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397화
디르시나의 랜드 마크인 ‘바람이 머무는 공간’은 리그너스 대륙에서 원 이름보다도 ‘멍멍아, 야옹해 봐’ 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알르드의 수도 디르시나의 최고급 주점 및 숙박시설이었다.
평범한 스탠다드 룸의 숙박비가 하 루 100 리스, 로드 룸이라 불리는 최고급 룸은 1박에 무려 5000 리스 나 되는 거금을 지불해야하는 디르 시나 제일의 호화 시설이기도 했다.
대륙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는 꿈에서나 머무를 수 있는 곳이지만 이런 ‘멍멍아, 야옹해 봐’는 방이 없 어서 예약을 받지 못할 정도로 큰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리그너스 대륙 최초의 랜드 마크라 는 명성이 대륙 전역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많은 여행 자들이 ‘멍멍아, 야옹해 봐’를 방문 하기 위해 알르드를 찾고 있었다.
그런 ‘멍멍아, 야옹해 봐’의 최상층 에 위치한 공간이자 100 평이 넘는 최고급 숙박 룸인 로드 룸, 그 객실 의 발코니에서 호가 디르시나의 야 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루 숙박비가 무려 5000 리스나 되는 사치스러운 공간이지만 알르드 의 군주인 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애당초 이 건물의 주인이 바로 알르드의 군주 였다.
“……멋진 광경이네.”
높은 층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언 제나 그렇듯 마음에 시원함을 안겨 다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평생 이 경치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 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호의 시 원한 기분을 거스르게 하고 있었다.
“블루 스케일 쪽에서 넵튠 궁전 공
략을 위한 우리의 군사행동에 문제 를 제기했다고?”
“그렇습니다. 멍멍.”
로우덴의 보고에 호가 얼굴을 찌푸 렸다. 최근 굳건한 동맹이나 다름없 었던 블루 스케일과의 관계가 조금 씩 엇나가는 느낌이었다. 정확히 언 제부터였을까? 천족과 골든 크로우 의 전쟁? 아니, 그 이전에도 삐걱거 렸던 느낌이었다.
“그거 멍청한 귀족 녀석들의 대답 이 아닌 세이라 클리퍼드의 대답인 가?”
“멍멍. 그렇습니다, 호님. 그녀의
말에 따르면 대륙의 금지라 불리는 굉장히 위험한 장소를 섣불리 건드 려 화를 자초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게다가?”
“멍멍. 자국의 영토에 알르드의 군 대가 군사행동을 자주 하는 것에 대 해 백성들이 크나큰 불안감을 느끼 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게다가 알르드의 군사 행동이 잦아질수록 블루 스케 일의 왕실에 대한 위엄도 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 틀림없었다.
“그래서 정확한 이유는?”
“아무래도 블루 스케일이 우리와 거리를 두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말이죠, 멍멍.”
“타의?”
로우덴의 묘한 대답에 호가 그를 바라보았다. 로우덴은 EX등급의 지 력 능력을 지닌 영웅. 블루 스케일 이 이러한 태도를 왜 보이는 지에 대해 충분히 알아냈으리라. 그리고 로우덴은 둥글둥글한 자신의 손가락 으로 자신의 이마를 몇 번 꾹꾹 누 르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블루 스케일이 천족과
거래를 한 모양입니다, 멍멍.”
“뭐……?!”
그 순간 호의 머릿속으로 한 인영 이 스치고 지나갔다. 골든 크로우의 전 왕이자 인간들의 수호자라 불렸 던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였다. 그런 이레네 아르티아와 천족과는 불구대천의 사 이라는 건 알르드의 영웅이라면 모 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아마 인 간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터였 다.
그리고 이레네 아르티아와 블루 스 케일은 가까운 혈연으로 맺어진 사 이였다.
“기사왕도 알고 있는 사실인가?”
“멍멍,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그랬다면 블루 스케일은 진즉에 기 사왕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았을 것 입니다.”
“ 후우??????
그럴 게 분명했다. 설령 블루 스케 일에게 사정이 생겼다 하더라도 천 족들의 음모에 자신의 친부와도 같 았던 이를 잃은 기사왕이라면 그들 의 그 어떤 이유라도 결코 받아들이 지 않을 터였다.
“그 녀석들 미친 거 아니야? 대체 무슨 꿍꿍이지?”
호 역시 이런 블루 스케일의 행동 은 딱히 좋게 보이지 않았다. 가상 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경 험 때문에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가지 고 있는 세이라 클리퍼드가 다스리 는 왕국이라 하더라도 천족과 모종 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들의 앞을 가 로막으면 적국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세이라 클리퍼드나 스퀴드 수운다와 같이 안면이 있는 이들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었다.
“그래서 천족과 블루 스케일이 무 슨 거래를 했지?”
“멍멍. 블루 스케일이 천족들에게
돈을 빌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액수가 적지 않습니다.”
“돈을 빌렸다고? 후우.”
엄밀히 말하면 멍청한 귀족들에 한 정하지만 자신들에게 돈을 빌렸다가 영토를 차압당한 지 얼마나 되었다 고? 게다가 그 때문에 바라테이온까 지 엮인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그래서 천족들의 압박에 못 이겨 우리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꾼 것 이로군.”
“그런 것으로 추측됩니다, 멍멍. 블 루 스케일 또한 날이 갈수록 군사력이 강해지는 우리를 견제하려고 했 던 의도도 없잖아 있던 것으로 판단 됩니다.”
“견제? 어이가 없군.”
대답과 함께 관자놀이를 짚은 호가 푹신한 소파를 찾아 앉았다.
“그 녀석들. 우리랑 했던 조약은 어디다 팔아먹고, 자기네들끼리 천 족과 거래를 한 거지?”
“신경도 안 썼을 겁니다. 멍멍, 사 실 서로 동맹국과 같은 관계였지 않 습니까? 그 때문에 벨님이나 디아린 상단 역시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건 그것대로 어이가 없는데? 대 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야?”
결국 EX등급의 던전, 넵튠 궁전을 공략하려면 블루 스케일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까 지 함께했던 동맹국이라는 이름이 호의 과감한 결정을 머뭇거리게 만 들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블루 스케일 쪽에 넵튠 궁전 공략 과 관련해 다시 사신을 보내도록 해. 그리고 우리는 키리네 공국의 SSS등급 던전인 크로와트를 먼저 공략한다. 그 쪽은 이미 준비가 끝 났지?”
“멍멍, 그렇습니다. 키리네 공국 쪽 에는 허락을 구한지 오래고, 군대는 아이리스를 통해서 이동하면 될 겁 니다. 쿠퍼 쏘우에게 빌린 드워르기 니들을 이용하면 보름 안에 던전 진 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멍.”
“그러면 그 쪽부터 공략하도록 하 지.”
계획이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단순히 공략 순서가 뒤바뀌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호는 블루 스케일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 들이는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랐다.
크칵! 크칵! 크칵!
멀리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모두의 귀로 들려왔다. 크로와트에 나타나 는 괴물인 크로트들의 울음소리였 다.
크로트는 개구리 인간과 비슷한 생 김새를 하고 있지만, 날카로운 이빨 과 엄청난 도약능력으로 실버 문이 나 브뤼헤아 비쉬와 같은 SSS 랭크 의 병사들도 쉽사리 여기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었다.
그리고 크로와트에 진입한 이후 이 런 울음소리가 들릴 때 마다 수많은 크로트들이 어김없이 크로와트를 공 략하는 알르드의 군대를 습격하곤 했었다.
“모두들 전투 준비! 곧 적들의 습 격이 있을 거다!”
“실버 문들은 정면에 나서고, 브뤼 헤아 비쉬는 라이트 마법으로 주위 를 밝힌다.”
“마장기의 마력 엔진을 가동시켜 라!”
울음소리가 들려오자마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알르드의 막사가 분주 해지기 시작했다. 마장기사들도 재 빨리 무장을 갖춰 자신의 애마에 올 라탔다.
“귀찮은 놈들! 대체 언제까지 나타 나는 거야?”
브로리의 코우랄라가 자신의 양 주 먹을 쾅쾅 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 다. 보스급 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 스터 따위는 마장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아무리 그게 위험난이도 SSS등급 의 던전에 등장하는 괴물이라 할지 라도 말이다.
하지만 크로와트에 나타나는 크로 트들은 마장기사들을 애먹게 만들고 있었다. 엄청난 숫자로 몰려드는 것 은 둘째 치더라도 어느 정도 지성이 있는데다가 마장기의 약점도 알고 있어, 목숨을 도외시하면서까지 집 요하게 마정석 혹은 마력 엔진을 노 리고 달려들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랭크가 낮은 군단급 규 모의 대 마장병을 상대하는 것과 비 슷한 전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브로리를 진정시키듯 기사왕이 덤덤한 목소리 로 말했다.
“크로트들의 습격도 얼마 남지 않
았다. 마지막으로 보스급 몬스터를 공략하면 이 던전도 안전해지겠지.”
“후! 이렇게 고생을 시켜놓고 이상 한 아이템만 줬다 봐라. 이 녀석들,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릴 테다……!”
“아이템을 얻을 때쯤이면 이빨을 뽑을 크로트들도 모조리 죽고 없을 텐데?”
“뭐라?!”
“어엇?! 코우랄라! 좌측에 크로트 무리!!!”
한시진의 장난스러운 농담에 반응 을 보이던 브로리가 뒤이은 통신에 몸을 날렸다.
콰앙! 쾅!!
이어서 코우랄라의 커다란 주먹이 지면에 틀어박히며 몰래 아군으로 접근하면 크로트들을 곤죽으로 만들 어버렸다. 거의 열이 넘는 크로트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크칵! 크칵!”
“크카카악!!!”
그것을 시작으로 귀가 따가을 정도 의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 했고,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요란한 포격과 함께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이 크로트들을 쓸어 버렸 고, 브뤼헤아 비쉬의 화염 마법이 개구리를 굽 듯 바싹 크로트를 요리 했다. 실버 문 역시 뛰어난 검술을 이용해 크로트들을 하나하나씩 베어 나갔다.
“간다! 치르넬!!!”
“어디 맛 좀 봐라!”
크로와트 던전 공략에 참여한 엘리 트 마장기사들도 자신의 능력을 한 껏 뽐내며 크로트들을 쫓아내기 시 작했다. 마장기의 커다란 무기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혹은 마력포가 불을 뿜을 때마다 수십, 수백의 크 로트들이 비명과 함께 먼지로 산화 했다.
“멍멍. 이거 저 녀석들 아군에게 제대로 접근도 못 하겠는데요?”
로우덴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위 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크로트들의 수 가 아직도 적지만은 않았지만 아군 의 압도적인 화력에 제대로 접근조 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 역시 비 슷한 생각이었다.
“수가 많다 해도 기껏해야 일반 몬 스터지.”
실버 문이나 브뤼헤아 비쉬와 같은 병사들만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마장기사가 A 랭크의 마장기를 다루며 압도적인 화력을 전장에 쏟아 붓고 있었다. 아무리 크로트가 위험한 몬스터라 해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도 빨리 던전의 공략을 끝내 고 알르드로 복귀해야겠어.”
“좀 더 서두르겠습니다, 멍멍.”
하지만 계속되는 전투는 아군의 보 급 물자를 빠르게 갉아먹고 있었다.
특히 마장기의 운용에 필요한 마정 석의 분량이 슬슬 간당간당해지고 있었다. 전부 크로트의 잦은 습격 때문이었다. 크로트가 나타날 때마 다 마장기들이 전투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었다.
쾅! 콰아앙!
그렇게 크로트들의 공격 두 번이 더 이어지고 나서야 호와 일행들은 크로트들이 신으로 모시는 존재이자 거대한 뱀처럼 생긴 SSS등급의 던 전 크로와트의 마지막 보스급 몬스 터 크로와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크.로.와.트! 너희들을 제물로 삼 아 대륙을 다시 피로 물들이겠다!!!
위험난이도 SSS등급 던전의 마지 막 보스 몬스터답게 크로와트는 무 시무시한 힘과 독특한 능력으로 알 르드의 마장기사들을 상대했다.
거기에 전투 중간 중간 크로트 무 리들을 불러 알르드의 병사들을 위 기 상황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호와 일행들은 크로와트와 비슷한 강함을 지닌 존재와 잦은 전 투 경험이 있는 전사들.
전투가 계속될수록 무거운 일격과 강력한 공격이 크로와트의 몸을 강 타했고, 마지막으로 데스 사이더의 낫이 크로와트의 목을 훑고 지나간 순간 크로와트가 몸을 크게 떨고는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아앙!
이어서 호의 마력폭탄이 크로와트
의 머리 부위에서 큰 폭발을 일으켰 고, 그 순간 호의 눈앞으로 여러 메 시지들이 빠르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