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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69화 (369/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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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369화

출진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바로 병력이 편성되기 시작했다.

모에드 원정의 총사령관은 이레네 아르티아로 결정되었다. 호는 자신이 직접 출진을 할 생각이었지만 주위 영웅들의 만류에 어쩔 수 없이 한 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게다가 기사왕의 의지가 워낙 강력했다.

오너 시스템에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출진시키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충성 및 호감이 떨어질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레네 아르티아는 신성 왕국과 미피츠와 손을 잡은 모에드의 귀족들을 향해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런 기사왕의 의지 때문일까? 골든 크로우에서 망명한 영웅들 중 전투 영웅들은 전부가 이번 원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기사왕을 지원하기 위해 레이자와 케반스도 함께 하기로 했다. 여기에 몇몇 S, A등급 영웅들이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 부대의 지휘관으로 함께했다.

고작 닷새 만에 25만의 병력이 출진 준비를 마쳤고, 마장기 또한 열 개 편대가 기동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레이자가 이끌 보급 부대 또한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대에게 승리를 가져다주겠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이레네 아르티아가 자신의 전용기 ‘라이온레인–알르드레이’와 탑승해 호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기대하겠습니다.”

호 역시 빙긋 웃으며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그렇게 기사왕이 이끄는 알르드 군이 모에드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 * *

리그너스 대륙의 남동부를 지배하는 국가 알르드. 현재 마족과 함께 대륙에서 유이하게 A등급 마장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이며 수인, 엘프, 천족 등 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강력한 세력들과 전쟁을 벌여 여러 번이나 승리를 거둔 강국이었다.

그렇기에 알르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 왕국들은 언제나 알르드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였다. 당연히 기사왕이 알르드 군을 이끌고 모에드로 향한다는 소식 역시 디르시나에서 병력이 출진하자마자 세작들을 통해 알려졌다.

“그, 급보 입니다!”

“기사왕이 출진했다고? 알르드 군을 이끌고? 그게 무슨 소리야?! 잘못 본거 아니야?!”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사왕이 알르드로 망명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정보가 아닙니까?”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모에드의 귀족들은 알르드의 군대가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다는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칼스 모에드와 힐몽거가 알르드에 원군을 요청한 모양입니다.”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알르드가 군대를 보내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엄연히 우리 왕국에 대한 내정간섭입니다!”

“알르드의 군대가 움직일 정도로 칼스 모에드가 내어놓을 만한 매력적인 조건이 있습니까?”

힐몽거가 지키는 요새를 앞에 두고 귀족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았다. 아이리스 성국의 지원을 통해 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병력의 숫자는 약 십오만. 요새를 지키는 힐몽거의 병사는 고작해야 이만에 불과했다.

마장기 전력도 자신들이 훨씬 우위에 있었다. 상대측의 지휘관인 힐몽거가 뛰어난 실력을 지닌 마장기사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자신들에게는 모에드 최강의 마장기사인 쿠드락이 있었다.

한 달 아니 보름 정도만 있으면 모에드의 권력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훼방꾼 그것도 강력한 훼방꾼이 등장한 것이다.

“음. 망명이 아닐까요?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도 알르드로 망명을 했습니다. 물론, 골든 크로우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지만 솔직히 골든 크로우와 알르드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알르드가 다스리기도 쉽지 않고…….”

“아니면 칼스 모에드가 우리와 미피츠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르드에게 알렸을 수도 있습니다.”

“큿! 멍청한 국왕이 나라를 소환자와 같은 근본 없는 녀석에게 팔아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능력은 모르겠지만, 정치적인 경험만큼은 풍부한 이들답게 귀족들은 알르드의 움직임에 대해 정확한 추측을 내놓았다.

문제는 뒷감당이었다. 알르드의 선봉이 모에드에 도착하기까지에는 약 일주일의 시간만이 걸릴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전력만으로는 칼스 모에드를 돕기 위해 진군하고 있는 알르드 군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하물며 그들을 지휘하는 이는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였다.

그렇다고 일주일 내에 힐몽거가 지키고 있는 요새를 뚫어내느냐?

그것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병력만 잔뜩 낭비하다가 알르드의 군대를 상대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이제껏 입을 다물고 있던 한 남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에드의 정통성을 우리가 가져올 때까지 어떻게든 기사왕의 발을 묶어야 합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오? 쿠드락 자작? 설령 가능하다 셈 치더라도 누구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하오? 상대는 바로 그 기사왕이오.”

곧바로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 나왔다. 비록 알르드로 망명을 하기는 했지만, 대륙을 진동시키고 있는 기사왕의 무용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쿠드락이라 불린 인물이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검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입을 열었다.

“모자란 실력이지만 카로프트 지방을 다스리는 이 쿠드락이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를 향해 감히 검을 들어보겠습니다. 비록 태양과도 같은 기사왕의 위명에는 따라갈 수 없겠지만, 나 역시 모에드를 대표하는 마장기사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기사왕을 이길 수는 없어도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대가?”

위험한 일을 자처해서 나서겠다는 쿠드락의 말에 몇몇 귀족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모에드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라는 명성대로 이제까지 국왕군과 상대한 전투에서 쿠드락의 활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다만 병력의 지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알르드의 군대는 무려 이십오만. 그 정도의 숫자는 아니더라도 십만 정도의 병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기사왕의 상대로 농성전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흐음.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오만의 병력으로 힐몽거의 군대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힐몽거가 이끄는 병사의 숫자는 이만밖에 되지 않소. 중요한 것은 기사왕의 발을 묶는 거요. 아시다시피 기사왕이 오기 전까지 칼스 모에드의 목을 베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끝이요!”

하지만 뒤이은 쿠드락의 요구에 귀족들은 난색을 표했다. 결국 자신들끼리는 결정이 나지 않자 한 귀족이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을 쓰고 있는 노인을 향해 말했다.

“쉐딘 베르샤 공작 각하의 견해는 어떠하십니까?”

“그대들의 말대로 우리는 시간이 없소이다. 알르드 놈들이 오기 전까지 당장이라도 칼스 모에드를 폐위하고 모에드의 정통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지. 우리의 숭고한 뜻을 펼치기 위해 잠깐 신성 왕국의 광신도들과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광신도들은 믿을 수 있는 족속들이 아니오. 결국 쿠드락 자작에게 병사를 주어 기사왕을 막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소이다.”

“어쩔 수 없겠군요.”

“당장 내일이라도 공성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는 힐몽거요. 준비는 철저히 하는 게 좋소. 일단은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보급을 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작위가 높은데다가 왕위 계승권자인 놀만 모에드를 옹립하고 있는 모에드의 공작 쉐딘 베르샤 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주억이며 동조를 표시했다.

이틀 뒤, 쿠드락 자작이 이끄는 군대가 기사왕을 막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쿠드락은 기사왕을 상대로 농성 대신 회전을 택했다. 모에드 최강의 마장기사라는 자신의 자부심 때문이었다. 쿠드락의 부관들은 기사왕의 전력을 몇 번이나 이야기하며 그의 결정을 만류했지만, 쿠드락의 결심은 굳건했다.

행여나 기사왕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이름은 대륙의 전역으로 알려질 테고, 칼스 모에드를 몰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운 대가로 승작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쿠드락의 군대와 이레네 아르티아가 이끄는 군대가 넓은 평원에서 대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는 거침없이 모에드의 병사들을 향해 돌격 명령을 내렸다.

콰앙! 쾅! 콰쾅!!!

사방을 가득 메운 마력 폭탄이 동시에 터져 나가는 모습은 마치 작은 화산이 폭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마나를 외부로 분출해 정확하게 폭탄을 움직이고 폭발시키는 기술은 정말 마나 운용의 극에 달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당연하지만 모에드의 마장기사는 그러한 라이온레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쿠드락 역시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괴물 같은 년!!!”

자신의 예상보다도 훨씬 강력한 기사왕의 실력에 쿠드락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라이온레인의 어깨에서 분출한 마력 폭탄은 전의를 잃은 모에드 군을 쓸어버리고 있었고, 쿠드락 역시 검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기사왕의 검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위기에 빠져 있었다.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 어째서 인간들의 수호자였던 당신이! 소환자의 꼬임에 넘어가 우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 크아아악!”

기사왕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었다. 상대는 자신의 알량한 깜냥으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괴물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몸을 빼기도 전에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 쿠드락이 목소리에 힘을 담아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강력한 마나가 실린 대검의 일격이 쿠드락이 타고 있던 마장기의 무기와 동체까지 통째로 부숴 버렸다.

“흐억!!!”

“아……! 쿠드락 자작님이!”

우지끈 소리와 함께 쿠드락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마장기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검붉게 타오르는 검 몇 번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철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조종석까지 포함해 반으로 부서져버린 마장기의 모습은 안에 탑승한 마장기사의 생사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바로 알르드……. 그리고 기사왕의 무서움인가?”

살기가 들끓었던 전장이 고요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모에드의 마장기사 하나가 입술을 천천히 달싹였다.

전투가 시작된 지 삼십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총사령관이자 모에드 최강의 기사로 이름을 날렸던 마장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가뜩이나 기사왕의 위명에 사기가 떨어졌던 병사들의 전의가 시궁창에 박히고 있었다.

“항복하는 자는 참하지 않겠다.”

잠시 후, 기사왕의 외침이 통신구를 타고 전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전투는 싱겁게 끝이 났다.

너무나도 쉽게 모에드의 십만 대군을 격퇴한 이레네 아르티아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전진을 명령했다. 그리고는 쉐딘 베르샤 공작이 이끄는 귀족들을 상대로 반나절 만에 그들을 격파, 놀만 모에드를 포로로 사로잡고 쉐딘 베르샤 공작의 목을 베어버렸다.

일부 반항을 하는 귀족들의 처분 역시 똑같았다.

“감사합니다, 폐하. 이 칼스 모에드는 알르드의 도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알르드의 이름 아래에서 그대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지켜보겠다.”

부드럽지만 무거운 기사왕의 목소리에 칼스 모에드와 힐몽거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부터는 모에드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알르드의 깃발이 각 영지마다 걸릴 터였다. 분명 모에드의 귀족과 영웅들의 입에서는 여러 말이 나오겠지만, 그 뿐이었다.

기사왕이 마음만 먹는다면 모에드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두 남자는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백성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일이었다.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이 어떻든 부역을 지고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름간 모에드에 머물며 큼직큼직한 일들을 대부분 처리한 기사왕은 칼스 모에드와 힐몽거에게 모에드를 맡겨두고 레이자의 보급 부대가 합류하자마자 다시 군대를 이끌고 아이리스 성국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라헬님의 분노가 네 년에게 떨어질 것이다!”

“이단자들을 몰아내라! 라헬교의 신전을 지켜라!!!”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가 이끄는 알르드 군의 공격에 아이리스 성국의 광신도들은 필사적으로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아이리스 성국에 있던 소수의 천족들은 물론이고 라헬교를 믿는 인간 영웅들과 병사들 심지어 마을의 주민들까지 무기들을 들고 나섰다.

하지만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쇠약해진 아이리스 성국은 분노에 찬 검을 휘두르는 기사왕의 맹공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천족과 인간족의 전쟁이 끝나고, 그나이 칼츠만이 미피츠에서 비명횡사한지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인간들의 팔 왕국 중 두 개의 나라가 지도에서 이름을 감추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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