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
리그너스 대륙전기 336화
“좋아……!”
마로는 자신이 보유한 병력만으로 A등급 마장기와 SSS랭크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알르드의 두터운 방어선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떠한 성과라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알르드의 방어를 무너뜨려야만 했고, 그런 고민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유인 전술이었다.
“적들이 움직입니다!”
다행히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적들의 모습에 마로가 긴장된 얼굴로 손바닥을 비볐다.
전면전을 펼칠 요량으로 기병대를 먼저 내보낸 것은 자신들의 전력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알르드 소속 영웅들의 심리를 이용한 전략이었다.
실제로 기병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행여나 무시무시한 화력을 지닌 알르드의 사정거리에 들어간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로는 상대의 지휘관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를 했었다.
“황호. 본신의 능력보다는 알르드에 임관한 영웅들 중 가장 고참인 영웅인터라 운 좋게 지휘관을 맡은 특이한 케이스지. 삐이.”
카우셰드를 지키고 있는 영웅이 윤 호였다면 황호와 같이 능력이 떨어지는 영웅을 지휘관으로 임명하는 인사 배치는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웃소는 거기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런 까닭으로 인해 B등급 영웅의 밑에 라이온레인을 다룰 수 있는 A등급 이상의 영웅들이 배치된 것이다.
황호는 자신의 그러한 상황에 대해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지휘관으로써 라이온레인의 마장기사들보다 더욱 큰 공을 세워야 한다는 압박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에 더욱 가만히 있지 못할 터였다.
“삐이! 적들이 움직였으니 즉시 훗사르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린…….”
그리고 마로가 다른 명령을 내릴 때였다. 순간 알르드의 진영 쪽에서 빛의 화살이 마로가 있는 쪽으로 발사되었다. 곧 마나의 폭발이 순간적으로 지면을 강타했고, 주변을 풍비박산 내었다.
“삐이이이이이!”
그 충격으로 인해 지휘관인 마로 역시 땅바닥에 나뒹굴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픔보다는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다음 명령을 내리는 게 먼저였다.
“피해 상황을 파악하라! 훗사르들에게는 후퇴 명령을 내리고, 전술 3을 사용한다! 삐!”
마로의 명령이 부대로 퍼져나갔고, 알르드의 공격에 의해 부산스러운 상황에서도 병사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술 3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후퇴하되 마장기들로 하여금 적들의 포격을 막아내라는 명령이었다.
이어서 릴라릴라 두 기가 최후방에서 알르드의 포격을 몸으로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을 비롯한 엑스칼리버의 포격은 평범한 수인 영웅이 움직이는 마장기 두 기로 막아내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공격이었다.
결국 복수의 공격에 맞고 릴라릴라 한 기가 폭발을 일으키며 고철이 되고야 말았다.
“으하하하! 어디서 고작 릴라릴라 따위로! 공격!!! 적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적 마장기가 아군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는 모습을 본 황호가 기세를 올리며 외쳤다.
방어선을 무너뜨리며 앞으로 나서는 황호의 행동은 분명 카우셰드의 군주 웃소가 내린 지시와는 위배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황호의 머릿속에는 공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만이 가득해 있었다.
그리고 황호의 이러한 행위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알르드의 마장기사들 역시 눈앞의 보이는 전과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적 쫓아옵니다!”
“좋아! 삐! 전술 2! 약속된 장소를 향해 전속력으로 이동한다!”
마장기를 앞세워 자신들을 추격하는 알르드의 움직임에 마로는 다시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이미 카우셰드의 국경에 도착하기 전, 마장기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함정과 함께 자신과 친분이 있는 토끼 부족의 영웅들에게 몇 가지 부탁해 놓은 그였다.
그리고 토끼 부족의 영웅들은 마로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흰 토끼 군사학교에서 수재로 소문난 그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수인 왕국을 위하여!”
전속력으로 달아나는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좀 전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릴라릴라급 마장기는 반대로 몸을 돌려 알르드의 마장기 편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마장기에 탑승한 수인 영웅은 조금이라도 아군의 퇴각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토끼 족에게 영광 있으라! 삐이이이!”
곧 비명에 가까운 절규와 함께 무모한 전투를 벌이던 릴라릴라급 마장기가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 세례에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에잇! 걸리적거리게! 적의 지휘관을 잡아라!”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수인 왕국의 영토 아니야?”
“뭐 어때? 수인 왕국에는 겁쟁이들 밖에 없다고! 빨리 저 녀석들만 전멸시키고 돌아가면 그만이야!”
이러한 수인 영웅의 희생은 황호를 비롯해 알르드 영웅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했고, 황호가 지휘하는 병사들은 카우셰드를 넘어 호올스까지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급하게 적들을 쫓는 바람에 알르드의 군대는 마장기 편대와 일반 병사들이 따로 떨어지게 되었을 뿐더러 기병대는 앞에 보병대는 뒤로 쳐지며 진형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적들을 함정까지 끌어들인 마로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멀리서 아군의 대마장병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토끼 부족의 영웅들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반격! 적들에게 토끼 부족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삐이!”
마로의 명령이 떨어졌고,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가 먹이를 낚아채는 것처럼 수인 왕국의 매서운 반격이 시작되었다.
콰쾅! 쾅!!!
가장 먼저 함정으로 설치된 스크롤들이 폭발하면서 라이온레인을 비롯한 알르드의 마장기 편대에게 조그마한 피해와 함께 먼지구름으로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함정인가!”
“위협적인 함정은 아니다! 당황하지 말고 전열을 유지해라! 적들은 후퇴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모두 자신들의 마장기를 점검해라!”
황호가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사이 수인 왕국의 S랭크 대마장병 랩터스들이 안개를 헤치며 빠르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어, 어어? 적?! 래, 랩터스?! 대마장병이다!”
그리고 랩터스의 손에 들린 수백, 수천 개의 날카로운 마력 창이 마장기들의 엔진을 목표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런 대마장병의 공격은 실버 문 몇 백만 있어도 손쉽게 막아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급하게 적을 쫓던 알르드의 마장기 편대 곁에는 일반 병사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마로의 명령을 받아 측면을 후회한 수인 왕국 병사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하며 실버 문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로 후퇴! 아군과 합류한다!”
“마력 폭탄을 난사해! 랩터스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라!”
“키에에엑! 마장기의 엔진만을 노린다!”
지휘관들의 다급한 명령 속에서 서로를 노린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난전 속에서는 라이온레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마력 폭탄은 봉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워낙에 폭발범위가 넓은 터라 아군 마장기까지 함께 휩쓸릴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력이 뛰어난 마장기사라면 절묘한 컨트롤을 발휘해 난전에서도 마력 폭탄을 사용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그런 실력의 마장기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랩터스의 마력 창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마장기의 엔진 부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젊은 마장기사의 비명과 함께 라이온레인 한 기가 죽음의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어서 주위의 랩터스들을 빨아 당기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이미 마력 통신은 아비규환이 되었으며, 지휘 체계 역시 무너지고 있었다.
“삐이이이이이!”
또다시 마장기 한 기가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마로가 함성을 질렀다. 그런 마로를 보며 수인 병사들은 그에 대해 감탄을 터뜨렸다. 자신들의 보잘 것 없는 전력으로 상대의 A등급 마장기인 라이온레인 편대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비록 다른 수인 영웅들의 도움과 대마장병 랩터스의 지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은 다름 아닌 마로의 능력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제, 제길! 나를 도와줘!”
황호가 찡그린 얼굴로 자신에게로 몰려드는 랩터스들을 향해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가 탑승하고 있던 엑스칼리버는 아군 랩터스들의 집중적인 표적 중 하나였다. 지휘관 기라는 것을 알리듯 도색이 화려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호를 도울 수 있는 아군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랩터스들을 밀어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황호가 탑승하고 있던 엑스칼리버의 마력 엔진에 한 랩터스의 마력 창이 꿰뚫고 들어갔고, 묘한 공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크, 크아아아?!”
황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자신의 귓가에 울리는 공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바보는 없었다.
“아, 안 돼!”
비명에 가까운 절규와 함께 그가 타고 있던 엑스칼리버가 커다란 폭발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이는 수인 왕국이 이번 전쟁으로 처음으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적 마장기 편대를 무너뜨리며 승리를 거둔 마로는 카우셰드로 군대를 진격시키지 못했다. 원채 전력의 차가 컸던 까닭에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공세로 전환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마로의 군대가 알르드의 최신병기 라이온레인 편대를 무너뜨리며 승리를 거뒀다.
“뭐, 뭐라고?!”
보니타가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을 때는 시간이 늦은 식사 시간이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입으로 넘어가는 음식을 채 씹지도 않은 채 황급히 명령을 내려야만 했다.
“출진이다! 마로 녀석을 따라서 적들의 방어선을 무너뜨린다!”
예상치 못한 승리에 알르드의 방어선이 무너지며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보니타는 이 호기를 그냥 지켜보지 않았다.
그러나 보니타가 병사들을 이끌고 알르드의 국경을 넘었을 때는 이미 웃소와 아쉬카로트가 이끄는 지원군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눈앞에 보이는 수인 왕국의 군대를 보며 아쉬카로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발 빠르게 움직인 탓에 수인 왕국의 병사들이 카우셰드를 유린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기동력이 좋은 그들은 일주일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카우셰드의 넓은 영토를 파괴할 수 있었다.
“마로라는 녀석의 병력이 적었던 게 천운이었어요.”
만약 그가 빠르게 움직였다면 전쟁의 양상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하고 돌아가고 있었을 터였다.
“음뭐어. 미피츠로 떠나셨던 호 님께서 돌아오고 계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리할 필요 없이 적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면 됩니다.”
“맞아요. 그리고 누구처럼 공을 세울 필요도 없죠.”
“으음…….”
자신의 실수를 푹 찌르는 아쉬카로트의 말에 웃소는 신음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수인 왕국에 마로라는 이름의 전략, 전술의 귀재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로의 이름은 미피츠에서 출항해 알르드로 돌아오고 있는 호의 귀에도 전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