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405화
“식량 말인가요? 흐응. 최근 수인 왕국의 상단들이 식량을 많이 구입 해가더군요. 그 이유가 계속된 가뭄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혹 시 수인 왕국의 비축미가 모두 소모 된 건가요?”
“크릉! 우리 왕국의 비축미는 이런 가뭄 따위에 소모되는 것 정도는 아 주 조금의 티도 않을 정도로 가득 있소이다! 단지 내가 식량을 구입하 려는 이유는 알르드와의 군사적인 충돌을 염려해 군량미를 준비하기 위해서일 뿐! 굳이 식량을 구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소이다! 크르릉.”
신경질적인 수인 상인의 말에 알 랴사는 재빨리 자신의 손을 내저었 다.
“아아, 수인 왕국의 자존심을 건드 려 그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중 부 지방에 풍년이 찾아온 터라 우리 라샤 상단 또한 많은 식량을 보유하 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연히 그 판 매처 또한 간절하게 찾고 있었죠.”
“으음. 역시 라샤 상단이로군, 크 릉. 하면 그 식량들을 우리가 구입할 수 있겠소?”
“물론이지요. 방금 전 저의 말실수 도 있고 하니 식량 포대 하나당 10 리스씩 저렴하게 판매하도록 하지 요. 시세는 미피츠의 평균 시세로 정하도록 하지요. 아마 이 미피츠에 서 저희 라샤 상단만이 제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조건일 겁니다. 수 량 또한 당연히 원하시는 만큼 하루 만에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어떠십 니까?”
“오오! 크르릉!”
방금 전, 딱히 식량을 구입하지 않 아도 된다고 말을 했으면서도 낮게 하울링까지 하며 기뻐하는 수인 상인의 모습에 알 라샤는 자신의 입 꼬리를 미미하게 씰룩였다. 최근 미 피츠에서 수인 왕국의 상단이 식량 을 구매하는 횟수가 큰 폭으로 늘어 나고 있었다.
‘그랜드 라인의 영향 때문인지 요 몇 년 동안 수인 왕국은 계속해서 가뭄이 찾아왔어. 거기에 알르드와 벌인 전쟁으로 인해 커다란 곡창 지 대가 있었던 나크 평원과 카우셰드 지방도 빼앗긴 상황. 뭐, 수인 왕국 에 식량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거짓 은 아닌 모양이네.’
생각해보면 조금은 안타까운 기회 였다. 만약 리그너스 대륙 전체가 가뭄에 시달렸다면 상단에 비축한 식량을 이용해 수인 왕국을 상대로 큰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었다. 현재 리그너스 대륙의 세력 중 가장 식량 을 필요로 하는 세력이 바로 그들이 었다.
그러나 올해 가뭄이 찾아온 곳은 수인 왕국뿐. 풍년이 든 알르드와 엘프 왕국은 식량이 남아돌고 있었 다. 미피츠 또한 엘프나 인간 상단 들이 가지고 오는 많은 양의 식량들 로 인해 점점 식량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였다.
정령이나 드워프 상단들도 알음알 음 자신들이 비축한 식량을 판매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이번 가뭄을 통해 식량으로 돈을 벌 기회는 거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가지고 있어봤자 가격은 계 속해서 떨어질 거야. 그렇다면 일단 싼 가격에라도 식량들을 모조리 팔 아 넘겨야겠어. 이참에 수인 상단들 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나 쁘지는 않겠지.’
판매하려고 하는 이는 많았지만 식 량을 구하려고 하는 이는 수인 상단 뿐이었다. 그렇게 알 랴사가 수인 상인과 조건을 맞추고, 계약서에 도 장까지 찍었을 때였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며 굳은 얼굴을 한 부상단주가 모습을 드러내었 다.
“알 라샤님, 급히 드릴 말씀이 있 습니다.”
“크릉. 그러면 거래가 끝났으니 나 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요.”
왠지 심각한 분위기가 느껴지자 수 인 상인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리고 수인 상인이 나가는 모 습을 확인한 부상단주가 자신의 고 개를 내밀에 집무실 밖에 아무도 없 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출항을 나가있던 정보원들이 보낸
전서구가 방금 전 도착했습니다.”
“전서구? 아, 설마?!”
“알르드의 함대가 사흘거리에서 발 견되었다는 보고입니다. 그 수는 약 백 여척으로 대형 수송함만 칠십 척 이 넘는 규모라고 합니다.”
“뭐라고? 어떻게 이렇게나 빠르게 도착한 거지?”
알 라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자신이 보낸 쾌속선이 알르드로 출 발한 지 보름이 채 지나지도 않은 기간. 미피츠와 알르드의 거리를 생 각하면 윤 호는 자신의 연락을 받자 마자 곧바로 병사를 일으킨 것이나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 청난 규모의 대군이 움직인 모양이 었다.
“블루 스케일과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 처 음부터 알르드는 블루 스케일과 미 피츠를 동시에 공격할 생각이었던 건가? 그래, 맞아. 그래서 블루 스 케일을 점령하고 나서도 이렇게 빠 르게 병력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거 야!”
“대체 언제 알르드가 그렇게나 많 은 군함들을 건조했을까요?”
“자신들이 직접 건조한 것도 있겠 지만, 블루 스케일의 함선 또한 함께했겠지. 이번 전쟁에서 블루 스케 일의 함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이 야기는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어마 어마한 숫자로군.”
칠십 척의 대형 수송함이면 약 칠 만 가량의 병사가 미피츠에 상륙을 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 중 만 명이라도 상륙에 성공하 면 미피츠의 전력으로는 막아내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욱이 알르드 는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라는 위 대한 병사들을 운용하는 국가. 미피 츠의 팔라딘이나 챔피언이 그들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래도 해안가에 잔뜩 건설이 된
미피츠의 대형 포탑과 방어 시설들 을 생각하면 아무리 군함의 엄호가 있다 하더라도 미피츠에 접근하는 수송함의 삼분지 일 정도는 바다에 수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방 어 시설들이 알르드의 병사들을 상 대로 포구를 겨눌 일은 없을 터였 다.
“일단 자경대장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 알르드의 함대가 사흘 내에 도 착할거라고 일러주도록 해. 그리고 현재 퉁 파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위치는 계속해서 파악하고 있 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퉁 파오는 여전히
자신의 저택에서 파오 상단이 보유 한 재산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조심스레 처분하던 재산들을 이제는 대놓고 헐값으로 여기저기에 팔아치우더군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녀석의 위치 만큼은 놓쳐서는 안 돼. 돈이 아무 리 들어도 퉁 파오의 위치만큼은 확 실하게 파악하도록.”
그녀의 진지한 목소리가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 가 슬쩍 파오 상단이 보유한 플락티 의 점유율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더니 퉁 파오가 몸이 달아오른 모양인지 어떻게든 거래를 진행 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후! 미피츠의 상단이 플락티의 점 유율을 판매하려고 하다니……. 정 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 긴 하네. 그래서 퉁 파오가 얼마를 제시했지?”
“1% 당 280 억 리스를 부르더군 요.”
“하?! 그 돼지 놈. 어떻게든 자기 가 원하는 만큼의 액수는 받아내겠 다 이건가? 진짜 욕심이 그 턱살만 큼이나 대단하다니까. 아니, 280억 리스가 누구 애 이름이야?”
알 라샤가 자신의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중얼거렸다.
물론 평상시였다면 단숨에 거래를 진행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아니, 플락티의 점유율이 미피츠에 서 지닌 상징성과 영향력을 생각하 면 아주 조금이라도 라샤 상단의 창 고를 털어서라도 구입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파오 상단이 보유한 플락티의 점유율을 단 돈 한 푼이라 도 주고 구입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 다. 라샤 상단이 파오 상단이 보유 한 플락티의 점유율에 관심을 보인 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실제로 제안 을 한 이유는 퉁 파오가 자신의 재산을 빠르게 처분하고 미피츠를 떠 날 것을 방해하며 시간을 벌기 위해 서였다.
덕분에 퉁 파오의 배신을 알게 된 자경단장은 미피츠의 성문을 철저하 게 봉쇄를 끝냈고, 신호가 떨어지는 즉시 퉁 파오는 미피츠를 벗어나기 도 전에 체포가 될 터였다. 결국 알 르드의 군대가 도착하는 순간 파오 상단과 퉁 파오의 운명은 그걸로 끝 이었다.
어쨌든 자신의 재산을 빨리 처분하 는 데 여념이 없는 퉁 파오는 제외 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파오 상 단의 상인들은 여전히 미피츠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결국 오늘 밤 늦은 시각 혹 내일이면 퉁 파오의 귀에도 알르드의 함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갈 가능 성이 높았다.
“그래서 루블랑 팔토의 군대는 어 디쯤 오고 있는 지 알아 봤어?”
“곧 전서구가 도착할 겁니다.”
“천족보다 알르드의 군대가 먼저 도착해야 된다는 거 알지? 만약 천 족이 먼저 우리 도시를 점령하고 해 안가에서 알르드의 상륙을 막아낸다 면 우리는 끝이야, 끝.”
덤으로 팔자에도 없는 라헬교의 신
도가 되어야 할지도 몰랐다.
‘골든 크로우가 방패로 있었을 때 가 참으로 좋았었는데……
그녀가 인간들의 종족을 지켰을 시 절에는 감히 천족들이 미피츠를 탐 내거나 도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 다. 그러나 기사왕은 알르드로 망명 했고, 그녀가 떠난 골든 크로우는 저번 천족과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 를 아직까지도 제대로 복구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전서구가 도착할거라는 부상단주의 말대로 차를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상인으로 위장해 루 블랑 팔토가 이끄는 군대를 정찰하던 이에게서 전서구가 도착했다.
“황금의 길을 지나고 있다고? 젠장 할! 황금의 길이면 미피츠에서 고작 하루 반나절밖에 되지 않는 거리잖 아!”
내용을 확인한 알 라샤가 자신의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 그러면 큰 일 아닙니까? 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샤님?”
“잠시만. 생각을 좀 정리해야겠어.”
알 라샤가 손을 들었다. 긴장을 한 모양인지 그 잠깐 사이에 온 몸이 땀으로 적셔진 느낌이었다. 알르드 의 군대는 사나홀 뒤에야 미피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족은 바로 내일이면 미피츠에 입성할 수 있었다.
“천족이 미피츠에 입성하면 그걸로 모든 것이 끝이야. 무슨 일이 있어 도 그것만큼은 막아야 해.”
그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 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부상단주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네? 상대는 십 천사인데……. 무 슨 좋은 수라도 있으십니까?”
“당연히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아?”
알르드의 군대가 미피츠에 무사히
상륙할 수 있는 시간만 벌 수 있으 면 되었다. 그러나 공성전은 불가능 했다. 미피츠가 보유한 마장기는 대 부분이 장식용으로 실전에서 크게 효율을 발휘하기 힘들었고, 마장기 사의 수준 또한 낮았다. 성벽과 방 어시설 역시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 했다.
‘하지만 해안은 다르지……
알 라샤는 퉁 파오의 명령으로 인 해 만들어진 해안의 수많은 방어 시 설들을 떠올렸다. 해안에 늘어진 성 벽부터 해서 건설이 된 방어시설은 적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포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방어시설은 퉁 파오의 배신을 알고 있 는 자경단장이 명령에 의해 움직였 다.
“당장 퉁 파오를 붙잡아서 알르드 의 군대가 도착할 때까지 자경단과 함께 해안을 점령하고 있는 거야. 해안의 견고한 방어 시설이라면 십 천사가 이끄는 군대라도 이삼일 내 에 뚫어내기는 힘들 걸?”
“그렇다면?”
“나는 자경단의 병사들을 데리고 곧바로 퉁 파오를 붙잡으러 가겠어. 부상단주는 빨리 자경단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해안 방어 시설을 가동하라고 일러주도록.”
대답과 함께 알 라샤가 빠르게 자 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퉁 파오를 붙잡아야 했다. 적어도 그 놈만큼은 윤 호와 기사왕에게 넘겨줘야 미피 츠가 알르드의 손에서 무사히 살아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알 라샤가 퉁 파오를 붙잡 기 위해 나서려던 순간 라샤 상단의 건물로 중년의 남성이 뛰어 들어왔 다. 미피츠의 자경대장이었다.
“루블랑 팔토의 군대가 내일이면 도착한다고 하오! 그들과 마주친 상 인들은 천족이 미피츠에 도착할 때 까지 닷새는 더 걸릴 거라고 이야기 하던데, 지금 막 황금의 길을 지나고 있다더군!”
자경대 역시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 집하고 있던 모양인지, 알 라샤와 마주친 자경 대장은 폭풍처럼 자신 의 말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의 푸념을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일단은 상황이 급해요. 팔라딘 스무 병을 빌려주세 요. 저는 그들을 데리고 퉁 파오를 붙잡으러 가겠어요. 그리고 대장님 은 당장이라도 해안의 방어 시설을 가동해 포구를 미피츠 쪽으로 돌려 주세요.”
“아니, 그게 무슨……? 아! 알겠 소! 지금 당장 병사들을 준비하도록 하겠소.”
상인들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이답 게 자경 대장은 눈치가 빠른 이었 다.
알 라샤의 생각을 알아차린 그는 자신이 뛰어 들어오던 모습 그대로 상단 건물의 밖으로 뛰쳐나갔고, 곧 팔라딘들과 합류한 알 라샤도 퉁 파 오의 저택으로 바삐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