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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56화 (356/522)

# 356

리그너스 대륙전기 356화

쿠르릉! 쿠릉!

“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뒤를 돌아본 라우가 비명과 함께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멀쩡한 땅이 무너지는 것도 모자라 귀를 멀게 만들 정도의 폭음이 연달아 들려오고 있었다.

콰아아앙!!!

그러던 도중 이제까지와는 다른 커다란 폭발음이 모두의 귀를 강타했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마장기에 탑승한 마장기사들까지. 본능적으로 몸에 소름을 오싹 돋게 만드는 소리였다.

곧 번쩍하며 전장에 있는 모두의 시야가 하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들이닥친 강력한 충격파에 소강상태로 상황을 파악하던 병사들이 비명과 함께 뒤로 쓸려 나갔다.

“성공인가?!”

“당장 모두 뒤로 후퇴한다! 최대한 요새에서 멀어져! 브뤼헤아 비쉬는 후퇴를 아군을 향해 보호마법을 펼친다! 아, 아니 그냥 튀어!!!”

어느새 알르드의 병사들은 스리슬쩍 뒤로 물러나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로우덴을 통해 세라핌의 안쪽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곧바로 요새에서 떨어지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알르드의 병사들은 좀 전까지 맹렬하게 요새를 공격했던 움직임이 무색해질 정도로 빠르게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네 이놈! 대체 무슨 짓거리를 벌인 거지!?”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흘러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라우가 호를 향해 달려들며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현재 그녀의 속은 답답하다 못해 타들어갈 것만 같았다. 요새 세라핌을 감싸고 있던 은은한 성력은 온데 간 데 없었고, 오싹한 죽음의 기운만이 뒤에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엉망이 된 천족 병사들의 얼굴도 핼쑥하게 변해 있었다. 자신들을 덮쳤던 강력한 충격파가 요새의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카캉! 캉!

번쩍 불꽃이 튀며 두 기의 마장기가 서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서로의 무기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잔상이 묘한 그림을 그려내며 하늘에서 흩뿌려졌다.

“크아아악!”

라우는 악귀와도 같은 얼굴로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호는 점점 뒤로 물러나며 그녀의 공격을 침착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오히려 날카로운 호의 반격이 이어질 때마다 공격을 하는 세인테르급 마장기의 장갑에 하나, 둘씩 금이 가고 있었다.

“라, 라우님?!”

“저희들이 돕겠습니다!!!”

폭발의 충격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천족의 마장기사들이 호와 격돌하는 라우를 보고는 황급하게 전투에 끼어들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호를 이기지 못했던 라우였다. 하물며 그녀의 마장기는 팔 하나가 날아간 상황이었다.

“어딜 끼어들려고!”

하지만 호는 재빠르게 마력 폭탄을 내보내 그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마력 폭탄의 방패에 그것을 뚫어낼 기량이 부족한 천족의 마장기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이 묶여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알르드의 엑스칼리버급 마장기가 포격을 시작했고, 천족의 마장기사들은 MLC 의 강력한 파괴력에 자신들의 장갑이 깨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비명과 함께 산화했다.

“이 개자식! 네놈만큼은 지옥으로 함께 데리고 가겠다!!!”

“꿈도 크네.”

그렇게 부하들의 허무한 개죽음에 눈이 돌아간 라우가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 동귀어진의 돌진을 감행했고, 그것을 가볍게 피한 호의 마장기 ‘라이온레인–플레임’의 커다란 손이 라우의 마장기 조종석을 움켜쥐더니 힘으로 뜯어내버렸다. 그것을 끝으로 세인테르급 마장기도 침묵에 빠졌다.

* * *

하늘을 활강하던 커다란 금속 자재가 라헬의 신전에 떨어지면서 신전의 외벽을 박살냈다. 모두가 경악할 만한 큰 사고였지만, 그것에 반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불안정한 파편이 만들어낸 엄청난 폭발에 세라핌 내에서 살아남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튼튼한 방패로 단단한 방어를 자랑하던 로얄 소벨리온도 날렵한 로얄 윙드 아쳐도 리그너스 대륙의 강력한 전투 병기인 마장기도 자연 재해나 다름없는 불안정한 파편의 폭발을 버티지 못했다.

“빌어먹을.”

세라핌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휘관의 회의실에서 레모스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그의 상태는 척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재수 없게도 폭발의 중심에 휘말리면서 눈, 코, 입을 비롯한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질풍의 레모스라는 천족의 고위급 천사의 위엄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던 커다란 날개도 한 쪽이 꺾여서 부러진 재 오래였다.

“화염 정령의 불안정한 파편이 적의 함정일 줄이야……. 쿨럭!”

기침과 함께 레모스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터져 나왔다. 그가 SS등급의 뛰어난 무장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죽었을 상처였다.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적을 상대로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파편의 폭발에 목숨을 잃은 수십만의 병사들 또한 자신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영문도 모를 터였다. 불안정한 파편을 향한 욕심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지만 후회를 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우리 천족이 대륙을 지배하는 모습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니…… 원통하구나.’

레모스의 시계가 점차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점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말로만 듣던 죽음이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레모스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순간이었다.

-나의 아이야!

그의 귀로 갑작스레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은은한 빛이 레모스의 전신을 감싸 앉기 시작했다.

“여, 여신님이시여!”

레모스의 눈동자에 감격이란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을 밝게 물드는 신성한 성력에 폭발로 인해 걸레짝이 되어버린 온몸이 빠르게 치유되고 있었다. 진정 기적이나 다름없는 힘이었다.

잠시 후, 온몸이 완벽하게 치유된 레모스가 자연스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신의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그의 얼굴에서는 감동에 찬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만큼 여신의 라헬의 강림은 십 천사인 레모스도 몇 번밖에 보지 못했던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게다가 천족의 수많은 천사들 중에서 여신 라헬과 소통할 수 있는 천사는 천왕 라이프린이 유일했다.

자박자박…….

문득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레모스의 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레모스는 깊게 숙인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신성한 기운이 발자국의 주인이 자신이 따른 여신 라헬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야……. 너의 힘이 필요하구나.”

“라헬 님이시여. 저는 언제나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이어서 레모스는 사락 하고 라헬이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력의 기운에 취한 그는 여신 라헬이 자신을 향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레모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카학?! 라, 라헬 님?!”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신의 지팡이를 보며 레모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얼굴에는 지금의 상황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지어지고 있었다.

“어, 어째서…….”

죽어가던 자신을 살리고는 이런 행동을 하다니? 라헬을 바라보는 레모스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라헬의 입가가 길게 찢어지며 요사스러운 기운이 주위를 뒤덮었다.

“나의 아이야. 이 신의 지팡이에 너의 힘이 필요하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헬이 레모스의 심장을 관통했던 지팡이를 뽑아냈다. 지팡이의 끝에서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지팡이에서 흘러나온 타락한 기운이 천천히 바닥의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너를 살리느라 많은 양의 신성력을 사용하긴 했지만, 니가 품고 있는 타락한 정령의 힘이 허무하게 그냥 소멸되는 것을 지켜 볼 수는 없었단다. 너는 모르겠지만 그 힘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거든."

“타락한…… 정령…… 힘…….”

“그래. 창조신의 봉인을 깨고 내가 이 대륙을 손에 넣는데 필요한 강력한 힘이지.”

라헬의 입술이 기묘하게 비틀렸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진실이었지만, 레모스는 이미 생명의 기운이 사라진 뒤였다. 이어서 라헬의 지팡이가 한 번 더 레모스의 몸을 꿰뚫었고, 여신의 지팡이에서 흘러나온 어두운 기운은 레모스의 피와 살덩이를 모조리 흡수하며 그 흉흉함을 드러내었다.

* * *

알르드의 공격에 레모스가 사망하고, 세라핌이 무너졌다.

살짝 과장해 백만이 넘는 병력이 증발하고, 천족이 자랑하는 영웅인 십 천사가 사망했다. 그 충격적인 소식은 빠르게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더욱이 세라핌에서 살아남은 천사들의 입을 통해 엄청난 지진과 폭발이 요새를 뒤엎어 병사들을 재로 만들어버렸다는 목격담이 전해지면서 과거 윤호가 일으켰던 참극인 안테 로리의 폭발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거기에 알르드의 지배자인 윤호는 다른 소환자와는 달리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사용한다는 괴담까지도 함께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라핌이 무너지면서 곤경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하밀레온을 포위하던 천족들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작정하고 공세를 펼쳤던 천족들은 인간들의 턱 밑까지 자신들의 칼끝을 밀어 넣고 있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인간들을 무너뜨리고, 세리너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소환자들을 이용해 그들의 세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세라핌이 무너지면서 삼십만이 넘는 적에 의해 후방을 위협당하고 있었다. 하물며 세라핌을 무너뜨린 적인 알르드의 윤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게다가 알르드 군이 주둔하고 있는 위치는 천족의 보급 및 퇴각로를 막아서는 위치기도 했다. 덕분에 라이프린은 하루가 멀다 하고 회의를 개최했고, 십 천사를 포함한 고위급 천사들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바삐 회의실을 드나들어야만 했다.

“선택이 필요합니다. 피해를 무릅쓰더라도 어떻게든 하밀레온을 무너뜨려 기사왕을 손에 넣을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퇴각해야 합니다.”

“공격도 문제입니다. 이레네 아르티아의 저항은 분명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 와중에 알르드 군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분명 양 쪽에서 공격을 당할 겁니다.”

“맞습니다. 세라핌이 무너진 상황에서 공성전은 무리입니다. 더욱이 세라핌의 소문을 들은 아군의 사기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영웅들의 부정적인 대화에 라이프린은 자신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인간 종족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빌어먹을 소환자 놈이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수많은 피를 흘려서라도 하밀레온을 무너뜨리고 이레네 아르티아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의 목숨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만큼 레모스를 무너뜨린 소환자 윤호의 능력은 라이프린도 온 신경을 써야할 정도로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특히나 세라핌을 불살랐던 폭발의 정체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요. 퇴각을 하는 수밖에…… 하지만 얻은 것 없이 물러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훗날을 위해서라도 골든 크로우가 예전의 성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적어도 수도 알트라 정도는 손에 넣어야겠죠.”

누군가의 말에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던 천족 영웅들의 많은 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라이프린이 형형한 눈빛으로 전원을 응시했다.

“기사왕이 눈치를 채기 전에 빠르게 움직입니다. 우리들의 친구이자 여신님의 독실한 종이었던 레모스의 복수를 해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알르드와의 교전도 피하겠습니다.”

레모스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몇몇 천사들의 눈에서 강렬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레모스와 오랜 연을 맺었던 십 천사들이었다.

“저도 지금 당장 레모스의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윤호의 알 수 없는 능력을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돌발행동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라이프린의 말에 십 천사들은 어쩔 수 없이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누그러뜨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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