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
리그너스 대륙전기 386화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알잖아? 묘인들의 이주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호올스와 군트락 그리고 웨이하 숲에서 생겨난 문제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그 뿐인가? 견인들의 왕국 바우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특히 바우국과 드워프 사이에 전쟁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단 하루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을 터였다.
“으……. 내, 내가 좀 더 강해지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혼자 드워프와 수인 왕국을 전부 때려잡게?”
“그건 아니지만…….”
“조금만 더 참아. 모든 게 해결이 되면 네가 싫다고 우겨도 던전의 공략에 끌고 갈 테니까.”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었다.
물론, 브로리의 EX 승급에 관한 퀘스트를 진행해 그녀를 승급시킬 수만 있다면 엄청난 전력의 상승을 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장 승급이 가능한 일도 아닌데다가 그보다 더욱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건들이 있었다. 묘인들의 이주, 영지의 균형적인 발전, 미피츠와 관련된 일들 말이었다.
그래도 브로리의 마음에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심어주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의욕 상승을 위해서도 말이다.
“세 달, 아니 두 달이면 지금 사태도 안정이 될 거야. 과거의 요새 공략은 그 때가서 하도록 하자.”
그리고 두 달이면 충분히 묘인들과 관련된 지금의 혼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호를 향해 브로리는 미지근한 표정을 지었다. 몇 번이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탓이었다.
“그래. 웨이하 숲의 방어시설이 빨리 완공되면 좀 더 일찍 던전을 공략할 수도 있고.”
“으음…….”
“적어도 외부의 침입에 우리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마련해 놓은 이후에야 던전을 공략할 병력을 동원해야 하지 않겠어?”
일리가 있는 호의 말에 브로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브로리가 입을 떼며 말했다.
“내가 직접 웨이하 숲으로 가서 방어시설들을 빠르게 지어보이겠다.”
“그래? 수인 왕국이 방해할지도 몰라.”
“흥! 그 녀석들이 덤벼들면 모조리 땅에 묻어주지. 호! 군트락에 있는 주둔군을 이끌고 가겠다.”
브로리의 말에 호는 알았다는 표정과 함께 자신의 엄지를 치켜 올렸다.
EX등급인 그녀의 무력이라면 수인 왕국의 병사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 * *
니나 다니엘레에 이어 최강 로리라 불리는 브로리까지 전선에 투입되자 수인 왕국의 군대는 웨이하 숲의 수복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브로리의 괴물 같은 돌격에 열 기가 넘는 수인 왕국의 마장기가 박살이 난 이후였다.
거기에 견인들의 국가 ‘바우’가 다수의 마장기 편대를 포함한 군대를 수인 왕국의 국경에 배치하기 시작하면서 수인 왕국은 웨이하 숲뿐 아니라 자국의 영토였던 룩스 지방의 방어에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호인족과 웅족의 권력 다툼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쟤네들 정신 못 차리네. 대체 머리에 뭐가 들은 건지 모르겠어.”
“뭐, 저희들 입장에서는 저 녀석들이 계속해서 투닥거리는 게 좋은 일이지 않겠습니까?”
덕분에 웨이하 숲의 방어시설과 요새의 공사는 별다른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
“멍멍! 단 한 놈의 수인도 웨이하 숲을 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후, 로우덴이 이끄는 팀 심시티가 웨이하 숲에 합류했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요새 및 방어시설과 관련된 공사의 속도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질 터였다. 묘인족들의 정착 또한 큰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림드 산맥에서는 팀 ‘갈공이’가 새로운 연구를 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들이 원하는 연구 주제는 다름 아닌 수인 마장기와 관련된 연구였다.
이제까지 팀 ‘갈공이’는 용족 병종과 관련된 분야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었다. 성과도 제법 있었다. 비록 비행병과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용족의 병사를 S랭크까지 훈련이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림드 산맥에서 ‘바우’의 지원을 위한 수인 마장기가 제작되는 것을 보고, 팀 ‘갈공이’에 속한 몇몇 수인 영웅이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거기에 비슷한 연구 주제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매너리즘을 느낀 이들도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수인족의 마장기라…….”
현재 알르드는 B등급의 수인 마장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A등급까지 제작이 가능한 인간과 엘프의 마장기 기술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 가서 무시를 받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수인 왕국도 기껏해야 B등급 마장기의 제작밖에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팀 ‘갈공이’는 수인 마장기와 관련된 알르드의 기술력을 더욱 높이기를 원했다.
“상관없겠지.”
호는 편지에 적혀있는 내용을 읽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구구절절하게 써놓기는 했지만 줄여서 요약하자면 라이온레인이나 아보르 비테처럼 수인의 A등급 마장기 티거알리카를 개발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알르드에 임관한 영웅은 인간 종족이 제일 많았지만, 수인 영웅도 그 못지않은 수가 알르드에 몸을 담고 있었다. 오히려 등급만 놓고 보면 수인 영웅들이 알르드에 임관한 모든 영웅들 중에서 가장 나은 편이었다.
그리고 수인의 A등급 마장기인 티거알리카는 그런 수인들의 전투력을 전장에서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
암살자처럼 은밀하고 날렵한 움직임을 자랑하는 티거알리카는 아무리 장갑이 두터운 마장기라도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었다.
“마음대로 진행하라고 해. 하지만 티거알리카의 개발이 끝나면 다시 용족 관련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꼭 덧붙이도록.”
“알겠습니다.”
호의 지시를 받은 병사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집무실을 벗어났다. 그 모습을 보던 토슬치의 SS등급 드래곤 영웅, 레피스트 퓨리온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용족 관련 연구를 하고 있었나요? 디르시나에서?”
“아, 네. 연구팀 ‘갈리는 공돌이’가 용족의 비행 병과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성과도 제법 있었습니다. S랭크의 비행병과인 드레이크의 훈련이 가능해졌으니까요.”
“와아?! 어, 엄청난데요? 우리 종족의 병사라면 드라고니안 제국 이후로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 이게 대체 몇 년 만이지?”
레피스트 퓨리온은 여전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에게도 용족의 병사가 양성된다는 사실은 꽤나 놀랄 만한 일인 것 같았다.
딱히 비밀로 한 적은 없는데, 군트락이 림드 산맥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일까? 용족과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로써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제까지 관심이 없었거나.
“하지만 아직까지 훈련은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드레이크를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특산품을 준비하지 못했거든요.”
“그래도 특산품만 있다면 양성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호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드레이크의 훈련은 현재로써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드레이크의 양성에 필요한 특산품인 ‘용각’은 드워프와 수인 왕국의 영지에서 생산할 수 있었는데, 영지의 발전도가 상당히 높아야지만 생산이 가능한 특산품이었다.
그리고 타임리스 상단과 라홀로프 상단을 통해 알아본 결과 용각을 생산할 수 있는 영지의 현재 발전도는 아주 형편이 없었다.
덕분에 용각을 얻을 수 있는 길이 하나도 없었다. 알르드가 직접 드워프나 수인 왕국의 땅을 손에 넣어 영지를 발전시키는 게 아닌 이상은 말이다.
아니면 그들이 자체적으로 용각을 생산할 수 있을 때까지 수 년, 아니 수십 년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드레이크…… 드레이크라…….”
레피스트 퓨리온은 한참이나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마치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호는 그녀의 집중을 방해하지 않고 원래 하던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억에서 깨어난 그녀가 탄성과 함께 입을 열었다.
“기억났어요. 분명 드레이크의 훈련에는 용각이 필요했었죠?”
“맞습니다. 당장은 구할 수 없는 특산품이죠.”
“아뇨.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바로 다른 드래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요. 그리고 제 보물창고에도 용각이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드라고니안 제국이 있던 시절 열심히 상납을 받았었거든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레피스트 퓨리온의 목소리는 굉장히 신이 나 있었다.
“그렇다면…….”
어쨌든 드래곤들이 도와준다면 S랭크의 용족 비행병인 드레이크를 양성할 수 있었다. 비록 랭크는 S 에 불과하지만 드레이크의 공격력 및 방어력은 다른 종족의 SS랭크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용족의 특성 및 드레이크가 보유한 강력한 스킬들은 다른 종족의 비행병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알르드의 입장에서는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 다음으로 전장을 지배할 또 다른 주력 무기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레피스트 퓨리온이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보물 창고로 가서 용각을 가져와야겠어요.”
“아! 잠시만요, 레피스트 퓨리온 님. 굳이 용각을 넘겨줄 필요는 없습니다. 설령 용각을 구할 수 있더라도 저는 드레이크를 양성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에? 왜, 왜요? 드레이크만 있다면 전장의 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텐데요?”
호의 말에 레피스트 퓨리온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드레이크는 S랭크의 비행병과. 그보다 윗 단계의 병과가 있는데 굳이 드레이크를 양성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 알르드가 비행병과가 꼭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당장 비행병과를 양성한다 하더라도 투입할 전장이 없습니다. 수인 왕국?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용각의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드레이크를 무리하게 양성한다면 행여나 그들을 잃는 경우가 생겨나도 병력의 보충이 불가능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굳이 용족 관련 연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시간과 자원의 낭비 같은데?”
퓨리온이 자신의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달콤한 사탕을 받았다가 빼앗긴 표정이었다.
“나중을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드레이크의 양성은 불가능해도 드래곤 라이더는 가능합니다. 미스릴과 마정석 그리고 드레이크의 가죽을 합성시키는 연구를 끝낸다면 모조 드래곤 스케일을 만들 수 있거든요.”
“어, 어……?”
의자에 앉아 있던 퓨리온이 자신의 몸을 틀었다.
[병종–드래곤 라이더(SSS랭크 비행병)
공격력–326 방어력–277
이동속도–12
리그너스 대륙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강력한 병사들입니다. S랭크 이하의 마법 공격에 면역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초속 활강에 이은 돌진력은 단숨에 적의 진형을 초토화 시킬 수 있습니다. 비행 병과의 약점인 궁병에게도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만능 병사입니다.]
드래곤 라이더. SSS랭크의 용족 비행병과로 드라고니안 제국의 마스코트나 다름없던 병사들이었다.
“그 드래곤 라이더를 양성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드레이크와 관련된 연구를 마친 이후에도 계속해서 연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만……. 잠시 연구팀이 수인 마장기와 관련된 연구로 외도를 하는 모양입니다.”
“아니아니, 잠깐만. 드래곤 라이더의 연구가 가능하다고? 대, 대체 어떻게? 수십 년이 지나도 힘들 텐데…….”
“재능 넘치는 영웅들이 알르드를 돕고 있으니까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하는 퓨리온을 향해 호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원래라면 그랬다. 하지만 알르드에는 이레귤러라 할 수 있는 연구팀 ‘갈공이’가 있었다. 천문학적인 자금과 엘 브릭을 위시한 그들을 토할 때까지 돌리고 돌리다보면 근시일 내에 연구를 끝마칠 수 있었다. 물론, 죽지 않을 정도의 휴식은 보장해야 했다.
‘혹시 불만이 생길지도 모르니, 연구팀의 월급을 좀 더 올려줘야겠는데?’
뭐, 제대로 돈을 쓸 시간은 없을 것 같지만, 많이 준다고 해서 싫어할 것 같지도 않았다. 분명 언젠가는 쓸 일이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