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
리그너스 대륙전기 346화
우웅! 우웅!
공기가 떨리는 소리와 함께 포신의 끝에서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눈으로 대충 흘겨봐도 불안정해 보이는 마나의 흐름에 마장기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마장기에 탑승한 마장기사들도 몸이 굳어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마장기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장의 엘리트인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부릅뜨고 조종석의 모니터에 떠오른 숫자들을 확인하며 고속으로 수식을 계산하고 있었다.
치열한 전투 중이야 감과 경험으로 마력포를 난사한다지만, 지금과 같은 기습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상대를 더 정확히 타격해 큰 피해를 줘야만 했기에 수식의 계산은 필수였다.
“이제 곧 지나간다. 모두 준비.”
하지만 그런 긴장의 시간도 잠시. 아이리스 성국의 마장기 편대가 마력 지뢰가 설치된 함정의 초입을 지나가는 게 모두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의 마장기 편대가 함정의 중앙 부근에 다다른 순간, 호는 기다렸다는 듯 조종간을 당겨 라이온레인을 일으키고는 어깨의 폭탄장치를 활짝 개방시켰다. 동시에 눈앞의 경험치들을 향해 한 마디를 날렸다.
“웰컴 투 함정!!!”
조종석의 오른쪽에 위치한 발사 버튼을 누르자 몸에서 무언가가 쭈욱하고 빠져나갔다.
자신의 마나가 외부로 분출되어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과 연결되는 과정이었다.
퉁, 퉁, 퉁, 퉁!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마치고 발사된 마력 폭탄은 호의 의지에 따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당황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적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거나 먹어라!”
콰아앙! 콰앙!
엑스칼리버급 마장기의 동체에 틀어박힌 마력 폭탄이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단단한 휴머니온 합금을 수십 조각의 파편으로 부셔버렸다. 곧바로 또다른 폭탄이 이어서 터졌고, 마장기의 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날카로운 금속 조각들은 아우성치는 병사들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며 끔찍한 광경을 만들어냈다.
저, 적이다!!!
마장기?! 빨리 성자님에게 연락을 해야 돼!
마장기 편대는 방어진형으로! 적들의 포격을 막아야 한다!!!
빌어먹을! 내가 함정이라고 했잖아!
갑작스러운 적의 기습에 성국의 몇몇 영웅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모두가 눈을 벌겋게 뜨고 라헬의 신상을 농락한 적들을 쫓는데 정신이 팔렸던 터라 제대로 진형을 정비하지도 못한 채 알르드의 공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때워야만 했다.
문제는 라이온레인을 위시한 알르드 군의 포격이 그들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점이었다.
“크아아악!!!”
“무, 무슨 공격이!”
라이온레인을 대표하는 무기인 마력 폭탄의 파괴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마력 폭탄을 본 적이 없는 성국의 병사들 사이에서도 위력이 야금야금 알려져 있을 정도. 하지만 몸으로 직접 느끼는 마력 폭탄의 파괴력은 소문보다도 훨씬 더 강력했다.
그 증거로 엑스칼리버급 마장기가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마력 폭탄에 연이어 얻어맞고는 완파되기까지 했다.
“마, 마력 폭탄이다! 궁수들은 모두 마력 폭탄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커다란 활을 든 아이리스 성국의 영웅이 필사적으로 화살을 날리며 외쳤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마력 폭탄이 떨어지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만했다.
“이런 X발……. 마장기가 대체 몇 기나 되는 거야.”
하지만 상대의 마력 폭탄은 그들의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게다가 마장기 오너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까지 하는 터라 마구잡이로 화살을 쏜다고 해서 떨어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성국의 마장기가 반격을 시작하면서 많은 수의 마력 폭탄을 허공에서 폭발시켰지만, 폭발한 것 이상의 마력 폭탄이 아군을 난타하고 있었다. 게다가 알르드의 마장기는 라이온레인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
투쾅! 콰아앙!!!
하늘에서 푸른색의 빗줄기가 떨어져 내리며 신성력으로 무장한 성국의 병사들을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엑스칼리버의 마력포-MLC 공격이었다. 마력 폭탄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었지만, 피와 살로 이루어진 병사들로는 감당이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빗줄기처럼 떨어지던 엑스칼리버의 마력포가 지면을 뚫고 마력 지뢰를 건드린 순간 천지가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꿀꺽. 저 녀석들이 저기서 살아나려면 말 그대로 기적이 필요하겠는데?”
“저런 위력이면 자기네들이 믿는 여신의 축복을 동시에 여러 겹을 받아도 불가능할 걸?”
지옥으로 변해버린 함정의 중심부를 보며 알르드의 마장기사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통신을 보냈다. 폭발의 중심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가 울리는 이명 증상이 계속해서 나타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다행이도 일반 병사들은 브뤼헤아 비쉬의 방어막으로 인해 별다른 피해 없이 무사했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데? 잘만 이용하면 큰 도움이 되겠어.”
호 역시 자신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함정의 파괴력에 몸을 살짝 떨었다. 라이온레인과 관련된 연구를 모두 마치자 이레귤러처럼 연구 제한이 풀리며 추가적으로 생겨난 연구 목록을 개발하면서 획득한 기술이었는데 그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력 지뢰로 변환시킨 마력 폭탄의 숫자만큼 전장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위력만 놓고 보면 장점이 더욱 많아보였다.
어쨌든 적의 행군속도를 생각해 봤을 때 적어도 이만 이상의 병사가 폭사했을 터였다. 거기에 후방의 마장기 편대가 전멸한 것은 덤. 하기야 저런 폭발에서는 엑스칼리버는커녕 단단하다고 알려진 세비트리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전투가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폭발의 위력에서도 살아남은 병사들이 있었고, 윙드 훗사르를 쫓는 성자 케루벨과 그의 군대는 멀쩡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완전하게까지 멀쩡하지는 않았다.
“무, 무슨 일이냐?!”
후방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에 케루벨은 혼란에 빠졌다. 조금 전의 폭발은 여신의 분노가 떨어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실제로도 그랬다면 좋겠다만 방금 전의 폭발로 인해 사라진 것은 적이 아닌 아군들이었다.
“저, 적습입니다! 알르드의 군대가 나타났습니다!!! 함정입니다, 성자님!”
“정면에 적! 엑스칼리버급 마장기와 실버 문 부대입니다!”
“우측에 브뤼헤아 비쉬! 라, 라이온레인도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케루벨에게 다가온 위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이었다. ‘불세출의 천재 군사 – 나폴레멍’답게 로우덴은 자신이 그렸던 전장의 그림을 완벽하게 완성시켰다. 성자를 둘러싼 여려 겹의 포위망은 진즉에 완성이 되었고, 혼란에 빠진 성자와 그의 군대를 두드리고 있었다.
“우리도 합류한다! 적들을 쓸어버려라!!!”
그리고 다수의 마장기 편대를 이끌고 있는 호가 후방을 정리하고 전장에 참가하자 전투 양상은 압도적이다 못해 일방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 여신의 이름으로!!!”
“라헬님이시여!”
마장기의 수적 우세를 앞세운 알르드의 공격에 아이리스 성국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신성력을 사용해 웬만한 부상은 가볍게 회복시키는데다가 여신 라헬을 향한 믿음을 앞세우며 겁 없이 달려드는 광신도들의 무서움은 대륙의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정도였지만 알르드의 두터운 포위망을 뚫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콰앙! 캉!
거기에 병사들을 지휘해야 하는 성자 케루벨은 자신을 노리는 호의 공격에 계속해서 얻어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임이나 현실이나. 마장기 조종술이 형편없는 것은 똑같네.”
“이, 이잌! 감히 이단 녀석이!!!”
만약 그가 성자의 압도적인 신성력을 한껏 활용해 일반 병사들을 지원했다면 귀찮은 변수가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장기에 탑승한 성자는 자신의 신성력도 또한 마장기의 강력함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 라헬님! 어째서 제가?!”
띵동
아이리스 성국의 S등급 영웅, 케루벨이 사망했습니다.
결국 케루벨은 계속된 호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마장기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 * *
아이리스 성국의 군대 전멸! 성자 케루벨 전사!
하밀레온을 뒤로 하고 방어 병력이 없는 골든 크로우의 남부를 제압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아이리스 성국의 군대는 로우덴의 함정에 빠져 허무하게 전멸했다. 그리고 이는 과거 ‘라헬교의 준동’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었던 아이리스 성국에게는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성자와 그의 전용기 그리고 마장기 편대를 포함한 육만의 병력은 현재 아이리스 성국의 상태로는 복구가 불가능한 전력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일찌감치 전멸한 즈고르의 병력까지 더한다면 성국의 주력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모에드의 힐몽거 장군이 아이리스 성국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아이리스 성국은 골든 크로우로 보냈던 병력을 자국으로 후퇴시키는 것도 모자라 천족의 여왕 라이프린에게 도움까지 요청해야 했다.
“라헬님의 뜻을 펼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발목을 잡게 되다니 정말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여신을 모시는 그대들의 위기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죠.”
아이리스 성국의 교황이 면목이 없다는 어조로 고개를 숙이자 라이프린이 너그러운 미소와 함께 손사래를 쳤다.
“후우. 라헬님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악한 군대가 아국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모에드의 힐몽거라고 했던가요?”
“그렇습니다.”
아이리스 성국을 공격하고 있는 힐몽거의 군대는 현재 천족의 13, 16군단이 합세해서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힐몽거의 능력이 예상이상으로 뛰어난 터라 천족의 두 개 군단은 자신들의 방어선을 유지하고 못하고 점점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쓸모없는 녀석들.’
알르드의 참전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하밀레온을 무너뜨리고 소환자에서 주어진 창조신의 권능을 이용해 기사왕을 손에 넣어야했지만, 상황이 점점 순탄치 않게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라이프린은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걱정 마세요. 곧바로 지원군을 보내겠습니다.”
“병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상대는 모에드의 이름난 명장으로 라헬님의 검이 필요합니다, 라이프린 님.”
“뭐……라고요?”
십 천사를 지원해달라는 교황의 말에 라이프린이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우리 천족이 대륙의 영웅 중 하나인 기사왕의 목전까지 칼끝을 들이민 상황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하밀레온을 무너뜨리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알르드도 참전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길게 보셔야 합니다, 여왕님.”
“…….”
“여신님의 뜻을 따르는 나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시옵소서.”
순간 짜증이 치솟아 오르며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라이프린은 얼굴에 나타난 상냥한 가면을 유지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들의 분열을 위해서라도 이들은 아직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
“파에타 천사를 보내겠습니다.”
천족의 십 천사 중 하나지만 무용이 아닌 뛰어난 정치 감각으로 대륙에 이름을 날리는 영웅이었다.
“그, 그런……! 알겠습니다. 라헬님의 자비에 감사를.”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교황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정치적인 감각이 아닌 무용이 뛰어난 천사였다.
하지만 그 역시 천족을 대표하는 영웅. 게다가 이미 두 개의 군단이 파견되어 아이리스 성국을 방어하고 있는 상황. 더 이상의 지원을 바라기에는 무리였다. 그랬다가는 자신을 향해 있는 라이프린의 상냥한 미소가 악귀처럼 변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