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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11화 (411/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11화

“정말로 생겼네.”

시진이 불길한 느낌을 주는 검은색 의 게이트를 보며 말했다.

호에게 미리 이야기를 듣고 준비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이 세계에 끌려 와 처음으로 리그너스 대륙의 생명 체들과 끔찍한 괴물을 만나야했던 불쾌한 기억이 있는 과거의 장소를 다시 방문하는 것이 시진은 영 꺼림칙한 느낌이었다.

윤호 역시 얼굴이 굳어 있었다. 만 약 이 게이트를 통과하면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생각되는 라헬이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시현도 신윤아도 김유진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게이트를 앞에 두고도 여유로운 모 습을 보이는 이는 기사왕 이레네 아 르티아나 자신의 무력에 자신감이 넘치는 브로리와 같은 대륙의 영웅 들뿐이었다.

“7회 차 소환이라……. 내가 참석

했던 것은 5회가 마지막인 터. 그렇 다면 인간들은 결국 6회 차 소환에 참여하지 못한 모양이로군.”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가 게이트 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옆에 서 있었기에 호는 기사왕의 혼잣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소환자의 소환에 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종족이 참여하지 못하는 경 우도 있는 겁니까?”

“리그너스 대륙의 유구한 역사 속 에서 소환자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 은 불과 십 년도 되지 않은 일이 다.”

기사왕의 이야기에 하이엘프 에어 리스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 고 기사왕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 다.

“호, 그대도 알다시피 그대를 포함 해 알르드를 건국한 소환자들이 이 대륙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우리 역시 처음으로 소환자와 마 주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기사왕이 자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라는 허명 을 가지고 있지만 라헬의 소환 의식 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 도 없다. 그녀가 무슨 자격을 보고 우리를 선택의 신전으로 초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지.”

“혹시 어떤 이유로 혹은 어떤 방식 으로 소환자들을 불러오는지도 모르 는 건가요?”

시진이 대화에 슬쩍 끼어들었다. 그리고 이레네 아르티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으음……. 창조신과 관련된 일이 라고 내심 짐작은 하고 있지만, 솔 직히 알 수 없는 일이지. 여신 라헬 은 리그너스 대륙의 생명체들 중에 서도 천족을 제외하면 진심으로 믿 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음험한 신이다. 솔직히 말해 다른 종족의 입장에서 그녀는 천족을 대표하는 영웅이나 다름없지.”

≪ o ” =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호는 기사왕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자신이 라헬의 소환 의식에 참여하게 된 것은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던 인간 종족의 세력 이 크게 축소된 탓으로 보였다.

과거 8 왕국이라 불렸던 인간들의 세력은 영토를 반쯤 잃은 골든 크로 우, 역시 비슷한 상황의 바라테이온, 광업 국가 토란과 공국에 불과한 키 리네가 전부였다. 블루 스케일, 미피 츠, 모에드, 아이리스 성국은 이미 대륙의 지도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 다.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알르드. 그리고 알르드 는 엘프, 마족, 수인 왕국과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며 야금야금 그들 의 영토를 차지했고, 지금은 스무 개가 넘는 영토를 보유해 과거 인간 들의 통일 왕국 이상의 전성기를 자 랑하고 있었다.

‘ 과연??????

호는 디르시나의 집무실에 생겨난 검은색의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어 떤 의도로 라헬이 자신을 초대하는 지 그 연유가 궁금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리고 게이트를 향해 천천히 걸음 을 떼었다.

선택의 신전.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방이 벽돌로 된 불이 들어온 통로였다. 이 세계에 소환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호는 자신의 눈에 비춰진 모습들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벨리네 크로아트였던가?’

처음 이 세계로 소환되었을 때 만 났던 인간 영웅. 그녀의 뒤를 따라 걷던 통로가 바로 이와 비슷한 모습 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기사왕을 포함해 열댓 명의 인원이 게이트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기 사왕이 호를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로군. 아마 이 길은 선택 의 제단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옆구리에 걸린 철벽의 장검을 손끝 으로 슥 매만진 호는 빠르게 발걸음 을 옮겼다. 그렇게 불이 들어온 신전의 통로를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 고 있을 때 멀리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묘한 소리가 호의 귀를 자극했다. 전장에서나 들을 법한 소 리였다. 소리를 들은 이는 호 뿐만 이 아니었다.

“비명소리네요……

화라도 난 듯 시진이 자신의 입술 을 잘근 씹으며 말했다. 비명의 주 인공이 누구인지는 굳이 보지 않아 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분명 영 문 모르게 이 세계로 소환이 된 죄 없는 이가 틀림없었다.

“좀 더 서두르겠습니다.”

호의 말이 떨어지자 일행들의 속도 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긴 장이라도 되는 모양인지 아스트리드 벨은 계속해서 자신의 목걸이를 매 만졌고, 신윤아 역시 SS등급의 지팡 이를 손에 꽉 쥔 모습이었다. 김유 진 또한 깍지를 낀 양손을 계속해서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통로의 벗어나자 익숙한 얼 굴들이 호의 눈에 들어왔다.

마왕 쉐르난비체와 함께 정령 여왕 인 아르넨 리네, 엘프들의 여왕 유 스타시아, 대족장 골드 스트리안, 수왕 아쉬토 그리고 라헬의 충실한 종 인 라이프린까지. 가상현실게임 ‘리 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주요 영웅이자 칠제라 불리는 이들이었 다.

그렇게 대륙의 패권을 두고 다퉈야 할 영웅들을 쳐다보면 호는 곧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보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번 선택의 시간에는 기사왕을 대신해 새로운 영웅이 참석하셨습니 다. 바로 알르드의 왕이자 대륙의 화염왕이라 불리는 소환자 윤호입니 다.”

“ 라헬??????

마치 진행자처럼 다른 이들에게 자 신을 설명하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호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라헬 을 향해 검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었 다. 하지만 그래봤자 여신인 그녀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호는 팔짱을 끼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도중 자신을 노려보는 한 영웅이 호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수왕 아쉬토였다. 그는 호를 향해 피부가 따끔해질 정도로 강렬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는데, 아쉬토의 적 대감을 느끼자마자 호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리그너스 대륙의 종족 중 알르드에 게 가장 많이 당한 세력은 다름 아 닌 수인 왕국이기 때문이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분명 전장에서 몇 번이나 마주할 기회는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루베 릭 대륙의 파신이 등장했고, 그것을 막기 위한 전투에서 아쉬토는 거의 반죽음에 가까운 부상을 입었다. 그 증거로 아쉬토의 몸에는 지금도 붕 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포악하고 잔인하며 대륙에서 손꼽 히는 용맹을 지닌 수왕이지만 호는 그러한 아쉬토가 전혀 두렵지 않았 다. 자신 역시 처음 이 세계에서 떨 어졌을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훗.”

그리고 아쉬토를 향해 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때였다.

“크아아아앙!!!”

호의 비웃음을 목격한 아쉬토가 자 신의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했다. 선택의 제단을 울리는 아쉬토의 강 렬한 포효에 공포감을 느낀 제단 위의 소환자들은 비명과 울음을 터뜨 리며 고개를 바닥에 박았고, 라헬을 비롯한 다른 종족의 지배자들은 다 들 제각각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보 였다.

“아, 시끄러워.”

“더럽게 못생긴 커다란 고양이 주 제에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 야‘?”

시현과 시진이 자신들의 귀를 막으 며 말했다. 예전의 그녀들이었다면 분명 제단 위의 소환자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을 터였다.

하지만 시현은 S등급의 소환자, 시

진은 SSS등급이나 다름없는 능력을 지닌 SS등급의 소환자였다.

그리고 호가 그런 아쉬토를 향해 양 주먹을 쥐고는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는 왼쪽의 주먹을 빙글빙글 돌리며 서서히 자 신의 중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 미안. 보고 있었어?”

“꺄하! 꺄하하하!”

수인의 왕을 도발하는 호의 그런 행동에 정령 여왕을 따르는 최상급 정령 중 하나인 나르코가 배꼽을 잡 고는 웃었다. 드워프의 왕 골드 스 트리안 역시 입술이 씰룩이는 모습이었다.

“가, 감히!!!”

호의 도발에 아쉬토가 자신의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는 옆에 놓인 자신의 커다란 도끼를 들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호 를 향해 즉시 날려 버릴 기세였다. 아쉬토를 보좌하는 수인 영웅들도 눈이 새빨개져 있었다.

그러한 아쉬토의 행동에 호 역시 콧방귀를 뀌며 허리춤의 검을 빼들 었다.

지금 자신의 능력이라면 아쉬토와 직접 일대일로 맞붙어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게다가 기사왕, 브로리, 한시진과 같은 뛰어난 영웅들이라면 수인 왕국의 이들 쯤은 가볍게 짓누 를 게 분명했다.

그렇게 알르드와 수인 왕국, 두 세 력의 충돌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흉 흉해지며 선택의 시간이 방해받자 라헬이 재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중요한 선택의 시간입니다. 불필 요한 소란은 선택의 시간이 끝난 후 그대들의 장소로 돌아간 이후에나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라헬이 빠르게 자신의 손을 휘저었고, 호와 아쉬토의 일행 들이 있던 자리를 덮듯 불투명한 막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아쉬토가 힘껏 던진 도 끼는 라헬이 만들어낸 불투명한 막 에 긴 상처를 만들어냈을 뿐, 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져 내 렸다. 여신인 그녀의 능력은 아무리 수왕이라 해도 이겨내기가 쉽지 않 았던 것이다.

그리고 알르드에서 그 모습을 본 한 소녀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수왕의 행동을 보며 호승심을 느낀 브로리였다. 새로운 얼굴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브로리에게 집중되었 다.

“흐읍!”

한껏 힘을 모은 브로리가 내지른 정권이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불투명 한 막을 강타했다. 그리고는 커다란 거미줄을 만들어내더니 이윽고 잘게 부셔버렸다.

‘브로리가 스킬까지 모조리 사용한 상황에서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을 보 면……. 라헬의 능력 역시 EX등급 그 이상인가 보네.’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스킬 사용 메시지를 확인하며 호는 라헬을 응 시했다. 누구든지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창은 이 자리에서 라헬에게만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보유했는지는 지금의 상황을 통해 얼핏이 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이 자리를 찾 은 보람이 있었다. 그런 호의 눈에 라헬이 자신의 입을 달싹거리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의외로 라헬은 다시 부서진 막을 치기보다는 선택의 시 간을 이어나가는 모습이었다.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선택 의 시간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제 7 회 차 소환자들의 소환이 끝이 났습 니다. 총 인원은 이미 말씀드린 대 로 28 명입니다.”

제단 위의 소환자들은 여전히 어안 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을 하는 이가 전혀 없어 보였 다.

라헬의 진행이 이어지는 동안 호는 빠르게 소환자들의 모습을 훑었다. 행여나 자신이 아는 이가 있을까 싶 어서였다. 하지만 제단 위의 소환자 들 중에 호의 기억에 있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호 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낄 수 있 었다.

“혹시 아는 얼굴이 있어?”

“아뇨.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뿐이 에요.”

“저도요. 어차피 전 집순이로만 활 동을 해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 요.”

호의 물음에 시진과 윤아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 다. 확실히 이러한 자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우연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는 모양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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