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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50화 (350/522)

# 350

리그너스 대륙전기 350화

“오오! 감사합니다, 용맹한 기사님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다니! 제 짧은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줄만 알았습니다.”

타락한 적사제들을 물리치며 던전의 내부로 진입하던 호는 악취가 가득한 공간에서 몬스터들에게 사로잡혔던 주민들을 하나, 둘씩 구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제물로 바쳐진 모양인지 구출된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늦은 건가……?”

포르테가 말끝을 흐리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조금 일렀다.

“몬스터들에게 사로잡혔던 주민들 중 대다수가 안쪽의 이상한 구조물에 갇혀 있습니다. 분명 무슨 제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물이 우리를 불의 주인에게 바치겠다고 했어요. 정말 커다란 괴물이었습니다.”

구출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던전 안쪽에 갇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포르테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의 주인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니?!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호 님! 당장이라도 주민들을 구출해야 합니다. 정말로 불의 주인이라는 존재가 사람들의 생명력을 흡수하게 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병사들을 움직이도록 하죠.”

그런 포르테를 향해 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불의 꽃을 얻기 위해서는 던전을 끝까지 공략해야 했다.

호와 영웅들은 계속해서 나타나는 타락한 적사제들을 물리치며 천천히 던전의 안쪽으로 진격했다. 그러던 도중 정찰을 나갔던 브뤼헤아 비쉬들이 불타는 틈새에 등장하는 유일한 보스급 몬스터 대사제 파르미어를 발견했다.

“저런 괴물이…….”

“사, 사람 맞을까요? 아니 괴물인가?”

모두의 시선이 파르미어에게 향했다. 파르미어의 외형은 쭈글쭈글한 피부를 한 노사제에 불과했지만, 그를 본 순간 호를 비롯한 영웅들은 파르미어가 자신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타락한 힘 때문일까?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마장기보다도 더 큰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파르미어는 붉은 색을 띄는 벽돌로 만들어진 제단의 위에서 기묘한 음색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호는 그의 주문이 끝날 때 마다 제단의 양쪽에 위치한 구조물에 갇혀있는 사람들 중 몇몇이 비명과 함께 재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저런! 개자식! 호 님! 지금 당장이라도 공격해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주민들의 모습에 포르테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성급히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포르테 님도 아시겠지만 상대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닙니다.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사람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크윽.”

그러나 호는 신중했다. 제물로 사로잡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 보다 이제부터 시작될 레이드의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상대는 S등급 던전의 보스급 몬스터. 그 강력함과 위험성을 짐작해 봤을 때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장기 몇이 박살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던전을 공략한 의미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브리핑을 시작한다.”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따르면 타락한 불의 대사제 파르미어는 크게 두 가지의 능력을 사용한다고 했다.

“첫 번째는 불의 지뢰다. 성자 케루벨과의 전투에서 사용했던 아군의 마력 지뢰와 비슷한 공격으로 아군의 발밑에 붉은색의 마법진이 생겨나는 것으로 공격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게 생겨난 마법진은 5초 후 활성화가 되는데 누군가가 건드리게 되면 폭발을 일으킨다고 한다. 보고에 따르면 그 위력이 상당해 마장기의 장갑도 박살낼 수 있다고 하더군.”

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브리핑을 듣던 영웅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라이온레인의 강력함으로 말미암아 어렵지 않은 전투라고 생각했는데, 까닥하다간 자신들의 소중한 마장기가 박살이 날 수도 있었다.

“역시 몬스터들의 대장답군.”

“S등급의 던전을 장악한 놈이니…… 분명 쉬운 녀석은 아니겠죠. 게다가 저런 크기의 인간이라니…… 거인족도 저것보다는 작을 거예요.”

케반스와 레이자가 각자 말을 꺼냈다. 케반스는 드릴 루드비히의 오너, 레이자 역시 라이온레인의 오너로 파르미어의 공략에 참여하는 영웅들로 호가 이번 전투에서 좋은 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영웅들이었다.

일반 병사들의 투입은 금지 되었다. 파르미어가 만들어내는 마법진은 대상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 데, 마장기 경우 덩치가 워낙에 큰 터라 파르미어가 능력을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마법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더욱이 정신없게 싸우는 전투 중에 자신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겨나는 것을 확인하며 무기를 휘두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불의 지뢰가 한 번 터지게 되면 폭발에 휩싸인 주위의 부대는 모조리 몰살이었다. 마장기도 당해내지 못하는 폭발을 피와 살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버텨낼 리 없었다.

“두 번째는 저 녀석,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타락한 적사제들을 부른다고 하더군.”

말을 마친 호는 손을 쭈욱 뻗어 파르미어가 있는 제단의 좌측과 우측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디로 연결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불길한 느낌을 주며 뻥하고 뚫려 있었다. 결국 파르미어를 제대로 공략하려면 구멍에서 몰려나오는 타락한 적사제들을 막기 위한 부대가 따로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좌측은 신윤아와 김유진이 맡는다. 그리고 우측은…….”

호의 고개가 한 남성을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호의 시선을 받은 포르테가 낮은 신음성을 내며 입을 열었다.

“저입니까?”

“파르미어를 직접 상대하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자넷급 마장기로 그를 상대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눈을 살짝 찌푸리기는 했지만, 포르테는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 역시 파르미어의 위험성을 느끼고 있었다. C 등급에 불과한 자넷급의 마장기로는 상대가 힘들다는 것도 함께 말이다.

그런 포르테를 뒤로하고 호는 이번 전투에서 특별한 임무를 맡게 되어 긴장한 표정을 짓는 윤아와 유진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포르테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였다.

“좌우측의 동굴에서 나오는 타락한 적사제 무리들은 파르미어가 있는 제단의 근처에 도착하는 순간 그의 명령을 받아 자폭을 한다고 해. 그러니까 절대로 전투가 벌어지는 제단으로 타락한 적사제들을 접근하게 만들어서는 안 돼. 알겠지?”

“알았어요. 빼액곰들로 벽을 만들어서라도 몬스터들이 제단에 도착하지 못하게 할게요.”

“뭐, 정 안되면 마장기로 밀어버리죠.”

“알았다.”

윤아와는 달리 좌우로 목을 꺾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유진의 행동에 호가 피식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어려운 임무도 아닌데다가 실버문과 브뤼헤아 비쉬 부대라면 충분히 타락한 적사제 무리들을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영웅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줄 겸 다시 한 번 더 파르미어의 능력을 설명한 호는 곧바로 출격 명령을 내렸다. 브리핑을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왔던 터라 지체를 할 수가 없었다.

“가자! 적들에게 죽음의 안식을!”

“호 님을 위하여!!!”

브뤼헤아 비쉬 부대가 좌우로 펴지며 제단 근방의 타락한 적사제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실버 문 부대가 부채꼴 형태로 그 뒤를 따라 좌, 우측의 커다란 동굴을 틀어막았다.

주인님의 제물이 제 발로 걸어 왔구나!

병장기 및 비명소리와 함께 어수선하게 변한 분위기에 제단 위에서 주문을 외우던 불의 대사제 파르미어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음침한 웃음을 터뜨리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전용기 라이온레인 -플레임에 탑승해 달리던 호는 파르미어와의 거리를 좁히며 뒤를 따르는 마장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불의 지뢰를 대비해 서로 간의 간격을 넓혀서 상대를 공격한다. 마력포의 사용은 금지! 원거리 공격은 마력포가 아닌 다른 무기를 사용하도록!”

그렇게 명령을 내린 호는 파르미어와의 거리가 지척으로 좁혀졌을 무렵, 재빠르게 허리춤에서 검을 빼내 상대를 무너뜨릴 기세로 휘둘렀다.

카카칵!

파르미어가 휘두르는 지팡이와 호의 검이 부딪치며 귀를 찌르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충격파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이어서 케반스와 레이자를 필두로 한 마장기사들이 합세했다.

“뒤져라앗!”

빠르게 돌아가는 드릴이 파르미어의 가슴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레이자의 검이 파르미어의 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카앙!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파르미어의 육체는 마장기의 공격을 이겨낼 정도로 단단했다.

게다가 찢어진 그의 복장 사이로 우락부락한 살점들이 꿈틀거리며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레이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저, 저게 뭐야?!”

“상대는 타락한 불의 정령을 받아들인 괴물이다! 인간이 아니야!”

호의 외침에 레이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커다란 크기와 기괴한 살덩이를 제외하면 파르미어의 외형은 인간을 꼭 빼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바라테이온의 기사단에서 활동하면서 대륙에 존재하는 기괴한 괴물에 대한 소문은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괴물과 직접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레이자는 이러한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영 꺼림직 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움직임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었다.

“불의 지뢰다! 레이자! 자리에서 벗어나!!!”

그렇게 전투를 벌이던 도중 그녀가 탑승한 마장기의 발밑에 붉은색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호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행이 레이자는 붉은색의 마법진이 자리를 잡기 전에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모두 마법진의 위치를 파악하고, 조심해서 공격한다!”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불길한 색을 내뿜고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마법진을 건드리는 순간 큰 폭발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바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파르미어의 공격은 호를 비롯한 마장기사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마력포는 봉인되었지만, 라이온레인은 우월할 스펙을 자랑하는 A등급의 마장기였다. 그런 라이온레인의 육중한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파르미어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었다.

크어억!

파르미어도 연신 자신의 지팡이를 세차게 휘둘렀지만, 호를 비롯한 알르드의 마장기사들에게 그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엘리트 마장기사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얄밉게도 전장의 곳곳에 만들어낸 불의 지뢰조차도 밟지 않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어서 빨리 나를 도와!!! 주인님의 부활을 막으려는 적들을 몰아내라!!!

파르미어의 다급한 호통이 터질 때 마다 양쪽의 동굴에서는 타락한 적사제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브뤼헤아 비쉬와 실버문 그리고 동굴의 입구에 배치된 소수의 마장기사들은 타락한 적사제가 제단에 도착하기도 전에 성공적으로 그들을 격퇴하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어서 빨리 나를 도와!!! 주인님의 부활을 막으려는 적들을 몰아내라!!!

대사제님을 도와라!!!

주인님이시여! 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소서!

하지만 계속해서 적들을 쓸어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르미어의 호통이 터질 때 마다 어마어마한 수의 타락한 적사제들이 동굴의 안쪽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 숫자에 기가 질린 윤아가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씨댕!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대체 안에 뭐가 있는 거지?”

“몰라! 몬스터 호텔이라도 지어놨나 보지! 투덜대지 말고 빨리 빼액곰이나 소환해!”

“이잌! 진짜 내가 전투 끝나고 저 동굴 안쪽에 한 번 들어가 본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윤아가 마나를 담아 마법의 문을 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우렁찬 포효와 함께 흰색의 곰 무리가 타락한 대사제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들도 그 뒤를 따라 타락한 적사제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집중해! 적도 지쳤다!!!”

“어엇?! 거기 너! 불 지뢰 조심해! 생각을 하고 움직이란 말이야! 이 멍청한 자식아!”

전투가 지속될수록 다급한 고함성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다행히 호의 부대는 큰 피해 없이 파르미어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집중된 공격으로 파르미어의 오른팔은 곤죽으로 변해 땅에 떨어진 지 오래인데다가 생명의 빛도 빠르게 꺼져가고 있었다.

-크헉?! 아, 안 돼에애애!!!

이윽고 날렵한 움직임으로 파르미어의 뒤로 돌아간 호가 벼락처럼 팔을 휘둘렀고, 날카로운 검이 파르미어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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