 뒤로 물러날 때였다. 커다란 파공음이 호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아앙!
“큭!”
곧바로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진동 음에 마장기의 무거운 동체가 들썩 였다.
하지만 호는 진동음의 정체를 확인 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이 자리 를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괜히 말려들었다가는 아무리 라이온레인 -플레임이 A등급 전용기라 하더라 도 버텨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비야르키나의 공격 범위
에서 빠져나온 호가 방금 전까지 자 신이 있던 자리로 눈을 돌렸다. 예 상은 했지만 놀라운 광경이 호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노란색의 마 나로 물든 코우랄라가 비야르키나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무 력 능력 EX 인 파신을 상대로 압도 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저게 무슨……
“달의 분노. ‘신의 힘을 이어받은 자-제천대성’ 클래스를 지닌 브로리 의 가장 강력한 능력 중 하나야.”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한시진이 믿 을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 리고 혼잣말에 가까운 한시진의 중얼거림에 호가 답하듯 말했다.
달의 분노.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이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경우에만 발동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기는 했지만, SSS랭크의 스킬답게 그 효과만큼은 사기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대 단한 스킬이었다.
무력 능력이 무려 두 배로 증가하 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력한 스킬답게 그에 따른 패널티도 있었다.
바로 높은 확률로 이성을 잃는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광전사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스킬이었다. 특히 나 아군의 연계가 중요한 레이드나 대규모 집단전에서는 사용이 불가능 한 능력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력 능력을 두 배로 뻥튀기할 수 있는 스킬을 그냥 둘 수는 없지.’
하지만 파신과 같은 강력한 적을 상대하는 상황에서는 ‘달의 분노’와 같은 무기를 그냥 둘 수 없었다.
어차피 이성을 잃은 미친년의 곁에 는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 었다.
콰아앙! 쾅!
“빌어먹을!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 르겠지만, 여기서 모조리 죽여주겠 다!!”
브로리의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지 고 있었지만, 비야르키나 역시 루베 릭 대륙의 절대자라 불리는 파신.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코우랄라의 공격을 방어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의 주인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모양일까?
어느새 타락한 아란티아느까지 나 타나 브로리의 마장기를 기습하려고 하고 있었다.
“어디를!!”
하지만 아란티아느의 움직임은 그 녀의 앞을 가로막은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로 인해 무산되고야 말았 다.
오히려 검신을 발동한 기사왕의 공 격에 발이 붙잡히고 있었다.
그리고 두 괴물의 싸움을 지켜보던 호가 다시 검을 손에 쥐며 말했다.
“한시진! 우리도 준비하자.”
“어, 어? 쟤 눈깔 돌아간 거 아니 에요? 가까이 접근하면 우리가 박살 날 것 같은데……?”
“아니, 이제 곧 정신을 차릴 거야. 그리고 잠시간은 제정신을 못 차릴 테니까 그 동안은 우리가 비야르키 나를 상대해야 돼.”
“하……. 현자 타임이라도 오나 보 죠?”
달의 분노를 발동한 브로리의 공격 이 몇 번이나 정타로 들어갔지만, 비야르키나는 끝끝내 브로리의 공격 을 버텨내었다.
루베릭 대륙의 괴물다운 능력이었 다. 하지만 피해가 없던 것은 아니 었다.
호의 눈앞에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와 비교해 큰 폭으로 줄어든 비야르 키나의 생명력이 눈에 들어왔다.
퍼센트로 따지면 약 40% 정도. 피 해를 감수한다면 충분히 당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 나를 도와라!!”
자신을 포위하는 마장기의 움직임 에 위기감을 느낀 모양인지 비야르 키나가 자신의 분신 킬리만자로를 불러 모았다.
그런 비야르키나의 외침에 따라 잠 시 후,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킬리 만자로들이 괴성과 함께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 역시 이런 생황을 예상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의 당황도 없이 침착한 호의 목소리가 통신구를 타고 울려 퍼졌다.
“제2, 4 라이온레인 편대와 제2 셰 비트리 편대는 킬리만자로의 방어 및 퇴치에 주력한다! 나머지는 브로 리를 보호하며 비야르키나를 공격한 다!”
“알겠습니다!”
“라져 댓!”
척하면 척. 호와 함께 수많은 전투 를 함께한 에이스들답게 알르드의 마장기사들은 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전장으로 난입하려는 킬 리만자로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군의 일부가 킬리만자로 를 상대하는 동안 호는 코우랄라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슬 슬 달의 분노의 효과가 사라질 시간 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브로리의 마장기 인 코우랄라의 동체를 감싸던 노란 색의 마나가 꺼지듯 사라졌다.
“이놈!!”
그와 함께 코우랄라가 뒤로 주춤주
춤 물러서기 시작하자 몸을 웅크리 며 방어만 하고 있던 비야르키나가 괴성과 함께 커다란 촉수를 코우랄 라를 향해 날렸다.
하지만 호와 다른 마장기사들 또한 지금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시진!”
썩둑!
회심의 일격처럼 날아간 비야르키 나의 촉수가 곧 데스사이더의 낫에 잘려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호가 날린 마력 폭탄이 비야르키나 의 앞에서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2차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