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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01화 (401/522)

리그너스 대륙전기 4()1화

“제발 사고만 치지마라. 우리는 왕 국의 운명이 걸려 있단 말이다.”

황급히 왕궁으로 달려가는 병사를 뒤로한 채 수비대장은 고개를 돌려 성 밖을 바라보았다.

라헬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천 족이 알르드의 군대를 자극하지 않 고 물러난다면 한 번이나마 라헬교 의 신전을 방문할 의사가 있을 정도 로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곧 막막한 신 음이 흘러나왔다. 앞으로 천천히 나 서던 천족의 마장기가 알르드의 진 영을 향해 포격을 가했기 때문이었 다.

파샷!

마장기의 포격은 브뤼헤아 비쉬가 펼친 방어 마법에 의해 가볍게 가로 막혔다. 그리고 알르드의 반격이 시 작되 었다.

먼저 알르드 측에서도 마장기가 움 직였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리그너스 대륙에서 가장 유명 한 마장기 중 하나인 기사왕의 블루세이버였다.

천족의 B등급 마장기인 엔젤 가디 언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블루 세이버는 알르드의 진영에서부터 출 발해 나는 듯 달리더니 순식간에 거 리를 좁히며 가장 앞서 있던 천족의 마장기 앞으로 쿵 하고 떨어져 내렸 다.

그 모습을 보며 성벽 위에 있던 블루 스케일의 영웅과 병사들은 아 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리그너스 대륙의 제일가는 영웅들 중 한 명이라는 칠제, 기사왕 이레 네 아르티아의 위압감이 멀찍이 떨 어진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번쩍하는 움직임과 함께 엔 젤 가디언급 마장기가 스르르 무너 져 내렸다. 동체가 상하로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언제 뽑아들었는지 블루 세이버의 손에 어느새 커다란 검이 쥐어져 있 었다.

“무, 무슨?!”

성벽 위의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순 식간에 B등급 마장기가 무력화된 것이다. 그러나 기사왕의 공격은 지 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장기를 향 해 근거리에서 마력 폭탄을 터뜨린 블루 세이버는 폭발의 안개가 사라 지기도 전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스 피드로 자신에게 달려들던 천족의 마장기를 난도질했다.

그러고는 하늘로 몸을 날리더니 방 금 전 터진 폭발에 멈칫한 또 다른 마장기의 위로 떨어져 내리며 그대 로 조종석을 박살내 버렸다.

콰직!

후방에서 동료들이 단말마의 비명 과 함께 눈 깜짝할 새에 당하는 모 습을 보던 마장기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언제 던졌는지 블루 세이버의 검이 편대의 후방에 있던 천족 마장기의 가슴 부위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 이었다. 정확히 조종석이 있는 위치 였다.

“괴, 괴물……. 저게 칠제의 무용인 가……

수비대장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역 시나 기사왕의 위명은 명불허전이었 다.

순식간에 네 기의 마장기가 무력화 되며 한 개 편대가 그대로 증발해버 렸다. 마장기 편대의 전투력은 제대로 된 지원이 있다면 일만 이상의 병사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인데도 눈 깜짝할 사이에 박살이 난 것이 다.

그렇게 아군의 마장기들이 허무하 게 당하는 모습에 충분히 전의를 상 실할 법도 하건만 라헬을 섬기는 천 족들에게는 후퇴라는 단어가 없어 보였다.

콰쾅! 쾅!!!

블루 세이버를 향해 천족 마장병들 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연속되는 마장병의 공격을 팔의 원 형 방패로 막아내던 기사왕이 마장병의 공세가 늦춰진 틈을 타 슬쩍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천족의 병사들이 블루 세이버를 공격하기 위해 앞으로 나 섰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새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들 이 천족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 고 알르드의 포위망 사이사이에는 라이온 레인과 아보르 비테 그리고 방패 역할을 맡을 셰비트리들이 하 나둘씩 끼어 있었다.

“꿀꺽. 대체 마장기가 몇 기야?”

“……대장님. 우리가 저들을 상대

로 성을 지켜야 하는 겁니까?”

“환장하겠군. 전투가 벌어지면……. 몰라. 난 도망갈 거야. 군법을 어겨 서 죽던, 싸우다 죽던 죽는 건 똑같 잖아?”

수비대장이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 았다.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라는 SSS 랭크의 병사들은 둘째 치더라도 기 사왕이 움직이는 블루 세이버 한 기 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전투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 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왕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형이 바뀔 정도의 파괴적인 공격이 포위된 천족의 진 영으로 떨어져 내렸다. 두꺼운 장갑 의 마장기라도 지금의 공격은 버텨 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기사왕의 군대가 스완을 포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세이라 클리퍼드의 머릿속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다름 아닌 항복이었 다.

이미 모에드 왕국의 전례가 있었고 모에드의 국왕이 현재 어떻게 생활 하고 있는지도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만약 알르드에게 항복을 한 다면 블루 스케일의 여왕이라는 자 리는 내놓아야겠지만 적어도 수도 스완만큼은 자신이 다스릴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모에드의 왕처럼 말이 다.

그러나 수도에 모인 수많은 귀족들 의 입장은 각자가 달랐다. 지금도 왕성의 회의실에서는 항복파와 결사 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 고 있었다.

“상대는 바로 그 기사왕이요! 수운 다 공작의 병사가 순식간에 전멸했 다는 것에 느끼는 바가 아무것도 없 습니까? 전쟁은 무의미한 희생만을 부를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치욕스럽게 이대로 항복을 하자는 것이요? 그렇게 해서 까지 목숨을 보전하느니 차라리 다 같이 결사항전을 벌입시다!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면 기사왕도 당해내지 못하고 물러갈 것이요!”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쉐 람 남작께서 그런 말을 하다니 어이 가 없군. 이왕 말을 꺼낸 거 쉐람 남작 본인이 기사왕을 상대해 보는 게 어떻소?”

“뭐, 뭐라?! 지금 날 모욕하는 것 이요!”

“도베르만 제독이 우리를 지원하기 위해 오고 있소이다. 그때까지만 버 티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소?”

사방에서 오가는 고성에 세이라 클 리퍼드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계속된 마음고생에 귓가에 환청까지 들리는 느낌이었 다.

천천히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쉽사리 진정이 되지가 않았다.

그때 였다.

“크, 큰일입니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얼굴에 땀범 벅이 된 병사 한 명이 회의실의 문 을 박차고 모습을 드러냈다.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세이 라 클리퍼드를 포함해 귀족들은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지적을 하지 못 했다. 오히려 입을 굳게 다물고 있 었다.

마치 올 것이 온 것마냥 몸이 움 츠러든 것이다.

“천족들이 움직였습니다! 천족의 군대가 강제로 성문을 열고 알르드와 전투를 벌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 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사태를 파악 한 세이라 클리퍼드가 일그러진 얼 굴로 소리를 질렀다.

“뭐, 뭐라?! 성문을 지키는 수비대 장은 무엇을 하는 겁니까! 어서 그 들을 막으세요!”

알르드의 군대가 코앞까지 도착해 있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전쟁을 피하고 싶은 블루 스케일의 입장에서 이러한 천족들의 행동은 똥물을 튀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귀족들도 어처구니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항복을 주장 하던 항복파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앓는 소리를 내 고 있었다.

“사신을 보내야 합니다! 천족들의 움직임은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다 고 기사왕에게 말해야 합니다!”

“이제와 그런 소리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요?! 천족들을 도와서 당장이 라도 병사를 이끌고 나가 알르드의 군대를 요격해야 합니다. 단 한번만 이라도 승리를 거두면 충분히 우리 의 영토를 지킬 수 있을 것이요!”

심각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견이 맞지 않는 귀족들의 모습을 보며 세이라 클리퍼드는 할 말을 잃 었다.

결국 전쟁을 외치던 귀족들이 자신 들을 따르는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 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 다.

보고를 받은 지 한 시간이 채 지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천 족의 군대는 전멸한 상황이었고, 블 루 세이버를 앞세운 알르드의 군대 가 스완의 성문을 박살내고 진입하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방어를 해야 할 병사들은 성벽 위에서 멀뚱히 알르드의 병사 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 되자 전쟁을 외치던 귀족들 또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어야 했 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목숨은 소중했 기 때문이었다.

“항복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촌 언니를 향해 세이라 클리퍼드가 피로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띵동.

갑자기 도착한 메시지에 좌우로 흔 들리는 사령실에서 지도를 보던 호 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메시지를 확 인했다.

메시지의 내용은 굉장히 길었지만, 정리는 간단했다.

“블루 스케일이 항복했군. 이렇게 되면 세이라 클리퍼드를 포함해 블 루 스케일의 귀족 대다수가 알르드 로 소속이 변경되는 건가? 이거 어 느 정도 정리가 필요하겠는걸?”

일개 영웅보다도 못한 능력을 지녔 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특권의식 이 가득한 귀족들은 모조리 쳐낼 필 요가 있었다.

이미 디아린 상단의 정보망을 통해 블루 스케일의 속사정은 빠삭하게 알고 있기에 쭉정이들이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었다.

거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의 경험과 공략본의 정보를 토 대로 생각하면 알르드의 품에 끌어 안을 만한 블루 스케일의 인재는 세 이라 클리퍼드와 도베르만 제독을 포함해 그리 많지 않은 수에 불과했 다.

그것도 도움이 되는 인물이라곤 해 전에 일가견이 있는 도베르만 제독 이 전부였다.

물론, 도베르만 제독이 블루 스케 일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알르드의 품으로 들어왔을 때의 이야기였다. 만약 그가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해적으로 돌변한다면 딱히 알르드의 인재 풀은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 었다.

의자에 앉아 공략본을 보며 블루 스케일의 영웅들을 확인하던 호의 방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잔뜩 흥분 한 표정을 한 시진이었다.

“아후! 또 놓쳤어요.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진짜 무지하게 짜증나네! 분명 똑같은 배인데 왜 이렇게 항해 속도가 차이가 나는 거지? 혹시 건 조 설계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 적어도 수십 년을 바 다에서 제집 드나들며 생활한 사람 들이야. 분명 숙련도가 다른 거겠 지.”

“으으. 그건 나도 알고 있어요. 아 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번도 못 따 라잡는 게 말이나 돼요?!”

“뭐, 언젠가는 따라잡지 않을까?”

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시진이야

어떻게든 도베르만 제독을 붙잡고 싶은 것처럼 보였지만 쫓고 쫓는 추 격전과 숨바꼭질도 이제는 끝이었 다.

블루 스케일은 항복했고, 도베르만 제독 역시 알르드를 공격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도베르만 제독의 추격은 그만두고 카틀라스 항구로 돌아가자.”

“네? 보급품은 아직 많이 남아 있 는데요?”

뜬금없는 호의 명령에 시진이 의아 한 듯 물었다.

그러나 뒤이은 호의 말에 그녀는

수긍하며 함대를 뒤로 돌려야만 했 다.

“전쟁이 끝났거든. 블루 스케일이 항복했어.”

그렇게 도베르만 제독을 추격하던 호와 시진이 함대를 뒤로 돌려 카틀 라스 항구로 귀환하던 도중 블루 스 케일의 항복 소식을 들은 모양인지 도베르만 제독의 함대가 백기를 들 며 호의 함대로 접근했다.

다행이도 도베르만 제독은 자신을 따르는 함대를 이끌고 해적으로 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순순히 항복을 받아들이고 알르드의 처분을 기다리 려는 것처럼 보였다.

“후우. 앞으로 조용한 영지에서 여 생을 보낼 생각이네. 부디 너그러운 처분을 바랄 뿐이야.”

오랜만에 보는 도베르만 제독의 얼 굴은 예전에 비해 굵직한 주름들이 많이 늘어 있었다.

그리고 호는 그런 도베르만 제독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앞으로 그는 알르드의 해군 총사령 관이 되어 리그너스 대륙의 바다를 누벼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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