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19화
“출진한다!”
점령한 리저드 종족의 도시에서 사 흘간의 짧은 휴식을 취한 후, 호와 1군단은 커다란 늪지대를 피해가며 동진했다.
목표는 리저드 종족의 주도인 크레 스티 드.
메트로폴리스급 규모의 S등급 영지 였다. 그와 함께 대도시 규모의 영 지 하나가 호가 이끌고 있는 1군단의 목표였다.
울창한 정글과 그 속에서 악마의 입처럼 병사들을 빨아들이려는 늪지 대. 그리고 리저드 종족이 설치한 함정을 피해 행군을 하느라 1군단의 진격 속도는 굼벵이처럼 느렸다. 하 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괜히 늪지대와 함정으로 병사들을 밀어 넣느니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 게 움직이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 다.
“키륵!”
그런 알르드군의 동진에 리저드 종 족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느린 속도로 자신들의 영지를 향해 진격해오는 적들을 바라봐야만 했 다.
객관적인 전력의 차가 워낙 크게 나는 데다가 브뤼헤아 비쉬와 드래 곤 라이더들의 촘촘한 정찰로 인해 애써 시도했던 몇 번의 기습조차 모 조리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늪지대를 벗어난 알르드군을 상대로 리자드 종족이 믿을 수 있는 건 자신들을 이끄는 영웅과 크레스 티드를 둘러싼 높은 성벽 그리고 최 신의 기술로 건설된 방어시설들 뿐 이었다.
그렇게 알르드 군이 공격을 위한
진영을 갖추기 시작했고, 마장기 편 대를 앞세운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수인 왕국이여! 영원 하라!”
성벽을 향해 돌격하는 알르드 군의 마장기를 향해 방어 포탑을 다루는 리저드 종족의 병사가 울부짖으며 무기를 발사했고, 요란한 소리와 함 께 발사된 화살들이 마장기의 장갑 을 퉁퉁 두드렸다.
그리고 적의 방어 포탑을 발견한 라이온레인이 어깨의 포문을 열었 다.
쾅! 쾅! 콰앙!
이어서 터지는 세 번의 폭음. 화살
처럼 쏘아지듯 날아간 마력 폭탄 세 발이 순식간에 크레스티드의 방어 포탑 하나를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상황은 크레스티드 성 벽의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 나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버려!”
“성벽을 지켜라! 저 빌어먹을 엘프 들이 성벽 위로 올라서지 못하도록 해!!”
“드래곤 라이더다! 궁병들은 모두 드래곤 라이더를 공격한다!”
알르드 군의 손에서 자신들의 도시 를 지키기 위해 리저드 종족의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 황은 리저드 종족에게 불리해져만 가고 있었다.
병력의 질과 숫자, 마장기 전력의 차이 등 모든 면에서 알르드 군이 우세했기 때문이었다.
콰쾅! 쾅!
어느새 리저드 종족의 마장기 편대 를 전멸시킨 알르드의 라이온레인 편대가 브뤼헤아 비쉬들과 함께 성 벽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호와 브로리가 있었다. 상대의 마장기사들과 격렬한 전투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둘 의 마장기에는 별다른 흠집조차 나 있지 않았다.
리자드 종족은 이번 전쟁을 대비해 크레스티드의 성벽에 거금을 들여 마법 방어진을 설치했었다.
그러나 마법 방어진만으로는 수십 의 브뤼헤아 비쉬가 시전한 폭발마 법과 강철 거인의 연이은 공격을 막 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알르드 군의 계속된 공격에 충전된 마나가 사라진 크레스티드의 성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 기 시작했다.
“성벽이 뚫렸다! 진격하라!”
“돌격! 호 님을 위하여!”
“적들을 물리쳐라!”
성벽이 무너지자 실버 문 편대를 지휘하는 엘프 영웅이 그렇게 외치 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수백의 실버 문들이 성 내로 돌격을 시작했다.
“이거 거의 끝났는데? 생각보다 싱 거운 전투였어.”
성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코우 랄라의 오너 브로리가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세 기의 적기를 때려눕힌 그녀는 자신의 무기를 갈무리하며 무너진 성벽을 따라 돌격하는 실버 문들과 드래곤 라이더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적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브로리의 옆에 있던 호 역시 그녀 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자신들을 고 생시켰던 늪지대를 제외하면 리저드 종족의 남은 군대는 알르드에 비해 그리 대단치 않은 전력을 지니고 있 었다.
자신들과의 전투로 계속해서 전력 이 소모된 까닭에 크레스티드에 주 둔하고 있던 A등급 마장기는 고작해야 두 기에 불과했고, 십이멀급으 로 능력이 괜찮은 영웅들 또한 두 명밖에 없었다.
전체적인 마장기 전력 또한 서른 기가 넘지 못했다. 호가 이끄는 1군 단의 전력과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 다.
-내가 리자드 종족의 비디드래곤 이다!
공성전이 시작되면서 벌어진 마장 기전에서 리저드 종족을 대표하는 십이멀급의 에이스 오너들은 떨어진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거침없 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브로리와 니나 다니엘레와 결투를 벌였고, 순식간에 패배하며 목숨을 잃었다. 나름 십이멀급의 영 웅이라지만 알르드를 대표하는 두 맹장의 적수가 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수인 왕국이 급하게 머릿수 를 채우듯 십이멀로 임명한 까닭인 지 기존의 십이멀이었던 리셴르나, 팔콘과 같은 이들에 비하면 리자드 종족의 십이멀들은 세부 능력이 조 금 떨어지는 수준이기도 했다.
그리고 남은 리자드 종족의 마장기 사들도 알르드 군의 공격에 파괴된 마장기들과 함께 운명을 함께했다.
“이렇게 되면 저족에 이어 리자드 종족까지 무너뜨린 셈이로군.”
성벽을 넘어 돌격하는 아군의 병사 들을 보며 호는 수인 왕국의 상황을 떠올렸다.
이번 전투를 끝으로 남은 수인 왕 국의 종족은 토끼족을 포함해 호족 과 웅족 그리고 알르드와의 전쟁에 서 도망친 소수의 종족들뿐이었다.
그들의 영토를 포함해 수인 왕국의 수도 사파리를 점령하면 수백 년 동 안 이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다투 던 수인 왕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 라질 터였다.
쾅! 콰앙!
호가 천천히 성 안으로 마장기를 움직이는 동안 성내에서는 요란한 폭발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리자드 종족의 병사들과 전투를 벌 이며 브뤼헤아 비쉬들이 폭발마법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성벽은 일찌감치 무너졌지만, 전투 는 해가 뉘엿하게 질 때까지 계속되 었다. 일찌감치 승패가 결정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리자드 종족의 병사 들이 영주성을 중심으로 거세게 저 항을 했기 때문이었다.
“에잇! 대체 뭘 하는 거야!”
결국 지켜보다 못한 브로리가 나섰 고, 그녀가 전투에 참가하자 리자드 종족의 저항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 렸다.
아무리 탄탄한 방어벽이라도 EX등 급의 무력 능력을 지닌 괴물을 당해 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전투가 마무리되자 호와 알 르드의 영웅들은 리자드 종족이 어 째서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낼 수 있었다.
포로로 잡은 수인들의 입에서 중요 한 정보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수인 왕국의 제왕 아쉬토가 지 원군을 이끌고 크레스티드로 오고 있다는 정보였다.
“드디어 수인들의 대왕이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군요.”
“부상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모 두 회복한 걸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야.”
영웅들의 대화에 호는 선택의 신전 에서 만났던 아쉬토의 모습을 떠올 리며 말했다.
선택의 신전에서 만났던 아쉬토의 모습은 리그너스 대륙 최악의 폭군 이라 불리는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영웅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 느 정도의 힘은 회복한 듯 보였지 만, 파신과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아직까지 제대로 낫지 않은 모양이 었다.
“최강의 수인이라 불리는 녀석이지 만 확실히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생 각은 들지 않더군. 일대일의 구도라 면 충분히 내가 이길 수 있다.”
브로리가 자신의 주먹을 움켜쥐었 다 펴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 했다. 그리고 호 역시 그녀의 생각 에 동의했다. 마왕 쉐르난비체와 기 사왕의 경우를 생각하면 칠제라 불 리는 아쉬토 또한 EX등급의 능력을 지닌 영웅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쉬토의 EX등급의 능력은 분명 무력일 터.
무력만 따지자면 아쉬토와 브로리 는 서로 섣불리 우위를 점할 수 없 을 정도로 백중세의 전투를 펼칠 것 같았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단시간 내에는 좁힐 수 없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바로 마장기였다.
브로리의 마장기는 원인족의 전설 적인 마장기는 코우랄라.
그에 반해 아쉬토는 예전 파신과의 전투로 인해 본인의 전용기 킹 타이 거를 잃었다고 했다. A등급 마장기 제작이 불가능한 수인 왕국의 기술 력을 생각하면 엄청난 전력의 손실 이나 다름없었다.
‘기껏해야 평범한 A등급 마장기를 사용하고 있겠지.’
보나마나 티거알리카 급의 마장기 일 게 분명했다.
결국 전투가 벌어지면 아쉬토는 브 로리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다른 수 인 병사들을 쓸어버리면 될 것 같았 다. 현재 수인 왕국에서 위험인물이 라고 생각되는 영웅은 아쉬토와 웅 족의 족장 쿰마 정도가 전부였다.
알르드 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크레 스티드의 리자드 종족이 성벽을 방 패삼아 결사 항전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아쉬토는 병사들의 행군 속도 를 높였다.
이제 곧 있으면 리자드 종족의 영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르면 내 일 아침이면 선봉대가 크레스티드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리자드 종족의 영토에 들어 서고, 크레스티드 영지에 도착한 순 간 아쉬토와 수인 군대는 이상하게 변한 영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 다.
진한 패배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아쉬토가 자신의 이빨을 아득 깨물 었다.
“크레스티드가 무너졌군.”
고작 하루차이였다. 하루만 더 일 찍 도착했어도, 크레스티드는 무너 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리자드 종족의 본거지가 고 작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 이다. 리자드 종족의 패잔병들을 보 며 간신히 울화통을 억누른 아쉬토 가 아란티아느를 바라보았다.
“보다시피 크레스티드가 적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다면 이대로 알르드에게 우리의 영토를 내주고 병력을 물릴 생각인가요? 아쉬토?”
아란티아느가 묘한 눈빛으로 아쉬 토를 바라보았다. 마치 알르드의 군 대에 겁을 먹었느냐고 묻는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아쉬토는 큼하고 기 침을 내었다.
알르드의 군대 따위는 조금도 무섭 지 않았다. 자신은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이자 수인들의 왕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은 자
신만큼 강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알 르드의 공격에 충분히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그렇지는 않아. 하지만……
“내가 아는 아쉬토는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는 호인이 아니었어요.”
차가운 아란티아느의 말에 아쉬토 가 흠칫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아란티아느가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자, 잠깐…!”
아쉬토는 자신도 모르게 아란티아 느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가 다시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어 떻게든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아란티아느가 다시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마 되지도 않은 수인 병사들을 알르드의 입 안 에 그대로 집어넣을 수도 없었다.
이성이 알르드를 공격하라는 명령 을 거부하고 있었다. 수왕인 자신이 무너지면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수 인 왕국도 끝이었다.
그렇게 아쉬토가 고민하던 순간, 아란티아느의 눈동자가 유려하게 번 뜩였다.
“우리의 땅을 침략한 녀석들을 이 대로 보낼 수는 없어요, 아쉬토. 당 신이 나서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크 레스티드를 탈환할 겁니다.”
“뭐, 뭐라고?!”
아쉬토가 눈을 부릅뜨며 기겁했다. 아란티아느가 괜찮은 실력을 지닌 전사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 지만, 그녀의 무력은 자신은커녕 십 이멀과도 비교가 되지 못했다. 평범 한 호인 영웅의 수준에 불과했던 것 이다.
당연히 알르드의 이름난 영웅들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리고 혹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크르르릉.”
아쉬토는 복잡한 눈으로 아란티아 느를 바라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커다란 호통으로 그 녀의 뜻을 꺾었겠지만, 그녀가 다시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아쉬토의 그러한 행동을 막아서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이들과는 다르 게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아란티아 느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들고 있었다.
“어떻게 하겠어요? 아쉬토?”
“후우.”
결국 아란티아느의 재촉에 아쉬토 는 자신의 뜻을 꺾고, 그녀의 뜻대 로 병사들에게 크레스티드로 진군하 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수인의 군대가 서쪽으로 행 군을 시작했다. 백 여기의 마장기와 삼십여 만에 달하는 병사들. 수인 왕국의 모든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병사들이었다.
“그러면 우리도 가지.”
“알았어요, 아쉬토.”
아쉬토 역시 자신의 도끼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뒤에서 그런 아쉬토와 수인들의 이동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아란티아느의 눈동 자가 순간적으로 새카맣게 변했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모습을 목격한 수인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