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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23화 (423/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23화

“어떻게 된 것이지! 어디서 킬리만 자로가 등장했단 말이냐! 크엉!”

점멸하는 통신구를 향해 아쉬토가 붉어진 얼굴로 격하게 화를 내며 말 했다.

잠시 후, 누군가의 목소리가 통신 구를 통해 들려왔다. 이번 출정이 있기 전에 아쉬토 본인이 왕국의 십 이멀로 임명했던 호인 영웅 판테라 의 음성이었다.

“아쉬토 님. 비야르키나의 킬리만 자로가 흑묘로 위장해 아군으로 숨 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알르드 의 마장기 편대가 킬리만자로를 상 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 다. 아군 또한……

“킬리만자로가 나타난 것은 나도 알아! 그런데 어떻게 나타났…… 잠 깐! 킬리만자로가 무엇으로 위장했 다고?”

“……흑묘입니다.”

판테라의 대답에 아쉬토의 입이 천 천히 다물어졌다. 그와 동시에 아쉬 토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수인 왕국의 드랭크 보병인 흑묘는 현재 수인 왕국의 상황으로는 훈련 이 불가능한 병사들이었다.

한때는 수인 왕국의 대부족이자 주 축이었던 묘인들이 모조리 알르드로 이주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알르드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다른 종족들이 아직 소수라도 왕국에 남 아 있는 것과는 달리 자유로운 존재 인 묘인과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운 견인은 현재의 수인 왕국에서는 코 빼기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가 벌어지기 전,

흑묘 한 부대가 수인 왕국군에 합류 를 했다.

동족이 전부 알르드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왕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번 전쟁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향 을 내비친 부대였다.

그리고 그 흑묘 부대는 다른 누구 도 아닌 아란티아느가 데리고 온 부 대였다.

그런 혹묘 부대에 파신의 분신인 킬리만자로가 숨어 있었다. 둘 다 검은색의 털을 지닌 생명체인 까닭 에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 다. 게다가 혹묘 부대는 아란티아느 본인이 직접 관리하기까지 했었다.

“흑묘 부대를 데리고 온 이는 아쉬 토 님도 알다시피 바로 그 아란티아 느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혹묘 부대 에서 킬리만자로가 나타났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제압해야 합니 다. 분명 비야르키나와 무슨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 그럴 리 없다! 아, 아란티아느 는 어찌 되었느냐?!”

아란티아느가 의심스러운 것은 명 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쉬토는 판테라의 말에 아란티아느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평생의 반려였던 아란티아느가 자

신을 배신하고 비야르키나와 눈이 맞았다는 것은 수왕의 자존심이 용 납하지 않았다. 결코 상상하고도 싶 지 않았다.

“아쉬토 님!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 다! 아란티아느는 대륙을 등진 배신 자입니다. 필시 루베릭 대륙과 관계 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설령 그 렇지 않다 하더라도 킬리만자로의 등장에 그녀가 의심스러운 것은 사 실입니다!”

심상치 않은 아쉬토의 목소리에 이 상함을 느낀 판테라가 재차 말했다.

“시끄럽다!”

그러나 아쉬토는 그런 판테라의 말 을 무시한 채 고개를 돌려 아란티아 느를 찾았다.

자신의 반려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장의 수많은 마장기들 중 흰색과 검은색의 줄무늬로 도색한 마장기는 단 한 기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마장기는 알르드의 붉은색 마장기를 상대로 치열한 결투를 벌이고 있었 다.

“아란티아느!!!”

라이온레인급 마장기가 자신의 반 려를 매섭게 몰아붙이는 모습에 아쉬토가 눈을 부릅뜨며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통신구를 통해 다급한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이미 잔뜩 홍 분한 아쉬토의 귀에는 그런 소리들 이 전혀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한창 상대를 몰아붙이던 호 는 자신의 시야에 나타는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눈을 깜빡였다.

띵동.

-아쉬토가 수왕의 격분을 발동했 습니다. 10 분 동안 아쉬토의 무력 이 200 상승하며, 무력을 제외한 다른 능력이 100 하락합니다.

‘뭐야? 수왕의 격분?’

필살기나 다름없는 아쉬토의 SSS 등급 스킬이었다.

무력 능력 200이라면 현재 자신이 들고 있는 SSS등급의 무기인 루디 안 소드를 하나 더 착용한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가뜩이나 강력한 아 쉬토의 전투 능력에 날개를 달아주 는 스킬이었다.

뭐, 그 외의 다른 능력치가 100 하 락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아 쉬토는 삼국지의 여포와도 같은 맹장.

전투 상황 특히 일기토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다름 아닌 무력 으로 그 외의 다른 능력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만큼 딱히 단점이라 도 할 것도 없었다.

그만큼 브로리가 아쉬토를 매섭게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우우우!!!

그러나 동물의 울음소리가 귀로 들 려오며 자신이 서있던 자리가 갑자 기 어두워지는 것을 확인한 순간 호 는 아란티아느를 공격하려는 생각을 접고 지체 없이 조종간을 뒤로 잡아당겼다. 극한의 긴장감에 머리털이 쭈뼛 솓고 있었다.

곧 무언가가 호가 있던 자리로 떨 어져 내리며, 쾅하고 지면에 크레이 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황급히 자세를 바로잡은 호 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적을 확인 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황금색으 로 도색된 티거알리카가 자신을 노 려보고 있었다.

“아쉬토? 뭐, 뭐야?! 수왕의 격분 을 나를 상대로 사용한 거야?!”

눈앞에 나타난 상대의 마장기가 수 왕 아쉬토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황금색은 수왕만의 고유한 색상이었다.

‘잠깐! 아쉬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는 것은? !’

호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리고 곧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안도 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토와의 일기토에서 브로리가 패배한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코우 랄라는 멀쩡했다.

오히려 브로리는 자신을 상대하다 가 갑자기 도망쳐버린 아쉬토를 향 해 통신구로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 다.

아무래도 킬리만자로가 나타난 상 황을 파악하고는 브로리와의 전투를 멈춘 모양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호는 곧바로 통신구를 열었다.

“아쉬토! 아란티아느는 리그너스 대륙의 적인 루베릭 대륙의 파신에 의해 타락했다! 전장에 모습을 드러 낸 파신의 분신 킬리만자로와 그녀 의 이해할 수 없는 강함이 바로 그 증거! 전투를 멈추고 파신들의 분신 을 처리해야 한다! 그대도 수인들이 리그너스 대륙의 공적으로 낙인찍히 는 것을 원하지는 않겠지?”

호가 아쉬토를 향해 말했다. 수인 왕국과의 전쟁도 중요하기는 했지 만, 공략본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이레귤러들을 먼저 처리하는 게 현 상황에서는 더욱 급선무였다.

게다가 타락한 아란티아느는 결코 그냥 둬서는 안 될 위험인물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인 아쉬토가 자신을 도와준다면 더욱 쉽게 아란 티아느와 킬리만자로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호는 아쉬토가 당연히 자신 들과 손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쉬토가 알르드에 큰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다혈질이고, 머리 가 나쁘다 하더라도 루베릭 대륙의 적이 등장했다는 현실을 파악하지 못할 멍청이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 이었다.

실제로 킬리만자로의 등장과 함께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수인 영웅 들은 아쉬토의 명령이 없음에도 불 구하고 자연스레 알르드 군과의 전 투를 멈추고 킬리만자로를 향해 무 기를 겨누고 있었다.

“크하아앙!”

“어, 어어?! 이! 씨발!”

하지만 잠시 멈칫하다가 자신을 향

해 돌진해오는 아쉬토의 모습에 호 는 급격히 얼굴을 굳혀야만 했다.

수인들의 왕이자 칠제의 의무가 있 음에도 불구하고 아쉬토는 파신의 힘에 타락한 아란티아느가 아닌 알 르드를 향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저런 미친 새끼!”

“대륙의 공적을 공격해라!!!”

대륙의 공적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 구하고 칠제인 아쉬토가 킬리만자로 가 아닌 호를 공격하자 다른 알르드 의 영웅들이 나서며 호를 도와 아쉬 토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다수의 마장기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이, 이게 무슨……!”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판테라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암담 한 표정을 지었다.

알르드의 왕인 윤호의 말대로 아란 티아느의 이해할 수 없는 강함과 전 장에 갑자기 등장한 킬리만자로의 존재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 을 정도로 아란티아느가 파신의 힘 에 의해 타락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거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비야르키나와 함께 행방불 명된 지 몇 년 만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아란티아느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하는 이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왕 아쉬토는 루베릭 대륙의 존재가 아닌 오히려 루베릭 대륙을 막아서던 알르드의 왕을 공격하고 있었다.

파신의 분신인 킬리만자로가 수인 과 알르드군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 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말이었다.

“어, 어떻게 할까요? 장군님? 우리 도 왕의 뒤를 따라 알르드 군을

“무슨 미친 소리야! 우리는 킬리만 자로들을 상대한다! 루베릭 대륙의 파신이 이 대륙에 나타나게 되면 어 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말 몰라서 그 래?!”

루베릭 대륙의 여신 카테지나의 손 에 고귀한 하이엘프 종족이 열 명도 남지 않은 채 모조리 죽임을 당했 고, 그 외 다수의 종족이 멸족한 것 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 다.

몇 번의 전쟁을 통해 알려진 루베 릭 대륙의 잔인한 여신은 자신의 뜻 을 받드는 파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 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 했다.

리그너스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라

도 리그너스 대륙에 발을 딛게 해서 는 안 되는 대륙의 공적이었다.

“킬리만자로를 공격한다! 파신이 대륙에 나타나면 우리의 땅은 모조 리 죽음으로 뒤덮일 거다!”

그렇게 명령을 내린 판테라는 자신 의 창을 꼬나 쥐고는 멀리 보이는 킬리만자로를 향해 달려 나갔다.

리그너스 대륙의 지배자나 다름없 는 칠제 중 하나 아쉬토의 행동을 탓할 여유가 없었다.

킬리만자로의 발악에 아군 병사들 수십, 수백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그런 판테라의 명령에 다른 수인

병사들 또한 다수의 마장기를 상대 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아쉬토에게 등을 돌렸다.

리그너스 대륙의 공적인 파신에 대 한 위험성은 리그너스 대륙의 모든 생명체라면 뼛속까지 깊게 남아 있 었다.

하물며 아쉬토는 대륙의 공적이나 다름없는 아란티아느의 편을 들고 있었다.

비록 아쉬토가 수인 왕국의 왕이라 고는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포함해 여러 사건들로 인해 신망을 잃은 그 를 충심으로 모실 영웅들은 그리 많 지 않았다.

“공격! 공격해라!”

알르드의 참모 로우덴 또한 시시각 각 변해가는 전장의 상황에 따라 병 사를 지휘하며 명령을 내렸다.

브뤼헤아 비쉬의 마법이 킬리만자 로의 움직임을 제약했고, 실버 문의 매서운 공격이 두터운 살갗을 가르 고 지나갔다.

하지만 열 마리 남짓한 킬리만자로 는 수만의 병사들을 상대로 대등한 전투를 벌여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 할 것 같았다.

양 군의 에이스급 오너들이 참전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킬리만자로를 몰 아붙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이로군요.”

“음!”

그리고 타우러스의 망치가 킬리만 자로의 두개골을 박살내는 것을 시 작으로 파신의 분신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로우덴을 호 위하던 병사가 입을 열었다.

고작 열 마리 정도에 불과했지만 킬리만자로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 병사들은 끔찍할 정도로 많았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수왕 아쉬 토의 마장기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아무리 그가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 이자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지닌 영 웅이라 하더라도 알르드의 마장기 편대를 상대로 홀로 버티는 것은 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요? 공통의 적이었던 파신의 분신도 모조리 쓰러졌으니 다시 수인들과 전투를 벌이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멍멍. 하지만 전투가 당장 벌어지지는 않을 거다. 파신의 분신이 아직 어디에 숨어 있 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 아마 모든 전쟁을 멈추고, 대륙 연합군이 모여 대대적으로 파신 혹은 그들의 분신을 찾아내는 색출작업이 벌어질 거다. 생각해 보니 일이 고약하게 됐어. 멍.”

수인 왕국과의 전쟁이 중단되면 현 시점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다름 아닌 알르드였다.

대군을 움직이는 데 소모되는 물자 들이 장난이 아닌데다가 색출작업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 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수인 왕국은 자신들의 공격을 대응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뭐, 일단은 저 녀석을 붙잡아야겠 지. 멍멍.”

로우덴이 멀리 보이는 얼룩무늬의 마장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십 기의 마장기가 아란티아느를 상대로 포위망을 갖추며 접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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