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너스 대륙전기 393화
‘드워프들이 어째서?’
쿠퍼 쏘우가 이끄는 드워프 군대의 갑작스런 등장에 알르드의 영웅들은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호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던 도중 숨을 헉헉 거칠게 내뱉던 드워프 하 나가 안쪽의 타락한 이그니타를 발 견하고는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손 가락질을 했다.
“어엇? 저, 저놈! 이그니타 아니 야?”
“그걸 이제야 알았어? 용광로에 한 번도 안 들어온 것 마냥 왜 그래? 당연히 용광로 가장 안쪽에는 이그 니타가 있지 않은가? 뭐, 고대신의 힘에 타락했으니 우리가 예전에 알 던 녀석은 아니겠지만.”
“그, 그거야 그렇지. 어쨌든 알르드 의 던전 공략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 허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공략 속도가 정말로 엄청나게 빠르구먼.”
“그러게 말일세. 칼라시니코프의 용광로에 진입한지 얼마나 되었다 고, 벌서 이그니타를 눈앞에 두고 있다니……. 마치 우리 드워프들이 맥주를 마시는 속도와 비슷하지 않은가?”
드워프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호 의 귀로 들려왔다. 제법 큰 목소리 였기에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쓸데없는 잡담들이었다. 쿠 퍼 쏘우가 병사들을 이끌고 온 모양 이긴 했지만, 어째 드워프들이 어떤 목적이 있어 던전에 진입한 것은 아 닌 듯 보였다.
그리고 쿠퍼 쏘우의 마장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드워프들의 A 등급 마장기인 헤임빌급 마장기였 다.
“혹시나 해서 병사들을 이끌고 왔 네. 우, 우리의 문제인데 자네들에게만 신세를 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 가? 그런데 보아하니 우리가 도울 일은 딱히 없을 것 같구먼……. 그 렇다면 이제 이그니타만 쓰러뜨리면 용광로의 폭발을 막을 수 있는 건 가? 중간에 빼놓은 몬스터는 없고?”
“그렇습니다. 쿠퍼 쏘우님.”
“흠흠. 하기야 있었으면 우리가 발 견했겠지.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고?”
“없던 것 같군요.”
쿠퍼 쏘우의 말에 잠시 고민을 하 던 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던 전을 공략하면서 열기가 넘는 A등급 마장기가 완파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쿠퍼 쏘우가 말하는 뉘앙스 가 어째 던전을 공략하면서 파괴된 알르드의 마장기들을 물어보는 것이 아닌 듯 보였다.
“그렇군. 뭐, 다행이긴 하다만……. 혹시 휘하 영웅 중에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린다거나 이상한 행동을 보이 는 이는 없는가?”
느낌이 이상했다. 정말로 자신들을 걱정해서 물어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았고……. 왠지 어떤 문제가 터진 것만 같았다.
“……딱히 보고받은 바는 없습니다 만. 던전에 문제가 생긴 겁니까?”
계속해서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쿠 퍼 쏘우의 행동에 호가 마장기의 해 치를 열며 말했다. 브뤼헤아 비쉬들 이 지속적으로 냉기 마법을 시전하 고 있었지만, 용광로의 후끈한 열기 가 해치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드워프들의 수상한 낌새는 호만이 눈치 챈 게 아니었다. 로우덴 또한 굳은 표정을 하고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멍멍. 쿠퍼 쏘우님. 우리는 칼라시 니코프의 용광로 해방을 앞두고 고 대신의 타락한 힘에 물든 이그니타 의 공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벌어진 상황이라면 이그니타의 공략 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멍.”
“아, 그 그게……. 그, 그러니까 큰 문제는 아닌데……
“멍! 무슨 일인지 제대로 말씀해주 셔야 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로우덴의 단호한 반응에 쿠퍼 쏘우 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마장기에 탑승한 상태인지라 표정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쿠퍼 쏘우의 목소 리에서 그가 현재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눈에 훤히 보이고 있었다.
뒤이어 드워프들의 여러 목소리들 이 호의 귀로 들려왔다. 제대로 알 려야 한다느니, 칼라시니코프의 용 광로에 특별한 제단이 존재한다니, 다행이도 파이가론이 봉인에서 풀려 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었다.
‘파이가론?’ 잠시 이야기를 듣던 호의 표정이 싸악 굳었다. 파이가론. 분명 그 이 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검의 왕좌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끔찍한 괴물인 운트리온과 동급의 존재로 알려진 이름. 바로 고대신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파 이가론의 이름에 대해 아는 이가 호 말고도 또 한 명이 있었다.
“파이가론? 그대들의 용광로를 달 궈주던 정령 이그니타를 타락으로 물든 고대신의 이름이 아니던가 ……? 그런데 그런 고대신의 봉인이 라니? 그게 어째서 칼라시니코프의 용광로에 존재한단 말인가?”
“아, 그……그게!”
“잠깐! 설마 우리를 속인 것인
가?!”
쿠퍼 쏘우를 포함한 드워프들이 미 처 뭐라 변명하기 전에 기사왕 이레 네 아르티아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상황을 파악한 다른 알르드의 영웅 들도 고운 표정이 아니었다.
“그, 그것이 아니오!”
기사왕의 거친 목소리에 상황이 심 상치 않게 흘러가는 것을 느낀 모양 인지 쿠퍼 쏘우가 마장기의 해치를 열고 빠르게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 리고는 기사왕과 윤 호를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왕! 그리고 알르드의 군주여!
파이가론의 봉인에 대해 숨긴 것은 명백한 우리의 잘못이오. 이에 대해 서는 훗날 충분한 보상을 하겠소. 그리고 어째서 우리가 그대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지 지금부 터 설명을 하겠소. 그러니 부디 화 를 가라앉혀 주시오.”
쿠퍼 쏘우는 이레네 아르티아의 분 노를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또한 호의 눈치도 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대단한 전력 을 지니고 있는 알르드와의 사이가 나빠지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었지 만, 아직 칼라시니코프의 용광로 문 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드워프의 현재 전력으로는 이그니 타를 물리칠 수 없는 상황. 만약 이 자리에서 알르드가 그대로 돌아가기 라도 한다면 쿠퍼 쏘우의 입장에서 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방금 전 말씀하신 충 분한 보상에 대해서는 나중에 로우 덴과 이야기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파이가론의 봉인 때문에 병 사들을 이끌고 달려오신 겁니까?”
“그, 그렇소.”
호의 눈동자가 쿠퍼 쏘우의 뒤쪽으 로 향했다. 마장기가 열기가 조금 넘었고, 병사들 또한 만 명이 넘어 보였다. 던전 밖에서는 입김 좀 낼 수 있는 상당한 전력이었지만 SSS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기에는 한참이 나 부족한 병력이었다.
‘고작 저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던 전에 진입했다고?’
쿠퍼 쏘우가 양심이 있는 영웅이기 때문은 아닐 터였다. 행여나 실수로 라도 파이가론이 봉인에서 풀려나는 일이 있을까 싶어 병력을 끌고 온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용광로를 공략 하면서 고대신이 봉인되었을 법한 장소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당연히! 고대신이 봉인된 장소는 용광로의 내부에도 가장 깊숙한 곳 에 있소.”
쿠퍼 쏘우의 눈동자가 호의 뒤쪽에 있는 이그니타에게로 향했다.
“이그니타를 지나쳐 가야만 하는 곳이군요.”
“그렇소. 평상시였다면 딱히 갈 일 이 없겠다만……. 이그니타가 고대 신의 힘에 타락한 것이 마음에 계속 해서 걸리오. 아무래도 내가 직접 파이가론의 봉인을 확인해 봐야할 것 같소.”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고대
신이 봉인된 장소로 가기 위해서라 도 이그니타를 쓰러뜨려야만 하는 셈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못미더운 실력이라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이그니타와 의 싸움에 참가하고 싶소.”
“상대는 고대신의 힘에 물든 정령 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전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싸움을 그대들에 게 맡길 수만은 없는 노릇. 헤임빌 이라면 그대들의 발목을 붙잡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다면야……
고집이 보이는 쿠퍼 쏘우의 대답에 호가 적당히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 다. 어차피 A등급 마장기가 참가하 는 것이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 다. 게다가 드워프의 A등급 마장기 는 성능이 굉장히 뛰어났다.
하지만 이그니타의 전투에 관한 브 리핑은 새로 해야만 했다. 그리고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이 바탕 이 된 호의 상세한 공략 브리핑에 쿠퍼 쏘우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정확한 전투 계획이라 니?! 자네, 이그니타에 대해 조사를 엄청나게 한 모양이로군!”
“SSS등급의 던전입니다. 아무런 준 비 없이 공략할 수 있는 수준의 던 전이 아니죠.”
“그렇다 해도 정말로 대단하군! 대 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서와 씨름 을 한 것이지? 보통 지겨운 시간이 아니었을 텐데? 번역도 쉽지 않을 테고.”
“제가 소환자라서 그런지, 리그너 스 대륙의 역사와 이야기들이 그렇 게까지 지겹게 느껴지지는 않더군 요. 게다가 고서의 번역은 알르드의 하이 엘프가 해주시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알르드의 하이 엘프인 에어 리스가 주로 하는 일이 고서 번역이 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 전기’의 던전 공략도 이런 고서 번 역에서 정보를 획득해서 전투 패턴 을 유추할 수 있었기에 호는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을 할 수 있었 다.
공략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 아도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던전과 보스급 몬스터들에 관한 정보를 획 득했는지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 이그니타 공략에 참가하는 드 워프는 쿠퍼 쏘우 혼자였다. 하지만 이그니타의 원활한 공략을 위해 드워프들이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이그니타의 열기는 마장기에 탑승 해도 버티기가 힘들지. 혹시 괜찮다 면 우리가 자네들의 마장기를 봐도 될까?”
“드워프의 냉방장치는 불의 정령과 의 전투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줄 걸세.”
바로 용광로의 열기를 물리치는 냉 방 장치의 설치였다. 그런 드워프들 의 제안에 알르드의 영웅들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화, 환영해요! 제 마장기부터 먼 저 봐주세요!”
특히나 냉방장치가 없는 데스 사이 더의 주인인 한시진은 그런 드워프 의 손을 질질 잡아 끌 정도였다. 그 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칼라시니 코프의 용광로 해방을 위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마력 폭탄이 목표의 모든 것을 불 태우고, 검들의 환영이 전장을 수놓 았다. 그런 영웅들의 매서운 공격 앞에 타락한 이그니타의 생명불꽃이 조금씩 꺼져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스급 몬스터답게 이그니 타도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이 그니타의 공격에 마장기 여럿이 녹 아내렸고, 중상을 입은 영웅들도 있 었지만, 결국 승리를 거둔 것은 호 였다.
- 아아아아아아! 이, 이 대륙을 불 태울 수 있었는데에에에!
그렇게 칼라시니코프의 마지막 보 스급 몬스터 이그니타가 비명과 함 께 사그라졌다.
“잘가시게나.”
오랜 시간동안 칼라시니코프의 용 광로를 달구던 불의 정령이 소멸하는 모습을 보며 쿠퍼 쏘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고대신의 타락에 물 들지만 않았더라면 이그니타는 현재 로 계속해서 칼라시니코프의 용광로 를 달구는 정령으로 드워프들과 함 께하고 있었을 터였다.
띵동
- SSS등급 던전 칼라시니코프의 용 광로에서 ‘타락한 불의 정령 이그니 타’를 물리쳤습니다.
- 전투성과를 결산중입니다. 3…… 2…… 결산완료.
- 이번 전투의 등급은 S랭크입니다.
경험치를 7631750 획득했습니다.
-총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 니다.
-‘어디 한 번 되돌려볼까?’의 업적 보상으로 카오스 큐브 1개를 획득합 니다.
“어..?”
숨을 몰아쉬던 호가 나타난 메시지 를 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고대신의 타락에 영향을 받은 존재 를 물리친 탓일까? 업적 보상으로 카오스 큐브를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오스 큐브를 얻으려면 고대신과 관련된 보스급 몬스터를 때려잡고 업적을 획득하는 게 정답 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왕 주는 거면 막 몇 백 개씩 주면 안 되나?”
호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실망스럽 게도 고대신 운트리온을 쓰러뜨렸을 때는 열 개의 카오스 큐브를 획득한 것에 반해 이그니타의 경우에는 달 랑 하나의 카오스 큐브만을 보상으 로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다.
그런 호의 곁으로 쿠퍼 쏘우가 다 가왔다.
“후우. 이제 파이가론의 봉인을 확 인할 차례군. 파이가론이 봉인된 장 소는 우리 드워프들의 비밀 통로를 지나 용광로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야 되네. 시간이 제법 걸리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들도 함께 가겠 는가?”
≪ o ” M...?
쿠퍼 쏘우의 제안에 호는 슬쩍 고 개를 저었다. 운트리온의 경우와는 다르게 파이가론은 이그니타가 쓰러 질 때 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아직 봉인이 건재하다는 이야기였다. 굳이 시간 을 들여 파이가론이 봉인된 장소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렇게 시간을 보내느니 던 전 밖으로 나가 휴식을 취하며 전투 의 피로를 푸는 게 훨씬 현명한 선 택이 었다.
-띵동.
하지만 퀘스트는 그런 호의 휴식을 바라지 않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