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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13화 (413/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13화

시선 아래의 세상은 순백의 하얀색 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종들이 만들어낸 도시의 배경이었 다.

천족의 수도 프리테븐의 가장 높은 곳에서 도시의 전경 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헬은 조금 전 선택의 신 전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알르드와 윤호.”

인간들을 대신해 선택의 신전에 등

장한 소환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 오르자 라헬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 앉았다.

문득 갈증이 밀려왔기에 라헬은 자 신의 탁자 위에 놓인 신들의 음료이 자 프리테븐의 특산품인 넥타르가 담긴 잔을 거칠게 쥐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잔에 담긴 넥타르 의 달콤한 맛이 입가에 감도는 순 간, 라헬은 선택의 신전에서 경험했 던 짜증스러웠던 일들이 조금은 사 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창조신 리그로우와 세리너 스의 힘을 약화시킬 자신의 도구가 되어야하는 소환자가 오히려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 다는 사실이 라헬은 영 거슬리게 느 껴 졌다.

더욱이 윤호와 그를 따르는 다른 소환자들은 자신에게 대놓고 강렬한 적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기껏해야 도구 주제에……

마음 같아서는 자신을 따르는 종들 인 천족을 이용해 윤호라는 소환자 와 알르드를 보기 좋게 짓밟고 싶었 다. 그러나 알르드와 천족은 이미 몇 번이나 전쟁을 치른 적이 있었 고, 그 때 마다 자신의 종들은 알르 드에게 보기 좋게 깨졌다.

심지어 자신의 뜻을 충실히 따르던 십 천사 중 두 명이 알르드로 넘어 가기까지 했다. 창조신의 능력에 빠 져버린 것이다.

“그래도 난 놈은 난 놈이란 말이 지.”

공허의 힘을 이용해 천여 명이 넘 는 다른 차원의 생명체를 이 세계로 소환했다. 전부 창조신의 능력을 자 각 및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분별하게 창조신 의 힘을 사용해 깊게 잠들어 있는 그들의 힘을 빠르게 소모시키며, 대륙을 혼란에 빠뜨려 천족을 제외한 다른 세력들의 힘을 약화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껏 라헬이 소환한 이들 중에서 창조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 는 자신의 재능을 자각한 소환자는 고작해야 백분지 일이 채 되지 않았 다.

아니,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다왔 는지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이들이 오히 려 훨씬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라헬의 의도한 대 로 제대로 대륙을 혼란에 빠뜨려주 고 있는 소환자는 다름이 아니라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지니고 있는 윤호를 비롯한 알르드의 소환자들이 었다.

특히나 알르드의 왕인 윤호는 퀘스 트, 경험치, 진화의 축복 등 창조신 의 능력을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잠 들어 있는 리그로우와 세리너스의 힘을 가장 크게 소모시키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과거 대륙을 혼란에 빠 뜨렸던 고대신의 봉인이 점점 깨지 고 있었고, 잔인한 성격을 지닌 라 헬의 자매 여신인 루베릭 대륙의 카 테지나 또한 조금씩 리그너스 대륙 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가 대륙에 모습

을 드러낼 때마다 창조신의 힘은 더 욱 더 크게 소모되고 있었다.

그리고 라헬은 이 모든 것들이 리 그너스 대륙에서 크게 충돌해 자신 들이 지닌 모든 힘을 소모시키기를 원하고 있었다.

“창조주를 비롯해 고대신과 카테지 나까지. 모두 싹 정리를 해야 하는 데 말이지.”

그래야만 이 세계가 자신의 손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큼이나 쉬운 일은 아 니었다. 그녀 본인의 힘으로는 창조 주나 고대신은 물론이고, 전투능력이 뛰어난 자신의 자매조차도 감당 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뜻을 따르는 천족 의 힘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아직 미약한 세력에 불과한 그들은 고대 신 혹은 카테지나의 뜻을 따르는 이 들조차도 제대로 감당이 힘들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 었다.

“공허.”

우연히 라헬이 마주할 수 있었던 세력인 알리우스. 강력한 힘을 지닌 알리우스의 존재들은 라헬에게 공허 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 다.

그리고 라헬은 그 힘을 이용해 소 환자들을 소환하고, 창조주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또한 공허 속의 파편을 이용해 그 녀의 목적에 사용될 강력한 병사들 도 양성하고 있었다.

훗날 창조신의 힘이 소모되고 대륙 이 혼란이 빠졌을 때 등장시킬 그녀 의 비밀병기들이었다.

“어디 내 병사들이 얼마나 성장했 는지 지켜보러 가볼까?”

비어버린 넥타르 잔을 탁자위에 내 려놓은 라헬은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하려고 했 다. 그 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 려왔다.

“여신의 미천한 종이 라헬님의 알 현을 청하옵니다.”

“들어오도록 해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좌우 로 열리며 천족들의 여왕 라이프린 이 들어왔다. 긴장한 모습의 라이프 린은 라헬의 앞에 도착하자 곧바로 자신의 무릎을 땅바닥에 대며 고개 를 숙였다.

“7회 차 소환자들은 에르지 영지로 보냈습니다. 그 곳에서 리그로우와 세리너스의 힘을 자각한 소환자 박 상민의 도움을 받아 그들 역시 창조 주의 힘을 사용하게 만들 계획입니 다.”

“박상민?”

“알르드의 왕인 윤호 만큼은 아니 지만, 저번 인간들의 전쟁에서 세리 너스의 힘을 사용해 인간들의 영웅 을 손에 넣는 공을 세웠던 소환자입 니다.”

“그렇군요.”

라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조신의 힘을 사용하는 이들이 늘 어나면 늘어날수록 대륙은 혼란에 빠질 것이고, 잠들어 있는 창조신들 의 힘은 빠른 속도로 약화될 게 분 명했다.

그러고 나면 공허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자신의 병사들을 이용 해 이 세계를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걸리적거리는 고대신 과 카테지나 또한 쓸어버리고 말이 다.

“나쁘지 않아. 잘하고 있어요, 라이 프린. 나의 충실한 신도여.”

“여신님의 뜻에 제가 도움이 될 수 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해내도록 하겠습니다.”

“흐응. 최근 소환자 윤호의 손에 나의 충실한 종이 쓰러졌다는 이야 기를 들었습니다.”

라헬이 조용히 라이프린을 바라보 았다. 그리고 라이프린은 이런 라헬 의 눈빛이 담긴 의미를 잘 알고 있 었다. 잠시 자신의 아랫입술을 불안 하게 깨문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입 을 열었다.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나서서 알 르드에게 여신님의 분노를 보여주도 록 하겠습니다.”

“알르드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는데……. 과연 이길 수 있겠어 요?”

“물론입니다. 여신님의 뜻을 따르 는 저희들은 어떠한 고난에도 꺾이 지 않을 겁니다.”

라이프린의 말에 라헬은 팔짱을 끼 고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알르드를 징벌해 자 신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알르드의 강력함에 대해 서는 모르지 않았다. 자신을 따르는 천족의 힘만으로는 알르드를 상대하 는 게 쉽지 않았다.

라이프린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

으니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 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결정을 내리 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후후. 아니에요, 라이프린. 지금은 천족의 성세를 더욱 키울 상황입니 다. 알르드의 정벌시기에 대해서는 제가 나중에 따로 말을 하도록 하겠 어요.”

알르드에 대한 정벌은 공허 속의 파편을 이용해 강력한 힘을 손에 넣 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군대가 완성 되고 나서도 늦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지만 어 차피 그녀는 기다리는 것에는 익숙 했다. 그렇게 라이프린과의 대화를 마친 라헬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자 신만의 숨겨진 장소로 향하는 게이 트를 열었다.

“새로운 소환자들은 무사히 잘 출 발했어?”

집무실로 돌아온 한시진을 향해 호 가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네. 시현이가 책임지고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시현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 지.”

전투 능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시현 이는 알르드의 랜드마크이자 가장 커다란 주점인 ‘멍멍아 야옹해 봐’ 의 주인이었다. 거기에 붙임성도 좋 고 싹싹한 성격인지라 알르드의 영 웅들 중에서 그녀만큼 알르드 인들 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도 많지 않았다.

그런 시현이가 도와준다면 이 세계 로 넘어온 새로운 소환자들 역시 어 렵지 않게 리그너스 대륙의 생활에 적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엄청나게 혼란스러울 거야. 그런 만큼 당장 우리와 함께 행동을 하자거나 무기를 쥐어주고 전투를 시키는 것은 무리야. 일단 자신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자각시켜주 는 게 먼저야.”

“잘 이겨내겠죠. 오빠 같은 사람이 돕고 있잖아요?”

시진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 이번 7회 차 소환자 중 호에게 선택된 네 명은 정말로 운이 좋은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었 다. 맨땅에 헤딩하듯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 세계에 적응을 해야 했던 자신들과는 달리 그들은 생명의 안전을 보장받은 상태에서 리그너스 대륙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 이었다.

“뭐, 일단은 적응이 문제겠지.”

호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입 장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라면 어떻게든 이 대륙의 생활에 적 응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호는 새롭게 소환이 된 네 명의 소환자를 이 대륙의 생활에 적응을 시키는 한 편, 그들이 어떠한 성격의 인물인지 자세히 관찰을 할 생각이었다.

알게서오. 호니믈 위해 최서늘 다 하게써오.

그리고 그 임무는 최근 시현이와 어울려 다니는 묘인 영웅 리젤에게 내려졌다.

외견은 어리벙벙해 보이지만 관찰 력만큼은 굉장히 뛰어났기에 리젤이 라면 충분히 소환자들의 습성을 파 악할 수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바우 왕국이나 수인 왕 국 쪽에서 들어온 이야기는 없어?”

“그 쪽에서라면……

시진이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머리 를 흔들었다.

“아뇨. 바우 왕국에서 약간의 식량 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걸 제외하 면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 건도 디 아린 상단이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양에 불과했고요.”

“식량 지원?”

“네. 아무래도 가뭄의 영향 때문으 로 보여요. 게다가 아직 나라의 정 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이라 식 량 생산력이 본궤도로 올라온 것 같 지도 않고요.”

시진이 대수롭잖다는 투로 말했다. 알르드의 생산력이라면 바우 왕국과 같은 규모의 나라는 수십 곳이나 먹 여 살릴 수 있었다. 아니, 알르드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디아린 상단이 나 라홀로프 상단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그건 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아, 그건 아니고. 슬슬 수인 왕국 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싶었는 데……. 내 생각이 틀린 모양이네.”

“수인 왕국요?”

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의 신 전에서 있었던 충돌이 벌써 보름 전의 일이었다. 분명 아쉬토의 불과 같은 성격이라면 그때의 앙금을 잊 지 못하고 군대를 일으킬 거라 생각 했는데, 아직까지는 별 반응이 없었 다.

‘먼저 움직였으면 일이 좀 편해졌 을 텐데……. 아쉽네.’

계속된 전쟁으로 세력이 많이 축소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선택 의 시간에 초대될 정도로 수인 왕국 은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강력한 세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호는 이러한 수인 왕국을 시작으로 대륙의 통일 전쟁을 개시할 생각이었다.

이미 준비는 어느 정도 끝이 나 있었다.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 레 인과 아보르 비테의 양성 체제가 갖 춰졌고, 팀 공돌이의 연구가 끝나는 즉시 티거알리카 또한 생산에 들어 갈 계획이었다.

마장기를 뒷받침할 병사인 실버 문, 브뤼헤아 비쉬, 드래곤 라이더들 의 숫자와 훈련 상황 역시 충분했 다. 지금도 알르드의 도시 마다 지 어진 병영과 군사학교에서는 계속해 서 새로운 병사들이 양성되고 있었 다.

하지만 호가 수인 왕국을 시작으로 한 대륙 통일 전쟁을 일으키려는 목적은 단순히 리그너스 대륙의 통일 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빨리 EX등급의 영웅을 손에 넣어 야 해.’

이레귤러인 고대신이나 루베릭 대 륙의 존재는 둘째치더라도 선택의 신전에서 만났던 라헬의 알 수 없는 꿍꿍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능력을 더욱 키워야만 했다. 그리고 EX등급으로 향하는 전직의 조건에 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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