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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44화 (34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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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344화

“이것이 우리 조인족의 전설 병기 판, 아니 치르넬이다! 꼬끼오!!!”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피닉스에서 치르넬이 분리되어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이어서 치르넬의 포구가 불을 뿜었고, 성국의 광신도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여기에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이 뒤덮여지고, 엑스칼리버의 지원 사격까지 이어지니 여신의 포교에 목숨을 아끼지 않는 아이리스 성국의 광신도라 할지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정신 상태는 평범함과 궤를 달리하지만 육체는 다른 인간들과 다름없는 피와 살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적들에게 세계수의 분노를!

-이거나 먹어라, 얍!!!

그렇다고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이미 사방에는 알르드의 병력이 쫙 깔려 있었다. 그것도 SSS랭크로 이루어진 전장의 사신들이었다. 알르드의 A, B등급 영웅들의 지휘를 받는 병사들은 영웅들 개개인의 능력 및 보유 스킬에 버프를 받아 광신도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캬하하하학!”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편대장으로 보이는 천족 마장기사 하나가 포효와 함께 호의 마장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몸을 부딪칠 듯한 기세로 돌진해 온 엔젤 가디언급 마장기가 자신의 창을 매섭게 내질렀지만, 빠르게 허리춤에서 검을 빼낸 호는 어렵지 않게 상대의 창을 튕겨내었다.

“큭!”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면서 생겨난 반탄력에 엔젤 가디언의 균형이 무너졌지만, 나름 실력이 있는 마장기사인지 어렵지 않게 자세를 잡은 천족 영웅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알르드의 수괴, 윤호! 네놈의 목을 베어 라헬님에게 바치겠다!”

“꿈도 크네. 라헬도 그런 헛소리는 하지 않을 걸?”

“네, 네놈이 감히 여신님을 모독하다니!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력 엔진의 출력을 높이는 상대를 보며 호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괴물이나 다름없는 한시진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어중이떠중이 영웅에게 당할 정도로 자신의 마장술은 형편없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는 라이온레인보다도 등급이 떨어지는 B등급인 엔젤 가디언급 마장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수십, 수백 번도 상대해 봤던 기체였다.

“죽어라앗!!!”

여신 라헬의 충성스러운 종답게 혼신의 힘을 담았는지 찢어질 것 같은 기합과 함께 상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라이온레인의 버티고 선 양 다리가 무른 땅을 파고 들어갔다.

마장기의 체중까지 실린 묵직한 공격이었지만, 라이온레인의 출력과 덩치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라이온레인의 장갑을 절단할 수 있는 날카로운 공격도 아니었다.

“말했잖아. 꿈이 너무 크다고.”

그렇게 상대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호가 느긋하게 마장기를 움직였다. 라이온레인의 앞발차기가 엔젤 가디언을 타격했고, 균형이 무너진 천족의 마장기를 향해 푸른빛으로 뒤덮인 롱소드가 내려쳐졌다.

카카칵!

불꽃이 튀며 마력 엔진을 둘러싼 마장기의 단단한 장갑이 두부처럼 갈라졌다. 그러자 파괴된 마력 엔진에서 새어나온 정제된 마나가 불안정함으로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이어서 큼지막한 폭발을 만들어내었다.

“이럴 수가! 여신의 전사님이 당하다니!!!”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하나, 둘씩 파괴되는 아군 마장기의 모습에 즈고르가 발악하듯 소리를 내었다.

주위에 보이는 알르드의 마장기는 한, 두기 정도의 소수가 아니었다. 적어도 열 기 아니, 스무 기 이상은 되어 보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라헬님을 돈독히 섬기는 아군은 온데 간 데 없고, 주위에는 알르드의 깃발만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형편없는 소환자 따위에게 어떻게 이런 병사들이……. 그, 그래! 마족이다! 마족 녀석들이 이 녀석들을 돕는 게 틀림없어!!! 신도들이여! 라헬님을 거부하는 타락한 종자들에게 신의 심판을 내리자!!!”

하지만 즈고르의 발악에 대답을 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골든 크로우의 병사들을 짓밟던 든든한 마장기들은 알르드의 마장기 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모조리 파괴되었고, 즈고르를 섬기던 광신도들 역시 알르드 병사들의 손에 수수깡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크윽!”

순식간에 무너지는 아군의 상황에 주춤하던 즈고르가 자신의 입을 짓씹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즈고르가 허겁지겁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즈고르의 행동에 그를 호위하던 신도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즈, 즈고르 님!”

“시끄러! 네놈들은 적들을 막아라! 나는…….”

자신을 따라오는 신도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던 즈고르가 불현듯 느껴지는 불안감에 옆으로 몸을 굴렀다.

쿠우웅!

먼지구름과 함께 무언가가 땅을 파고드는 모습이 즈고르의 눈에 들어왔다.

“히이이익!!!”

몸을 던지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 하지만 즈고르의 위기는 끝나지 않고 있었다.

“라이온레인?!”

화려한 문장이 새겨진 커다란 마장기가 땅에 박힌 롱소드를 천천히 빼내며 즈고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라이온레인과도 생김새가 다른 마장기인 터라 즈고르는 자신을 바라보는 마장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 윤호 폐하! 제발 이 불쌍한 종에게 자비를!!!”

즈고르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와 동시에 라이온레인의 롱소드가 그를 향해 떨어졌다.

띵동

아이리스 성국의 B등급 영웅, 즈고르가 사망했습니다.

확실하게 상대의 상태를 알려주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호는 자신의 롱소드를 허리춤에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골든 크로우의 후방을 교란하던 즈고르의 군대는 이걸로 끝이었다. 천족의 마장기 편대는 모조리 고철로 변했고, 아이리스 성국의 광신도들 또한 로우덴의 지시를 받아 수 겹으로 포위된 아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여기서 목숨을 내놔야만 할 터였다.

띵동.

-‘아이리스 성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전투성과를 결산 중입니다. 3……2……1. 결산 완료. 이번 전투의 성과 등급은 A랭크입니다. 경험치를 24350 획득했습니다.

-총대장으로의 활약에 힘입어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니다.

“조금 심하네. 전력 차이가 커서 그런가?”

경험치 획득량이 많이 짠 느낌이지만 어차피 남는 경험치도 많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호가 메시지를 닫으려고 할 때였다.

띵동.

-‘천족–레모스’ 휘하의 마장기 편대를 물리쳤습니다.

-전투성과를 결산 중입니다. 3……2……1. 결산완료. 이번 전투의 성과 등급은 A랭크입니다. 경험치를 83162 획득했습니다.

-총대장으로의 활약에 힘입어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니다.

이어서 나타나는 또 다른 메시지. 아까와는 달리 천족의 마장기 편대를 물리친 결과물이었다.

“뭐야? 따로 정산되는 거였어?”

즈고르 휘하의 마장기 편대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메시지에도 ‘천족–레모스’라는 이름이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마장기 두 개 편대의 전력은 일 만의 병사보다도 훨씬 우위에 있는 만큼 획득 경험치도 더욱 많았다.

“그나저나 레모스라…….”

익숙한 이름의 등장에 호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차피 공략본을 살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억을 더듬으면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을 친숙한 이름인 탓이었다.

그리고 호는 어렵지 않게 레모스가 누구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질풍의 레모스.”

천족의 십 천사 중 하나로 심판관 니나 다니엘레, 거한 트렛슈와 함께 뛰어난 무용을 뽐내는 천족의 대표 영웅이었다. 게다가 질풍이라는 명칭대로 신속하고 과감한 전술로 빠르게 적들을 제압하는 전술적인 역량도 지니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상현실 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초창기에는 S등급의 영웅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벤트를 거치고 나면 SSS등급의 영웅으로 개화.

천족이 아닌 다른 종족으로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앞을 가로막는 까다로운 상대이기도 했다.

* * *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멍멍. 특히나 질풍의 레모스는 천족의 십 천사 중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천사입니다. 분명 우리들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을 게 틀림없습니다.”

“전략가로서 자네와 비교하면 어떻지?”

“저랑 말입니까? 멍멍?”

호의 말에 로우덴은 대답 대신 옆에 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

“저 ‘나폴레멍’입니다. 호 님.”

짧고도 강렬한 대답에 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레모스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지녔는지는 확인할 방도가 없지만, 눈앞의 견인족에 비해 뛰어나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생김새는 어리바리하지만 로우덴 셰필드의 지력은 무려 1925나 되었다.

“멍멍. 어쨌든 천족들은 본대가 하밀레온에 있는 골든 크로우의 주력을 붙잡는 사이, 따로 별동대를 편성해 골든 크로우의 모든 도시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요새도시도 아니고 후방에 위치한 소규모 영지가 보유한 전력이야 뻔한 수준이니까.”

“이번 전투처럼 마장기 두 개 편대 정도의 규모면 재앙인 수준이겠죠. 멍.”

동급의 마장기나 대 마장병이 수 만 단위로 주둔하고 있지 않는 이상은 막아내기가 힘들 터였다. 하물며 천족의 마장기는 대다수가 공중 이동이 가능한 기종들이 대마장병으로 치명타를 입히기도 쉽지 않았다.

“분명 즈고르 녀석과 같은 별동대들이 또 있을 테지?”

“그럴 겁니다. 골든 크로우의 넓은 영토를 생각하면 병력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멍멍. 게다가 주력은 기사왕을 공격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병력을 빼지도 않을 겁니다. 기껏해야 마장기 한두 개 편대를 지원하는 게 전부겠죠.”

“일반 병력은 아이리스 성국의 병사들이겠고?”

“아무래도 광신도들이 좋아하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멍멍.”

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골든 크로우의 백성들을 상대로 성국의 광신도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가 눈에 훤하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하밀레온으로 바로 진격을 하면 되는 건가?”

“멍멍. 이동은 천천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이 그들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말이죠. 어차피 우리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천족들도 하밀레온의 공략에 전력을 쏟지는 못할 겁니다.”

“흠. 오히려 기사왕을 사로잡기 위해 전력을 다할 수도 있지 않나?”

“천족들의 성급한 공격에 빨리 무너질 정도로 기사왕은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닙니다. 멍멍.”

로우덴이 단언하듯 말했다. 하기야 칠제의 강력함에 대해서는 호도 잘 알고 있었다.

천족에서도 라이프린과 십 천사가 나섰다고는 하지만 골든 크로우의 인재 풀 또한 만만치 않았다. 천족들을 몰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버티기 정도는 가능하리라.

“일단은 이 주변 상황과 천족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주력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호 님. 멍멍. 병력 또한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굳이 천족의 마장기들을 상대로 대규모 마장기전을 펼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멍멍?”

말과 함께 로우덴은 자신이 먹고 있던 사과를 통째로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우물우물 몇 번 씹더니 꿀꺽하고 삼키며 말을 이었다.

“알아서 잡아먹기 편하게끔 잘게 쪼개 놓기 까지 했는데 말이죠. 아, 따로 준비할 게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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