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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45화 (34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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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345화

라이온레인급 마장기 블루 세이버가 시린 냉기가 실린 검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천족의 마장기를 썩둑 베어 버렸다. 그리고는 나자빠진 마장기의 머리에 검을 내리꽂고는 마력을 일으켰다.

펑!

폭발음과 함께 요란한 소리로 움직이던 마장기의 마력 엔진이 천천히 멈춰들었다. 조종부가 완전히 파괴된 결과물이었다.

“물러서지 마라! 천족 녀석들을 쓸어버린다!!!”

이레네 아르티아의 기합이 담긴 외침과 함께 블루 세이버가 돌진하기 시작하자 천족의 무리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마장기도 병사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수는 많았지만 상대는 칠제라 불리는 대륙의 강자.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목숨을 내놔야만 하는 일이었다.

천족의 공격으로 수도가 무너지고, 전력의 반 이상이 쓰러진 상황에서도 이레네 아르티아는 지금의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자신이 먼저 절망하고 포기한다면 골든 크로우의 긴 역사는 끝이나 다름없었다.

“기사왕을 따르자!!!”

“이레네 아르티아 님의 뒤를 따라라! 우리의 땅에서 천족들을 몰아내자!”

그러한 기사왕의 모습에 영향을 받은 하밀레온의 인간들도 필사적으로 천족들을 막아내었다. 덕분에 천족의 라이프린은 병력의 우위를 이용한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하밀레온의 커다란 성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르드의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하밀레온의 조그맣던 희망은 커다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알르드의 왕인 윤호가 직접 출전! 라이온레인을 주축으로 한 마장기 편대와 삼십만의 병력이 도르스판 지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삼십 만이라니! 더군다나 알르드의 군대는 SSS랭크의 정병으로 이루어진 전력이 아닙니까?!”

“허허! 그 때의 조그마한 인연이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되다니.”

알르드의 재상인 그나이 칼츠만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조이고 있던 이레네 아르티아도 지금만큼은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지원군은 도착했지만, 라이프린의 명령을 받는 수백만의 군대가 하밀레온이 포함한 골든 크로우의 영토를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라이프린 못지않은 강자들인 십천사들도 건재했다.

하지만 당장의 짧은 기쁨을 즐길 수는 있었다. 그리고 한 인간 영웅이 호들갑을 떨며 전령에게 물었다.

“그래서 알르드는 어떻게 움직인다고 하더냐?”

“그, 그게 당장은 후방을 교란하는 천족과 아이리스 성국의 무리들을 소탕하려는 모양입니다. 또한 아이리스 성국의 즈고르가 이끄는 군대와 교전. 전멸시키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하밀레온의 지원이 아니라?”

전령의 대답에 말을 꺼냈던 영웅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자기 딴에는 알르드의 군대가 당장이라도 하밀레온을 포위한 천족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다른 이들도 다들 비슷한 모습이었다. 알르드의 군대가 하밀레온을 포위한 천족들을 공격할 때 하밀레온에서도 동시에 치고 나간다면 제법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표정에 변화가 없는 것은 기사왕과 재상인 그나이 칼츠만 뿐이었다. 둘은 알르드의 움직임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또한 자신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레네 아르티아가 영웅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벽을 지키는 경비병의 숫자를 늘리고, 마장기의 순찰도 강화한다. 황금 기사단 역시 비상 상황을 유지하며 바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언제 라이프린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그게 무슨…….”

의문도 잠시 회의실의 영웅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사왕의 명령은 절대적. 그녀가 방비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그나이 칼츠만이 입을 열었다.

“라이프린의 군대가 큰 움직임을 보일 때 까지 이곳에 거북이처럼 틀어박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폐하.”

“훗. 이제껏 하던 일 아니더냐? 내가 있는 한 라헬의 추종자들은 결코 하밀레온의 성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기사왕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 * *

“북쪽으로 열흘 남짓 떨어진 곳에 사만 정도 규모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서북쪽에서 마장기 세 기와 오천 정도로 이루어진 아이리스 성국의 군대가 마을을 약탈중이에요.”

“서쪽에서 아이리스 성국의 군대가 접근하고 있어요. 규모는 6만 정도로 성국의 중요한 인물이 지휘를 하는 것 같아요. 성국의 전용기를 볼 수 있었거든요.”

브뤼헤아 비쉬로 이루어진 정찰대는 시시각각으로 천족의 움직임을 보고해왔다. 마법 빗자루의 존재로 인해 지형지물에 관계없이 이동할 수 있는 브뤼헤아 비쉬는 강력한 마법사이면서도 뛰어난 정찰병이었다.

그리고 호는 그렇게 수집된 정보와 로우덴의 조언을 바탕으로 주위의 적들을 소탕하기로 했다.

“꼬끼오! 이 팔쿤! 호 님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승리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북쪽의 천족을 상대하기 위해 팔쿤과 레이자가 두 개 마장기 편대와 칠 만의 병력을 이끌고 출진했다. 적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 정도의 병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더군다나 팔쿤과 레이자는 로우덴도 인정하는 유능한 지휘관. 변수가 있더라도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알르드에게 승리를!”

서북쪽의 소규모 무리는 신윤아와 김유진이 상대하기로 했다.

소환자이긴 해도 둘 다 전쟁에 대해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데다가 몇 번의 전투 경험으로 말미암아 지휘관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A+등급 마장기인 드릴 루드비히의 오너 케반스까지 합류시켰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멍멍. 그리고 서쪽에서 접근하는 아이리스 성국의 군대는…….”

“내가 직접 나서야겠지.”

호가 로우덴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그제 즈고르와 레모스 휘하의 마장기 편대로 전투를 펼치긴 했지만, 압도적인 전력을 찍어 눌렀기 때문일까? 영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보고에 따르면 전용기를 보유한 성국의 중요인물이 지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멍멍!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굳이 정체를 파악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상대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호의 기억 속에서 아이리스 성국의 전용기를 보유한 영웅은 한 명 밖에 없었다.

성자 케루벨.

인간이지만 라헬을 향한 돈독한 신앙심으로 어린 나이에서부터 라헬의 성자라 불리는 영웅이었다. 그런 케루벨의 전용기는 에트라라 불리는 엑스칼리버 급 마장기로 천족의 고위 기술자들이 개조를 한 탓에 천족 마장기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마장기였다.

그렇다고 천족의 마장기처럼 부유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일반적인 엑스칼리버와 비교해 MLC의 사정거리와 파괴력이 좀 더 높은 게 전부였다.

그리고 아이리스 성국이 보유한 전용 마장기는 호가 알기로는 성자 전용의 에트라, 단 한 기뿐이었다.

‘어차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지. 케루벨의 마장기 조종술은 형편없으니까.’

성자답게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는 영웅이지만, 신성력이 마장기를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케루벨을 호위하는 신성기사단이 훨씬 위협적이었다.

그 신성기사단도 예전이라면 모를까, A등급 마장기를 보유한 지금의 전력 앞에서는 가소로운 수준이었다.

어차피 아이리스 성국에서 신경 써야 할 영웅은 성국을 다스리는 교황밖에 없었다. 그것도 언변과 정치와 관련된 능력이 높아서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게 귀찮을 뿐이지 지금과 같은 전쟁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 그러면 어디 광신도들을 위한 함정을 파볼까?”

하지만 상대의 전력이 만만해도 호는 정면으로 맞붙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곳은 알르드가 아닌 골든 크로우. 허무하게 소모된 병력은 어디서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호의 곁에는 전략, 전술 능력이 하늘 끝까지 다다른 유능한 인재가 있었다.

“로우덴. 괜찮은 계획이 있겠지?”

“물론입니다, 멍멍! 유인책을 쓸 생각입니다.”

“유인책? 어떤 식으로?”

“멍멍! 원래 광신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심과 관련된 것을 자극하면 쉽게 눈이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들의 신앙심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제가 소싯적에 광신도들에게 여러 번이나 쫓겨 다닌 터라 그들을 열 받게 만드는 법은 백 가지도 넘게 알고 있습니다. 멍멍. 그렇게 그들을 자극한 다음에 함정으로 쏙 몰아넣는 거죠.”

로우덴이 자신의 입술을 쓱 끌어올리고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감히 여신님을 모욕하다니! 오, 라헬님이시여! 저 무례한 종자들에게 철퇴를 내려주소서!

저들을 붙잡아! 결코 살려 보내지 마라!!!

그런 로우덴의 말마따나 잔뜩 화가 난 케루벨과 성국의 병사들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는 자신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수인 기병대를 흉흉한 기세로 뒤쫓기 시작했다.

유인이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지만, 케루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뒤쫓는 수인 기병대를 박살낼 생각이었다.

“위, 위험합니다! 성자님! 마치 우리를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여신 라헬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겁니다! 그대는 여신을 능멸한 저 놈들을 그냥 둘 셈입니까! 여신의 진정한 종은 조그마한 역경에 굴복하지 않는 법입니다!”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는 영웅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군대의 지휘관이자 성자라 불리는 케루벨의 생각을 꺾지는 못했다.

하기야 여신 라헬의 동상을 상대로 허리를 흔들며 모욕적인 말을 해대는 모습을 보았으니 여신을 섬기는 것에 삶의 의미를 갖는 케루벨과 성국 병사들의 어이가 가출하고 눈이 뒤집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반나절이 지나도 케루벨의 군대는 자신의 여신을 모욕한 윙드 훗사르 부대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애당초 이동속도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데다가 성국의 마장기사들은 후방에 배치가 되어 있던 까닭이었다.

“저, 저놈들이!”

케루벨의 에트라 역시 출진을 해봤지만 케루벨의 마장기술은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좋은 편은 아니었던 터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윙드 훗사들을 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빌어먹을! 놓치지 마라!!! 여신님을 능욕한 짐승들의 목을 베어버리는 거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은 모조리 베어버려라! 여신이 우리는 지켜보고 계신다!”

결국 아이리스 성국의 병사들은 호와 로우덴이 파둔 함정을 향해 조금씩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멍멍멍. 광신도들을 자극하는 법은 역시나 간단하군요. 이거이거 라헬만 건드려도 저렇게 눈이 뒤집혀 버리니……. 덕분에 제2, 제3의 계획은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멍멍.”

큼지막한 언덕 위에서 납작 엎드린 채 아이리스 성국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로우덴이 경박한 음성으로 말했다.

“뭐, 그렇군…….”

그 옆에서 호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라헬의 동상을 상대로 윙드 훗사르들이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니 기분이 조금 요상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광신도들에게 여러 번이나 쫓긴 과거가 있다더니만 어떻게 해야 그들을 자극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병력의 배치는 어떻지?”

“문제없습니다. 멍멍. 후위에 배치된 마장기 편대가 이곳을 지나가는 순간 신호를 보낼 것이고, 곧바로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로우덴이 잔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면 성자가 이끄는 아이리스 성국의 군대는 여기서 뼈를 묻게 될 터였다. 이미 전장은 지옥으로 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을 개조한 지뢰가 전장 곳곳에 심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지뢰라고는 해도 병사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터지는 종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어 마장기의 포격이 이어지면 지뢰가 어떤 식으로 반응을 불을 보듯 뻔했다. 확실한 것은 지뢰가 터지면 그 주위의 병사들은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슬슬 적의 마장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느긋하게 성국의 움직임을 보던 로우덴이 크르릉 목울림 소리를 내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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