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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60화 (360/522)

# 360

리그너스 대륙전기 360화

“젠장! 미친! 이건 진짜 씨발! 말도 안 돼! 와, 타이밍 진짜…….”

급속 행군을 시작한 군대의 최선두에서 호의 흥분에 찬 욕설이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장기를 움직이고 있던 레이자가 걱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호 님, 괜찮으신 거겠죠? 대박이라고 했던가요? 갑자기 알 수 없는 탄성을 지르시고는 하밀레온을 향해 군대를 움직이시다니……. 혹시 다치신 곳이 있어서 판단력이 흐려지신 건…….”

“멍멍. 분명 무슨 생각이 있으시니 군대를 움직이셨을 겁니다. 멍.”

말을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로우덴도 불안했다.

갑작스레 변한 호의 태도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알르드의 군대는 호의 명령에 따라 골든 크로우를 돕기 위해 테라 강에서 천족들을 방어하고 있었다.

인간들의 방패가 되어주던 군대가 불과 하루 사이에 하밀레온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호가 갑작스레 마음을 돌릴 만한 사건이나 낌새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탄성과 함께 몸을 일으키고는 출진 명령을 내린 것이다.

“대박이면 뭐라도 발견하신 건가?”

“나야 모르지. 솔직히 너나 나나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라이트 유저였잖아? 호 오빠와 같은 폐인들이야 우리가 모르는 정보들을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리그너스 대륙전기’는 너도 많이 했잖아?”

“플레이 시간으로 따지면 200시간이 조금 넘을걸? 순수한 라.이.트 유저였다고. 나도.”

굳이 라이트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유진의 행동에 윤아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가상현실게임의 플레이 시간이 200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면 분명 해비한 유저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껍질만 맛본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동료들이 자신을 향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었지만, 호는 그에 신경을 쓸 정신이 없었다. 새롭게 생겨난 퀘스트와 기사왕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종족의 배신자–골든 크로우’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는 인간들의 생존과 부흥을 위해 검을 든 영웅으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무용으로 인간들을 노리는 수많은 적들을 물리쳐왔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그녀는 지쳐갔고, 그녀의 힘을 뒷받침해주던 골든 크로우의 군사력과 경제 또한 빠르게 무너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골든 크로우가 약화된 틈을 노린 탐욕스러운 권력자가 굳건한 일곱 왕국의 동맹을 배신하고 기사왕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인간들의 결속을 깨뜨린 배신자를 처단한다면 기사왕은 당신께 무한한 감사를 보낼 겁니다.]

며칠 전에 나타난 퀘스트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칠 왕국의 결속이 깨질 거라고는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하지만 천족과의 전쟁이 끝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골든 크로우를 배신하고 독립을 선언한 세력이 생겼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골든 크로우와 사이가 좋은 모에드나 블루 스케일은 당연히 아닐 테고……. 키리네 공국도 독립은 힘들 것 같은데. 그러면 바라테이온인가?”

종족의 배신자 퀘스트가 발생했을 때만 하더라도 호는 그냥 이레네 아르티아와 관련된 퀘스트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퀘스트의 공략 역시 천천히 할 계획이었다.

내용만 보면 결국 탐욕스러운 권력자의 국가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퀘스트인데, 지금의 상황에서 당장 전쟁을 일으키기엔 이런저런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고 알르드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로우덴이나 다른 영웅들도 반발할 게 분명했고 말이다.

하지만 며칠 뒤 나타난 또 하나의 메시지에 호는 군대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레네 아르티아의 마음이 100% 꺾였다는 메시지였다. 그 말은 오너 시스템을 사용하면 당장 기사왕을 자신의 동료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무려 칠제, 최소한 SSS 등급 이상의 영웅을 동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호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행여나 골든 크로우를 포함한 다른 인간들의 나라와 험악한 사이가 되더라도 호는 어떻게든 기사왕을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럴 만한 힘도 있었다. 오너 시스템의 횟수 역시 3 회로 충분했다.

“그런데 고작 동맹국 중 하나가 등을 돌렸다고 이레네 아르티아의 마음이 완전히 꺾일 수가 있나? 그렇게 멘탈이 가루인 캐릭터는 아닐 텐데……. 게다가 그나이 칼츠만도 옆에 있잖아?”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이제까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분명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하기야 전쟁이 끝난 후 하밀레온의 복구를 시작하면서 기사왕은 자신의 명령에 반발하는 귀족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했다.

요컨대 몇몇 정치인들의 행태로 인해 국민들이 울화통이 터진 것처럼 기사왕 역시 무능한 귀족들의 행태에 울화통이 터져버린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멘탈도 함께 깨졌을 테고.

“……라고 생각하기에는 역시나 그나이 칼츠만이 있을 텐데.”

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골든 크로우의 명재상으로 왕국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그라면 어떻게든 이레네 아르티아를 다독였을 터였다. 게다가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 역시 그나이 칼츠만을 피붙이처럼 따르는 사이였다.

하지만 하밀레온의 근처에 도착해 골든 크로우의 군대와 마주친 호는 어째서 이레네 아르티아의 마음이 꺾여버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그나이 칼츠만 재상이 사망했다고?! 미피츠에서?!”

“멍멍?! 그게 무슨!”

“그렇습니다.”

골든 크로우 소속의 인간 영웅이 슬쩍 호의 뒤를 바라보고는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A 등급 마장기 라이온레인을 필두로 얼핏 해도 대여섯 편대는 되어 보이는 마장기들과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많은 병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그나이 칼츠만이 사망했다니……. 그래서였어.’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설정을 비롯해 게임 내에서도 그를 의지하던 기사왕의 모습을 생각하면 메시지에 나타난 그녀의 좌절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녀 주변의 상황 역시 좋지 않았다.

호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기사왕을 동료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만약 오너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천족의 소환자가 기사왕의 지금 상태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심지어 천족들은 기사왕을 손에 넣기 위해 전쟁도 일으키지 않았던가? 잘못하다간 마음이 꺾인 기사왕이 천족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호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기사왕을 만나야겠다.”

“네, 네?”

순간 인간 영웅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많은 병력이 하밀레온에 들어섰다가 문제라도 일으키게 되면 도저히 막아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사망한 그나이 칼츠만을 대신해 골든 크로우의 새로운 재상으로 선출된 귀족에게 알르드의 진군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기까지 했다.

“그, 그건 곤란…….”

인간 영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의 ‘라이온레인 – 플레임’의 어깨가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강력한 폭발력을 자랑하는 마력 폭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인간 영웅을 비롯한 골든 크로우 병사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단 한 기의 마장기도 없는 그들로써는 알르드의 대군은커녕 눈앞의 라이온레인 하나도 제대로 막아낼 수 없었다. 심지어 그들을 지휘하는 인물인 윤호는 이미 대륙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엘리트 마장기사로 수많은 적들을 상대로 승리만을 거둔 전쟁 영웅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 폐하를 만나야겠다.”

“아, 알겠습니다.”

결국 인간 영웅은 낭패한 얼굴로 길을 비킬 수밖에 없었다. 괜히 알르드의 앞을 가로막았다가는 허무하게 개죽음만 당할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알르드는 천족들을 상대로 함께 전투를 치른 동맹 국가였다. 그나이 칼츠만 재상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기사왕을 만나겠다는 그들의 명분을 막아설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알르드의 군대가 하밀레온에 들어섰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군대의 등장에 골든 크로우의 귀족들을 비롯한 하밀레온의 영지민들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졌다. 행여나 알르드의 무기가 자신들에게 향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호는 그런 잡다한 것들에 대해 시간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 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단 하나. 리그너스 대륙의 칠제이자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를 손에 넣는 것뿐이었다. 이건 신이 주신 기회가 분명했다.

* * *

그나이 칼츠만의 죽음 이후 이레네 아르티아는 칩거에 들어갔다. 그만큼 그의 죽음이 충격적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하는 귀족들의 행태와 미피츠의 배신과도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덩달아 터지면서 그들을 지키겠다는 그녀의 의지를 꺾어버린 것에 한 몫 했다.

“이레네 아르티아 폐하.”

왕의 집무실에서 자신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이 없는 기사왕의 모습에 호는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억누르며 천천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레네 아르티아가 높낮이가 없는 음울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윤호, 알르드의 왕이로군. 후우……. 먼저 아국을 도와준 거에 대해서는 골든 크로우의 수많은 백성들을 대신해 감사를 표한다. 그대의 도움에 대한 사례도 분명 해야 하건만……. 안타깝게도 아국의 상황이 좋지 않구나.”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하셔도 괜찮습니다. 일단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먼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대도 재상의 죽음에 대해 들었나?”

이레네 아르티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술을 물었다.

“내 모습이 꼴사나울지 모르겠지만, 그나이 칼츠만 재상은 나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폐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폐하만큼은 아니지만 저 또한 재상에게 빚을 진 몸이니까요. 그나이 칼츠만 재상은 제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칠 때 절 도와주셨던 분입니다.”

“재상이……?”

호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이레네 아르티아가 살짝 고개를 돌려 호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예전 림드 산맥을 찾아온 재상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이 세계의 강력한 병기인 마장기를 제작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 그런 거래를 했던 기억이 있는 것 같군. 그리고 그대는 우리의 약한 보병 전력의 단점을 메울 수 있는 엘프족의 병사를 보내왔었지.”

“서로 윈윈인 거래였죠.”

“후후. 예전의 일이지만 재상이 소환자와 거래를 해야겠다는 말을 했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지 이레네 아르티아가 눈을 살짝 감았다. 잠시 후, 그녀의 눈동자가 호에게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이지만 자신에게 관심을 드러내는 기사왕의 모습에 호는 그나이 칼츠만을 잃은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말을 이어나가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기사왕에게 오너 시스템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줘야만 했다. 그리고 호는 퀘스트를 통해서 그 이유를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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