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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48화 (348/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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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348화

“하압!!!”

호가 기합을 내지르며 조종간을 움직였고, 마장기의 거대한 동체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날았다.

주위가 순간적으로 어두워지면서 라이온레인이 붉은 안광을 뿜어내며 등장하자 천족들이 당황, 두려움, 공포와도 같은 감정을 표출해내며 다급하게 자신들의 무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그중에는 엔젤급 마장기의 마력탄도 있었다.

하지만 천족들의 공격은 라이온레인의 두터운 장갑을 뚫어내지 못하고 모조리 가로막혔다.

마장기의 장갑을 꿰뚫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나 다름없는 마력포도 무용지물이었다.

“젠장할! 좀 맞아라!!!”

“악마 자식! 죽어버려!”

두 명의 천족 마장기사들이 눈을 부릅뜨며 마력포를 날렸지만, 호는 가볍게 몸을 트는 것만으로 상대 마장기의 공격을 모조리 회피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라이온레인의 어깨를 개방하며 특수 무기 마력 폭탄을 발사했다.

콰쾅! 쾅!

폭발이 일어나며 염화에 휩싸인 천족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마력포로 라이온레인을 공격하던 마장기들도 공세를 중단한 채 마력 폭탄을 피해 회피 기동에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두 기의 마장기를 노리는 마력 폭탄은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았다.

퍼억!

미끄러지듯 곡선으로 움직이며 회피 기동을 하던 엔젤급 마장기의 복부로 측면에서 날아든 마력 폭탄이 번개처럼 박혀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커다란 폭발에 외부 장갑이 날아간 마장기가 주르륵 무너졌다.

또 다른 한 기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장기사가 어떻게든 마력 폭탄을 떨쳐내기 위해 사방으로 무기를 난사했으나 쉴 새 없이 중구난방으로 달려들던 마력 폭탄은 결국 상대의 화망을 뚫고 장갑의 틈 사이를 파고들며 상대에게 죽음의 안식을 선물했다.

“이럴 수가! 마장기사들이…….”

“끄, 끝났어. 빨리 도망쳐야 해!”

아군의 마장기들이 순식간에 쓰러지자 커다란 폭발 속에서도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천족의 병사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두 기의 마장기를 포함해 삼천 가량의 병사로 구성된 부대였지만, 고작 그 정도의 병력으로는 눈앞의 마장기기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나타난 적은 윤 호의 라이온레인 한 기만이 아니었다.

“세계수의 분노를 받아라!”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검이 한 천족 병사의 가슴팍을 푹하고 꿰뚫자 주위에 있던 천족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둘러싼 엘프들을 망연자실한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 실버 문!”

달의 여신을 섬기는 엘프의 수호자들. SSS 랭크의 병사인 실버 문 부대가 주위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그렇게 천족의 정찰부대는 실버 문의 공격에 빠르게 궤멸되었다. 이미 라이온레인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터라 격렬하게 저항을 하는 병사들도 많지 않았다.

“멍멍. 역시 주인님 아니 폐하의 무용은 굉장하십니다.”

“고작 엔젤급 마장기 두 기에 불과해. A등급 마장기 그것도 전용기로 C등급 마장기 두 기도 이기지 못하면 대륙의 모든 마장기사들이 비웃을 걸?”

“하지만 모든 마장기들이 호 님처럼 상대를 압도적으로 제압하지는 못합니다. 멍.”

“그렇게 아부를 한다고 해서 공을 던져주지는 않을 거야.”

“멍멍. 아부라뇨? 저는 팩트만을 말합니다.”

장난스럽게 단호한 표정을 연기하는 로우덴의 모습에 호가 피식 웃었다. 자신의 마장기 조종술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한시진이나 브로리였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를 도륙했을 게 분명했다.

“다른 쪽의 상황은 어떻지?”

“팔쿤과 레이자, 신윤아와 김유진이 이끄는 부대도 천족의 정찰 부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고 합니다. 멍멍. 아, 골든 크로우로 지원을 간 브뤼헤아 비쉬 부대도 조금 전 전투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성공이로군.”

로우덴의 보고에 호는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의 차이를 생각하면 당연해야만 하는 승리지만, 전쟁에서는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었다.

이번 기습작전으로 알르드군은 이만 가량의 천족 병사를 궤멸시키고 아홉 기의 마장기를 파괴할 수 있었다.

아군이 입은 피해가 몇 백 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대승이었다. 하지만 호도 로우덴도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십 천사 레모스가 지휘하는 천족 요새 세라핌에는 그것의 수십 배나 되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일단은 레모스의 반응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천족의 정찰부대를 궤멸시키면서 많은 리스와 식량을 획득했는데, 그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멍멍. 분명 요새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들일 겁니다.”

도르스판 지역은 천족의 영토나 천족의 본대가 있는 하밀레온 지역과도 거리가 제법 떨어진 지역이었다. 게다가 천족의 영토와 하밀레온으로 이어지는 수송 루트에서도 크게 벗어나 있던 탓에 요새 세라핌은 정찰 부대들을 내보내 주위 골든 크로우 마을과 영지를 약탈해 요새 내부에서 소모되는 자원을 충당하고 있었다.

“요새 내부에 비축하고 있는 자원들도 있지 않을까?”

“멍멍. 첩보를 통해 알아봤는데, 의외로 비축 자원이 많지는 않다고 하더군요.”

“첩보?”

“그냥 포로로 사로잡은 천족 병사들을 상대로 가볍게 심문을 했을 뿐입니다. 멍멍. 성욕에 굶주린 윙드 훗사르들 사이에 던져 놓고 정중한 목소리로 물어보니 다들 순순히 대답 해주더군요.”

“뭐라고?”

슬쩍 시선을 돌리는 로우덴을 보며 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천족 병사의 상황이 머릿속으로 떠오르자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쨌든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하밀레온의 기사왕과 합류해 골든 크로우를 침략한 천족들을 몰아내야만 했다. 아니, 천족의 손에 기사왕이 넘어가는 것만 막아도 목표는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골든 크로우가 얼마나 크게 무너졌기에 레모스 녀석이 저런 요새를 구축할 수 있던 건지…….’

물론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레모스가 주로 보여주는 전략이 상대의 방어선을 빠르게 뚫어낸 뒤, 질풍처럼 움직여 적의 주요 거점 혹은 이동로에 요새를 세우는 패턴이곤 했다.

그런 이유로 레모스를 상대하는 적은 어쩔 수 없이 병력을 분산시켜 레모스의 요새를 공략하거나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매번 신경을 쓰면 전략을 짜야만 했는데, 도르스판 지역에 건설된 천족의 요새는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라 공략이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기사왕을 돕기 위해 하밀레온으로 넘어가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레모스가 있는 천족요새 세라핌을 무너뜨려야만 했다.

만약 세라핌을 그냥 두고 움직였다가는 이동 중 라이프린과 레모스가 이끄는 군대에게 양방향으로 포위 공격을 당하거나 보급로 끊길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 * *

“정찰부대가 모두 전멸했습니다. 이 만이 넘는 병사들 중 살아서 돌아온 이가 백이 조금 안 될 정도입니다.”

“알르드 녀석들도 제법이로군.”

부관의 보고를 받은 레모스가 감탄을 담아 말했다.

만약 어느 한 부대가 공격을 당하면 다른 부대들은 요새로 후퇴하라는 지침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부대가 전멸했다. 그 말은 즉, 모든 정찰 부대들이 같은 시간에 공격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알르드의 민첩한 움직임에 눈뜨고 당한 것이다.

“영토는 넓지 않지만 군사력만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게 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 녀석들, 대체 어떻게 마장기를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거지?”

“잘 믿겨지지는 않지만 여행자들의 말에 의하면 림드 산맥에 세워진 공장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콜스타인의 공장 그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드워프의 수도인 콜스타인 이상의 규모라……. 그것 참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지는군.”

그 말을 끝으로 레모스는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회의실에 걸린 지도를 바라보았다.

첩보에 따르면 알르드는 오십 여기의 마장기와 삼십만이 넘는 병사를 이끌고 골든 크로우에 도착했다. 알르드의 영토에서 블루 스케일, 모에드를 지나 골든 크로우에 발을 디뎠으니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 셈이었다.

이런 알르드의 움직임은 골든 크로우와 알르드가 혈맹 사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양국은 군사적인 동맹은커녕 별다른 조약을 맺은 사이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의 거래가 몇 번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알르드는 다른 인간 왕국보다도 훨씬 더 많은 병력을 이번 전쟁에 투입했다.

‘소환자 윤 호.’

그리고 레모스는 그 이유에 대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천사들은 알지 못하는 내용이지만, 라이프린과 십 천사들은 리그너스 대륙에 소환된 소환자 중 특별한 몇몇이 세리너스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한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대륙의 칠제 중 하나인 기사왕 이레네 아르티아를 손에 넣는 것이 이번 전쟁의 숨겨진 목적이었다.

괜히 거한 트렛슈를 수인 왕국으로 보내 알르드의 남부를 공격하게 만들고, 정령과 엘프들을 이간질하는 한 편 괜히 마족의 특산품 수송대를 드워프로 위장해 전멸시킨 게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신들의 뜻대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대륙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라이프린과 십 천사들이 골든 크로우로 진격했지만 기사왕의 저항은 상상 이상으로 완강했고, 알르드의 지원군 또한 자신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도착한 것이다.

‘기사왕을 포로로 잡기 전에 알르드의 지원군이 도착할 줄이야.’

이러한 윤 호의 움직임은 그가 선택된 다른 소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세리너스의 권능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기에 레모스는 그의 군대가 기사왕과 접촉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르스판 지역에 요새를 세운 것도 혹시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레모스는 섣부르게 움직이는 대신 하밀레온이 무너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지구전을 택하기로 했다. 문제는 요새의 병력이 사용할 자원들이었는데 그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이 없었다.

‘인간들의 기술이 이럴 때 사용이 될 줄이야.’

터널.

세리너스의 권능을 사용해 인간의 영웅을 교화시킨 소환자 박상민이 완성시킨 인간 종족의 기술이었다. 땅속으로 굴을 뚫어 자원을 수송하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세라핌의 지하에는 여러 갈래의 큰 땅굴이 연결되어 식량과 무기들이 수송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알르드의 공격에 전멸당한 천족의 정찰 부대들은 윤 호의 시선을 끄는 미끼들이었다.

“약탈 병력을 보낸다. 저번처럼 삼천의 병사와 마장기 한 기 정도로 편성하도록.”

“마장기는 저번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구형이면 되겠습니까?”

애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겠지만 라헬의 뜻을 펼치려면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배고픈 호랑이를 진정시키려면 피가 흐르는 고깃덩이를 시간이 맞춰 입에 넣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멀쩡한 놈을 날려먹을 필요는 없지. 하지만 도색은 깨끗이 하라고.”

“정비병들에게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하겠습니다.”

부관의 대답을 들으며 레모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자신과 같은 지위에 있는 니나 다니엘레나 칸디르를 무너뜨린 적. 순간 전사로서의 호승심이 끓어오르기는 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욕구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알르드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기사왕을 손에 넣는 게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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