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
리그너스 대륙전기 351화
띵동.
-던전의 전리품 수급이 끝났습니다.
-S등급 던전 ‘불타는 틈새’에서 292730 리스와 621850 의 식량을 획득했습니다.
-S등급 던전 ‘불타는 틈새’에서 아이템 붉은 꽃을 획득했습니다.
“호 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의 구출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골든 크로우의 기사로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전투가 끝나고 새롭게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하던 호에게 포르테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파르미어와의 전투에서 호를 비롯한 알르드의 마장기사들이 보여준 활약상은 포르테를 감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런 활약상에는 A등급 마장기 라이온레인의 강력함이 큰 부분을 차지했지만 라이온레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역시 그들의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포르테 님도 타락한 적사제들을 상대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하하하! 그 괴물 녀석들.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끊임없이 나오더군요.”
“그것이 바로 던전의 무서움이죠.”
호가 전리품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병사들을 힐끗 곁눈질하며 말했다. 타락한 적사제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일까? 실망스럽게도 S등급의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틈새를 공략하고 획득한 전리품은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타락한 고대신의 파편들이 만들어낸 장소지 않습니까?”
포르테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설정과는 달리 이들은 던전의 존재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후.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빨리 모든 던전들을 봉인시켜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저와 같이 타락한 적사제들을 막으며 고생을 하던 소환자 분들은…….”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던 그가 고개를 움직여 누군가를 찾던 순간이었다. 한쪽에서 쾅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모두 경계 태세!!!”
갑작스러운 폭발에 전리품을 옮기던 병사들이 무기를 빼들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혼란은 곧 진정되었다. 폭발을 일으킨 장본인이 자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신윤아와 김유진이었다.
“무슨 일이지?”
“그, 그게…….”
화가 난 것 같은 호의 목소리에 윤아가 울상을 지으며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친구의 시선에 유진이 끙하는 신음과 함께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 잘못했어요, 오빠. 전투 중에 커다란 괴물이 계속 소리를 지를 때 마다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게 짜증나고 이해가 안 되서……. 그래서 전투가 끝나고 동굴 안쪽에 뭐가 있나 싶어서 마나를 실어서 돌멩이를 던져봤는데…….”
폭발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였다.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는 그녀들의 이유에 호는 화도 내지 못한 채 뒤통수를 긁적여야만 했다. 어차피 폭발에 놀란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피해도 없었기에 화를 내기도 뭐했다.
“여기는 던전이야. 우리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장소라고.”
“그렇긴 한데……. 궁금하잖아요. 대체 그 많은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사고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무럭무럭 피어오른 호기심은 감추기 힘들었는지 윤아가 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런 윤아의 모습에 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가상현실 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도 지금의 윤아와 같이 호기심 넘치는 게이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의 결과는 대부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결론되곤 했다.
“궁금하면 직접 가서 확인해 보던가. 어차피 아무 것도 없을걸?”
“지, 진짜요?”
“그래. 믿을 수 없다면 나랑 같이 가볼까?”
그리고 호도 그런 호기심 많던 게이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호는 타락한 적사제들이 나타났던 동굴의 안쪽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부가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뿐 동굴의 안쪽도 별로 깊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어차피 전리품이 정리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호는 윤아와 유진 그리고 덤으로 따라온 포르테와 함께 동굴을 안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보나마나 별거 없을 거라니까.”
시니컬한 목소리와 함께 호가 따악 손가락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자 대기하고 있던 브뤼헤아 비쉬 둘이 라이트 마법으로 동굴의 안을 밝혔다. 그렇게 정체를 드러낸 동굴의 내부는 이제까지 흔하게 봤던 던전 내부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저기서 폭발이 일어났나보네.”
호가 움푹 패어진 한 장소를 가리켰다. 사방을 유영하고 있는 붉은 빛의 기운이 그쪽에만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껏 던진 돌멩이가 붉은 구슬을 건드리고 폭발하다니 참 운도 없었다. 하지만 몇 십 발자국을 걸어서 폭발이 일어났던 장소에 도착한 순간, 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오빠……!!!”
그리고 호를 뒤따르던 윤아와 유진도 그 자리에 멈춰서야만 했다. 무너진 동굴의 틈 사이로 구멍이 뻥하고 뚫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멍은 크지 않았다. 고작해야 주먹 하나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떤 소리가 구멍 안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점이 모두들 긴장시키고 있었다.
‘라이트 꺼!’
호의 다급한 손짓에 브뤼헤아 비쉬들이 재빠르게 마법을 취소했다. 사방이 어둠에 잠기며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졌지만, 틈새에서 새오는 빛은 희미하게 동굴의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호가 조그마한 틈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이게 대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통로였다. 사륜마차가 서너 대는 동시에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크기였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통로는 결코 아니었다. 천장에 설치된 불빛과 바닥에 좌우로 새겨진 선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분명 마차 자국이었다.
게다가 희미하게 들려오던 소리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련의 무리가 호가 있던 장소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오늘 밤까지 요새에 도착해야 한다! 조금 더 속도를 내도록!
‘천족의 수송대.’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호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천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계속해서 의구심을 보내던 로우덴의 말이 맞았다. 요새 세라핌에서 나온 정찰 부대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발을 묶는 미끼에 불과했다.
레모스는 땅굴을 통해 요새에 필요한 자원을 충당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아니, 날개달린 녀석들이 웬 땅굴? 지들이 무슨 두더지야 뭐야?”
윤아와 유진도 자신들의 눈을 크게 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일단 돌아간다.”
자신들을 지나쳐 점점 멀어지는 천족의 수송대를 보며 호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족들의 꿍꿍이를 알아내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로우덴과 상의를 하고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게다가 문득 떠오른 하나의 가정이 호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젠장……! 땅굴이라면 인간 종족의 기술이잖아?’
그것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소수의 게이머들만이 사용하는 비주류 기술이었다. 천족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잠시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 영웅을 손에 넣은 소환자가 천족을 돕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천족의 소환자가 인간 영웅을 손에 넣은 게 분명했다.
‘서둘러야 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긴 했지만, 인간의 기술을 사용하는 천족들을 목격하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렇게 호가 바삐 던전에서 나올 때였다. 어떤 영문인지 던전의 입구에서 로우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호를 발견한 로우덴이 지체 없이 달려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멍멍! 문제가 생겼습니다, 호 님. 천족의 정찰 부대는 우리의 발을 묶기 위한 미끼인 게 분명합니다. 멍. 레모스와 천족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물자 수송 기술을 개발한 게 틀림없습니다.”
“어……?!”
아니, 이 천재 녀석은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낸 거지? 로우덴의 말에 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힐끔 유진과 윤아를 보니 그녀들도 화들짝 놀라며 로우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양한 표정을 짓는 이들의 모습에 로우덴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멍멍. 호 님! 이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대로라면 요새 세라핌을 상대로 공성전을 펼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공성전은 필요 없어. 천족 녀석들의 수송 기술이 뭔지 알아냈으니까.”
“머엉?”
로우덴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호를 바라보았다. 총명하게 빛나던 눈동자에 잔잔한 흔들림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천족의 새로운 수송기술 말이야……. 던전 안에 들어가면 알 수 있을 거야.”
불세출의 천재 군사를 향해 호가 헛기침을 하며 던전의 입구를 가리켰다.
* * *
“땅굴이라니……. 멍멍. 생각도 못했습니다. 천족들이 자신들의 날개를 접고서 지하로 다닐 줄이야.”
던전 안에 들어갔다 나온 로우덴이 충격에 빠진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천족들이 지하의 땅굴을 통해 물자를 수송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땅굴은 하나만 있을 게 아닐 터였다.
“제 생각도 그래요. 요새에 주둔하고 있는 수십만의 병사들을 유지할 수 있는 물자를 수송하기에는 굴의 크기가 굉장히 작아요. 분명 여러 곳의 땅굴을 통해 물자를 수송하고 있을 게 틀림없어요. 그게 방비에도 좋을 테고요.”
레이자가 말했다. 아무래도 인간의 영웅이기 때문일까? 로우덴과는 달리 그녀는 땅굴의 존재에 대해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적의 공격에 하나의 땅굴이 막히더라도 다른 쪽으로 수송을 하면 된다는 말이지?”
“맞아요.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굴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호가 로우덴과 레이자를 보며 물었다. 땅굴의 존재는 알아냈지만, 그것만으로는 레모스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그나마 이제부터는 상대가 자멸하리라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바닥을 보고 있던 로우덴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이제껏 로우덴과 지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거칠고 탁한 목소리였다.
“멍멍. 땅굴을 통해 요새 내부를 기습하는 계획을 세워봤지만 다수의 마장기를 옮기지 못하는 이상 힘들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굴의 크기도 넓지 않은데다가 마장기에 대한 대책도 있을 게 분명하니까요, 멍.”
“그래서?”
“천족의 정찰대들을 몰살시키며 수확한 장비품들이 있습니다. 멍멍. 거기에 조금만 더 손을 보면 그들의 날개까지도 구현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을 이용해 천족의 수송대로 변장할 겁니다.”
“응? 땅굴을 통해 기습을 한다는 계획은 힘들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곧바로 말을 번복하는 로우덴을 보며 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이자도 의아한 기색이었다.
“기습이 아니라 선물을 보낼 겁니다. 불안정한 마력 지뢰들로 잔뜩 말이죠. 멍! 요새 주위에 잔뜩 땅굴을 파놨으니 분명히 지반이 불안정할 겁니다. 그것을 이용해 그 날개달린 놈들을 모조리 땅 속으로 매장시켜 버릴 겁니다. 멍멍.”
고개를 들어 올린 로우덴의 입가에는 악마와도 같은 사악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