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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82화 (38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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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382화

“그나이 칼츠만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시종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알르드로 데리고 올 수 있겠어?”

“그렇지 않아도 상단의 수송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오고 있는 중 이에요.”

디아린의 대답에 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척하면 척이다.

일단 암살을 목격한 시종을 만나 왜 퉁 파오가 그나이 칼츠만을 암살했는지 정확한 전후 상황을 파악한 후에 그 사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잘만 버무린다면 인간 연합에서 미피츠의 영향력을 축소 아니 완전히 없애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종족의 배신자’ 퀘스트를 완료할 수 없었다. 퀘스트를 완료하려면 미피츠라는 이름을 리그너스 대륙에서 지워버려야만 했다.

“함선의 건조는 잘 되어가고 있는 거지?”

“대형급 함선 같은 경우에는 카틀라스 항구와 디르시나의 장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산중이에요.”

“그럼 토리아 항구에서는?”

“그쪽은 조선소의 규모가 작아서 중형급 함선의 건조가 이뤄지고 있어요. 대부분이 로얄 프리깃급 함선으로 주력 함선을 보호하는 호위함으로 사용할 생각이에요.”

벨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미피츠의 공격 준비는 아무런 문제없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팀 갈공이를 비롯해 수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갈아 넣은 결과였다. 이 추세라면 내년 초 쯤에는 제대로 된 함대를 꾸려 공격을 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를 움직일 해군의 훈련 상황이 형편없기는 했지만,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하면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훈련하면 일가견이 있는 영웅들도 많았다.

* * *

리그너스 대륙의 각 세력에는 이름난 영웅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 중 사람들의 입에 가장 오르락내리락하는 인물들은 다름 아닌 맹장형 영웅들이었다. 자신의 무용을 앞세워 돌격을 감행하는 그들은 적군에게 엄청난 임팩트를 가져다주기 때문이었다.

상급 마족 볼 붸르니체스나 천족의 거한 트렛슈, 수인 왕국의 쿰마, 정령 왕국의 나르코, 드워프 왕국의 아크칸이 그런 스타일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알르드 최고의 맹장으로 알려진 이는 다름 아닌 한시진이었다.

엄밀히 말해 한시진은 맹장이 아닌 용장 스타일의 영웅이었다. 무용도 무용이지만 그녀의 진가는 자신의 능력을 100 % 활용하는 전술적 능력에 있기 때문이었다. 한시진은 충분히 일군을 맡아도 손색이 없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약해 빠졌다고 알려진 소환자이면서도 마나를 다루며 대륙의 이름난 영웅들을 상대해 물리쳤다는 점에서 호사가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거기에 데스 사이더를 다루는 마장술이 극에 달해 다른 세력의 영웅들 특히 수인 영웅들을 다수 베어버렸다는 점과 마왕 쉐르난비체를 상대해 버텨냈다는 사실들이 그녀가 알르드 최고의 맹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였다.

최근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가 알르드로 망명하면서 호사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못해 기사왕에게 최강자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한시진의 명성과 실력은 대륙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호가 인정하는 알르드의 진정한 용장은 한시진도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도 아니었다. 바로 자신을 쳐다보고 히죽이고 있는 꼬마 수인 소녀였다.

“호! 일어났느냐?!”

게슴츠레 눈을 떴다가 감는 호의 움직임을 느낀 브로리가 카앙 거리며 외쳤다. 그리고 그녀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호는 몸을 돌리며 지끈거려오는 이마를 짚었다.

“아니, 안 일어났어. 다시 잘 거야.”

“읔?! 군주란 자고로 부지런해야 하는 법! 빨리 일어나라!”

“부지런한 군주님께서는 누구랑은 다르게 어젯밤 늦게까지 서류를 처리했단다. 난 좀 더 자야 돼.”

다시 이불을 덮어쓰는 호의 행동에 브로리가 입술을 비죽이더니 호의 이불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호 역시 자신의 이불을 사수하기 위해 이불을 잡고 있는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었다. 하지만 최강 로리라 불리는 브로리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이불을 빼앗긴 호가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키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침부터 귀찮게 왜 그래? 아니, 그것보다 너 왜 토슬치로 안돌아 갔어?”

“어차피 가봤자 내가 할 일도 별로 없는 걸? 내정 관련 문제는 레피스트 퓨리온이나 라쿤이 다 처리할 테고. 난 골치 아픈 서류를 처리하는 것 보다 싸우는 게 좋아.”

“너 그거 명령 불복종인거 알아?”

“괜찮다. 네가 싸울 상대를 정해주면 명령 불복종이 아니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뭐……. 뭐?”

어이가 없는 브로리의 대답에 호는 다시 한 번 이마를 짚었다. 이렇게 개념이 없을 줄이야…….

그러나 호는 곧 생각을 달리했다. 눈앞의 소녀는 어설퍼 보이는 어린 외모와는 달리 전혀 생각이 없는 애가 아니었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쉰 호가 브로리를 노려보며 물었다.

“후우. 어서 빨리 본론이나 말해. 나 정말로 피곤하다고.”

“…….”

“묵비권은 거절한다. 토슬치로 가지도 않고. 자고 있는 나를 아침부터 찾아온 이유가 분명 있잖아? 브로리 발란스 양? 나한테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죠?”

“하! 하! 하! 들켰나? 별거 아니다. 아주 간단한 거야.”

작위적인 느낌이 잔뜩 나는 웃음소리. 역시나 원하는 게 분명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뒤이은 브로리의 말에 호는 자신의 피곤이 싸악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한 상대가 필요하다. 그것도 내 모든 힘을 다해 싸울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해. 아, 한시진과 기사왕은 안 된다. 그녀들하고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할 수가 없어.”

“…….”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짐승의 성소’를 다녀온 이후로 몸이 느끼는 감각이 이상하다. 그리고 이 감각의 끈을 잡을 수 있다면 나는 여기서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호, 나는 좀 더 강해지고 싶다.”

카오스 큐브가 자신의 황금색 재능과 공명하면서 EX등급으로 승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걸 느낀 것일까?

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린 채, 브로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로우덴 셰필드나 이레네 아르티아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그 둘은 카오스 큐브와 황금색 재능이 공명을 한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정말로 엄청난 재능이었다. 하지만 브로리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게 하려면 최소 위험난이도 SS등급 이상의 던전을 공략해야 했다. 묘인족의 이탈과 함께 수인 왕국의 내전이 슬슬 본격화되는 지금 시점에서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S등급 이상의 던전을 공략하려면 공략에 대해 알고 있는 자신이 나서야만 했다. 힘으로 밀어붙이다가는 병력만 잃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아, 물론 너를 돕기 위해서 강해지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도와줬으면 한다.”

뒤늦게 들려오는 브로리의 조그마한 목소리에 호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아마도 그건 부차적인 이유일 터였다. 어쨌든 그녀가 강해진다는 것은 곧 알르드의 전력이 강해진다는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호는 곤란한 얼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만, 너도 아시다시피 당장은 힘들어. 곧 묘인족의 이탈이 본격화 될 거야. 그러고 나면…….”

“수인 왕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를 해야 한다는 건가?”

“그래.”

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세월동안 수인 왕국은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다투던 세력 중 하나였다. 현재는 여러 악재들이 겹치며 힘 빠진 호랑이에 불과했지만 오랜 역사에서 나오는 저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방심은 금물. 그만큼 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으으…….”

호의 대답에 브로리는 체념과 슬픔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를 찾아온 것일 뿐,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조르고 우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브로리가 고개를 숙이고 뒤로 돌아서려던 때였다.

“대신 성공적으로 묘인족들을 받아들이고, 수인 왕국의 도발을 막아낸 후라면 충분히 실컷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게. 과거의 요새와 검의 왕좌면 되겠지?”

“어엇?! 그곳들은 대륙의 금지(禁地) 아니더냐? 위험할 텐데?”

“그렇게 따지면 짐승의 성소도 금지였어.”

“그, 그렇군. 그렇다면 그 두 곳에는…….”

“엄청나게 강력한 녀석들이 있을 걸?”

적어도 브로리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보스 몬스터들이 몇 개체는 될 터였다. 다만, 고대신 운트리온에게 타락된 검의 왕좌가 정상으로 돌아왔는지는 확인해 봐야 했다.

검의 왕좌와는 달리 과거의 요새는 던전 내에 아무런 이상도 없을 것 같았다.

최근 그 근처의 영지에 주둔하고 있던 영웅들이 던전 내에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는 몬스터들을 물리쳤다는 보고를 받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토벌한 이들이 없어 던전 내에 몬스터들이 차고 넘친다는 의미였다.

“조, 좋다! 약속한 거다!!!”

그리고 브로리는 아침 일찍부터 호를 찾아온 보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환호성과 함께 우당탕탕 문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호는 하품을 하며 브로리 아니, 황금색 재능을 지닌 영웅들의 EX 승급 조건을 떠올렸다.

“EX 승급과 관련이 있는 영웅들은 다들 SSS등급 던전 공략 조건이 포함되어 있으니 겸사겸사 같이 하면 되겠지.”

거기에 자신과 한시진의 SSS 승급 조건에도 위험난이도 SSS급의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하라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횟수는 로우덴이나 브로리와 같은 다섯 번이었다.

“문제는 알르드에 있는 SSS등급 던전이 세 개 밖에 없다는 건데…….”

그것도 이상이 없는 던전은 과거의 요새가 유일했다. 이미 공략에 성공한 짐승의 성소는 다시 몬스터들이 생겨나기까지에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고, 검의 왕좌 역시 당장 병사들을 이끌고 가봤자 아무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침대에 누운 채로 호는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을 열었다. 알르드에는 없지만 알르드의 주변 세력에는 SSS등급 던전들이 위치해 있었다. 금지라고 지정되는 곳이니 당연히 공략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깨끗한 던전들이 분명했다.

“키리네 공국에 하나 있고, 수인 왕국에는 무려 세 개나 있네.”

거기에 블루 스케일에도 SSS등급의 던전이 하나 있었다. 넵튠 궁전이라 불리는 곳으로 이름만 들어도 바다와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 곳이었다.

공략본에 따르면 리그너스 대륙의 몬스터 종족 중 하나인 나가와 시 서펜트들이 자신들의 신을 모시는 장소로 공략에 성공하면 SSS등급의 창 무기 트라이던트를 획득할 수 있는 곳이라고 나와 있었다.

최근 사이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블루 스케일의 전력상 SSS등급의 던전을 대신 토벌해 준다고 하면 딱히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에 그나이 칼츠만을 암살한 미피츠의 추악함을 알려준다면 양 국가의 관계는 더욱 더 돈독해질 터였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그나이 칼츠만의 암살을 목격했다던 시종이 타고 있던 디아린 상단의 배가 해적들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습니다.”

“……뭐?”

디아린의 보고에 집무실에 있던 호가 얼굴을 굳혔다. 얼핏 들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겠지만, 사정을 아는 이라면 말이 되지 않는 멍멍이 소리라고 외칠 법한 보고였다.

먼저 미피츠와 알르드를 연결하는 항로는 몬스터라면 모를까 해적들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었다. 블루 스케일의 함대가 반나절마다 순찰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알르드의 상단으로 알려진 디아린 상단의 배를 공격하는 간 큰 놈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알르드의 무서움은 여러 전쟁을 통해서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호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정말로 해적이 맞는 거야?”

“……네.”

심지어 디아린의 뒤늦은 대답까지도 찜찜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호는 디아린 상단의 배가 의문스럽게 침몰한 것에 대해 계속해서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한 영웅이 숨을 헐떡이며 다급하게 집무실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수, 수인 왕국에서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또한 묘인족들이 국경을 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묘인족의 장로 랙돌이 말한 대로였다. 자신들의 고향인 미아스카에서 쫓겨나 웨이하 숲으로 향하던 묘인족들은 내전이 발발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목적지를 알르드로 바꿨고, 웨이하 숲에 자리를 잡고 있던 묘인족들 또한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묘인족들을 수인 왕국 제1의 상단이었던 라홀로프 상단이 지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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