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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35화 (335/522)

# 335

리그너스 대륙전기 335

“그럼 어디 한 번 아이템 좀 살펴볼까?”

난동을 부리는 브로리를 뒤로하며 호가 말했다. 목표했던 SS등급의 클래스 오버로드로 전직도 했으니 낮아진 영웅들의 사기를 위해 지금부터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차례였다.

‘SS등급의 던전을 공략했는데, 뭔가 얻어가는 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시진의 말에 따르면 이제까지 발견된 쓸 만 한 아이템은 A등급 무기 세 개가 전부라고 했다. 하지만 호는 그 말고도 더욱 좋은 전리품들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브뤼헤아 비쉬들이 아직 제대로 된 감정을 끝내지 못한 거라 여긴 것이다.

이제껏 공략에 성공했던 SS등급의 던전에서 얻었던 전리품들을 생각해봐도 그랬다.

아찔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던전들인 만큼 드릴 루드비히나 영웅의 SSS 승급에 사용되는 키 아이템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전력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템들이 항상 전리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호의 명령에 따라 실버 문들이 자신들이 수거한 아이템들을 가지고 왔다.

“거인의 손톱? 묘인족들이 주로 쓰는 크로류의 무기인가? 이건 패스.”

“거친 오우거의 방패? C등급 무기네. 패스.”

“용감무쌍한 오크 드랄의 창……. 으음. A등급 수준의 B등급 창이라. A 도 아니도 B라고 하기도 애매하네. 어쨌든 패스.”

하지만 병사들이 수거한 아이템을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호 역시 다른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A등급 무기 네 개…….’

전리품으로 수거한 아이템의 60 % 정도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A등급 아이템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던전의 난이도에 비해 보상이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원래 이렇게 보상이 형편없는 던전인가?”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은 호가 공략본을 열었다. 그리고는 재앙의 성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 목록을 찾기 시작했다.

“……젠장. 쓰레기 던전이네.”

그렇게 한참 동안 공략본을 바라보던 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병사들이 가져온 아이템 중 가장 괜찮은 것들이 고작 A등급에 불과한 이유가 공략본에 상세히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앙의 성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에는 매력 능력을 높여주는 S등급의 보조 아이템 하나가 가장 위에 적혀 있을 뿐, 나머지는 전부 A, B, C등급의 아이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덕분에 재앙의 성채를 만든 개발진들을 욕하는 ‘관우는 내 여자’의 후기도 상세하게 적혀 있을 정도였다.

“대체 이런 던전은 왜 있는 거야? 성취감 떨어지게?”

혹시나 이레귤러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호는 정보창으로 확인하지 않은 다른 아이템들도 전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매력 능력을 높여주는 S등급의 보조 아이템 하나만을 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호의 행동을 지켜보던 한시진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누가 털어가기라도 한 걸까요?”

“설마…….”

그럴싸한 추측이었지만 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공략본이 그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재 대륙에서 SS등급의 던전을 공략하는 세력은 자신밖에 없었다.

다른 세력들은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것들에만 관심을 보였지, 던전 공략과 같은 일들에 대해서는 이벤트라 할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아무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상업 왕국인 미피츠는 재앙의 성채를 공략할 여력이 없었다. 돈은 많을지 몰라도, 그들이 보유한 군사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자.”

호의 허탈한 목소리가 던전 내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호의 곁에서 브로리가 거친 콧소리과 함께 중얼거렸다.

“우리보다 먼저 던전을 턴 녀석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내면 가만 안 둘 거야.”

살기에 가까울 정도로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브로리의 모습에 호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로 그런 녀석들이 있지는 않겠지만 만약 브로리의 앞에 나타난다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다.

* * *

아쉬카로트의 노림수에 넘어가 마장기 전력과 상당수의 병력을 잃은 보니타는 카우셰드에서 벗어나 마인족의 영토 호올스로 후퇴했다. 그리고는 타르판 요새에 머무르며 알르드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배신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깐 정신을 놓았을 뿐인데, 피해가 막심했다. 다행히 알르드는 국경에 병사들을 다수 배치해 놓을 뿐, 호올스로 진격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보니타님! 당장 공세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알르드의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카우셰드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런 보니타를 향해 토끼 영웅 하나가 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새롭게 참모진으로 들어온 마시 부족의 마로라는 영웅이었다.

“아이고 시끄러워. 누가 저 녀석 입 좀 다물게 할 수 없나?”

그런 토끼 영웅을 향해 보니타가 한숨과 함께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요 며칠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리는 신참의 주장이었다.

보니타는 사실 어이가 없었다. 누가 그걸 모르나? 자신도 방어를 하고 싶어서 타르판 요새에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한 번의 교전으로 다수의 병력을 잃었고, 그 차이를 메꾸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상대의 전력은 그만큼 강력했고, 제대로 맞상대를 하려면 자신들도 철저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마로를 향해 호인족 영웅 하나가 말했다.

“어이. 이리 나와. 여기는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삐이?! 무슨? 나도 보니타님의 참모 중 하나다!”

“그래. 참모는 맞지. 하지만 참모들 사이에서도 급이라는 게 있지 않겠어? 저 자리에 앉은 인물들이 누구인 줄 알아?”

그렇게 말하는 호인 영웅의 손가락은 보니타의 옆에 앉은 영웅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니타의 군사로 수년째 그와 함께하고 있는 유능한 참모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마로를 향해 경멸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마로는 호인 영웅의 손에 이끌려 회의장 밖으로 터덜터덜 쫓기듯 나와야만 했다.

“우리의 실수 때문에 네 녀석이 참모진에 합류한 모양인데, 너무 나대지 말라고. 의욕은 좋지만 현실은 파악해야 하지 않겠어?”

자신을 막사로 쫓아낸 호인 영웅이 히죽 웃는 모습에 마로는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하지만 휘두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호인 영웅이 한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저번 전투에서의 대패로 인해 토끼 부족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연히 토끼 부족의 영웅들이 들고 일어났고, 그런 불평을 무마시키고자 호인족이 내세운 것이 바로 토끼 영웅의 참모진 합류였다. 그리고 그렇게 참모진에 합류하게 된 게 마시 부족의 마로였다.

하지만 굴러들어온 돌을 호인족 참모들이 곱게 볼 리 없었고, 보니타 역시 마로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삐이!!!”

결국 욕설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는 게 마로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분노였다.

“삐이! 이런 바보 같은 것들. 알르드의 본대가 합류한다면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윤 호는 자신이 직접 지휘한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괴물이라고. 삐!”

이번 전쟁의 목적은 알르드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고, 수인 왕국의 기세를 드높이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빼앗긴 땅을 되찾기는커녕 오히려 알르드의 반격에 수인 왕국의 영토가 전쟁터로 변할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마로는 다시 보니타가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그를 움직일 수 없다면 차라리 소수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권이라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후우……. 마장기 일 개 편대와 일만의 병사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주지.”

그리고 그런 마로의 요구에 보니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병사의 지휘권을 그에게 내주었다. 마로의 능력을 인정하기보다는 귀찮은 짐짝을 치운다는 느낌이 강한 인사 명령이었다. 하지만 마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검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마장기사들 역시 호인족이 아닌 토끼 부족의 영웅이라 명령을 내리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마로가 이끄는 소수의 부대가 타르판 요새를 벗어나 카우셰드로 향했다.

“음뭐어. 수인들이 움직였다고?”

그런 마로의 움직임은 정찰병들을 통해 바로 웃소의 귀로 들어왔다.

기껏해야 마장기 편대 하나와 일만의 병사.

웃소는 그 정도의 병력으로 자신이 구축한 카우셰드의 방어선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수인들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어째서 병력을 보냈는지가 조금 의문이었다.

하지만 곧 있을 전투의 결과는 웃소와 아쉬카로트와 같은 영웅과 함께 카우셰드를 비상사태에 빠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알르드가 자랑하는 라이온레인 편대가 고작 일만의 병사에게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을 지휘하는 영웅 황호를 비롯해 세 명의 영웅이 사망하기까지 했다.

* * *

“적들이 보입니다!”

정찰병의 보고는 마로의 휘하에 있는 수인 영웅들과 병사들을 긴장시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군은 만 명에 불과했지만, 적의 수는 그 배가 훨씬 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적들에게는 최신 병기인 마장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마로는 자신의 전략과 전술이 통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이미 카우셰드의 국경에 도착하기 전, 자신의 계획을 각 지휘관들에게 전부 설명을 끝낸 후였다.

“조금만 더 가면 마력 폭탄의 사정거리입니다!”

“기병대를 출진시키도록. 삐이! 계획대로 진행한다.”

대답과 함께 마로는 입술에 물고 있던 토끼풀을 질겅질겅 씹었다. 곧이어 마로의 명령을 받은 훗사르들이 측면에서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수인 군대의 움직임은 국경에 있던 알르드의 B등급 인간 영웅 황호의 눈에도 들어오고 있었다.

“뭐야? 저 녀석들은?”

지휘 막사에서 쉬고 있던 황호는 수인 군대가 공격해 들어온다는 일찌감치 몸을 움직여 직접 적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던 참이었다.

“무슨 꿍꿍이일까요?”

황호를 호위하는 병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봐도 적들의 돌격이 불빛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뻔하지. 질 수 밖에 없는 공격을 통해 우리는 귀찮게 하고 시간을 끌려는 의도일 거다. 우리가 호올스로 직접 진격을 할 것을 두려워 해 이런 공세를 취하는 모양인데……. 이 황호님께서 나선 이상 그렇게는 되지 않을 거다.”

황호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방어 태세에 있던 병력들에게 출진 명령을 내렸다.

“공격!”

“멍청한 수인 녀석들! 이게 마력 폭탄이라는 것이다!”

빛의 폭발과 함께 알르드의 반격에 기세 좋게 돌격하던 훗사르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폭발에 비해 목숨을 잃는 훗사르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어디에 마력폭탄이 있고, 적들의 공세가 집중될 것인지를 예측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황호를 비롯한 알르드의 영웅들은 그러한 이상함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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