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30
미친년처럼 덤벼드는 아란티아느와 루베릭 대륙 괴물들의 저항을 물리 치고, 호가 지휘하는 알르드 군은 밤이 지나기 전에 사파리 성 안에 성공적으로 병사들이 주둔할 수 있 는 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진지에 여러 방어 시설들을 건설하고 싶었 지만, 안타깝게도 방어 시설을 건설 하는 데 필요한 자재가 부족했다. 그나마 임시방편으로 목책과 망루를 세운 게 전부였다.
“야습에 대비해라!!!”
“횃불을 넓게 펼쳐! 적들이 언제 이곳으로 공격을 해올지 모른다!”
“전투가 시작되면 브뤼헤아 비쉬들 은 다른 마법보다 라이트 마법을 먼 저 시전하도록 한다. 야간전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시계가 가장 중요하 다.”
하루 종일 괴물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까닭에 영웅들을 비롯한 병사 들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해 있었 다.
그러나 쉴 시간이 없었다. 당장 오
늘밤이라도 적들이 야습해 올 가능 성이 높았다. 그 증거로 정찰에 나 선 병사들에게서 촉수 괴물들이 접 근했다가 물러났다는 보고가 계속해 서 도착하고 있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적들의 야습을 대 비하는 동안, 호는 수인 병사가 전 해온 급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편지 를 보낸 이는 쿰마가 이끄는 수인 군대에 합류해 있는 호인 영웅 판테 라였다.
“파신 비야르키나의 등장으로 수인 군대 패배. 군단 규모의 병력이 전 멸했고, 열여섯 기의 마장기가 파괴 됨. 철권의 쿰마는 파신과의 결투에서 패배해 증상.”
“?? 아?!”
“공세를 취했던 수인 군대는 사파 리 성 북문에서 물러나 10 Km 정 도 떨어진 장소에서 루베릭 대륙의 촉수 괴물들을 상대로 분투 중.”
“그게 무슨!”
옆에서 편지를 읽는 호의 목소리를 듣던 한시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는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 동 안 무려 십만이 넘는 숫자의 수인이 사파리 성에서 운명을 달리한 것이 다.
“어쩐지 오늘 비야르키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 는데…. 수인들을 공격하고 있었 군….”
“지금 당장이라도 수인들을 구하러 가야하지 않을까요?”
“이 밤에? 바로 군대를 정비해서 출진한다 하더라도 수인 군대가 있 는 곳까지 도착하려면 하루는 꼬박 걸릴 거야. 어쩔 수 없어. 지금 상 황에서는 그 녀석들을 믿는 수밖에. 그리고 수인 군대가 무너질 정도의 큰일은 아마도 없을 거야.”
호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 다.
판테라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는 촉수 괴물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 고 있다고만 적혀 있었다. 비야르키 나나 킬리만자로에 대한 언급은 조 금도 없었다. 그리고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으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리도 없었다.
“문제는 우리야.”
사파리 성에는 파신 비야르키나와 그의 분신인 킬리만자로들. 그리고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촉수 괴 물들이 깔려 있었다.
아무리 알르드 군이 SSS랭크의 병 사들로 이루어졌고, 에이스 오너들이 포함된 마장기 전력을 지니고 있 다 하더라도 쉽사리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수인 군대와 함께 양동 작전을 펼치며 상대의 방어를 뚫어 내려고 했던 것인데, 그 중 한 축을 맡고 있는 수인들이 고작 이틀 만에 무너져 버렸다.
‘철권의 쿰마는 개뿔.’
물론, 수인의 전력으로 파신 비야 르키나와 루베릭 대륙의 괴물을 상 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 다. 칠제인 아쉬토가 함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십이멀이 건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파리의 수인들이 모조리 몰살당했다는 소식에 병 사들의 사기조차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틀 만에 물러난 것은 너 무한 결과였다. 숫자가 숫자인만큼 적어도 수인들이 일주일 정도는 적 들의 시선을 끌어 줄 것이라고 기대 했기 때문이었다.
“수인들이 물러났으니……
“사파리 성의 모든 괴물들이 이곳 으로 몰려오겠지.”
우글우글한 촉수 떼들을 떠올리며 호는 절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에 파신과 아란티아느 그리고 킬리만자로도 아군을 노리고 달려들게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물러 날 수는 없었다. 현재 사파리성의 마법진을 부술 수 있는 전력은 자신 들 뿐이었다. 여기서 후퇴하게 되면 양 대륙의 통행을 막고 있는 그랜드 라인은 보나마나 무너질 게 뻔했고, 그 결과는 더욱 큰 전쟁으로 이어질 터였다.
“빌어먹을. 리그너스 대륙의 다른 종족들에게 우리가 지금 얼마나 고 생하고 있는지 그 대가를 톡톡히 받 아내야 하는데……
호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으며 투덜거렸다.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수인 왕 국을 공격해서……. 아니, 아니지.’ 다시 생각해보면 수인 왕국을 공격 하면서 파신 비야르키나의 등장을 알아차린 까닭에 루베릭 대륙의 침 략을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면 호는 수 인 왕국의 넓은 영토를 그대로 꿀꺽 할 생각이었다. 파신의 등장으로 인 해 다른 세력들이 끼어들게 되면 오 히려 곤란했다.
하지만 그것도 파신 비야르키나를 물리치고, 그랜드 라인을 지켜냈을 때의 이야기였다.
“당장 로우덴과 기사왕을 불러오도 록. 군사 회의를 개최하겠다.”
곧바로 영웅들이 소집되었고, 호의 막사에서 여러 전략들이 오가기 시 작했다. 주로 입을 여는 영웅은 한 시진과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였 다. 둘 다 전략, 전술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둘 의 이야기를 듣던 로우덴이 호를 바 라보며 말했다.
“멍멍. 당장 중요한 것은 내성에 있는 마법진을 파괴하는 거 아니겠 습니까?”
“그렇지. 그랜드 라인만 지켜내면
그 후에는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으 니까.”
“그렇다면 비야르키나를 유인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멍.”
“유인?”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호의 물음 에 로우덴이 자신의 외알 안경을 슬 쩍 올리며 입을 열었다.
“파신 비야르키나와 루베릭 대륙의 괴물들은 이번 전쟁에서 마법진을 지켜내는 게 최우선의 목표일 겁니 다. 멍멍. 엄청난 피를 제물로 만들 어낸 마법진인 만큼 마법진이 아군 의 손에 파괴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요. 멍.”
맞는 말이었다. 문제는 비야르키나 가 지키는 마법진을 파괴하는 게 힘 들다는 점이었다. 아니, 킬리만자로 와 수많은 촉수 괴물들로 인해 내성 의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비야르키나와 킬리만자로 그리고 타락한 아란티아느만 끌어낼 수 있 다면 마법진을 지키는 촉수 괴물들 따위는 서너 기의 마장기만 있어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겁니다. 멍멍.”
“마장기 편대 하나를 별동대로 편 성하고, 본진은 비야르키나를 끌어 내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멍멍.”
“으음…. 확실히….”
물끄러미 로우덴을 바라보던 호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그의 말대로 이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랜드 라인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마법진의 파괴였다. 파신 비야르키나를 물리치는 것은 그다음의 이야기였다. 행여나 이번 전쟁에서 사파리를 점령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법진만 파괴할 수 있으 면 자신들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촉수 괴물을 제외한 적들만 모조리 유인할 수 있으면 굳이 별동대를 에이스 편대로 구성할 필요도 없었다. 즉, 전력의 감소가 거의 없 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호는 별동대로 활약하기 적 당한 수준의 영웅을 머릿속으로 떠 올렸다.
‘리셴르나와 그녀의 편대라면….’
은밀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묘인들 이라면 충분히 적들의 이목에 걸리 지 않고, 후방으로 돌아가 사파리의 성내로 잠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르드 군이 사파리 성 내에 군영 을 꾸린 그 날 밤, 적들의 야습은 없었다.
세 번 정도 소규모의 촉수 괴물들 이 쳐들어오기는 했지만, 기껏해야 천 명 단위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촉수괴물들은 마장기사들이 나설 필 요도 없이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 의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다음 날, 지금까지의 전투 는 서막에 불과했다는 듯 알르드의 모든 전력을 동원한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었다.
“와아아아아!!!”
“호 님을 위하여!!!”
“루베릭 대륙의 괴물들을 물리치 자! 이 리그너스 대륙을 우리의 손 으로 지키는 거다!!!”
영웅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병사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눈앞에 강력한 괴물인 킬리만자로 와 수많은 촉수 괴물들이 보이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선두의 병사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자신들이 죽 더라도 동료들이 적들을 물리치고 이 대륙을 지켜줬으면 하는 각오를 품은 모습들이었다.
“달의 여신이여! 나에게 힘을 주소
서!”
“죽어 맛!”
그렇게 실버 문들의 돌격을 시작으 로 사파리의 성내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알 르드의 공격은 세 방향에서 이루어 졌다. 중앙은 호와 브로리가, 좌측은 한시진 그리고 우측은 기사왕 이레 네 아르티아가 맡은 군단이 삼각형 을 그리며 내성을 향해 진격을 시작 한 것이다.
호는 다른 마장기사들처럼 마장기 라이온레인-플레임에 탑승해 전투 에 나섰다. 전투에 나선 아군의 전 술적인 움직임에 관해서는 로우덴이라는 보험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움 직이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야만 비야르키나나 타락한 아란티아느를 좀 더 쉽게 유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그런 호의 결정에 영향을 미 쳤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된 지 한 시간 남짓. 아군의 앞을 가로막는 킬리만 자로의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 었다. 슬슬 적들의 대장이 모습을 드러내도 될 법한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리셴르나는 어떻게 무사 히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네.’
작전대로라면 리셴르나와 그녀의 부하들은 현재 성벽을 엄폐물로 삼 아 사파리를 크게 돌고 있을 터였 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멀리 떨어진 터라 통신이 불가능했다.
호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중앙 에서는 아군의 보병과 촉수 괴물의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킬 리만자로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마장기 편대의 움직임 또한 바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호의 버프를 받은 SSS랭크 의 병사들과 A등급으로 이루어진 알르드의 마장기 편대는 루베릭 대륙의 괴물을 쓰러뜨리며 조금씩 앞 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먼젓번의 전 투보다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킬리 만자로의 숫자가 줄어든 영향이었 다.
“전진하라! 마장기 편대는 킬리만 자로를 물리치는 데 우선한다!”
“오라오라오라!!!”
“음무워어 어!”
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브 로리와 웃소가 기합성을 내뱉으며 자신들이 상대하는 킬리만자로를 매 섭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브로리는 두 마리의 킬리만
자로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그 러면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브로 리의 무용에 위험하다고 느낀 것일 까? 또 한 마리의 킬리만자로가 전 투에 합류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 기 시작했다.
“꼬끼오!!! 어딜!”
하지만 피닉스의 치르넬이 조심스 러운 움직임으로 브로리를 기습하려 던 킬리만자로의 등판을 그대로 지 져버렸고, 이어서 등판이 바짝 익은 킬리만자로와 팔쿤의 싸움이 시작되 었다.
‘생각보다 킬리만자로의 숫자가 많 지 않다.’
호의 눈동자가 빠르게 전장을 훑었 다. 계속된 전투로 그만큼 피해가 누적된 것이리라. 아군 또한 처음과 는 달리 전력의 손실이 적지는 않았 지만, 마장기 전력만큼은 건재한 편 이었다. 마장기사만 멀쩡하다면 마 장기는 충분히 수리가 가능하기 때 문이었다. 게다가 마정석 또한 충분 히 있었다.
콰앙!
“슬슬 등장할 때가 됐는데. 어디에 있는 거지?”
마력 폭탄으로 팔쿤의 피닉스를 후 려치던 킬리만자로의 어깨를 날려 버린 호는 멀리서 몰려오는 촉수 괴 물 무리를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 렸다.
지금처럼 적의 전력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전투의 목적은 비 야르키나와 타락한 아란티아느의 유 인이었다. 비야르키나나 아란티아느 가 나타나면 터뜨리기로 한 조명탄 역시 잠잠했다.
‘설마 내성에 그대로 있는 것은 아 니겠지?’
정말로 그런 상황이라면 곤란했다.
리셴르나와 묘인들로 이루어진 마 장기 편대는 비야르키나는커녕 타락한 아란티아느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킬리만 자로 한 마리 정도나 상대할 법한 수준의 전력이었다.
그렇게 호가 불안한 생각을 품고 괴물들을 물리칠 때였다. 라이온레 인과 짝을 이뤄 선두에서 전투를 벌 이고 있던 셰비트리 한 기가 비명과 함께 반파가 되는 모습이 호의 눈에 들어왔다.
“비야르키나?! 나타났구나!”
호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오기가 무 섭게 여러 발의 조명탄이 펑펑 하늘 위로 발사되었다. 사파리 성에 있다 면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을 정도의 폭발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는 강력한 적이 나타 났으니 지원을 바란다는 의미의 조 명탄이었다. 물론, 사파리 어딘가에 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묘인 들에게 보내는 신호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