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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52화 (352/522)

# 352

리그너스 대륙전기 352화

‘마력 지뢰를 이용해 요새를 무너뜨린다?’

호는 예전에 있었던 안테 로리 전투를 떠올렸다.

오래 전, 다수의 화염 마법 스크롤과 기름 등을 사용해 전력의 차이가 크게 나는 리셴르나의 선봉대를 매장시켜버렸던 전투였다.

비록 영지 하나를 통째로 희생시키긴 했지만, 마장기 두 기와 이만이 넘는 병사가 비명 한 번 질러보지도 못한 채 먼지로 변해 버렸었다.

‘괜찮은 계획 같기는 한데…….’

낮은 신음성을 내뱉는 호의 얼굴에 의혹이 어리기 시작했다.

EX등급의 지력 능력을 보유한 천재 군사의 계획이라기엔 허점이 너무나도 많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요새의 지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에 마력 지뢰를 빼곡하게 설치해야만 했다. 일단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천족들이 바보도 아닌데다가 요새의 크기를 생각하면 마력 지뢰 또한 무지막지하게 필요할 터였다.

대충 생각해도 지금 보유하고 있는 군수물품으로는 수량이 감당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설령 감당이 된다 하더라도 마력 지뢰의 원형은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 성공적으로 요새를 무너뜨렸다 해도 그 뒤가 문제였다. 칠제 중 하나인 라이프린이 이끄는 천족의 본대를 상대하기도 전에 가장 강력한 전력인 라이온레인의 주력 무기가 봉인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추가적인 보급 물자가 도착하려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고, 한 달은 천족들에게 포위된 하밀레온이 무너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인물은 호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로우덴. 그게 쉽게 가능할까요?”

레이자가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지력 능력이 괜찮은 영웅답게 그녀는 로우덴이 말한 계획의 허점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로우덴이 자신의 외알 안경을 중지로 스윽 올리며 말했다.

“세부적인 계획은 들어오는 첩보와 여러 상황들을 파악해서 세우긴 하겠지만, 불안정한 지반을 무너뜨려 상대를 매장시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멍.”

“하지만 우리가 보유한 폭탄의 양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혹시나 싶어서 하는 말이지만 세라핌 요새의 크기는 중소급 영지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멍! 물론! 마력 지뢰로 요새를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분명 폭탄만 낭비하는 일이 될 겁니다. 멍멍. 하지만 아주 좋은 대체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양을 말이죠.”

“좋은 대체품?”

“그런 게 있다고?”

호와 레이자가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로우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로 이겁니다.”

로우덴이 자신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주춤주춤 꺼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태도였기에 모두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맴돌았다. 잠시 후, 로우덴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병이었다.

그리고 유리병 내부에는 길게 꼬리를 늘인 붉은색의 구슬이 살아 있는 생명체마냥 기묘한 선을 그리며 병 안을 유영하고 있었다.

“이건…….”

붉은 색의 구슬은 일정한 형태나 형식 없이 자유분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그림에 병을 바라보던 영웅 모두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호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거 던전에서 가져온 그거 맞지?”

“그……. 멍멍. 맞습니다. 불의 정령의 불안정한 파편입니다.”

“히잌?! 이, 이거 괜찮은 거예요? 여기서 터지면 난리날 거 같은데?!”

“저 개새끼! 미친 거 아니야?! 죽으려면 혼자 죽던가!”

로우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아와 유진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병 속에 담긴 붉은 구슬은 던전의 동굴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던 장본인이었다. 그런 둘의 반응에 로우덴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멍멍. 병 속에 안정적으로 담겨 있으니 괜찮습니다. 아마도요. 어쨌든 이 불안정한 파편은 마력의 급격한 변화나 물리적인 충격이 강하게 가해질 때 폭발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병 속에 넣어두면 괜찮아 이거죠. 게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이렇게 병을 코르크로 막아놓기까지 했습니다.”

“……그것 참 안심되는 말이로군. 그래서 저 불안정한 파편을 마력 지뢰 대신 사용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멍!”

“확실히…….”

수량은 충분했다. 불안정한 파편은 불타는 틈새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깔려 있었으니까. 문제는 저 파편들을 어떻게 천족의 요새로 보내느냐는 점이었다. 그리고 로우덴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멍멍!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불안정한 파편에는 정령의 힘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최고위급 천사들은 이런 정령의 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마력을 늘리는 데 사용한다고 들었어요.”

레이자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리고 탄성이 터져 나오며 몇몇 영웅들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반응을 보아하니 그렇게까지 비밀인 내용은 아닌 모양이었다.

“멍멍. 그렇습니다. 분명 세라핌의 최고위급 천사들은 이 불안정한 파편에 대해 관심을 보일 거고, 파편의 마력을 흡수하기 위해 발견한 파편들을 요새의 어딘가에 쌓아둘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파편이 쌓아둔 위치를 찾아내 터뜨리면!”

로우덴이 입으로 펑하는 소리를 내고는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옆으로 긋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쁘지 않은데?’

호의 눈동자가 유리병 속에 담긴 불의 정령의 불안정한 파편으로 향했다. 병속에 담긴 붉은 색의 구슬이 위험할 정도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확실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계획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새를 무너뜨리겠다는 로우덴의 말이 지금은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기대를 담은 호의 눈빛이 작전을 입안한 멍멍이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움직일 거지?”

* * *

덜컹덜컹!

천장에 걸려 있는 조그마한 빛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굴에서 백이 넘는 천족의 병사들이 바퀴에 금속이 덧대어 있는 수레에 각종 병장기와 마력석 그리고 식량들이 잔뜩 실어 옮기고 있었다. 천족의 수송대였다.

“보자. 이 정도 속도라면 오늘 저녁은 요새에서 먹을 수 있겠는데?”

다른 병사들보다 계급이 높아 보이는 천사가 동굴의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이정표를 보며 말했다.

“그것 참 다행이긴 한데……. 백부장님, 언제까지 이렇게 어두컴컴한 동굴을 통해 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희들이 두더지도 아니고.”

“나도 모르지, 뭐. 그래도 하밀레온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물자를 수송할거라고 얘기를 하긴 하던데…….”

“으으. 그전에 저희들이 먼저 쓰러질 겁니다. 사흘 동안 날개도 한 번 못 펼쳐봤다고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햇빛도 보지 못하고 몇 날 며칠 물자를 수송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땅굴을 이동할 때는 날개도 한 번 펼칠 수 없었기에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족들에게 있어 땅굴 수송은 엄청난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한 번 수송을 하면 며칠 동안 푹 쉴 수 있다는 게 아니었다면 급격하게 차오른 불만으로 인해 사단이 일어나도 벌써 일어났을 터였다.

“이 모든 일이 라헬 님의 뜻을 펼치기 위한 시련이라고 생각해.”

“후! 라헬 님의 은혜도 모르는 인간놈들 때문에 우리가 이 고생을 해야 하다니.”

“맞아. 어디서 인간 놈 하나 안 나타나나? 나의 날카로운 이 창이……. 어? 어?”

까불거리며 주위를 향해 자신의 나무창을 휘두르던 천사 하나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는 동굴의 벽을 향해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잠시 후,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가 동굴 내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야?!”

도를 넘어서는 부하의 돌발행동에 편하게 대화를 받아주던 백부장이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부장 역시 동굴의 벽을 향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갈라진 벽의 틈 사이에서 꼬리를 길게 늘인 붉은색의 기운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백부장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배, 백부장님. 이거 정령의 파편 아닙니까?”

“맞을 거다. 예전에 십 천사님이 흡수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어.”

백부장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위급 천사라면 다들 환장을 한다는 순수한 마력의 결정인 정령의 파편. 당연히 흔하게 발견되는 게 아니었다.

백부장은 크게 요동치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며 뒤의 부하를 향해 손을 펼쳤다. 그러자 눈치 빠른 한 천사가 조그마한 상자를 가져왔고, 백부장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상자에 불안정한 파편을 옮겨 담았다.

“꿀꺽.”

조금만 충격이 가해져도 큰 폭발이 일어나기에 최대한 조심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파편을 옮겨 넣으며 상자를 닫는 순간 그의 등 뒤로 여러 쌍의 시선이 와르르 꽂히기 시작했다.

“좋아! 우리 부대의 오늘 저녁은 보나마나 회식이겠군! 이 파편을 레모스님에게 바치면 어마어마한 포상이 떨어질 거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백부장 또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것을 바치면 자신의 인사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백부장님? 이 틈 말입니다. 조금만 힘을 쓰면 무너질 것 같은데요?”

그렇게 환호성으로 인해 주변이 어수선해질 때, 가장 먼저 불안정한 파편을 발견했던 말썽꾸러기 천사가 백부장을 향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나무창으로 틈을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야. 그건 무너뜨려서 뭐하게? 빨리 가자.”

앞으로 생겨날 일들을 떠올리며 기분이 좋아진 백부장이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말썽꾸러기 천사가 창으로 찌르던 틈 사이의 흙더미가 후두둑 무너져 내렸다. 누가 건드린 것 같은 인위적인 모습이었지만, 백부장을 포함해 불안정한 파편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정신이 팔린 천사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역시 공간이 있을 줄 알았다니까…… 흐헙?!”

그리고 틈새 사이에서 나타난 광경에 백부장을 비롯한 천사들은 숨이 멎을 뻔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고위급 천사들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정령의 불안정한 파편이 갈라진 틈 사이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 사실들은 세라핌의 레모스에게도 보고가 되었다.

“불안정한 정령의 파편이라. 그것도 불의 정령이로군.”

상자에 담긴 붉은색의 구슬들을 보며 레모스가 작게 신음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잠시 후, 레모스의 손이 구슬을 살짝 감싸자 밝게 빛나던 붉은색의 구슬들이 까맣게 변해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자신에 몸에서 느껴지는 청량한 기운을 즐기며 레모스가 부관을 향해 말했다.

“지하 수송 통로에서 잔뜩 발견이 되었다고?”

“그렇습니다. 한 수송부대가 동굴의 갈라진 벽 틈 사이로 이상한 공간을 발견했는데, 알아보니 과거 고대신의 힘에 타락한 불의 정령이 봉인되었다가 소멸된 장소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불의 정령의 불안정한 파편이 잔뜩 있었던 건가…….”

“제단이 발견된 것을 보면 고대신을 추종하던 이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수색 결과 타락한 추종자들은 사라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만약 그들이 남아 있었다면 불안정한 파편들을 이용해 타락한 정령이 부활했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어쨌든 수송 부대의 인원들에게는 입조심을 하라고 일렀습니다.”

“흐음.”

“이번에 발견된 불안정한 파편들을 모두 흡수 하신다면 상당한 양의 마력을 얻으실 것 생각됩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레모스 님. 여신 라헬 님의 축복입니다.”

“후후후. 그런가?”

아부가 잔뜩 섞여있기는 했지만 부관의 말에 레모스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만큼 이번에 발견된 불안정한 파편은 오랜 시간을 살아왔던 레모스 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알르드의 멍청이들을 상대로 시간만 보내느라 지루한 참이었는데…… 잘됐군."

이번에 발견된 파편의 힘을 모조리 흡수한다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의 한계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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