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9
리그너스 대륙전기 339화
수인 왕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지도 벌써 두어 달이 흘렀다. 그동안 리그너스 대륙은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종족들의 싸움으로 인해 전화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수년이 멀다하고 벌어지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는 최근 수인 왕국의 움직임에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이상한데…….”
“뭐가요?”
지휘 막사 안에서 지도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호를 향해 한시진이 물었다.
“글쎄. 뭐라 자세히 표현은 못하겠지만, 수인들의 움직임에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 달까? 부나방처럼 승산이 없는 싸움에 계속해서 무턱대고 덤벼드는 게 이상하지 않아? 그렇다고 우리 영지를 차지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이는 것 같고.”
“걔들도 정치적인 목적이 걸려 있으니까요? 하기야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하긴 했죠. 살인호랑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요.”
한시진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도 최근 매가리 없는 수인들의 형식적인 공세에 혹시나 다른 꿍꿍이가 있을까 하고 고민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음무어. 분명 알르드의 압도적인 군사력 때문입니다. 푸르르. 마장기전에서 우리들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 일찌감치 전쟁을 포기한 것이죠. 이러다가 사파리에서 전령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 물러날 게 분명합니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라이온레인과 아보르비테의 조합은 대륙 제일이 틀림없습니다!”
웃소의 의견에 몇몇 영웅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 수인 영웅들이었다. 수인 왕국의 생태에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이러한 수인 왕국의 움직임에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모습이었다.
“…….”
그러한 수인 영웅들의 모습에 호는 자신의 뒷목을 살짝 매만졌다.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갔나 싶은 생각이었다.
그들의 말대로 군사 부문과 관련된 알르드의 기술력은 대륙 제일이 분명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공략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기술력을 올리는 법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대로 시행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팀 공돌이와 심시티와 같은 이레귤러의 도움으로 인해 알르드는 호의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군사력을 높일 수 있었다.
만약, 그 둘의 도움이 아니면 일 년 아니 수년이 지나도 A등급 마장기의 제작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 결과로 알르드는 대륙의 맹주 중 하나인 수인 왕국 상대로 한 치의 밀림도 없이, 아니 오히려 그들을 압도하며 전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괜한 우려겠지?’
그런 알르드의 군사력이라면 수인 왕국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 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
띵동.
-‘림드 산맥’의 디르시나에서 인간족의 A등급 마장기 ‘라이온 레인’의 생산이 완료되었습니다.
-‘붉은 핏빛의 대지’의 코르다에서 열프족의 A등급 마장기 ‘아보르 비테’의 생산이 완료되었습니다.
-‘림드 산맥’의 에스타라다에서 SSS랭크의 병사 ‘브리헤아 비쉬’의 훈련이 끝났습니다.
-‘나크 평원’의 파인플에서 SSS랭크의 병사 ‘브리헤아 비쉬’의 훈련이 끝났습니다.
전시 체제에 들어간 영토에서는 현재도 계속해서 마장기의 생산과 병사들의 양성이 이뤄지고 있었다. 적어도 몇 군단은 꾸릴 수 있는 대규모 부대였다.
이렇게 대기 중인 병력을 모조리 투입시킨다면 자신들과 대치하고 있는 살인호랑이 보니타의 병력은 물론이고, 마인 부족의 영토인 호올스도 어렵지 않게 짓밟을 수 있었다. 실제로도 몇몇 영웅들은 자신이 수인 왕국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리기를 바라는 모양새였다.
‘지금 수인 왕국과 총력전을 벌이면 천족 녀석들이 그냥 있지 않겠지? 적어도 해상 병력이 갖춰질 때까지 수인 왕국과의 전면전은 피하는 게 옳아.’
지금의 전력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한 판 붙어볼 만 했지만, 다른 세력만 좋을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컸기에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가 곤란했다.
어쨌든 자신만만한 얼굴의 영웅들을 보니 호는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우려가 조금씩 걷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작심한 것 같은 수인 왕국의 공세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겠지만, 호가 이끄는 알르드의 정병은 그런 수인 왕국의 공세를 어렵지 않게 물리치며 반격을 가했다.
* * *
“제기랄, 삐이이!!!”
눈앞의 광경을 보며 마로가 얼굴을 잔뜩 구겼다.
물러서지 말라는 자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호올스에서 출진했던 수인 병사들이 겁에 질린 채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위치를 지키며 적을 상대하는 이들은 토끼 부족의 병사들이 유일했다.
“마로 대장님. 후퇴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아군의 마장기 편대는 이미 전멸했습니다.”
“삐이. 그랬겠지.”
마로의 입에서 허탈한 목소리가 나왔다. 알르드의 A등급 마장기 편대를 상대로 자신의 상관인 보니타가 지원해 준 건 기껏해야 C등급 마장기 네기에 불과했다. 그런 전력으로는 맞상대는커녕 몇 분이라도 버티면 다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승리를 위해 어떤 명령을 내려야 하는가? 마로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러나 곧 그의 얼굴에 편안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등바등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이다.
“빨리 도망가야 합니다, 마로 님!”
느릿느릿한 마로의 행동에 토끼 수인 하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재촉했다.
“어디로?”
하지만 이어지는 마로의 반문에 그는 자신의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지만 보니타는 지는 것이 당연한 싸움에 나를 보냈다. 게다가 이 자리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지.”
그런 마로의 손에는 토끼 부족의 신체에 맞게 제작된 조그마한 검이 들려 있었다.
“그래도 나중을 위해서라면…….”
“너도 느끼고 있겠지만 보니타는 내가 여기서 죽기를 바라는 게 분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보니타가 아닌 나를 싫어하는 그의 참모진들이겠지만. 여기서 무사히 도망간다 해도 보니타는 패배의 원인으로 나를 지목할 거다.”
“에잇. 빌어먹을 새끼들.”
토끼 수인이 욕설과 함께 투덜거렸다. 패색이 가득한 이번 전쟁에서 그나마 공을 세운 인물은 눈앞의 영웅인 마로가 유일했다.
다른 부족의 지원이 있었다지만 마로는 알르드의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을 파괴하는 공적을 세웠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왕국의 십이멀인 보니타를 비롯해 호인 참모진들의 자존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마로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게 바로 그 이유였다.
그러는 동안 호가 합류했고, 전황은 시시각각으로 불리해져 갔다. 결국 패배를 눈앞에 둔 마당에야 보니타는 후방으로 보냈던 마로를 소환했다. 하지만 마로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보니타는 마로가 더 공을 세우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이대로 전쟁이 끝난다면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수인 왕국의 주류인 호인 부족이 비주류이자 약소 부족으로 인식되고 있는 토끼 부족보다도 못했다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왕국의 병사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되었는데…….”
“그들이 그런 것에 대해 신경을 쓰기나 하겠어? 삐이. 자네도 알다시피 이러한 시기와 질투는 우리 왕국의 방식 아니겠나?”
“그리고 호인족을 비롯한 주류 부족들이 수백 년간 수인 왕국의 중심 부족이 될 수 있는 이유죠.”
토끼 수인이 쓰게 말했다. 앞으로 있을 자신의 운명에 수긍한 것일까? 어느새 그의 행동도 담담해져 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겁니까?”
“멋지게 한 판 하고 끝내야지. 그게 우리 수인들의 방식 아니겠어?”
“제가 알기로 그 흰 토끼 군사학교에서 마로 님의 검술 성적이…….”
“실버 문 한 명 정도는 붙잡을 수 있어.”
그의 말에 마로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제법 좋은 머리에 비해 마로의 검술 실력은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엄청난 도움이 되겠네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쓸어버리죠.”
웃음소리와 함께 토끼 수인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둘이 무기를 들고 막사 밖으로 나선지 십분도 채 되지 않아, 마로가 지휘하던 수인 군대는 전멸. 마로는 포로로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 * *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마로
2. 성별 : 남(101)
3. 종족 : 토끼족
4. 소속 : 수인 왕국
5. 레벨 : 211
6. 직업 : 상급 전술가(A)
7. 세부능력
통솔 : 292 / 300(A)
무력 : 58 / 100(C)
지력 : 487 / 500(S)
정치 : 433 / 500(S)
매력 : 121 / 200(B)
8. 특성 : 기회 포착, 귀계, 신속한 판단, 수인 발전.
“저 녀석이 그 녀석인가요?”
“음무어. 포로로 붙잡은 수인 병사들에게서 확인을 끝냈습니다. 황호가 이끌던 마장기 편대를 무너뜨린 그 토끼 녀석이 틀림없습니다.”
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아쉬카로트와 웃소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눈앞의 포로가 마로라는 녀석은 것은 정보창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힌 수인 영웅은 마로가 유일했다.
나머지는 도망을 갔거나 격렬한 전투 중에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은 녀석인데?’
상급 전술가. 일반 클래스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력과 정치 능력이 직업 등급의 한계를 뛰어넘는 S랭크라는 것은 그만큼 눈앞의 토끼가 유능한 영웅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보유한 특성과 스킬은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봐야겠지만, 세부능력만 놓고 봐도 충분히 휘하 영웅으로 삼고 싶은 녀석이었다.
“그때 파괴된 라이온레인이 네 기. 알르드에 200억 리스 이상의 손해를 입힌 장본인이네요.”
“일반 병사들의 양성비용까지 생각하면 그 이상이죠.”
옆 동료 영웅의 대답을 들으며 한시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과연 눈앞의 영웅을 호가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호의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결정만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당연히 등용 아니겠어?’
훗날을 생각하면 유능한 영웅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다. 더욱이 알르드는 인재 부족에 시달리는 국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지휘 막사의 의자에 앉아 있던 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수인 왕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겠다. 하지만 우리 왕국을 위해 일을 하고 싶다면 적국의 영웅이라는 차별 없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해 주지.”
호의 말에 죽어있던 마로의 눈동자에 강렬한 눈빛이 맴돌았다가 사라졌다.
“……삐이. 진심이십니까?”
“아무렴. 나는 유능한 인재를 좋아하거든. 게다가…….”
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런 호의 행동에 마로의 시선을 또한 주위를 훑었다. 인간, 엘프, 수인등 다양한 영웅이 지휘 막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알르드의 영웅 다름 아닌 수인들이었다.
“수인 왕국이 아닌 우리들의 다른 문화에 대해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다.”
마로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수인 왕국의 수뇌부에 대한 정나미는 떨어진 지 오래. 게다가 마로는 이렇게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명 지휘관으로 자신의 이름을 대륙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띵동.
-수인 왕국의 A등급 영웅 ‘마로’의 등용에 성공했습니다.
‘좋았어.’
등용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자 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갓 등용한 인재인 만큼 충성도는 높지 않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전쟁을 끝낸 후 천천히 관리를 하면 될 일이었다.
‘어? 잠깐.’
포승줄에서 풀려나는 마로의 모습을 보던 호가 눈을 움찔했다. 마로는 수인 왕국의 영웅.
그것도 살인호랑이 보니타의 참모진에 속해 있던 영웅이었다. 분명 이번 전쟁에서 이용할 만한 쓸 만 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특히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기에 보니타가 전쟁을 미적미적 끄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호의 질문을 받은 마로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수인 왕국 내부에서의 평판 때문일 겁니다. 패배만 거듭한 채 허무하게 물러났다가는 십이멀에 대한 명성은 물론이고, 호인족의 명예가 땅에 쳐 박힐 테니까요. 삐이이. 게다가 듣기로는 호인족과 웅족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고 합니다. 까닥하다가는 다음 대 수왕이 웅족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죠.”
“그렇군.”
마로의 대답에 호가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듣자하니 보니타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시간을 끌다가 물러날 생각으로 보였으니까. 방심을 해서는 안 되지만 과하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이번 전쟁은 수인 왕국의 단독이 아닌 천족과의 제의로 인해 시작된 전쟁입니다. 천족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수인 왕국도 물러날 수 없는 형편이죠. 그들의 내놓기로 한 대가를 받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마로의 대답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