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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85화 (385/522)

# 385

리그너스 대륙전기 385화

“나에게 할 말이라……?”

호는 하던 일을 멈추고는 랙돌을 바라보았다.

순간 묘인족의 이주에 자신이 모르는 이해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자세한 것은 집무실을 방문한 묘인족의 장로가 말할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엄청난 수의 묘인들이 국경을 넘고 있는 지금 사소한 이해관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혹시 견인족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음.”

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인 왕국의 마지막 보루라 불리는 충성스러운 종족. 그들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경험도 경험이지만 알르드의 공신 중 하나인 로우덴 셰필드가 바로 견인족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셰필드의 난 때문인지 로우덴은 사드나인을 제외한 다른 견인족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 알다시피 알르드의 군사인 로우덴 셰필드가 견인인데다가 견인족의 전설적인 마장기 시바의 주인인 사드나인 또한 알르드에서 가장 오랫동안 충성을 맹세한 영웅인 터라 당연히 모르지는 않는데……. 갑자기 그들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거지?”

호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랙돌이 묘인도 아닌 견인들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견인족의 장로인 말라뮤트가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 오해는 안하셔도 됩니다. 저는 이미 알르드에 충성을 맹세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말라뮤트와 저는 사파리에서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사이입니다. 서로 한 종족을 이끄는 수장인 터라 통하는 게 많았거든요. 그리고 고양이와 개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낭설에 불과합니다.”

진심이 담긴 랙돌의 변명에 호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냥아치와 댕댕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데?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랙돌과 말라뮤트의 포지션이 눈에 훤하게 그려졌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편지?”

“네. 견인족의 장로인 말라뮤트가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라 잠시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묘인족에 이어 견인족까지. 견인들이 무엇을 요구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수인 왕국이 망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묘인처럼 그들의 이주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수인 왕국에 거주하는 견인족의 숫자는 묘인보다도 훨씬 많았다. 그 묘인들을 받아들이는데도 알르드의 남부는 혼란의 도가니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견인들까지 끼어든다? 난장판이 따로 없을 터였다. 당연히 다른 세력들이 그런 약점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리고 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행여나 견인들이 알르드로 이주를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먼저 거절하겠어. 알르드는 그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 아니, 여유가 있다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네. 오히려 혼란만 더 일어날 뿐이야.”

“……뭐, 말라뮤트도 그렇게 예상을 하더군요. 그래서 말입니다, 호님. 견인들은 수인 왕국의 남서부인 룩스 지방을 중심으로 세 개의 영토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바다가 연결되어 있어 해상무역이 용이하며, 룩스 평야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는 자급자족이 가능한데다가 북으로는 웨이하 숲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알르드와는 고작해야 영토 하나 정도의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치죠.”

“그래서?”

“말라뮤트는 중앙의 세력 다툼이 한창인 지금 수인 왕국의 품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알르드가 그들을 독립시켜 밑에 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종속국가로 말입니다.”

“……으음.”

호가 팔짱을 낀 채 낮은 침음을 흘렸다. 조금 어리둥절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끌리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말라뮤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에 먼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해야만 했다.

“왜 견인들이 수인 왕국에서 독립하려고 하는 거지? 왕국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은 다른 종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남다를 텐데?”

“그거야 옛날이야기입니다. 그 놈들도 우리들처럼 중앙 정부의 계속된 멍청한 짓거리에 결국 질려버린 거죠. 최근 견인들이 세력을 넓히려는 드워프들과 지속적으로 충돌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알고 계시겠지요? 그 때문에 견인족의 장로인 말라뮤트가 중앙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을 당했습니다.”

“거절?”

“그렇습니다. 권력다툼으로 바쁜 와중이니 견인들을 지원할 병력이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대답과 함께 랙돌은 어깨를 으쓱였다. 수인 왕국의 중앙 정부에서 그런 대답을 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그렇게나 왕국에 충성했는데……. 배신감이 느껴지겠군. 견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드워프 왕국을 막아낼 수 없어.”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말라뮤트는 과거의 인연보다는 앞으로의 미래를 선택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세력은 알르드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게 말라뮤트가 자네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로군.”

견인들을 독립시킨다?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적대세력이나 다름없는 수인 왕국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드워프들이 수인 왕국으로 진격할 수 있는 길 또한 막아버릴 수 있었다.

드워프들의 군대가 수인 왕국의 땅을 차지하려면 무조건 견인족의 영토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훗날 알르드가 수인 왕국의 땅을 차지하려면 드워프들이 그들의 땅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다. 힘이 많이 빠진 수인 왕국과는 달리 드워프들의 군대는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드워르기니를 이용한 기동전에 특화된 종족이라 전선이 넓어질수록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괜히 호위망을 뚫고 후방으로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견인들이 있는 룩스 지방을 손에 넣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래서 말라뮤트는 알르드에 충성을 맹세하는 대신 무엇을 원하는 거지?”

“가장 큰 문제는 드워프들의 공세를 막을 수 있는 병력입니다. 최근의 여러 전쟁을 통해 큰 피해를 입은 견인족의 병력만으로는…….”

알르드의 병력은 지원해 줄 수 없었다. 수인 왕국과 천족 그리고 미피츠에 이어 드워프까지 적이 되는 건 피해야 했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밀리에 수인 왕국의 마장기들을 지원해주지.”

알르드는 인간과 엘프의 마장기 뿐 아니라 수인과 마족의 마장기도 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A등급은 아니지만 웨어 타이거와 릴라릴라 그리즐리와 같은 B등급의 마장기는 충분히 제작할 수 있었다.

“마장기의 오너는 충분히 있겠지?”

“물론입니다. 없더라도 어떻게든 재능 있는 녀석들을 찾아내 훈련을 시킬 겁니다.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면 말이죠.”

랙돌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 * *

호가 랙돌의 편으로 견인들을 돕겠다는 의향이 담긴 편지를 보내자마자 견인족은 룩스 지방 근처에 살고 있는 소수의 수인 종족들과 함께 그대로 독립을 선언했다. 수인 왕국에 쌓인 게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종족의 위기감 때문인지 견인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세워진 국가의 국명은 ‘바우’.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호는 느낌상 그들과 잘 어울리는 국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우의 독립 선언에 수인 왕국은 화들짝 놀라며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파견된 군대는 권력다툼에 열중하고 있는 호인과 웅족의 병력이 빠진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리고 말라뮤트가 이끄는 바우의 군대는 그런 수인 왕국의 토벌군을 가볍게 몰살시키며 바우가 만만치 않는 세력이라는 것을 널리 증명시켰다.

그리고 수인 왕국과 바우의 군대가 전쟁을 벌이는 틈을 타 호는 니나 다니엘레로 하여금 웨이하 숲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녀는 그런 호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바우가 대륙에 등장한지 열흘이 흘렀고, 디아린 상단을 통해 잘게 분해된 마장기의 부품이 바우의 수도 룩스에 도착했다.

띵동

라홀로프 상단이 수인의 B등급 마장기 그리즐리를 ‘바우’국의 수도 룩스로 수송했습니다.

라홀로프 상단이 수인의 B등급 마장기 웨어 타이거를 ‘바우’국의 수도 룩스로 수송했습니다.

라홀로프 상단이 수인의 B등급 마장기 릴라릴라를 ‘바우’국의 수도 룩스로 수송했습니다.

라홀로프 상단이 수인의 C 등급 마장기 카니앗산을 ‘바우’국의 수도 룩스로 수송했습니다.

라홀로프 상단이 ‘바우’국의 수도 룩스에 리스와 식량을 수송했습니다.

국가 ‘바우’가 알르드의 종속국이 되었습니다. ‘바우’는 매년 일정량의 자원과 아이템을 알르드에 바치며, 군사 및 경제, 외교 등 다양한 부문에서 알르드의 지배를 받을 것입니다.

“동맹국도 아니고 종속국이라…….”

뭐, 언젠가는 흡수할 세력이기는 하겠지만 묘인족으로 인한 알르드의 혼란이 잦아들 때까지 주위 세력들의 시선을 바우국에 집중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한, 두 기도 아니고 수십 기의 마장기를 보냈으니 드워프와 수인 왕국의 도발에도 어찌어찌 해 볼 만할 터였다. 그렇다고 말라뮤트가 멍청한 영웅도 아니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우국이 보유한 마장기의 출처에 대해 의문을 삼는 이도 분명 나올 터였다.

만약 누군가가 호에게 그에 관해 묻는다면 뻔뻔하게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알르드와 바우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서는 안 됐다.

“견인들이 그렇게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사파리의 중앙 정부가 다른 종족의 신뢰를 크게 잃은 게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견인 녀석들 뿐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독립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바우에 대해 떠올리고 있던 호가 가만히 말을 꺼낸 이를 바라보았다. 브로리가 집무실의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내심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종족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녀석들은 바로 곰 녀석들이다. 호인과의 권력다툼에서 패배 하게 되면 아예 따로 떨어져 자신들의 국가를 세울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오오…….”

브로리의 그럴싸한 추측에 호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눈앞의 꼬마 숙녀는 오로지 주먹만 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머리 또한 쓰고 있었다. 역시 SSS등급의 영웅인 것인가?

하지만 웅족이 독립을 선언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일단 견인들과는 달리 그들의 영토는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세력을 뻗어나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웅족은 수인 왕국의 영토 내에서도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세력이었다. 바다를 통과하기도 힘들었다. 다른 세력과 교역을 하려면 천족 혹은 드워프의 영토를 빙 둘러가야 했는데, 거리가 너무 멀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수인들의 특성상 바다를 굉장히 싫어했기에, 해상 무역이 잘 이뤄질 리가 없었다.

‘아, 곰은 예외인가?’

강에서 연어를 잡아먹는 곰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절로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어쨌든 묘인들의 이주는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바우국의 독립으로 인해 수인 왕국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니나 다니엘레가 웨이하 숲을 차지했고, 새롭게 설정이 된 웨이하 숲의 국경에는 각종 방어 시설들과 요새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 탓에 뒤늦게 이주를 시작하려던 묘인들은 그대로 웨이하 숲에 자리를 잡았다. 웨이하 숲이 알르드의 영토가 되면 굳이 이주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호올스와 군트락으로 넘어온 묘인들의 수는 오백만이 넘었다.

그중 오십만 정도가 리셴르나가 있는 바리안스의 대지로 넘어갔지만, 아직도 두 영토는 사백만이 넘게 늘어난 인구로 인해 무겁게 짓눌려 있었다.

그래도 랙돌을 포함한 능력 있는 묘인 영웅들이 알르드로 임관을 하고 영지의 행정에 관련된 업무를 시작하면서 급한 불은 끈 상황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과거의 요새는 언제 공략을 할 거지?”

영지의 내정 관련 서류를 보고 있던 호가 움찔하며 브로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브로리가 집무실을 방문하는 횟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었다. 그리고 브로리는 호가 집무실에 있는 것을 볼 때 마다 위험 난이도 SSS등급의 던전인 과거의 요새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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