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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59화 (359/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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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359화

“골든 크로우의 명재상이자 기사왕이 가장 신입하는 참모인 그나이 칼츠만. 그 이름은 귀가 따갑게 들은 적이 있지. 이거 안녕하신가?”

“그대는……!”

갑작스레 대전에 모습을 드러낸 일련의 무리에 그나이 칼츠만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새하얀 날개를 지닌 영웅과 전장에서 적으로 마주쳤던 병사들이 골든 크로우의 사절단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거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루블랑 팔토라고 하네.”

“십 천사 루블랑 팔토?! 이, 이게 무슨?”

“말했잖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네 이놈! 퉁 파오!!!”

위화감의 정체가 밝혀졌다.

미피츠의 탐욕스러운 괴물은 인간들을 배신한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최근의 일이 아니었다. 천족의 고위급 존재인 십 천사와 접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퉁 파오는 오래전부터 천족들과 손을 잡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퉁 파오를 향해 일갈을 토해내면서도 그나이 칼츠만은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의 전력을 살폈다. 전부 로얄 소벨리온과 로얄 윙드 아쳐들. 천족의 S와 A랭크 병사들이었다.

‘도망은……. 힘들지도 모르겠군.’

아군 역시 비슷한 랭크의 병사들로 이루어졌지만 문제는 눈앞의 영웅이었다. 그랜달이나 치토크와 같은 황금 기사가 옆에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이 자리에 루블랑을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떨리는 자신의 움직임을 감추기 위해서일까? 그나이 칼츠만은 옆구리에 찬 검을 강하게 쥐었다.

“명재상 그나이 칼츠만이라면 레모스의 복수를 하기에 딱 적당한 인물이지.”

그런 그나이 칼츠만을 향해 루블랑이 자신의 단검을 휘휘 돌리며 말했다.

* * *

“흐아암…… 지루하네.”

테라 강 건너편에 건설되고 있는 천족의 요새를 보며 호가 길게 하품을 했다. 눈 깜짝하면 닿을 가까운 거리였지만, 호의 얼굴에는 조금의 긴장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천족의 감시망을 뚫고 판자 하나에 몸을 기대어 테라 강을 넘어오는 골든 크로우의 백성들을 구조 하느라 병사들 그것도 브뤼헤아 비쉬들만이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구조 작업 중에 종종 천족과의 트러블도 일어나기는 했지만, 천족들은 알르드 군과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려고 하면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십 천사 레모스가 사망하고 요새 세라핌이 무너진 사건 때문에 알르드와의 교전은 무조건 피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후우. 언제쯤이면 영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멍멍. 레이자, 이대로라면 몇 년이 지나도 영지로 돌아가기란 요원할 겁니다. 어쨌든 호님. 일단 기사왕과 이야기를 해 방어 병력을 남겨 놓고 우리들은 알르드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유지비는 골든 크로우가 부담해야죠. 멍.”

“그 유지비도 골든 크로우는 감당하기 힘들걸? 알잖아? 지금 하밀레온의 상황.”

호가 몸을 틀어 굳은 관절을 움직이면서 로우덴을 향해 말했다. 새롭게 골든 크로우의 수도가 된 하밀레온의 엉망진창인 상황은 호의 귀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고 있었다.

‘기사왕의 카리스마라면 골든 크로우의 위기를 이겨내는 데 별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영웅도 아니고 대륙의 칠제 중 하나였다. 못해도 SSS등급의 영웅인 것이다. 그런 기사왕의 뜻에 반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귀족들은 대체 얼마나 간이 큰 녀석들인지 어디 한 번 직접 그 능력들을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호님께서 골든 크로우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멍멍.”

“뭐, 그렇기는 하지만…….”

이레네 아르티아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다고 자신에 대한 그녀의 호감도가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다가 운 좋게 이벤트라도 생겨서 진도를 쭉쭉 뺀다면? 오너 시스템에 힘입어 기사왕을 동료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문득 세라핌 공성전에서 포로로 붙잡은 천족의 A등급 영웅 라우가 떠올랐다. 천족의 영웅답게 그녀는 여신 라헬의 뜻을 자신의 신조로 받아들이던 영웅이었다. 하지만 오너 시스템은 라헬을 향한 그녀의 신심을 호에게로 돌려놓았다.

오너 시스템의 사용 조건을 맞추기 위해 그녀의 마음을 꺾는 일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노하우도 있을 정도인데다가 레모스의 죽음으로 인해 라우가 마음의 문을 확 닫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빈틈을 파고드는 것 정도야 간단했다.

그렇게 라우를 동료로 맞이하면서 호는 그녀의 입을 통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박상민이라고 했지?’

천족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소환자. 한 때 천족의 소환자였던 김유진도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호처럼 천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자신의 영지를 꾸려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호는 오너 시스템을 사용해 인간 영웅들을 휘하에 넣은 천족의 소환자가 박상민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영지를 운영할 정도로 이 세계의 시스템이 익숙하다면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게이머일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윤아와 유진처럼 오너 시스템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라이트 유저도 아니었다.

“그래도 당장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지.”

신경을 쓴 다 해도 천족의 보호에 있는 그 녀석을 어떻게 할 방도도 없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로우덴은 그런 호의 말을 달리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멍! 당장 신경을 써야 할 상황입니다. 알르드에서도 해결할 일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습니다, 호님! 지금이라도 당장 기사왕에게 통보를 해야 합니다. 니들 일은 니들이 알아서 처리하라고요! 멍멍.”

쌓인 게 제법 많은 모양인지 로우덴이 으르렁대며 불평불만을 토해냈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던 터라 호는 품속에서 동그란 물체를 하나 꺼내들었다.

순간 로우덴의 눈동자가 공을 향해 박혔다. 그리고 호가 힘껏 강을 향해 던진 순간.

“머머머머머멍멍?!”

알르드의 영웅들 중 가장 머리가 똑똑한 SSS등급의 영웅이 미친 듯이 달리더니 강을 향해 뛰어들었다.

“아무리 똑똑해도 본능은 이길 수 없나 보네요.”

“저기, 오빠. 저 강 깊지 않아요? 저러다가 빠져 죽으면 어떻게 해요?”

“발코니에서도 떨어져도 멀쩡하던 녀석인데……. 괜찮을 걸? 그리고 개헤엄을 무시하지 마. 개들이 수영을 얼마나 잘하는데?”

유진과 윤아의 말에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살짝 걱정이 된 걸까? 호가 슬쩍 눈짓을 하자 브뤼헤아 비쉬 몇이 로우덴이 빠졌던 장소로 마법 지팡이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호님. 저도 로우덴 셰필드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수인 왕국과의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호님이 이곳에 계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왕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하지만 영웅들의 계속되는 조언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충성도가 확 깎여나가기 때문이었다.

물론, 레이자의 경우에는 오너 시스템이 로우덴의 경우에는 견인족의 충성 스킬 때문에 별다른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는 했지만 지력 능력이 높은 이들이 계속해서 조언을 하는 것을 보면 지금의 이 상황이 자신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인 것은 맞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레네 아르티아와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천족과의 전쟁이 끝나고 그럴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골든 크로우의 상황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띵동

-이벤트 ‘종족의 배신자–골든 크로우’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호가 눈을 크게 떴다.

* * *

“이, 이게……! 이게 무엇이란 말이냐!!! 어째서 재상이!”

화악!

이레네 아르티아의 분노에 찬 노성과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기사왕의 그러한 행동에 주위에 있던 귀족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골든 크로우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이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부서진 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이…… 이 관이 어디서 발견되었다고?!”

“도르스판 지역입니다.”

“도르스판?”

병사의 말에 아르티아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근방에는 모에드 왕국이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면 미피츠에도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정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미피츠로 자금을 요청하러 갔던 재상이 살해당했다.”

이레네 아르티아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재상의 뜻을 꺾었을 터였다.

“이는 우리 골든 크로우를 무시하고 명예를 짓밟은 처사. 군대를 일으킨다. 교활한 퉁 파오의 뱃가죽에 내가 직접 검을 찔러 넣으리라.”

“폐, 폐하. 군대라니요? 하밀레온의 복구에 필요한 자금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타국에서 재상이 죽었다! 그대들은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단 말이더냐! 자금이 부족하다?! 그대들의 창고에 쌓인 수많은 리스와 식량을 내 모를 줄 알았는가?!”

말을 꺼낸 귀족을 찢어발길 듯, 기사왕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말을 꺼낸 귀족 역시 만만한 이가 아니었다. 후작의 작위를 가진 인물로 알트라에서 도망친 귀족 무리의 수장급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저희들의 재산입니다. 전쟁통에도 목숨을 걸고 지킨 재산이지요. 아무리 폐하가 골든 크로우의 주인이라 할지라도 저희들의 재산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사옵니다.”

“뭐, 뭐라고?”

“설령 그렇게 하시겠다면 저희들은 저희들의 소중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폐하의 뜻에 반해 무기를 들어야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레네 아르티아는 지금 자신이 들은 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말을 꺼낸 귀족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렸다. 대전을 가득 메운 귀족들의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귀족들 역시 주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자신이 골든 크로우를 수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반평생을 전장에서 살았다. 이들을 비롯한 백성들의 재산과 명예,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말을 꺼냈던 귀족이 표정을 편하게 하고는 아르티아를 향해 말했다.

“물론, 그나이 칼츠만 재상을 아버지같이 여겼던 폐하의 마음은 십분 이해합니다. 당연히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습니까? 일단은 미피츠에 항의 서신을 보내고, 새로운 재상을 선임해…….”

“새로운 재상을 선임?”

이레네 아르티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권력에 탐을 내는 귀족들의 행태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저 더러운 입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탈한 감정이 그녀의 온몸을 가득 메웠다.

“내 의견이 중요한가? 그대들의 마음대로 하도록.”

표정이 사라진 그녀의 입에서 목소리가 힘없이 흘러 나왔다.

“재상의 관을 옮겨라. 내가 직접 재상의 무덤을 만들겠다.”

그러고는 몇몇의 병사들을 이끌고 대전을 벗어났다. 이레네 아르티아가 대전에서 사라지자 재상의 자리를 놓고 귀족들의 논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논의는 곧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말다툼으로 변질되었다.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탐욕스러운 귀족들로 인해 골든 크로우가 무너지고 있을 무렵, 테라 강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퀘스트에 대해 고민에 빠져있던 호의 눈에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띵동

-이레네 아르티아의 마음이 100 % 꺾였습니다. 오너 시스템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테라 강을 지키고 있던 알르드의 군대가 하밀레온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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