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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74화 (374/522)

# 374

리그너스 대륙전기 374화

쿠웅!

“휘유.”

르슐이 피를 토하면서 쓰러지는 모습을 본 호는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한시진이라는 천재 마장기사가 있기는 했지만, 전투에 참여한 마장기는 그녀의 데스 사이더와 호의 라이온레인 이렇게 단 두 기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난이도 SSS 인 ‘검의 왕좌’의 보스 몬스터 르슐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만큼 EX등급 클래스가 보여주는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잠깐. 쉐르난비체도 EX등급 아니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리그너스–온리원’이 보여준 능력은 쉐르난비체 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러나 호는 현재 자신의 레벨이 2000 이라는 점과 새로이 능력이 재설정되었다는 메시지를 떠올리고는 그러려니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생각을 한다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총 672명이 사망했습니다. 27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실버 문입니다.”

“근접전에서의 피해가 컸나 보네.”

“대다수가 르슐의 검 폭풍에 휘말린 이들입니다. 브뤼헤아 비쉬의 방어 마법과 호 님이 내려주신 달빛여신의 축복도 그 공격만큼은 버텨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마냥 고개를 숙이는 영웅의 모습에 호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것도 버텨내면 사기지.’

아니, EX등급의 클래스가 나온 시점부터 밸런스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올 버프가 적용된 SSS랭크의 병사 한 부대만 있어도 A, B등급의 마장기 정도는 가볍게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지금 이 능력을 가지고 던전의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대륙의 통일은 문제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클래스 등급을 높여야겠어.”

“맞아요.”

호가 결심하듯 중얼거렸고, 한시진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 호 만이 아니었다. 르슐을 상대하면서 시진은 자신이 얼마만큼 강해졌는지를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현재 검신인 자신의 능력은 천본앵이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 있었다.

“정말 내 몸이 내 것 같지 않았어요. 예전이라면 상대하기 버거웠을 르슐의 공격도 가볍게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성장한 한시진의 능력은 그런 르슐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을 정도로 대단했지. 안 그래?”

“맞아요. 그래서 더 빨리 레벨도 올리고 클래스 등급도 높이고 싶어요.”

“‘검의 왕좌’를 클리어하면 그럴 수 있을 거야. 물론, 몇 가지 조건도 더 달성해야겠지만.”

호의 말에 한시진은 가만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지 이 세계에서 그런 능력을 얻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애인인 호는 달랐다. 그의 말을 따르면 자다가도 떡이 생겼다.

“오빠도 엄청나던데요? 그 버프? 버프를 받은 병사들이 엄청나게 강해지던데……. 실버 문들이 르슐을 몰아붙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달빛여신의 축복이던가요?”

“실버 문들은 달빛여신의 축복이라 그러고. 브뤼헤아 비쉬들은 어둠여신의 축복이라고 하는 걸 보니. 종족마다 다르게 느껴지나 봐.”

심지어 스킬 명에는 창조신의 축복이라고 나와 있었다. 정확한 효과가 무엇인지 정보창을 통해 알아보려고 했지만, 강제적으로 얻은 깨달음 때문일까?

모든 내용이 물음표로 나와 있는 탓에 EX등급의 스킬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었다.

르슐을 물리친 호와 일행들은 전장의 정리를 끝내고 전리품을 챙긴 후 ‘검의 왕좌’를 정복하기 위해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운트리온의 힘에의해 타락했다는 것을 보여주듯 걸음을 몇 번 옮길 때마다 운트리온의 자식들이 나타나 일행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호가 한시진이 나서기도 전에 풀 버프로 인해 괴물이 되어버린 실버 문들이 그런 괴물들을 가볍게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병사 한 백만 명만 있어도…….”

“대륙을 정복할 수 있을 걸? 저 정도의 능력이면 마장기도 박살낼 수 있을 거야.”

호의 말에 한시진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의 능력을 상승시켜 주는 강화 효과가 전쟁에서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한 명, 한 명이 영웅이라 부를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르슐의 다음으로 나타나는 ‘검의 왕좌’의 보스 몬스터인 알루스와 우월한 사라이너 역시 호와 한시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창조신의 축복을 받은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 콤비가 만들어내는 위력은 SSS등급의 보스 몬스터에게로 통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게다가 검신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가 전방에서 보스 몬스터의 위력적인 공격을 대신 막아주거나 움직임을 묶어주니 공략이 훨씬 더 수월했다.

그렇게 큰 위기 없이 ‘검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탑을 오르는 동안 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EX등급 클래스의 위력은 내 예상 이상으로 엄청나게 강력해. 그런데 이런 힘으로도 힘을 다 쓴 고대신을 쓰러뜨리는 게 고작이면 그 녀석들, 원래는 얼마나 강한거지?’

‘검의 왕좌’의 최상층에 있을 고대신 운트리온을 떠올리며 호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지었다.

여신 라헬만이 자신이 쓰러뜨려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대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 강력한 적인 운트리온을 이곳에서 쓰러뜨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검의 왕좌’에서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며 호와 일행들은 ‘검의 왕좌’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최상층의 문을 열고 왕좌의 자리에 들어선 순간 호와 한시진은 자신들의 눈을 부릅떠야 했다.

“저…… 저게…… 대체 뭐죠?”

“……고대신 운트리온.”

도대체 저것을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거북이를 닮은 외형의 괴물에 등껍질로 추정되는 곳에는 징그럽고 거대한 촉수가 셀 수도 없이 많이 달려 있었다.

심지어 괴물의 크기는 왕좌의 자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컸는데, 촉수 하나하나가 깊숙한 숲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의 몸통 정도의 두께로 보였다.

“아……아아…….”

“오, 신이시여!”

운트리온을 본 병사들의 입에서도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끔찍하고도 무시무시한 모습에 모두들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고대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 앞에서 공포가 몸을 잠식한 것이다.

가상현실게임을 통해 여러 상황을 경험해 본 호 역시 운트리온의 모습을 본 순간 머릿속에서 텅 비어버렸다. 공격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계속해서 입에서 말이 맴돌았다.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운트리온의 촉수가 호의 모든 세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의 사도를 죽인 놈이 죽음을 찾아왔구나!!!

머릿속으로 바로 전달되는 끔찍한 음성과 함께 촉수 하나가 빠르게 움직이더니 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호가 타고 있는 조종석을 박살낼 기세였다. 하지만 촉수의 끝이 호의 조종석을 꿰뚫기도 전에 한시진의 낫이 촉수를 잘라내었다.

하지만 잘려진 촉수는 살아있는 것 마냥 요란하게 꿈틀거리더니 곧 펑하고 터지며 강한 산성액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크아악!!!”

“아악!”

산성액을 맞은 병사들이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모르긴 해도 십여 명 이상의 병사가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동료들의 죽음에 공포에서 벗어나와 정신을 차린 것일까? 병사들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트리온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미개한 녀석들! 신의 힘에 경배하라!

“방어마법을 펼쳐!!!”

지휘관의 명령에 브뤼헤아 비쉬들이 빠르게 주문을 외웠고, 새하얀 막이 실버문들을 감쌌다. 하지만 고대신이라는 명성답게 운트리온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고, 방어막이 제대로 펼쳐지기도 전에 운트리온의 촉수가 몇몇의 실버 문들을 그대로 휘감았다.

콰드득! 콰득!!!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촉수에 휘감긴 실버 문들이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풀 버프로 인해 모든 능력이 상승한 그들이지만, 고대신의 공격은 이제까지 만났던 적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아아압!”

그리고 아군의 병사를 끌고 가려는 촉수를 향해 데스 사이더의 낫이 떨어져 내렸다. 파괴적인 기운을 품고 있는 한시진의 공격은 고대신의 촉수를 그대로 잘라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모두 피해랏!!!”

땅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촉수가 터지며 산성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진 것이다. 심지어 산성액은 병사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데스 사이더의 장갑에도 녹여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대체 뭐하는 괴물이야! 빌어먹을 자식!!!”

한시진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군을 뒤엎는 산성액 때문에 제대로 공격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호의 통신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시진아! 아군의 반대쪽으로 가서 저 녀석의 촉수를 베어내! 거기서는 산성액이 터져도 휩쓸린 아군이 없으니 괜찮을 거야!”

“산성액이 터져도 나만 조심하면 된다 이거죠?”

“대신 우리가 지원하는 것도 힘들 거야. 그것도 감안해서 움직여야 돼!”

“그 정도쯤은 문제없어요!”

한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촉수를 잘라내도 바로 터지지 않는 이상 피할 시간은 충분했다.

흥! 신의 위엄아래에 경배해라! 미개한 피조물들아!

데스 사이더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운트리온의 촉수들이 한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낫이 휘둘러질 때마다 촉수들은 죄다 잘려져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폭발을 일으키며 주위를 산성액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는 이미 자리를 벗어나고 없었다.

호 역시 마력폭탄을 이용해 멀리서 접근해오는 촉수를 공중에서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시진과는 달리 호는 아군들을 위해 운트리온의 공격을 견제하는 움직임이었다.

“브뤼헤아 비쉬들은 방어 마법을 위주로 펼친다. 촉수의 산성액이 아군에게 닿는 것을 조심해!”

“촉수를 베어낸 순간 자리를 피해라! 산성액에 휩쓸리면 끝이야!”

그렇게 마장기가 전투의 포문을 열었고,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앙! 쾅!!!

신이라는 명칭이 붙은 존재답게 운트리온의 공격은 엄청나게 위력적이었다. 허공에서부터 떨어진 촉수가 지면에 박힐 때마다 커다란 돌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검의 왕좌’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주던 브뤼헤아 비쉬의 방어 마법도 운트리온의 촉수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호 님을 위하여!!!”

“적에게 세계수의 분노를! 대륙을 지키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버 문들은의기충천한 소리를 지르며 운트리온에게 달려들었다.

검광이 번쩍일 때마다 커다란 나무 몸통 크기만 한 촉수가 땅바닥에 떨어졌고, 폭발과 함께 산성액을 흩뿌렸다. 하지만 실버 문들은 브뤼헤아 비쉬의 방어 마법과 자신의 방패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산성액을 방어하며 앞으로 전진해나갔다.

‘만약 레나의 깨달음이 아니었다면…….’

마력폭탄을 날리며 그 모습을 보던 호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병사들을 강력하게 만들어준 창조신의 축복이 아니었다면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들은 산성액의 방어는커녕 촉수도 몇 개 잘라내지 못했을 터였다.

결국 엄청난 수의 마장기가 이번 전투에 투입되어야 했을 터였다. 문제는 지금의 저 녀석이 굉장히 쇠약해진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 쇠약해진 녀석이 검신인 한시진과 자신의 ‘리그너스–온리원’의 버프를 받은 아군의 병사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만약 자신들의 능력이 원래대로 돌아간 상황에서 운트리온이 제 힘을 되찾는다면? 상상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게 틀림없었다.

퀘스트 내용에 지금이 운트리온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유일한 기회라는 말이 괜히 적혀 있던 게 아니었다.

“무조건 여기서 끝내야 돼.”

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입에서 말을 중얼거렸다. 기필코 여기서 운트리온을 물리쳐야 했다. 그렇게 호가 다시 한 번 마력 폭탄을 흩뿌렸고, 공중에서 폭발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운트리온의 촉수는 호의 눈에 얼핏 보이는 것만 해도 백여 개가 훨씬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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