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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43화 (34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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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343화

황금색 까마귀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을 보며 호는 알 수 없는 탈력감을 느끼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

다행히 골든 크로우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보니 이레네 아르티아가 어떻게든 버텨 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호는 골든 크로우의 멸망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인간나라들 중 최강국이라는 골든 크로우의 전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레네 아르티아와 골든 크로우가 자랑하는 황금기사단의 전력만으로 천족의 공세를 버티는 것은 무리라는 게 호의 생각이었다. 칠 왕국의 지원이 있다지만 대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로 골든 크로우는 천족의 총공세에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수도인 알트라가 함락되었고, 전장이 계속해서 뒤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눈앞의 영지는 아직까지 골든 크로우의 깃발이 걸려있었다.

“천족의 날개가 여기까지는 닿지 않은 모양이군.”

“꼬꼬댁, 꼬꼬.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영토는 천족의 영토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습니다. 천족의 기세가 사납다 하더라도 이 깊숙한 곳까지 병력을 보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팔쿤이 호의 말을 받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둘의 착각이었다. 성에 가까이 갈수록 치열한 격전의 흔적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는 마장기로 추정되는 잔해들도 있었다.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도 전황이 더욱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것은 알르드의 지원군을 반기는 영주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먼 알르드에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호 님께서 직접 오시다니……! 이레네 아르티아 폐하께서 보셨다면 정말로 기뻐하셨을 겁니다.”

나이가 지긋이 든 영웅이 그렇게 말하며 호들갑스럽게 호를 반겼다. S등급에 가까운 A+등급의 영웅으로 조그마한 성의 영주를 맡기에는 차고 넘치는 인물이었다.

마장기와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영주를 뒤로 향해 호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레네 아르티아 폐하께서는 무사하십니까?”

“전의 전투에서 가벼운 상처를 입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아직 정정하십니다. 이 땅에서 인간들의 사활을 걸고 천족들을 물리쳐야만 하는 사명을 가지고 계신 분. 쉽게 쓰러지시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호가 진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만약 이레네 아르티아가 천족의 손에 넘어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전황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천족의 대공세에 수도 알트라를 빼앗긴 이레네 아르티아는 곧바로 골든 크로우 제2의 도시인 하밀레온으로 후퇴를 감행했다. 많은 인구와 군수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하밀레온을 거점으로 삼아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 하밀레온이 아이리스 성국과의 영토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었다.

“폐하께서 하밀레온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광신도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하밀레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병력을 징집할 수 있는데다가 마장기의 생산도 가능한 대도시였으니까요. 또한 모에드 왕국과 상업국가 미피츠가 아이리스 성국을 견제해주겠다는 약조도 있었습니다.”

“문제가 생겼군요.”

“그렇습니다. 아이리스 성국으로 향하던 모에드 왕국의 군대가 천족의 십 천사에게 가로막혀 발이 묶였죠. 그리고 미피츠는…….”

말을 하던 노영주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까지도 병력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인간들의 위기가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쌓인 게 많은 모양인지 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저주에 찬 목소리로 미피츠를 향해 욕설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노영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추한 꼴을 보였습니다. 어쨌든 현재의 상황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하밀레온 계시는 폐하께서 완강하게 버티시고 있다지만 지원군이 절실할 겁니다. 지원군을 보내라는 명령서가 도착한지도 일주일이 넘었습니다만 아직까지 한 명의 병사도 보내지 못했습니다.”

“오다가 봤습니다. 여기도 몇 번의 전투가 치러진 모양이던데, 지원군을 보낼 여력이 없으셨겠지요.”

“후우. 그래도 호 님께서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지원을 와주셔서 천만다행입니다. 폐하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노영주는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A등급 마장기 세 개 편대에 B등급 마장기들도 줄지어 있는데다가 병력만 삼십 만이었다. 마장기 한 기가 아쉬운 판국에 알르드의 참전은 마른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이 영지를 노리고 있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즈고르라는 녀석의 밑에 있는 성국의 광신도들입니다.”

“즈고르?”

호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영웅 중 한 명은 그 이름을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광기의 즈고르!”

한 때는 사자기사단의 부단장이지만 현재는 알르드의 S등급 영웅인 레이자가 날카롭게 외치자 팔쿤이 먹먹해진 귀에 고개를 세차게 두어 번 흔들고는 말했다.

“꼬꼬댁, 꼬꼬. 아이고 귀야. 놀라는 것을 보아하니 알고 있는 모양인데, 어떤 녀석이야?”

“그……. 광신도들이 다 그렇겠지만, 라헬교의 포교에 미친놈이에요. 들리는 소문에는 라헬교를 포교하면서 거짓으로 포교한 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가족들의 살점을 먹게…….”

얘기를 하다가 소름이 끼치는지 레이자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즈고르라는 녀석은 정말로 미친 녀석이 틀림없었다.

“멍멍.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으음. 급하게 하밀레온으로 가긴 가야겠지만, 그 즈고르라는 녀석도 그냥 두고 가기엔 꺼림직 해.”

로우덴에게 말을 하며 호는 노영주를 향해 힐끗 곁눈질을 했다. 즈고르라는 녀석을 처리하겠다는 말 때문인지 노영주의 얼굴이 급속도로 밝아지고 있었다.

“그 즈고르라는 녀석의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만 명 정도입니다.”

“멍멍? 만 명?”

호의 뒤에 서있던 로우덴이 의아한 표정으로 노영주를 바라보았다. 고작 그 정도 규모의 병력에 영지 전체가 흔들린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로우덴의 궁금증을 풀어주듯 노영주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즈고르라는 광신도가 만 명의 병력으로 이 성을 노린다면 소신은 일 년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해도 그 광신도를 막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문제는 마장기입니다.”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리그너스 대륙의 강력한 병기인 마장기 앞에서는 성벽의 단단함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르론과 같이 마장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강력한 방어탑이 건설되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 영지의 발전도는 그렇게까지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영지에 주둔하고 있는 마장기가……?”

“부끄럽게도 한 대도 없습니다.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자넷급 마장기 편대가 주둔하고 있었지만, 즈고르 녀석의 공격에 모두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편대가 당했다? 즈고르 휘하의 마장기 전력이 병력에 비해 상당한 모양입니다?”

“후우. 비둘기 같은 빌어먹을 천족들 때문입니다. 즈고르 휘하의 마장기는 자넷과 골드 이글 두 기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십 천사 휘하의 마장기 편대가 즈고르를 돕고 있습니다. 그것도 엔젤 가디언급이 포함되어 있는 마장기 편대로 두 개 편대나 되죠.”

“으음.”

그 정도의 전력이라면 이 영지의 병력 상황으로는 막아내기가 힘들어 보였다. 지원군이 도착했을 때 영주의 얼굴이 환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리라. 그리고 로우덴이 자신의 턱을 매만지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멍멍. 두 개 편대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입니다. 후방을 교란하거나 수송대를 무너뜨리기에는 딱 적당한 숫자죠. 또한 기사왕을 하밀레온에 묶어놓은 지금의 상황에서 각개 격파 식으로 전력이 부실한 골든 크로우의 영지를 집어삼키기에도 충분한 전력입니다.”

“그냥 두고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멍멍.”

어차피 천족들에게 알르드가 전쟁에 참여했다는 경고도 알려줘야 할 참이었다. 그리고 마장기 두 개 편대는 충분한 경고로 보였다.

“브뤼헤아 비쉬를 내보낸다. 즈고르 녀석과 천족 마장기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도록.”

“멍멍!”

명령을 받은 브뤼헤아 비쉬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한껏 발휘해 즈고르의 위치를 수색했다. 즈고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족의 마장기 편대가 포함된 자신의 병력에 자신이 있는지만 즈고르는 골든 크로우의 마을을 약탈하며 천천히 병력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즈고르는 현재 이 성으로 오고 있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멍멍.”

“무슨 꿍꿍이지? 우리가 도착했다는 것을 천족 녀석들이 모를 리 없을 텐데.”

“혹시나 싶어서 주위를 닷새거리까지 수색을 해 봤지만 다른 천족이나 아이리스 성국의 병력은 찾을 수 없었어요.”

레이자의 말에 호는 이해가 안 간다는 기색을 보였다. 즈고르의 병력이라고는 고작해야 마장기 열 대에 일 만의 병력뿐이었다. 하지만 호의 전력은 그것의 수십 배나 되었다.

“혹시 아이리스 성국의 광신도가 사용하는 능력 중에 자신의 힘을 몇 배 이상 낼 수 있는 그런 것도 있나?”

“멍멍.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아니면 멀리 떨어진 마장기를 소환할 수 있다던가?”

“멍멍. 없습니다. 그런 기술이 있다면 이미 이 대륙은 라헬을 믿는 천족들의 손에 넘어갔을 겁니다.”

로우덴의 대답을 들으며 호의 한쪽 눈썹이 살그머니 올라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즈고르라는 녀석은 대놓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굳이 찾아오는 적을 상대로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출진이다. 단숨에 즈고르라는 녀석을 깨부수고 하밀레온으로 이동한다.”

“멍멍!”

호의 눈동자가 작열하듯 형형하게 빛났다.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달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불세출의 천재 군사–나폴레멍’ 로우덴의 스킬인 신산귀모가 발동하지도 않은데다가 공략본을 찾아본 즈고르의 등급은 고작해야 B 에 불과했다.

그렇게 호의 명령을 받은 알르드의 병력이 노영주의 성에서 이틀 남짓 떨어진 곳에서 이동하고 있던 즈고르의 군대를 향해 번개처럼 들이닥쳤다.

“저, 적이다!!!”

“알르드 녀석들인가?”

주위의 비명에 엔젤 가디언의 오너이자 A등급의 천족 영웅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알르드의 병력이 이 근방에 있는 골든 크로우의 영지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이미 보고받은 바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르드의 참전에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이번 골든 크로우 원정에는 자신들의 여왕 라이프린을 포함해 다섯이 넘는 10천사가 참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륙에 알려진 알르드의 소문이 아무리 휘황찬란하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순간, 무언가가 훅 떨어지면서 엔젤 가디언의 정수리를 덮쳤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조종간을 당겨 몸을 뒤로 뺀 그녀는 자신을 공격한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거대한 덩치로 상대가 마장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이이이잉!!!

땅에 박힌 거대한 삼각뿔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며 주위의 바위와 부딪치면서 콰드득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그 모습을 본 천족 영웅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눈에 보이는 파괴력과 관통력으로 짐작해봤을 때, 정수리에 제대로 당했더라면 단숨에 마장기가 파괴되었을 수도 있는 위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천족 영웅의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마장기의 통신구를 통해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인간들이 자랑하는 최강 병기 중 하나인 드릴 루드비히의 드릴 브레이커다. 단숨에 네 녀석을 박살낼…….”

자신만만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A+ 등급의 마장기인 드릴 루드비히의 오너 케반스였다. 하지만 그런 케반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앙!

폭발과 함께 상체가 날아간 엔젤 가디언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완파였다. 그리고 이 정도로 강력할 위력을 보일 수 있는 폭발 무기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바로 녀석들을 정리하고 하밀레온으로 향한다!”

그리고 알르드에서 라이온레인 특히나 마력 폭탄을 가장 잘 다루는 마장기사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윤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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