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8
리그너스 대륙전기 328화
한 병사가 힘차게 내리친 검이 몸을 붕대로 감싼 괴물에게 휘둘러졌다.
그러나 터엉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그대로 칼날이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광경은 전장의 곳곳에서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부, 불사신인가?!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검을 휘두른 병사, 실버 문이 신음성과 함께 외쳤다.
“물리면역?! 사막의 전사 아무다?! 실버 문들은 뒤로 빠지고 브뤼헤아 비쉬들이 마법으로 저들을 처리한다!”
“이야호호! 드디어 우리가 나설 차례네?”
“아무 녀석들! 붕대를 모조리 태워버려야지!”
한시진의 명령에 브뤼헤아 비쉬들이 마법을 시전 했다. 어투는 장난스러웠지만, 적들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곧 마법이 날아가면서 요란스러운 폭발이 일어났고, 가루가 되어버린 적의 모습에 시진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에 대한 대응이 아주 적절한데?”
“뭘요. 오빠가 브리핑을 통해 던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이라며 짚어준 내용이잖아요?”
호의 칭찬에 시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현재 호가 지휘하는 알르드의 군대는 바리안스의 대지에 위치한 SS등급의 던전 ‘사막의 무덤’을 공략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라도 내릴 수 있는 명령이었어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실제로 정확한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헤헤……. 제가 그 아무나는 아니잖아요?”
“하기야. 그렇지?”
넉살스러운 시진의 반응에 호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선을 옮겼다.
물리 면역 몬스터가 등장하는 사막의 무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마법병과의 병사들이 꼭 필요했다. 심지어 아무는 마장기의 물리적인 공격도 통하지 않았기에, 마법사가 없으면 도망밖에 상대할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공략본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호는 군대의 구성 반 이상을 SSS 랭크의 마법병 브뤼헤아 비쉬로 채워 넣었고, 이들은 사막의 무덤에서 등장하는 물리 면역 몬스터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실력을 실컷 뽐내고 있었다.
“이번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나면 세 번째인가요?”
“뭐가?”
“오빠의 SS등급 클래스 전직요.”
호가 시진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답했다.
“그렇지? 그래도 두 번이나 남았으니…….”
“금방 전직하겠네요? 벌써 반 이상이나 달성한 셈이잖아요.”
긍정적인 시진의 반응에 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A등급 마장기가 다수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일반 병사의 전력 또한 높은 수준을 갖춰야지만 공략이 가능한 SS등급 던전을 벌써 세 개째나 공략한 것이다.
게다가 이 다음으로 공략할 SS등급의 던전 역시 리스트가 준비되어 있었고, 공략을 위한 사전 작업 또한 진행 중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반 년 내에는 SS등급 클래스 오버 로드로 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오 년 만에 달성하는 업적이었다.
적어도 호는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할 때도 이보다 더 빠른 성장은 하지 못했었다.
“좋은 동료와 심시티와 같은 이레귤러 때문이지.”
“네?”
“아무것도 아니야.”
혼잣말을 들은 모양인지 옆에 있던 시진이 의아한 모습으로 쳐다보자 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물리 면역 몬스터인 아무로 구성된 적들은 대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호가 블루 스케일을 대신해 바라테이온과 벌였던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삼 개월이나 지났다.
그 동안에 있었던 큰 사건이라면 알르드의 북부 영토이자 과거 블루 스케일의 땅이었던 쿠투스 평원, 바르시온 등의 영토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머, 멍멍?! 호 님! 제, 제 몸이……!”
당연하겠지만 공사의 지휘는 팀 심시티의 수장이자 브로리의 뒤를 이어 알르드의 두 번째 SSS등급 영웅인 유니크 클래스 ‘불세출의 천재 군사–나폴레멍’ 로우덴 셰필드가 맡았다.
불세출의 천재 군사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은 영웅답게 로우덴 셰필드는 세부 능력의 지력 한계가 EX등급으로 무려 1925라는 수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로우덴의 성장은 그가 있는 팀 심시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하지만 알르드에는 로우덴 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팀 하나가 더 있었다.
“호 님. 드디어 연구가 끝났습니다…….”
“생각만하면 연구를 끝낼 수 있는 고대의 주문 같은 게 어디 없을까요?”
“그제도 연구, 어제도 연구, 오늘도 연구였는데……. 휴식은 없는 겁니까?”
포션이라 불리는 피로 회복제를 몸에 달고 다니는 한 무리의 집단이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퀭한 얼굴로 디르시나를 돌아다니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알르드의 연구 기술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팀 갈리는 공돌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엘프의 B 등급 마장기 윈드라이더의 개발을 모두 끝내고, 엘프 왕국이 자랑하는 A등급 마장기이자 아군에게 이로운 광역 효과를 안겨다주는 아보르 비테의 연구에 매진 중이었다.
그와 함께 여러 영웅들도 조금씩 성장을 거듭했다. 대부분 인간과 엘프 영웅들로 엑스칼리버와 마장기 전의 방패가 될 셰비트리의 오너들로 임명될 영웅들이었다. 변화의 바람은 알르드 뿐 아니라 대륙에서도 일어났다.
“나의 시대는 끝났다, 빅터! 이제는 니가 바라테이온의 새로운 국왕이다. 그리고 저번의 치욕을 잊지 말아라.”
먼저 전쟁에서 패배한 바라테이온은 그 위세가 크게 위축되었고, 과거의 영웅이었던 패왕 패트릭 바라테이온이 일선에서 물러나며 빅터 바라테이온이 새롭게 바라테이온의 국왕이 되었다. 또한 바라테이온과의 전쟁에 승리를 거둔 블루 스케일과 모에드 왕국은 배상금을 비롯해 자신들이 차지한 바라테이온의 풍족한 영토를 바탕으로 조금씩 국가의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힐몽거 만세! 만세!!”
“와칸, 아니 모에드 만세! 힐몽거 장군 만세!”
거기에 모에드 왕국은 이번 전쟁에서 승리의 주역이나 다름없는 힐몽거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비롯해 상업 왕국인 미피츠 왕국의 퉁 파오에게 거액의 차관을 도입하며 무너진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 외로 마족과 드워프 왕국이 마정석 광산을 두고 다툼을 벌이다가 전쟁을 시작했으며, 정령과 엘프들 역시 달의 가루라는 특산품의 존재 때문에 최근 사이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골든 크로우와 골든 크로우와 인접한 키리네 공국 역시 천족들의 도발로 인해 한창 전쟁 중에 있으니 대륙에서 잠잠한 세력은 오로지 알르드와 수인 왕국뿐이었다.
띵동.
-SS급 던전 사막의 무덤의 ‘파라오 리버 사알라’를 물리쳤습니다.
-전투성과를 결산 중입니다. 3…… 2…… 1. 결산완료. 이번 전투의 등급은 S랭크입니다. 경험치 375680을 획득했습니다.
-총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니다.
-SS급 던전 사막의 무덤을 완벽하게 클리어했습니다. 경험치 100000 을 획득했습니다.
-‘공포의 무덤 청소 5’의 업적 보상으로 경험치를 15,000 획득했습니다.
사막의 무덤 공략은 손쉽게 끝이 났다. SS등급 던전을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어느 정도 경험이 쌓였다고는 하지만 흑왕의 무덤은 물론이고 골든 크로우에 위치한 폭풍 바람의 신전 때보다도 훨씬 쉬웠던 원정이었다.
“꼬꼭. 똑같은 SS등급의 던전이라 해도 그 사이에서 급이 나눠지는 모양이지? S등급 던전을 생각하면 확실히 위험하기는 한 데 흑왕의 무덤에 비교할 정도는 아닌데요? 꼬옥?”
“찍찍. 그러게 말입니다. 브로리님께서 혼자 다 하시는 바람에 이 프랭스가 활약할 구간이 없었어요.”
“전리품도 그냥 그렇고.”
SS등급 던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전리품에 대해 기대감이 컸던 것일까?
팔쿤, 라쿤, 브로리. 세 수인 영웅이 한 곳에 쌓여 있는 아이템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흑왕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던 드릴 루드비히와 같은 충격적인 전리품은커녕 은하수 볼과 같이 SSS등급의 전직에 필요한 아이템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호 역시 세 영웅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공략본의 존재로 인해 사막의 무덤에서 어떤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레귤러의 존재로 인해 혹시 라는 생각이 머리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성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사막의 무덤 역시 SS등급의 던전. SS등급의 무기인 살라딘의 쇼텔이나 바리안스의 황금 깃발과 같은 S등급 장신구 아이템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돌아가자.”
“다음 원정은 어디로 갈 거지?”
브로리가 호에게 물었다. 대륙 곳곳에 위치한 고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면서 자신의 힘을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게 된 그녀는 위험한 던전의 공략에 푹 빠져 있었다.
더욱이 던전에서만 획득할 수 있는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진귀한 아이템들은 그녀의 물질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에도 충분했다.
“아마도 미피츠 왕국으로 가지 않을까?”
“미피츠 왕국?”
“그래. 하나인 줄 알았는데, 미피츠 왕국의 영토에 SS등급의 던전이 무려 두 개나 존재 하더라고. 이미 미피츠 왕국의 총독인 퉁 파오에게 사신을 보내놨어.”
“오호?! 두 개씩이나!”
블루 스케일보다도 작은 왕국에 SS등급의 던전이 무려 두 개나 있다는 호의 말에 브로리가 입꼬리를 잡아 당겼다.
과연 그 곳에서는 어떤 괴물이 등장할지 또한 어떠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담겨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시진이 말했다.
“미피츠 왕국이라면 조금 머네요.”
“바라테이온 때문에 육로를 통해서는 이동이 불가능해. 그래서 카틀라스 항구에서 배를 타고 이동을 할 거야.”
“던전의 공략에 필요한 병사를 수송하려면 함선이 굉장히 많이 필요할 텐데요? 마장기도 옮겨야 하잖아요.”
“블루 스케일에게 빌리면 되지.”
“블루 스케일이요?”
시진이 의외라는 듯 호를 바라보았다.
바라테이온의 영토를 블루 스케일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그녀를 비롯한 알르드의 영웅들은 블루 스케일이 자신들을 적대하는 세력인 천족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당연히 호가 블루 스케일과 관계를 멀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경 쓸 필요 없잖아? 그렇다고 걔네들이 우리에게 칼을 들이밀 것도 아니고.”
호가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블루 스케일이 칼끝을 겨누면 그들에게 알르드의 뜨거움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세이라 클리퍼드를 비롯해 스퀴드 수운다, 도베르만과 같은 블루 스케일의 귀족들이 그렇게까지 멍청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하기야 그렇겠네요.”
시진도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호가 사막의 무덤의 클리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업 왕국 미피츠로 보냈던 사신에게서 낭보가 전해져 왔다.
미피츠가 자신들의 왕국에 위치한 던전을 알르드가 처리해주는 것에 대해 기쁘게 받아들인 것이다.
“의외네요. 상업 왕국이라기에 뼛속까지 상인들만 모여 있어 어떻게든 우리에게 뭔가를 뜯어내려고 할 줄 알았는데…….”
림드 산맥의 군주이자 알르드의 내정을 총괄하는 아스트리드 벨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호가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SS등급의 던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재난 수준의 상황이 발생하거든.”
“아아……!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처리해 준다니까 냉큼 받아들인 거로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이라도 받고 가야하는 거 아니에요? 적어도 블루 스케일에 지불할 함대를 빌리는 데 필요한 돈을 대납해 달라고 한다거나?”
“아니야.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나 돈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돈은 충분히 메꿀 수 있어. 게다가 던전 때문에 재난 수준의 일이 일어나는 일은 리그너스 대륙의 역사상 ”
게다가 중요한 것은 자신의 승급이었다. 미피츠에는 두 개의 SS등급 던전이 있어 그 모두를 성공적으로 공략하면 오버로드의 전직 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원정은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해야 했다. 한 번 병력을 잃게 되면 충원을 할 수도 없는데다가 두 개의 던전을 연달아서 공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가 벨과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미피츠의 총독 퉁 파오는 자신을 찾아온 천족의 십 천사 레모스를 만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