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18화
“아, 아란티아느라고? 아쉬토?! 그 게 무슨 소리인가?!”
“크릉. 내가 한 말 그대로일세. 이 아쉬토의 반려인 그녀가 드디어 내 곁으로 돌아왔다네. 그것도 아주 건 강한 모습으로 말이지!”
“그게 무슨?!”
환한 아쉬토의 대답에 쿰마의 눈동 자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아란티아느. 그녀는 수 년 전, 파
신이 되어버린 종족의 배신자 비야 르키나의 등장과 함께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춘 호인족의 영웅이자 아 쉬토의 부인이었던 여성이었다.
그러나 비야르키나의 등장과 함께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밀스 럽게 모습을 감춘 터라 아란티아느 의 실종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들이 굉장히 무성했다.
그중 유력한 소문이 그녀가 비야르 키나와 눈이 맞아 루베릭 대륙으로 향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소문을 기 정사실이라고 여겼다. 과거 아란티 아느가 종족의 배신자인 비야르키나와 돈독한 사이였다는 점에서였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이 실종되었을 때처럼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왕국이 혼란스러운 지금의 상황에서 말이다.
당연히 쿰마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아란티아느가 수상스 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장 그녀를 붙잡아야 하네! 무려 이년도 넘게 실종되었던 여자야! 그 동안 그녀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 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파신과 손을 잡았을 수도 있어! 그 종족의 배신자와 함께 말이야!”
“크르릉! 그녀는 그럴 여자가 아니
야!”
충분히 일리가 있는 쿰마의 말이었 지만, 아쉬토는 그런 쿰마의 말에 극렬한 반응을 내보였다.
그런 아쉬토의 격렬한 모습에 주위 에 있던 수인들이 술렁거렸다. 알게 모르게 아란티아느가 비야르키나와 눈이 맞았다고 여기는 몇몇 수인들 은 그런 수왕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 라보았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에 게 왕국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었 다.
“아쉬토! 냉정하게 자네의 위치를
생각하게! 그녀가 수상하다는 건 자 네도 모르지는 않지 않은가?! 쿠 엉!”
쿰마가 재차 재촉하듯 말했다. 하 지만 아쉬토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 성인 아란티아느의 배신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웅족의 장로인 쿰마 의 제안을 어떻게든 넘기려고 했다.
“그녀는 그럴 여성이 아니야! 하지 만 사라졌던 이 년 동안 그녀가 무 엇을 하고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충 분히 알아볼 요량이네. 으르릉. 그러 나 그에 대해서는 일단 이 위기부터 넘기고 얘기하도록 하지. 왕국이 무너지면 그녀가 무엇을 하고 다녔는 지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 가?”
“ o 으.”
? 丁그 ?
아쉬토의 말에 쿰마가 입을 다물었 다. 지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아쉬토의 귀에 들어갈 것 같지가 않 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알르드의 공격 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아란티아느가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에 대해 알아 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훗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묻도록 하겠어.”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감옥에 가 둬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수 인 왕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쿰마는 자신의 생각을 끝 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렇게 웅족의 장로를 떠나보낸 아 쉬토는 자신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쿰마의 경고를 억누르고는 아란티아 느가 머무는 별실로 향했다. 전보다 는 조금 마른 모습이지만 호인 제일 의 미모를 지닌 여성답게 그녀를 자 신의 미를 한껏 드러내며 아쉬토를 맞이했다.
“쿰마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난 아란티 아느가 살포시 아쉬토의 품으로 파 고들었다.
아쉬토는 그런 자신의 여인을 두툼 한 손으로 천천히 매만졌다. 이런 사랑스러운 여성이 비야르키나와 눈 이 맞아 자신을 배신하다니?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신도 모르지는 않겠지만 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야. 쿰마에게 북 부를 공격하고 있는 기사왕을 상대 하라고 명령을 내렸네. 그와 웅족의 정예라면 기사왕을 몰아내지는 못해 도 그녀가 더 이상 활개 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거야, 크릉.”
“아쉬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왕국을 침입한 적들은 모조리 죽음 으로 죄를 물어야 해요.”
“음!”
그에 대해서는 아쉬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르드는 만만히 볼 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쉬토는 자신의 낮은 신 음성으로 상황의 힘겨움을 나타냈 다. 무턱대고 공격을 했다가는 왕국 을 잿더미로 몰아넣는 일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 도 피하고 싶었다.
“적들이 만만치가 않아. 당신도 나 를 도와야겠어.”
“물론이에요. 모든 힘을 다해서 알 르드 놈들을 섬멸하겠어요.”
“건강에는 아무 문제도 없는 거겠 지?”
“당연하죠. 모습을 감췄던 시간동 안 비야르키나에게 입었던 부상을 회복하는데 전념했어요. 지금은 아 무 이상도 없어요.”
아란티아느가 웃으며 말했다.
실종되었던 기간 동안 그녀는 비야
르키나의 손에 목숨이 경각에 달했 을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다고 했 다.
실제로 비야르키나는 그녀가 죽었 을 것으로 여기고, 그 자리를 떠났 다고 했다. 그리고 아란티아느는 그 런 죽을 부상에서 몸을 추스르느라 수인 왕국으로 돌아온 데까지 무려 이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 다.
물론, 쿰마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아쉬토는 그런 아란티아느의 말을 백 프로 신뢰하지 않았다.
가슴은 그녀의 말을 믿고 있었지 만, 차가운 머리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말은 그 누 가 듣더라도 의문을 가질 정도로 엉 성했다.
그러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아란 티아느를 압박할 수도 없었다. 행여 나 자신이 상상하는 끔찍한 일이 소 문이 아닌 사실로 다가온다면 도저 히 이겨낼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 문이었다.
큰 부상 경험과 계속되는 알르드의 압박이 한때 대륙을 공포에 떨게 만 들었던 용맹한 수왕을 나약하게 만 들고 있었다.
“알르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면 킹 타이거를 준비해야겠네요. 아, 킹 타이거는……
“그놈의 손에 의해 부서졌지.”
그렇게 말을 하며 아쉬토는 물끄러 미 아란티아느를 바라보았다.
아쉬토와 눈동자가 마주한 그녀가 배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알 고 있던 과거와는 다르게 요사스럽 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들쑥날쑥한 늪지대를 따라서 만들 어진 리자드 종족의 영지는 방벽만 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커다란 영지 였다.
하지만 그런 리자드 종족의 영지는 현재 볼품없고 초라한 처지로 전락 한 상태였다. 알르드의 계속된 포격 에 영지의 성벽을 이루던 돌과 나무 들이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거대했던 성문은 마력 폭탄의 집중 포격을 얻어맞고 그 모습이 사 라진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리자드 종족의 병사들은 성벽을 방패삼아 알르드의 공격을 필사적으 로 막아내고 있었다.
“공격! 밤이 오기 전에 적들을 모 조리 몰아내라!”
엘프 영웅의 외침이 병사들의 귀를 때렸다. 호 역시 통신구를 통해 그 소리를 들으며 정면의 영지를 바라 보았다.
대도시 규모의 영지지만 알르드의 전력으로는 하루 아니 반나절 만에 점령했을 규모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지 곳곳에 위치한 늪지대 로 인해 병사들과 마장기의 운용에 애를 먹고 있었다. 늪지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브뤼헤아 비쉬와 드래곤 라이더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리자드 종족의 영지 공략에 제대로 시간이 끌렸을 터였다.
‘대체 내가 이 늪지대를 어떻게 공 략했지……?’
전투를 지켜보며 호는 고개를 갸웃 했다. 이렇게까지 애를 먹었을 정도 의 지형이면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어야 정상이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의 환경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는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던 시절 늪지대의 존재로 인해 수인 왕국의 공략에 이렇게까 지 고생을 했던 기억이 존재하지 않 았다.
잠시 이동에 애로사항이 있던 것 같기는 했지만, 전투가 지금처럼 장 기전으로 변질되지는 않았던 것이 다.
“아…… 젠장.”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호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유를 찾은 것이다.
“빌어먹을 천족 놈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에서 호는 수인 왕국보다 천족을 먼 저 공략하고, 비행이 가능한 마장기 를 앞세워 늪지대를 통과했었다.
미리 마장기 전력으로 늪지대의 요
새를 초토화시키고 아무런 저항 없 이 병력을 이동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호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봤던 것은 단 한 번. 그것도 에디터를 사용해서 본 엔딩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제대로 수인 왕국을 공략했던 것은 고작 두 번에 불과했 다. 그것도 한 번은 천족의 마장기 를 이용해, 또 한 번은 에디터의 힘 을 이용한 공략이었다.
그런 탓에 호는 늪지대라는 환경의 무서움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 다.
그것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 이다.
하지만 결국 전투는 알르드 군의 승리였다. 늪지대를 방패로 삼아도 리자드 종족은 알르드의 화력을 막 아낼 수가 없었다.
시간은 벌 수 있겠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결국 늪지대를 피해 진군 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 결과로 호의 앞을 가로막았던 리자드 종족의 영지는 이미 초토화 가 된 채 알르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멍멍. 이제 주도 크레스티드를 포 함해 두 개의 영지를 점령하면 리저드 종족을 이 늪지대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급하게 만들어진 회의 막사 내에서 로우덴이 주변 지형이 그려진 지도 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점령한 요새에서 리저드 종족의 주도인 크 레스티드는 일주일 거리에 또 다른 영지는 사흘 남짓한 곳에 떨어져 있 었다. 늪지대의 존재를 감안하면 알 르드의 군대가 이동하려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빌어먹을. 저 놈의 늪은 마법으로 증발시킬 수 없는 거야?”
“아군의 모든 브뤼헤아 비쉬를 동 원해도 불가능할 겁니다. 대륙의 모든 레드 드래곤들이 나서서 브레스 를 쏘아낸다 하더라도…… 불가능 하지 않을까요? 멍멍?”
브로리의 투덜거림에 로우덴이 나 름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그의 대답을 들은 다른 영웅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쓰게 웃었다. 그리 고 호는 정보창을 이용해 아군의 상 황과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입 을 열었다.
“사흘 정도 이 요새에서 휴식을 취 한 뒤에 다음 영지를 공략하도록 하 지.”
“사흘이나 휴식을 갖는 겁니까?”
예상외의 긴 휴식에 드래곤 라이더 편대를 지휘하는 수인 영웅이 의아 한 표정으로 호에게 물었다.
“리자드 종족의 함정을 피해 늪지 대를 이동하느라 보병들의 피로가 많이 쌓였어. 게다가 드래곤 라이더 들도 마땅히 착륙할 곳을 찾지 못해 오랜 시간 비행을 해야 했고.”
거기에 오늘도 리저드 종족의 영지 를 공략하느라 치열한 전투를 벌였 다. 이미 폐허가 된 영지의 곳곳에 는 전투의 피로를 못이긴 병사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SSS랭크의 강력한 병사들도 피로
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전후 보고와 함께 회의가 끝나고 호가 여전히 막사에 남아있 는 로우덴을 향해 물었다.
“2군단과 3군단의 상황은 어떻 지?”
“멍멍. 한시진 님이 이끄는 2군단 은 토끼 부족의 물량 공세에 제법 고전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루 가 멀다 하고 수십만에 가까운 토끼 녀석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든다 하더군요.”
“아아……. 그거 이제르론을 계속 건설하며 진군하면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텐데.”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의 게이머들 사이에서 회색 전쟁이 라 불리는 토끼 부족과의 전쟁은 수 인 왕국을 공략하는 많은 게이머들 의 기를 질리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물량이 쏟아지는 전쟁이었다.
과거 통일 중국도 이 정도의 숫자 는 동원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답을 찾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게이머들 이 결국 토끼 부족을 쉽게 공략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청야전술이었다. 토끼 부족의 영토, 특히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을 모조리 태워버려 적들을 아 사시키는 전술이었다.
또 하나는 범위 공격이 가능한 방 어 시설을 계속해서 건설해나가며 진군하는 것이었다.
물량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지만 토끼 부족의 병사들은 기껏해야 가 장 강력한 녀석이 A랭크에 불과할 정도로 병사의 질에 관해서는 형편 이 없었다. 게다가 병사의 숫자는 많아도 그들을 지휘할 영웅이 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결국 이제르론 혹은 그 아래 단계 의 방어 시설만 건설해도 토끼 병사들 따위는 수천, 수만 마리가 덤벼 들어도 떼 몰살만 당할 뿐이었다.
‘뭐, 굳이 이런 사실을 알려줄 필 요는 없겠지.’
자신이 알고 있는 한시진의 능력이 라면 머릿수만 많은 토끼 녀석들 따 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터였 다.
이미 해결책을 찾아냈을 수도 있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