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26화
원래의 계획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수인 영토를 발전시키고, 생산되는 특산품들과 자원을 이용해 마장기의 대량 생산 공장을 수인 영토에 세우 는 것이었다.
거기에 수인 영웅들의 승급과 미공 략된 높은 난이도의 던전을 찾아 SSS등급의 영웅과 EX등급의 전직과 관련된 일들도 하나둘씩 해결할 생 각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륙전쟁의 깃
발을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새롭게 차지한 영토 의 발전보다는 사파리에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되는 루베릭 대륙의 녀 석들을 몰아내는 게 먼저인 것처럼 보였다.
루베릭 대륙의 존재와는 같은 하늘 을 이고 살 수 없다는 영웅들의 반 응도 반응이었지만, 이유야 어쨌든 정체불명의 세력이 알르드의 후방에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 지 않았다.
하물며 그들의 목표가 대륙에 있는 모든 생명들의 말살이라면 더더욱 말이었다.
“결국 사파리에 있는 루베릭 대륙 의 녀석을 몰아내야 한다는 말인 데……. 그런데, 그 녀석들 왜 사파 리에 자리를 잡은 거지?”
말을 꺼내던 호가 문득 의아한 표 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 사파리는 방어가 용이 한 영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투항한 수인 영웅들 중 유 일하게 회의에 참가한 판테라가 조 심스레 입을 열었다.
“단순히 생각해 사파리에 살고 있 던 수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크릉. 지금 비야르키나는 죽은 수인들의 영혼과 피의 힘을 이용해 그랜드 라 인을 무력화시킬 마법진을 그리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매번 리그너스 대륙으로 넘어왔던 루베릭 대륙의 존재들은 다들 그와 비슷한 행동을 보였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 지는 거지?”
“창조신이 만든 그랜드 라인으로 인해 지금까지 악신 카테지나는 자 신의 모든 힘을 사용해도 아주 극소 수의 이들만을 리그너스 대륙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파신은 그랜 드 라인조차 통과할 수 없었죠. 하지만 사파리의 마법진으로 인해 그 랜드 라인이 무력화되면 악신 카테 지나를 비롯해 파신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군대가 그랜드 라인을 통과 할 수 있게 됩니다.”
“분명 라그나로크를 능가하는 엄청 난 규모의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판테라의 말이 끝나는 순간, 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건 곤란했다.
알르드가 그 전쟁을 피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다가 루베릭 대륙 군 대가 상륙하려는 곳은 보나마나 알르드의 영토와 맞붙어 있는 수인 왕 국의 위치일 게 틀림없었다.
결국 리그너스 대륙에 상륙한 파신 들이 가장 먼저 노릴 세력은 다름 아닌 알르드일건 쉽게 짐작할 수 있 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마법진이 완 성되는 일만큼은 막아야겠군.”
호가 빠르게 결론을 내리며 말했 다.
“그래서 마법진의 완성까지는 얼마 나 걸리지? 우리가 움직인다고 해도 그 전에 마법진이 완성되어 루베릭 대륙의 군대가 넘어오는 말짱 헛짓거리 아니야?”
“……희생자의 규모를 보면 최대 한 달, 최소 보름 내에는 완성될 겁 니다.”
“고작 보름이라는 얘기로군.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리그너스 대 륙의 모든 세력들이 힘을 합쳐서 막 아내야 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보름이라면 다른 종족들의 군대가 제대로 움직이기도 전에 그랜드 라 인이 무너져 있을 터였다. 결국 지 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세력은 자신들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곧바로 드래곤 라이더들을 보내겠 습니다.”
로우덴이 말했다.
머리가 좋은 영웅답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상대는 루베릭 대륙의 칠제라 불리 는 파신. 자신들의 모든 전력을 동 원해서 물리쳐야 했다.
곧바로 2군단과 3군단이 있는 방 향으로 드래곤 라이더들이 하늘을 날았다.
“더럽게도 날씨 좋네.”
호가 짜증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루베릭 대륙이라는 변수가 나타나면 서 자신이 세웠던 모든 계획이 그대 로 무너져버렸다.
그로 인해 심기가 크게 불편했지 만, 그런 자신의 마음을 비웃듯 사 파리로 향하는 하늘은 너무나도 맑 았다.
“쯧.”
하늘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혀를 찬 호는 곧 시선을 돌렸다.
알르드와 수인 군대가 함께 사파리 로 향하고 있는 모습은 장관에 가까 웠다.
병사들의 숫자만 해도 물경 오십만 이 넘었다. 그러나 호는 눈에 보이 는 질서정연한 병사들의 모습에 별 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이미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진 엔 딩을 경험하며 일곱 종족 연합군을 지휘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보다 보니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 절로 떠으 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있는 1군단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을 터였다.
“뭐……
적과의 동침이라지만 딱히 걱정스 러운 마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수인 왕국은 전쟁을 계속해 서 지속할 여력이 없었고, 수왕인 아쉬토는 대륙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들과 함께하고 있 는 세력은 알르드에 투항한 영웅들. 충성심이 높은 편은 아니겠지만, 그 렇다고 곧바로 자신들의 등에 칼을 꼽을 위인들도 아니었다.
결국 지금의 가장 큰 문제는 사파 리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파신 비 야르키나와 루베릭 대륙의 세력이라 는 말이었다.
그리고 어떤 연유 때문인지…….
띵동.
-‘비야르키나의 계획을 막아라!’가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호는 자신이 오늘 아침 눈을 뜨자 마자 나타났던 퀘스트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의 시스템 메시지와 같은 형식이었 지만, 그 내용은 ‘리그너스 대륙전 기’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이레귤러 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심지 어 보상도 있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기는 했는 데……
대체 어떤 조건에서 그리고 누가 자신에게 이러한 퀘스트를 내리는 지 아침부터 곰곰이 고민을 해봤지 만,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지 금도 마찬가지였다.
“에라,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든 되
겠지.”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머리를 아플 뿐이기에 호는 생각을 포기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마장기의 조종석에 몸을 푹 기댔다. 쿠션이 없는 딱딱한 의 자라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나름 전용기로 개조된 탓에 살짝 눕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비야르키나와 아란티아느. 거기에 분명 킬리만자로라는 괴물들도 있겠 지?’
계속해서 전해져오는 병사들의 첩 보에 따르면 그 외에도 다수의 끔찍한 촉수 괴물이 사파리 내를 돌아다 닌다고 했다. 결국 그 녀석들을 방 해를 뚫어야만 비야르키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촉수 괴물은 논외로 치 고……
듣자하니 촉수 괴물은 파신의 분신 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강력한 녀석 들은 아니라고 했다. 뛰어난 실력의 병사라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 는 수준.
문제는 루베릭 대륙의 EX등급 병 사인 킬리만자로였다. 저번의 전투 에서 경험했듯이 킬리만자로의 위력 은 A등급 마장기와 필적하거나 약간이나마 능가한 수준이었다. 적어 도 S등급의 영웅이 탑승한 A등급 마장기면 호각세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보고에 의하면 그런 녀석들이 최소 서른 이상이 보인다고 했다.
거기에 아란티아느라는 괴물과 혹 시 모를 루베릭 대륙의 전력을 생각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전쟁에 참가한 아군의 에이스급 오너는 모 조리 총 출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베릭 대륙의 녀석들을 상대로 승패를 장 담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거 뭐가 튀어나올 줄 모르니 좀 답답하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에 나오는 적들이라면 충분히 그 강 력함을 어느 정도나마 예상 할 수 있었다. 이미 경험해 본 바 있기 때 문이었다.
비록 가상현실게임과는 다르게 지 금은 EX등급과 EX+등급이라는 괴 랄한 능력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 능력을 지닌 이들은 적이 아닌 아군들이 었다.
그래도 일단 주요 인물인 타락한 아란티아느의 능력은 확실히 파악하고 있었다. 적어도 니나 다니엘레 혹은 그 윗급인 기사왕이나 브로리 가 나서야지만 어렵지 않게 제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비야르키나는…….
“칠제 수준으로 생각해야겠네. 재 수 없으면 EX+능력도 하나 있을 테고,”
아무래도 그 녀석을 없애려면 아란 티아느를 비롯한 루베릭 대륙의 세 력을 빠르게 정리하고 유능한 아군 의 영웅들로 다구리를 쳐야 될 것 같았다. 위험난이도 SSS등급의 보스 급 몬스터를 상대했던 것처럼 말이 다.
“캄챠크 평원이다!!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파신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 한참 머 리를 굴리고 있던 도중, 통신구를 통해 브로리의 목소리가 호의 귀로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밖을 확인해보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너른 평야가 멀 리서 펼쳐지고 있었다.
“캼차크 평원에서 사파리 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약 이틀 정도입니다.”
잠시 평야를 바라보던 호가 물었 고, 통신을 함께하는 한 수인 영웅이 대답했다.
“사파리가 불타올랐다는 소식을 듣 고 출발한 지 사흘째. 그리고 여기 서부터 사파리까지 이틀. 또한 비야 르키나가 마법진을 완성시키는 데 보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호의 눈동자 가 수평선에 걸쳐 있는 해를 홀깃 바라봤다. 노을이 아름답게 지고 있 었다.
“여기서 저녁을 먹은 후, 사파리까 지 전속력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시 간도, 편하게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었다.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달린다 하더 라도 비야르키나를 막는데 고작 열 홀 남짓한 시간만이 주어질 뿐이었 다.
이번 전쟁이 속도전이라는 것은 한 시진과 기사왕도 알고 있었다.
사파리의 영혼과 피를 대가로 그랜 드 라인을 무력화시키려는 비야르키 나를 막아내느냐 못 막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크게 무리하지 않 고, 칠제의 군세가 모두 모일 때까 지 준빌르 단단히 갖춘 후 루베릭 대륙의 잔당을 상대했을 터였다.
그리고 이제껏 리그너스 대륙으로 건너 온 루베릭 대륙의 병사들은 그 렇게 소탕되었다.
리그너스 대륙으로 넘어온 루베릭 대륙의 잔당이 그랜드 라인을 무력 화시키려는 마법진을 어떻게든 몰래 완성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발동할 마력을 모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그럴 때마다 이상한 마력 을 느낀 리그너스 대륙의 영웅들에 의해 발각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 랜드 라인을 무너뜨리는 마법진이 발동되기까지 고작 한 달, 아니 보 름의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말고 이동해라! 우 리에게 이 대륙의 운명이 걸려 있 다!”
“쿠워엉! 휴식은 사파리에 도착해 서 쉬어도 충분하다!”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사파리에 도 착한 이들은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 아와 웅족의 장로 쿰마가 이끄는 3 군단이었다.
“이, 이럴 수가......
그리고 죽음의 도시가 되어버린 사 파리의 모습에 쿰마가 무릎을 꿇고 좌절했다.
불과 보름 전만 하더라도 사파리는 백만 이상의 수인이 하하호호 웃으 며 살던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괴상하게 생긴 촉수 들만이 도시를 메우고 있을 뿐이었 다. 생명의 기척이라고는 조금도 느 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사파리를 바라보던 쿰마의 좌절이 분노로 변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한 종족을 이끄는 장 로. 무턱대고 공격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좌절에서 일어난 그가 가장 먼저 찾은 이는 알르드의 기사왕이 었다.
“쿠웡! 언제 저 저주받을 녀석들을 공격할 생각이오?! 알르드가 함께한 다면 이 쿰마가 선두에 서겠소!”
“진정해라 쿰마. 마음 같아서는 나 도 당장 공격 명령을 내리고 싶다. 그러나 상대는 강력하고 우리의 병 사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이레네 아르티아가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의 검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드래곤 라이더들을 보 냈다. 하루나 이틀 뒷면 아군의 군 단들이 사파리에 도착할 터. 본격적 인 전투는 그때부터가 시작될 테니 지금은 힘을 비축해두는 게 좋을 것 같군.”
일리가 있는 기사왕의 말에 쿰마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화를 누그러뜨 려야만 했다.
웅족의 대영웅이었던 빅 푸의 뒤를 이어 수십 년째 웅족의 대표로 있는 그는 분노로 인해 자신을 따르는 이 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멍 청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