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
리그너스 대륙전기 337화
“마로?”
“네. 소수의 병력을 이용한 그의 유인 전술 때문에 카우셰드의 아군이 대패를 당했다고 해요. 라이온레인도 몇 기 잃은 모양이에요.”
“으음?”
이어지는 시진의 말에 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이온레인이 파괴됐다고?’
다른 마장기도 아닌 무려 A등급의 마장기다. 마장기 제작과 관련된 리그너스 대륙의 기술력이 B, C등급에 머무르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A등급 마장기를 위협할 수 있는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호는 한시진의 보고가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괜한 말을 할 리 없었다.
게다가 카우셰드는 웃소와 아쉬카로트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둘 다 S등급의 유능한 영웅. 심지어 웃소는 타우러스라는 전설급 마장기의 오너기도 했다.
‘그 둘이 있는데도 수인 왕국의 영웅에게 당했다?’
수인 왕국의 왕 아쉬토나 십이멀이 직접 나섰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결국 마로라는 수인 왕국의 지휘관이 무언가를 한 모양인데, 한시진의 입에서 나온 마로라는 이름의 영웅은 딱히 호의 귀에 익은 영웅이 아니었다.
"혹시 아는 이름이에요?“
"아니, 나도 처음 듣는 이름이야. 아무래도 수인 왕국에서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 출전한 모양이네."
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본 경험은 있다지만 게임 내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기억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호는 다른 이들은 없는 경험만큼이나 중요한 것을 또 하나 가지고 있었다.
[마로(수인족)-수인 왕국의 약소 부족에 속하는 토끼 부족의 영웅으로, 뛰어난 성적으로 흰 토끼 군사학교를 졸업한 유능한 인재. A등급의 영웅이지만, S등급의 지력과 정치 능력을 지닌 유능한 영웅으로 수많은 정보를 조합해 결론을 도출해내는 참모로써의 능력은 발군입니다. 다혈질적인 면이 없잖아 있지만, 지휘관으로써의 능력도 나쁘지 않습니다.
마로를 등용하기 위해서는 그가 흰 토끼 군사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그가 군사학교를 졸업한 이후라면 수인 왕국의 살인 호랑이 보니타의 참모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족 간의 차별이 팽배한 수인 왕국에 대해 불만이 많은데다가 자신의 능력을 대륙에 떨치고 싶은 야망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이용하면 등용이 쉽습니다.
<마로의 S등급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
토끼풀(토끼 부족이 살고 있는 수인 왕국의 영토 클로버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입니다.)
십자가 모양의 흉터 장신구(상단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격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쌉니다.)
+7 캐럿 소드(타락한 토끼 몬스터들이 드랍하는 캐럿 소드를 대장간에서 수리 후 강화만 직접 하시면 됩니다.)
……….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모양이네.’
A등급이라지만 S등급에 가까운 참모형 영웅. 거기에 지휘관으로의 능력도 뛰어나다는 설명을 보면 어느 능력도 떨어지지 않는 만능의 오각형 영웅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공략본의 내용 중 호의 눈길을 끄는 가장 끄는 설명은 따로 있었다.
‘등용이 쉽다라…….’
뒤의 설명을 계속해서 읽어보니 아무래도 마로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수인 왕국의 제도에 대해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 점을 이용하면 등용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호가 시진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카우셰드의 상황은?”
“웃소와 아쉬카토르가 빠르게 대처한 탓에 피해는 크게 없는 모양이에요.”
라이온레인이 포함된 병력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가 없다? 앞, 뒤가 맞지 않는 그녀의 말에 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쯤 한시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라이온레인이 포함된 국지전에서 패배한 것이지, 웃소나 아쉬카토르가 직접 이끄는 부대가 무너진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마로라는 이름의 수인 영웅이 거둔 승리 역시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탓에 아군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인 왕국의 본대가 들이닥쳤을 때는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상황이지?”
조금 이해하기 힘든 결과에 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려고 할 때, 옆에서 듣고 있던 브로리가 끼어들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로의 손발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뭐, 보니타는 호인족의 십이멀. 그리고 마로라는 녀석이 토끼 부족의 영웅이라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똑같이 왕국을 이루는 십이 부족이라고 해도 수인 왕국 내부에서 차지하지는 종족간의 위상은 천차만별. 특히나 토끼 녀석들은 수인 왕국의 종족 중에서도 겁쟁이로 가장 천대받는 종족 중 하나다.”
한 때 수인 왕국의 영웅이었던 브로리는 수인 왕국 내에서의 차별이 얼마만큼이나 심한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이 차별을 받았던 입장이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든 라이온레인 몇 기를 잃는 대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선을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남부는?”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돌린 호는 다른 쪽의 상황을 물었다.
웃소와 아쉬카토르가 있는 동부 전선이 살인호랑이 보니타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면, 니나 다니엘레가 있는 남부 전선은 마인족의 십이멀 서러브레드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게다가 남부에는 천족의 십 천사 중 하나인 거한 트렛슈까지 있었다.
“마인족의 뛰어난 기동력 때문에 성에서 떨어진 소규모 마을 몇 개가 불에 탔다는 보고는 있었지만, 대규모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둔 모양이에요.”
“니나 다니엘레가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네.”
“레피스트 퓨리온님이 도움을 줬다면 상황이 더욱 나아졌을 텐데요…….”
“대륙에서 활동하기엔 드래곤이라는 종족에게 걸린 제약이 많은 모양이야.”
불퉁한 표정을 짓는 시진을 향해 호가 말했다. 비록 알르드의 영웅이라지만 레피스트 퓨리온은 내정이 아닌 군사와 관련된 부분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반쪽짜리 영웅에 불과했다. 그리고 뭐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는 시진을 뒤로 한 채 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미피츠에서 고생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커틀라스에 도착해도 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전쟁 중이니까.”
브로리의 입에서 나온 간단하지만 확실한 이유에 주위의 영웅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 낮은 신음을 낸 호가 한시진과 브로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브로리는 니나 다니엘레가 있는 남부로, 그리고 시진이는 나와 함께 동부로 가야겠어.”
“남부? 거한 트렛슈라는 녀석이 있는 곳이로군!”
EX등급인 브로리의 무력이라면 거한 트렛슈라는 녀석과 붙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천족을 대표하는 영웅인 십 천사를 직접 맞상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브로리가 눈을 반짝 빛냈다.
* * *
커틀라스 항구로의 귀환 길은 별다른 일 없이 순조로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규모의 군선 그것도 도베르만 제독이 이끄는 블루 스케일의 군함이 호위하는 알르드의 수송선을 건드릴 만한 간 큰 해적들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호의 본대가 미피츠의 던전 공략을 마치고 알르드로 귀환했다는 소식이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고, 이 소식은 곧바로 영웅들에게도 전해졌다.
“벌써…… 도착했다고?”
모닥불의 불빛에 자신의 무기, 칠흑의 양날도끼를 비춰보던 트렛슈가 눈앞의 천족을 향해 다시 물었다. 하지만 하얀색 날개의 천족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네 라고 대답을 할 뿐이었다.
"미피츠에 있는 던전은 분명 SS등급의 던전일 텐데……?’"
트렛슈의 이마에 자리 잡고 있는 주름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미피츠에 있는 SS등급 던전의 악명은 워낙에 잘 알려져 있는 터라 자신이 잘 못 알고 있을 리도 없었다.
‘불과 몇 주 만에 SS등급의 던전을 공략했다고?’
하물며 미피츠의 SS등급 던전은 하나가 아닌 둘이나 되었다.
“던전의 공략을 포기하고 온 건가?”
“아닙니다. 퉁 파오가 보낸 인간의 말에 의하면 호가 이끄는 알르드의 군대는 미피츠의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다고 합니다.”
“허! 믿을 수가 없군.”
천사의 대답에 트렛슈의 얼굴에는 불쾌함이라는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신 라헬의 뜻을 받드는 천족의 전력으로도 쉬이 공략할 수 없는 던전이 바로 SS등급의 던전이기 때문이었다. 고대 신이라는 존재의 타락한 힘을 섬기는 악의 주구들은 라헬의 권능으로도 쉽게 물리칠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그리고 트렛슈는 그런 위험천만한 던전을 라헬의 뜻을 받들지 않는 군대가 성공적으로 그것도 빠르게 공략을 마쳤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윤호라는 녀석은 언제쯤 이 군트락에 도착하는 거지?”
“그게……. 알르드의 지원군을 이끄는 영웅은 윤호가 아닌 다른 인물로 밝혀졌습니다.”
“다른 녀석이라고?”
트렛슈가 눈을 꿈틀했다. 그런 그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는데, 비록 전선이 고착화됐다 해도 수인 왕국과 천족의 연합군으로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 윤호의 무거운 엉덩이는 트렛슈의 자긍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 윤호라는 녀석은 군트락을 포기한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부의 첩보에 따르면 지원군을 통솔하는 알르드의 영웅은 브로리 후작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윤호가 가장 신뢰하는 영웅 중 한 명입니다.”
“흐음.”
트렛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호라는 녀석을 볼 수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었지만, 브로리 후작이라는 인물이 그의 수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상대를 할 가치는 있어 보였다. 더욱이 전투 때 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과거의 껄끄러운 동료보다는 상대가 더욱 쉬울 것 같았다.
“서러브레드는?”
“소모전으로 줄어드는 병사들을 보충하기 위해 분주히 전서구를 날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마인족의 병사만으로는 전쟁의 지속이 힘든 모양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이 나자빠지고 있으니.”
말과 함께 트렛슈의 시선이 천막의 밖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알르드의 병사들은 대부분이 SSS랭크로 이루어져 있었다. SSS랭크가 아닌 병과들도 S랭크 수준의 정예병들이었다.
당연히 브뤼헤아 비쉬와 실버 문으로 이루어진 알르드의 부대는 병사들끼리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런 불리함을 이겨내고 그들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수인 영웅들이 전투에 참전하거나 마장기가 나서야 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군트락 전체에 넓게 펼쳐진 전선을 전부 커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덕분에 하루에도 수 개가 넘는 수인 왕국의 부대가 전멸하고, 새로이 편성되어 전선에 투입되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알르드의 지원군이 또 다시 온다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알르드의 전력이 우리의 생각보다도 더욱 단단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전쟁에서 수인 왕국이 승리를 거두기란 힘들 것 같습니다.”
“뭐,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 전쟁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서는 안 된단 말이지.”
천사의 말에 트렛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번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알르드는 계속해서 혼란스러워야만 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과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할 겨를을 없애야 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얼마 안 있어 수인 왕국의 패배로 전쟁이 끝날 게 분명했다.
“우리도 지원군이 필요하겠군.”
“그렇다면 주비어스에 병력을 요청할까요?”
주비어스는 알르드의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천족의 영지였다. 비록 바다를 건너야만 했지만, 빠른 배로 닷새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주비어스? 아아…… 레모스 휘하에 있는 천사의 관리 하에 있는 영지지? 아마…… 이름이 이루살이었던가?”
“그렇습니다.”
천사의 말에 대답이 잠시 머뭇거리던 트렛슈가 낮은 신음성을 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굳이 레모스에게 빚을 질 필요는 없지. 지원군은 내 휘하의 영토에 속한 녀석들만 부르도록.”
“그렇게 된다면 병력이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이지?”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가 막사 내에 울려 퍼졌다. 알르드의 군대가 어떻게 나오던 간에 트렛슈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이상 조금도 군트락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알르드의 A등급 마장기? 자신이 전력을 발휘하면 몇 대라도 파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