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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12화 (412/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12화

“그러면 대륙의 자유로운 정령들을 대표해 선택의 신전을 찾아온 정령 왕국의 아르넨 리네, 네 명의 소환 자를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라헬의 말에 정령 여왕이 앉아 있 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화려한 날개를 활 짝 펴며 신중한 표정으로 제단위의 소환자들을 응시했다.

그러던 도중 이르넨 리네의 눈동자

가 제단위의 소환자가 아닌 알르드 의 윤호에게로 향했다.

잠시 윤호를 응시하던 정령 여왕이 드러나지 않게 살며시 미소를 짓더 니 장난스러운 어투로 입을 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호 감을 끌만한 매력적인 인간은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네요. 혹시 제 선 택권을 이 자리에 처음으로 초대된 대륙을 뜨겁게 달군 화염왕, 소환자 윤호님에게 넘겨도 될까요?”

“나한테?”

뜬금없는 정령 여왕의 제안에 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고, 그 모습을 본 아르넨 리네가 고개를 끄덕 였다.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갑작 스러운 정령 여왕의 행동에 여신 라 헬이 자신의 입을 일그러뜨렸다. 하 지만 곧 평정을 찾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를 내며 호에게 물 었다.

“소환자 윤호. 어떻게 하시겠습니 까? 참고로 그대의 순번은 마지막입 니다.”

라헬의 말을 들으며 호는 두려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단 위 의 소환자들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그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딱 히 눈에 띌 만한 것은 없었다. 기껏 해야 성별과 나이 그리고 국적을 알 아내는 게 전부였다.

안타깝게도 한국인은 보이지 않았 다. 뭐, 설령 한국인이 있다 해도 평행 세계라는 존재가 있는 만큼 자 신이 알고 있는 그 한국이 아닐 수 도 있었다.

한시진의 경우처럼 말이다.

게다가 어차피 이 세계에 소환된 소환자들은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처럼 획득한 경험치를 사 용해 자신의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 었다. 결국 지금 당장은 모두가 똑 같은 출발선에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 그게 아닌가?’

하지만 호는 곧 생각을 달리했다. 제단 위에 있는 스물여덟의 사람들 중에서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 륙전기’를 알고 있는 소환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환자들은 기회만 주 어진다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 장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미 한 번 은 걸어본 길이니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환자들을 골라내는 법은 어렵지 않았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와 관련된 익숙 한 키워드.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면 되었다.

“혹시 이 중에서 Korea사 게임의 랭커가 있으십니까?”

호의 목소리가 소환자들에게 울려 퍼졌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를 제작한 Korea사에서 발매된 모 든 게임들은 자신의 클리어 순위를 확인할 수 있는 랭커 시스템이 있었 다. 그렇기에 호는 적어도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이라면 충분히 ‘리그 너스 대륙전기’에 대해서도 알고 있 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국적이 굳이 한국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 륙전기’는 대항해시대, 연희삼국지의 뒤를 잇는 Korea사의 대표작이었고,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던 게 임이 었다.

하지만 제단 위의 소환자들은 서로 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들의 눈만 멀 뚱히 뜬 채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 다. 그러던 도중 한 서양인 남성이 머뭇거리며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리 며 말했다.

“랭커는 아니지만 한때 취미로 대 항해시대VII를 즐긴 적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Korea사의 다른 게임은 해보지 못했고요.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알겠습니다. 혹시 저 분과 비슷한 게임을 즐겼던 또 다른 분은 없으십 니까?”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호 본인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호는 빠 르게 서양인 남성의 말을 끊으며 제 단 위의 소환자들에게 재차 물었다.

그러자 한 명의 여인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연희삼국지 시리즈를 플레이 해 본 적이 있다는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그렇게 두 명의 남녀와 함께 호는

고민 끝에 부녀로 생각되는 남자와 일곱 살 남짓한 소녀를 선택했다.

리그너스 대륙의 험악한 환경을 생 각해 봤을 때 아빠인 남성은 둘째치 더라도 일곱 살 소녀는 다른 종족, 특히 수인이나 마족의 소환자로 선 택이 되면 험난한 이 대륙에서 살 수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알르드의 선택이 끝났군요.”

호에게 선택된 소환자들은 라헬이 손짓하자 제단 위에서 벗어나 알르 드의 일행들이 서 있는 장소로 이동 되었다.

다들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빠졌는 지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궁금한 게 굉장히 많아 보이는 얼굴들이었지만, 소란을 피우거나 입을 여는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은 것이 다.

호의 선택이 끝난 후에도 선택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알르드 다음으 로 마왕 쉐르난비체가 심드렁한 얼 굴로 소환자들을 골랐다. 그리고 드 워프, 엘프 왕국의 순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의외로 이들은 쉐르난비 체와는 달리 굉장히 신중히 소환자 들을 선택했다.

“으으음..”

수인 왕국의 아쉬토 또한 신중한 표정으로 네 명의 소환자를 골랐다. 소환자들을 벌레처럼 생각하며 자신 의 기분에 따라 쉽사리 그들의 목숨 을 빼앗던 예전의 행동과는 판이하 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알르드의 등 장으로 인해 소환자들이 지닌 잠재 성을 다른 종족들은 물론이고, 아쉬 토와 수인 왕국도 인정하게 된 것이 다.

하물며 알르드의 경우처럼 천족이 인간과 자신들의 병력을 동시에 훈 련 및 유지한다는 첩보가 전해지면 서 각 세력들에 대한 소환자들의 관심 또한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종 족의 전승처럼 창조신의 권능에 힘 입어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큼. 나는 이들로 하겠다.”

수인 왕국의 제왕 아쉬토는 고민 끝에 젊고 건강해 보이는 네 명의 남성을 선택했다.

아무리 소환자의 가능성이 대단하 다 하더라도 대륙에 갓 소환된 소환 자들은 대부분 팍팍한 리그너스 대 륙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쉽사 리 목숨을 잃었다. 그렇기에 그나마 생존 가능성이 높은 젊고 건강한 남 성을 고른 것이다.

“히, 히이익! 난 안 가! 여기서 벗 어나지 않을 거다! 이거 영화 촬영 이지? 빨리 날 집으로 돌려보내줘! 네 놈들 모두 경찰에 신고할 거야!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카악!”

무시무시하게 생긴 호랑이 남성이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듯 자신을 찍 자 겁에 질린 한 남자가 발악하듯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아쉬토의 옆 에 있던 수인 영웅의 주먹이 남자의 얼굴을 강타했고, 비명과 함께 눈을 까뒤집은 남성이 시체처럼 축하고 늘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가볍게 죽였을 목숨이지만, 그래도 몸을 꿈틀거리 며 움직이는 것을 보아하니 죽이지 는 않은 모양이었다.

선택의 시간이 진행되는 동안 호는 팔짱을 끼고는 아무 말 없이 라헬과 다른 이들의 행동을 조용히 응시했 다. 대체 라헬이 어떤 이유로 소환 자들을 이 세계에 불러들이는지 그 연유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 만 마땅히 짚이는 게 없었다.

그나마 다른 종족의 대표들은 자신 들이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잡기 위해 소환자의 가능성을 찾고 그들 의 힘을 이용할 생각으로 보였다. 하지만 막상 리그너스 대륙에 소환 자들을 불러 모으는 라헬은 얻는 것 이 별로 없어 보였다.

물론, 그녀를 따르는 천족들이 소 환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기는 했지만 이는 다른 종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이번 소환 의 식에서는 천족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자신 또한 네 명의 소환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제단 위의 소환자들을 바라보던 호 의 눈동자가 라헬에게 향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

냐, 라헬?’

짐작이 가는 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 전, 함진규라는 이름 을 가지고 있던 소환자가 있었다.

수인 왕국의 소환자로 호와 같이 1회 차에 이 대륙으로 끌려왔었던 소환자였다. 그리고 그는 커티삭의 전투에서 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때, 함진규의 시체가 사라지면서 흘러나온 빛 무리의 이상 현상은 가 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악명이 자자한 캐릭터인 여신 라헬 이 자신의 부모이자 창조주인 리그 로우와 세리너스를 제거하기 위해 사망한 대륙 영웅들의 힘을 흡수하는 광경과 흡사했었다.

하지만 소환자의 죽음으로 여신 라 헬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지 금처럼 선택의 시간이라는 불필요한 의식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선택의 신전에 갓 소환된 소환자들을 자신 의 명령을 따르는 천족들에게로 하 여금 죽이라는 명령만 내리면 될 일 이었다.

아무리 잠재 가능성이 높은 이라 하더라도 고작 레벨 1에 불과한 이 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 대륙의 영 웅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라헬은 그렇게 하지 않았 고, 결국 호는 리그너스 대륙에 알르드를 건국할 수 있었다.

잠시 호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선택의 시간은 계속해서 진행 되었고, 호에게 선택권을 양보한 정 령 여왕의 마지막 선택까지 끝이 났 다.

그러자 제단 중심에 있던 라헬이 자신을 둘러싼 각 종족의 대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면 이것으로 선택의 시간을 종료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 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헬 은 곧 빛 무리로 화하며 모습을 감췄다. 라헬의 종이나 다름없는 천족 들도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 신들이 선택한 소환자들을 데리고 게이트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호는 속으로 한숨 을 내쉬었다.

선택의 시간을 경험하며 라헬의 꿍 꿍이가 무엇인지 파악을 할 의량이 었지만,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 마냥 그녀가 단숨에 모습을 감춰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브로리가 직접 나서준 덕 분에 라헬의 능력을 대충이나마 파 악을 할 수 있었다. 최소한 EX등급 이상으로 EX+등급일 가능성도 충 분히 있었다. 분명 무시무시한 능력 이었지만, 고대신과 같은 이레귤러 의 강력함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고대신과 마주했었을 때만 큼의 위압감이 라헬에게서는 느껴지 지 않았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호는 자신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처럼만 계 속해서 준비하면 훗날 라헬의 친위 대가 대륙을 점령하기 위해 나타난 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 신을 포함해 황금색 재능을 지닌 영웅들을 EX등급으로 승급시키는 것 이 가장 급선무로 보였다.

“전부 끝난 건가? 조금 허무한데 요?”

다른 종족의 일행들이 별다른 말 없이 하나둘씩 게이트를 통해 사라 지는 모습에 시진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응? 대체 뭘 기대했던 건데? 설 마 화합의 장이라던가 그런 걸 말하 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아무래도 우리와 사이가 안 좋은 신이니 만큼 뭐, 경고라던가 선전포고를 날린다거나. 한 판 붙자는 식으로 협박성 멘트는 할 줄 알았죠. 게다가 저들의 자랑하는 십 천사도 오빠의 손에 허무하게 죽었 잖아요.”

“그러고 보니……. 찜찜하긴 하네.”

시진의 말에 호는 멈칫하며 라헬과 천족의 여왕 라이프린을 위시한 천 족 영웅들이 사라진 검은색의 게이 트를 다시 바라보았다. 분명 루블랑 팔토의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헬과 천족들은 그에 대해 단 한마 디로 입을 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지……

고민은 많았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 았다. 결국 계속되는 찜찜한 느낌을 털어버리려는 듯 호가 머리를 세차 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건너 왔던 게이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는 디르시나로 돌아갈 시간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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