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너스 대륙전기-371화 (371/522)

# 371

리그너스 대륙전기 371화

가상현실 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들은 굉장히 많다.

그런 직업들은 각 직업의 특색에 따라 혹은 설정에 따라 여러 계통으로 나뉘는데, 이 세계에서 호가 선택한 클래스는 다름 아닌 지휘관 계통의 클래스였다.

한시진과 같은 경우에는 근접 검사 클래스고 말이다.

이름에서부터 쉽게 짐작할 수 있다시피 지휘관 클래스는 휘하 병사들의 공격력, 방어력 수치나 상태이상 관련 혹은 사기를 높여 전쟁 중에 최고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보조형 클래스였다.

그렇다고 무력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게이머의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한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좋은 직업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왕–미솔로지’는 이런 지휘관 클래스들의 정점에 위치한 SSS등급의 클래스였다.

‘미솔로지로 전직한 이후 획득한 스킬을 포함해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버프들을 적용한다면…….’

병사들의 능력을 최소 다섯 배 이상 상승시킬 수 있었다.

SS등급 클래스인 ‘오버로드–세계의 패자’를 획득한 지금도 병사들의 공격력, 방어력을 약 세 배 넘게 높일 수 있었다.

여기에 미솔로지의 능력까지 적용한다면? 안 봐도 뻔했다. 괜히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즐기는 많은 게이머들이 초보들에게 지휘관 클래스를 추천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사기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그런 탓에 게이머가 지휘관 계통의 최상급 클래스인 오버로드 혹은 미솔로지까지 전직을 하고 나면 게임의 난이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당연한 일인 게 칠제나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영웅이라 하더라도 휘하 병사들의 능력이 다섯 배 이상이나 차이가 나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질로 따져보면 적어도 서너 단계 이상의 랭크가 벌어진 셈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병사의 랭크가 높으면 높을수록 컸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난이도가 낮아진다는 말은 호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변수는 있었다. 바로 마장기의 존재였다. 하지만 공, 방 수치가 다섯 배나 상승한 병사라면 그런 마장기를 상대로도 한 번 들이대 볼 만했다. 굳이 대마장병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 정도까지 가게 되면 평균적인 능력을 지닌 오너가 탑승한 B등급 마장기 정도는 실버 문 한 부대 선에서 어느 정도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되면…….’

리그너스 대륙의 통일은 물론이고, 요즘 들어 신경이 쓰이고 있는 루베릭 대륙과 파신 녀석들의 위협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가상현실게임과는 다른 EX등급의 이레귤러라 해도 말이다.

호랑이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다수의 늑대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질로 안 되면 양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어쨌든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왕–미솔로지’로 전직을 하려면 난이도가 높은 전직 조건들을 전부 달성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SSS랭크의 던전 공략이었다.

“저기가 검의 왕좌?”

한시진이 눈앞에 보이는 웅장한 광경에 긴장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멀리 거대한 검의 형태를 한 구조물의 탑이 구름에 닿을 정도로까지 높이 세워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탑의 중심으로 각종 무기 형태의 소형 구조물들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도 찾아 볼 수 있었다.

“맞아. 검의 왕좌. 우리가 찾고 있던 위험 난이도 SSS등급의 던전이지.”

“엄청나네요……. 이 대륙의 사람들은 저런 건물을 대체 어떻게 세웠을까요?”

“글쎄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소문으로 듣기에는 무에 대한 궁극의 경지에 올라서고 싶은 검사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저 검의 왕좌라고 해. 아마 그들이 만들지 않았을까?”

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냥 읽는 것이나 다름없는 설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에 대한 궁극의 경지…….”

하지만 시진은 호가 말한 내용에 뭔가 빠져든 모양이었다.

그렇게 검의 왕좌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둘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멀리서 보이던 소형 구조물들의 크기가 생각 외로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대형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래서일까? 소형 구조물의 날 끝에서 묘한 압박감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무기의 끝이 자신을 가리킬 때 마다 둘은 심장이 서늘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이번 진입은 단순히 정찰이라는 것을 잊지 마.”

“알았어요.”

SSS등급의 난이도답게 검의 왕좌를 제대로 공략하려면 이레네 아르티아를 비롯한 알르드의 엘리트 마장기사를 전부 끌고 와야만 했다. 그 뿐인가? 일반 병사도 엄청나게 필요했다.

하지만 국토가 넓어진 지금 갑작스레 모두를 소집했다가는 그 소문을 들은 다른 세력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안 봐도 뻔했다. 그리고 호는 이번에 차지한 모에드와 아이리스 성국의 방어가 제대로 이뤄지기 전까지 또 다른 전쟁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호는 한시진과 함께 검의 왕좌를 정찰해 어느 정도의 전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물론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적정한 수준의 필요 전력에 대해 나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여기는 EX등급의 이레귤러가 있는 세계. 그것까지 감안해서 최소한의 전력으로 공략을 끝내고 싶었다.

게다가 공략본에는 너무 많은 수준의 전력이 필요했다. 그것을 만족시키려면 최소한 각 영토의 군주급 영웅들은 모두 소환해야 했고, 방어선 두어 개 정도는 무너질 각오도 해야 했다.

-캬아아아!

-침입자다! 우리들의 신성한 터전을 지켜라!!!

그리고 검의 왕좌로 들어서는 입구에 도착한 순간 눈이 붉게 물든 병사들이 호와 일행들을 발견하고는 괴성과 함께 달려들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었다.

“뭐, 뭐야?!”

갑작스런 적들의 공격에 한시진이 흠칫했지만, 별로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SSS등급의 던전에 등장하는 적들은 얼마나 강할지 기대감에 찬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한시진과는 달리 호는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뭐야? 저놈들? 내가 알던 녀석들이 아닌데?’

* * *

에디터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호는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본 게이머였다.

비록 엔딩을 보기에 급급했던 터라 게임 컨텐츠의 마지막 난이도에 속하는 SSS등급의 던전은 공략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검의 왕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호가 플레이 했던 종족이 인간인 것도 있지만, 검의 왕좌를 공략하는 게이머들의 이야기를 공략 사이트를 통해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도 검의 왕좌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어떤 종류가 있는지 또 몬스터들의 어떤 것을 주의해야 하는지도 자세히 나와 있었다. 하지만…….

“검의 왕좌에 저런 녀석들이 있었나?”

눈이 붉게 물든 병사. ‘왕좌를 지키는 타락한 자’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공략본에는 ‘왕좌를 지키는 자’라는 병사들이 검의 왕좌에서 나타난다고 나와 있었다. 타락한 이라는 수식어가 없는 것이다.

호의 기억에도 그랬다. 섬뜩할 정도로 눈이 붉게 물든 녀석들이 괴물들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힘을 시험해 보겠다고 외치며 호기롭게 달려드는 녀석들이 나타나야만 했다.

‘이 세계는 다른가?’

호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다. 뭔가 찜찜하기는 했지만,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게다가 전투는 이미 벌어진 상황. 다른 곳에 한 눈을 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의 힘을 빌려줄게요! 얍! 얍!!

브뤼헤아 비쉬의 보조 주문이 끝나자 한시진의 몸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그리고는 제대로 눈 한 번 깜빡이기도 전에 괴물 병사들의 앞에 다다르더니 자신의 검을 휘두르며 삽시간의 그들의 목을 베어내 버렸다.

그야말로 엄청난 돌파력이었다. 그런 한시진에게 열댓이나 되는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그들의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시 한시진님!!!

-우리도 가자! 적들에게 세계수의 빛을!!!

-호 님을 위하여!

그런 한시진의 용맹에 자극을 받은 병사들이 괴물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곧바로 난전이 펼쳐졌다. 당연히 한시진을 앞세운 알르드의 군대가 몬스터들을 몰아붙였다.

띵동.

-<스피릿 발할라> SSS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거기에 호의 스킬이 사용되면서 공, 방 능력이 급격하게 상승한 알르드의 병사들은 단숨에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SSS랭크의 던전을 지키는 병사라 해도 호의 스킬에 영향을 받는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의 콤보는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승리를 거뒀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들은 단순히 에피타이저에 불과한 존재들이었다. 던전의 공략을 방해하는 이들은 이런 일반 몬스터들이 아닌 보스급 몬스터의 공략에 달려 있었다. 그래도 승리는 승리였다.

“생각보다 실망인데요? SSS등급의 던전이라 긴장했는데, 이거 너무 약한데요?”

“얘들이 약한 게 아니라 시진이 네가 너무 강한 게 아닐까?”

호의 말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브뤼헤아 비쉬의 버프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단숨에 괴물들의 목을 베어버리던 한시진의 무용은 평범함과는 궤를 달리했다. 기사왕의 대련 이후 전보다 아주 조금, 더 발전한 느낌이었다.

“입구에 있는 괴물들도 쓸어버렸으니. 들어가 볼까요?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요.”

“그래.”

대답과 함께 호는 뒤쪽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마장기를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여기까지는 마정석을 아끼기 위해 수레로 수송을 해왔지만 던전의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준비를 해야만 했다.

잠시 후, 우렁찬 소리와 함께 두 기의 마장기가 던전의 내부로 진입했고, 병사들이 둘의 뒤를 쫓았다.

“분위기가 어째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굉장히 다르네요. 겉에서 보기에는 막 웅장하고 위압감을 주는 느낌이었는데 으스스한 게 마치 검의 왕좌가 아닌 죽음의 왕좌? 그런 느낌이에요.”

“그러게다.”

탑의 곳곳에 뚫려 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과 벽면의 횃불들이 던전의 내부를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하지만 던전의 내부는 으스스할 정도로 고요했다. 호가 동영상을 통해 봤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게이머의 도전을 반기는 여성 Npc가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나타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검의 왕좌는 무에 대한 궁극의 경지를 탐구하는 자들이 모인 곳. 그렇기에 이곳에 등장하는 Npc들은 무에 대한 게이머의 도전을 반기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싸움이 벌어졌던 흔적들과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먼지뿐이었다.

조종간을 잡고 있는 호의 손아귀에 힘이 계속해서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과도 공략본의 내용과도 다른 던전의 모습이 불안감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긴장감을 잔뜩 끌어 올린 채 얼마나 이동했을까? 앞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건?”

“이게 무슨…….”

통로를 통과하는 순간 마주할 수 있는 넓은 공간. 그 공간의 중앙에 한 여인이 벽에서부터 시작된 쇠사슬의 묶음에 알몸으로 묶여 있었다. 마치 봉인이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호의 입에서 짤막한 신음이 흘러 나왔다.

‘문지기 레나.’

검의 왕좌에 등장하는 Npc 중 하나로 게이머의 도전을 반기며 발랄한 행동과 말투로 검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 방법과 규칙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여인이었다. 몇 번이나 영상을 본 적이 있기에 그 기억만큼은 확실했다. 저렇게 묶여서 등장하는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이것도 이레귤러인가? 무언가 잘못됐어.’

잠시 레나의 모습을 보던 호의 시선이 그녀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응시했다. 쇠사슬이 시작되는 벽의 고리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지만, 레나의 몸을 묶은 모습은 의외로 느슨해 보였다. 조금만 힘을 쓰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촤르르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묶여있던 여인 레나가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모습에 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무기를 들어올렸다. 한시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뻥 뚫린 눈두덩이 알르드의 군대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괴한 모습에 선두에 있던 병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오, 오빠. 여, 여기 검의 왕좌라면서요? 귀신의 집 아니에요?”

“나도 잘 모르겠어.”

아니다.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검의 왕좌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문지기 레나가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짐작이 가는 게 없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상황이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