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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49화 (349/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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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349화

“멍멍. 이상하단 말이지.”

주변의 지리가 그려진 지도에 가위표를 체크하던 로우덴이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며 중얼거렸다.

회의실에 걸린 대형 지도에는 방금 전 로우덴이 체크한 가위표와 동일한 모양이 십여 개나 넘게 그려져 있었다. 전부 천족의 정찰 부대가 전멸한 장소들이었다.

호가 이끄는 알르드군은 브뤼헤아 비쉬의 정찰 능력을 이용해 세라핌에서 출진한 부대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멸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모스는 십 천사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세라핌 요새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고?”

그러나 알르드군이 하밀레온으로 향하는 것을 막는 게 레모스의 임무. 그렇기에 호는 그가 요새에서 농성만 하는 것이 크게 이상하게까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레모스의 병력은 알르드군 보다도 훨씬 많았다.

충분히 회전을 벌일 만한 상황. 하지만 대륙에 알려진 알르드 군의 전투력 특히 마장기전을 생각하면 레모스도 전면전은 피하고 싶을 터였다. 게다가 회전을 치른다는 것은 요새의 방어시설과 성벽의 우위를 버리는 행동이기도 했다.

어쨌든 호는 상황이 이대로 계속 흘러간다면 어렵지 않게 세라핌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농성만을 하고 있기에는 요새 내부에 비축된 그들의 자원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증거로 최근 들어 골든 크로우의 영지를 약탈하려는 천족의 정찰 부대가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로우덴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듭니다. 멍멍.”

“심상치 않은 느낌?”

“그렇습니다, 멍. 세라핌에서 나온 정찰 부대가 모조리 전멸했습니다. 그 말은 즉, 세라핌에 필요한 자원이 끊겼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레모스의 병사들은 너무나도 침착합니다. 불안에 떠는 이가 한 명도 없어요. 멍멍.”

“아직 버틸 만한 자원이 남아 있는 모양이지.”

요새 세라핌의 넓이는 웬만한 중소영지보다도 컸기에 첩보로도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자원 창고가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십 천사의 병사. 훈련 상태 역시 최고 수준일 터였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그렇게 쉽게 넘어가기에는 천족들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필사적입니다. 마치,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멍멍.”

“의도적이라…….”

가위표가 그려진 지도를 보며 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불세출의 천재 군사–나폴레멍’이 하는 말인 만큼 허투루 넘겨서는 안됐다.

그러나 호는 무엇이 이상한지, 레모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로우덴 역시 천족의 움직임에 의구심만을 보낼 뿐, 확신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멍멍. 일단 요새를 탐색하는 브뤼헤아 비쉬의 숫자를 더욱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포르테의 제안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멍?”

결국 정찰을 늘리겠다는 말과 함께 로우덴이 화제를 돌렸다.

“사람들을 구출하는 거 말이지?”

“솔직히 우리가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멍멍. 게다가 S등급 던전입니다. 레모스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쓸모없는 던전의 공략을 위해 전력의 일부를 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지원을 요청했던 포르테의 모습을 떠올리며 로우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세라핌의 레모스를 상대로 게릴라전, 아니 쫓겨 다니던 포르테는 도르스판의 버닝 케이브라는 이름의 영지를 주요 거점으로 삼아 움직이고 있었다고 했다.

근방의 마을에서 자원을 지원받은 것은 당연한 일. 그리고 버닝 케이브는 알르드 군의 본진에서 말로 이틀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영지였다.

그런데 그 버닝 케이브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당연히 천족들의 공격에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불타는 틈새.’

리그너스 대륙의 S등급 던전 중 하나로, 과거 창조신과 대립하던 고대신의 힘에 물든 타락한 불의 정령이 봉인되어 있다고 알려진 장소였다.

또한 그곳에는 타락한 불의 정령을 추종하는 소수의 광신도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광신도들이 던전에서 나와 주민들을 습격, 납치를 한 것이다.

포르테의 말에 의하면 광신도들이 사람들을 납치한 이유는 그들을 불의 정령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라고 했다.

“광신도들에게 몇이나 끌려갔다고 했지?”

던전의 몬스터들이 기어 나와 사람들을 납치하는 일은 그리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군대가 주기적으로 던전을 소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족과의 전쟁으로 인해 던전을 소탕할 병력이 사라지면서 결국 위험한 등급의 던전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멍멍. 천오백 명 정도라고 하더군요. 확실히 적은 수는 아닙니다.”

“그리고 광신도는 그 보다도 더욱 많을 테고 말이야.”

“그럴 겁니다. 멍멍. 어쨌든 끌려간 지 일주일도 더 됐다고 하니 살아남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분명한 의도를 가진 로우덴의 말에 잠깐 고민을 하던 호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래도 갈 생각이야.”

로우덴의 말대로 레모스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병력을 빼는 일은 멍청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장 세라핌을 공격할 것도 아니고, 레모스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을 보니 불타는 틈새에 있는 보스급 몬스터는 달랑 하나밖에 없었다.

그만큼 몬스터가 강력하다는 이야기겠지만 A등급 마장기 다수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하물며 불타는 틈새는 주둔지에서 이틀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 공략만 순조롭게 끝낸다면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몬스터들에게 끌려간 주민들에 대한 동정심이나 황금 기사단의 일원인 포르테와의 관계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불의 꽃.’

리그너스 대륙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의 S등급 승급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중요 아이템. 쉽게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인 터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아이템이었다. 하물며 알르드에는 불의 꽃만 있으면 S등급으로 승급할 수 있는 영웅들이 몇 있었다. 그리고 불타는 틈새의 공략 보상에는 불의 꽃이 포함되어 있었다.

“멍멍. 알겠습니다.”

호의 대답에 로우덴은 잠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던 모양인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역시 폐하께서는 자비로우십니다!”

뜻밖의 출전 소식을 들은 포르테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윤 호를 칭송했다. 사실 그는 던전으로 끌려간 주민들의 구출을 포기하고 있었다.

고작 천오백 아니 이제는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흐른 터라 몇 명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던전의 공략을 위해 다수의 마장기와 병사들이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포르테는 자신의 자넷급 마장기를 끌고 던전의 공략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S등급의 던전입니다. 자넷급으로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호님께 주민들을 구해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한 몸입니다. 그런 제가 앞장서서 광신도들을 상대하겠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포르테의 뜨거운 목소리에 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곧 던전의 공략을 위한 부대가 빠르게 편성되기 시작했다. 드릴 루드비히를 포함해 다수의 마장기도 배치가 되었는데, S등급의 던전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마장기사들의 실력이 딱히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니었다.

특히 한시진이나 브로리를 생각하면 이들의 실력은 하늘과 땅 수준이었다. 하지만 A등급 마장기의 압도적인 성능.

그리고 물량을 생각하면 S등급 던전쯤은 충분히 공략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호에게는 공략본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었다.

* * *

“타락한 적사제? 이 녀석들이 버닝 케이브의 주민들을 납치한 원흉들이겠지? 그런데 적사제 녀석들 인간만 있는 게 아닌데? 엘프도 수인도 있어.”

불타는 틈새에 들어서자마자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광신도들을 보며 윤아가 얼굴을 찌푸리며 자신의 친구인 유진을 향해 말했다.

외형은 리그너스 대륙의 주민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핏빛처럼 새빨간 눈동자로 자신들을 향며 맹렬한 적의를 내뿜는 적사제들의 모습은 사람이 아닌 몬스터라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인간! 불의 주인에게 육체를 바쳐라!

적의 군대다! 대사제님께 알려라!

그리고 타락한 적사제들은 던전의 몬스터답게 알르드의 군대를 발견하자마자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장이 넓지 않으므로 브뤼헤아 비쉬는 실버 문을 보조하며 군중 제어 마법을 위주로 적을 제압한다! 특히나 폭발 마법은 삼가도록!”

“마장기들 역시 마력포의 사용을 금지한다!”

타락한 적사제들이 달려들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호의 명령이 떨어졌다. 타락한 불의 정령이 봉인되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일까?

던전의 곳곳에서 허공을 유영하는 붉은 구슬들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구슬들은 주위의 마나가 급격하게 요동치면 강한 폭발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렇기에 불타는 틈새 내에서는 마장기의 마력포나 폭발 마법의 사용을 금지해야만 했다. 덕분에 화력의 반이 봉인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락한 적사제들을 물리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촤악! 촥!

무언가가 잘려나가는 서늘한 소리와 함께 실버 문 부대와 격돌한 타락한 적사제들이 무더기로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S등급 던전의 몬스터라지만 실버 문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보병 중 최강을 자랑하는 클래스. 거기에 브뤼헤아 비쉬의 보조마법과 군중 제어마법까지 이어지니 아무리 타락한 적사제들이라도 당해낼 방도가 없었다.

“차원의 문 소환. 디멘션 게이트!!!”

푸른빛으로 물든 윤아의 손가락이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마법진이 새겨진 커다란 문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군단의 소환사의 스킬인 차원의 문 소환이었다.

“가랏! 빼액곰!!!”

쿠와아아앙!

묵직한 소음과 함께 차원의 문에서 소환된 흰색의 곰들이 타락한 적사제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빼액곰의 커다란 손은 중갑으로 무장한 타락한 적기사들의 갑옷을 단숨에 박살내며 내부를 찢어발겼고, 거대한 덩치로 그들의 공격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런 빼액곰의 등장에 후방에 있던 타락한 적사제들이 진영을 갖추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라 샬라무! 도리아나느!

이윽고 주문을 외우던 타락한 적사제들의 손에서 검은색의 빛의 어른거릴 때였다.

띵동

- <대규모 무효화> S 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 <대규모 무효화>로 인해 S 랭크 이하의 스킬들이 모두 해제됩니다.

그러나 김유진의 대규모 무효화가 발동되면서 신성한 기운이 적사제들의 몸을 내리 눌렀고, 그들의 손에서 어른거리던 검은색의 불길한 기운을 순식간에 소멸시켜 버렸다.

그리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적사제들 사이로 실버 문들이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앙! 쾅!

마장기들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성인 남성의 몇 배나 되는 크기의 무기가 한 번씩 휘둘러질 때 마다 여러 명의 적사제들이 비명과 함께 공중 부양을 경험하며 추락했다. 비록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마법과 마력포는 사용할 수 없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호의 군대는 타락한 적사제들 정도는 가볍게 찍어 누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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