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
리그너스 대륙전기 324
“발사!”
흑태자 루드비히의 마장기를 향해 조준 장치의 초점을 맞춘 호가 명령과 함께 조종간을 버튼을 눌렀다. 이어서 엑스칼리버와 라이온레인에서 발사된 수십 가닥의 빔이 기하학적인 선을 그려내며 루드비히를 향해 날아갔다.
잠깐 사이에 커다란 굉음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적의 피해는?!”
“적 마장기! 외부적으로 드러난 피해는 없습니다!”
마력포의 직격에도 불구하고 증발한 안개 속에서 드러난 루드비히의 마장기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한곳에 집중된 마나의 열기에 외부 장갑이 붉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이는 게 전부였다.
그런 부하 영웅의 보고에 호는 역시나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상대는 SS등급 던전의 최종 보스. 이렇게나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리고 브로리가 루드비히의 왼쪽 손이자 땅에 떨어진 드릴을 무차별적으로 후려치며 말했다.
“왼쪽은 내가 맡겠다.”
“오른쪽은 제가 맡을게요.”
한시진이 데스 사이더의 낫을 꺼내며 브로리의 말을 받았다. 이어서 라쿤의 프랭스와 마장기 몇 기가 그녀의 뒤를 따르며 전투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공략본에는 흑태자 루드비히의 초대형 마장기를 무찌르기 위해 먼저 양쪽의 드릴 손을 제압하라고 나와 있었다.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무기인데다가 회전력을 통해 마장기의 두터운 장갑도 뚫어버릴 수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빨리 제압을 해야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위이이이잉!
루드비히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오른쪽의 드릴 손이 회전하기 시작했고, 공기를 가르며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마장기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조심해!”
호의 외마디 비명이 통신구를 통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미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있던 한시진은 알르드의 에이스다운 움직임으로 루드비히의 공격을 스치듯 피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살짝 위태해보이지만 별다른 피해 없이 루드비히의 공격을 피하던 데스 사이더의 낫이 몸체와 드릴 손을 연결한 엄청난 굵기의 와이어를 찍어 눌러 땅으로 떨어뜨렸다.
“이때다!”
엄청난 무게의 드릴 손이 땅에 처박히며 쿵하는 소리를 만들어냈고, 공격의 타이밍을 만들어낸 시진이 통신구를 통해 외쳤다.
“이거나 먹어랏!”
“간다! 치르넬!”
수인족의 전설급 마장기와 라이온레인의 화력이 더해져 요란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이미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는 폭발의 범위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콰쾅! 콰앙!!!
대지를 진동시키는 폭발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드비히의 드릴 손은 대체 무슨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멀쩡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호는 흑태자 루드비히를 상대로 한시진, 브로리를 내세워 루드비히의 주 무기인 드릴 손을 무력화시키며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찍찍! 이것이 프랭스의 마지노 라인이다!”
“세계수의 방패가 그대를 지켜줄 것이니!”
간간히 루드비히의 강력한 공격에 위기의 상황도 닥쳐왔지만, 라쿤의 프랭스나 엘 라스엘의 세비트리가 절묘한 타이밍에 합류하며 루드비히의 공격을 받아내는 한시진과 브로리를 도왔다.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들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거대한 전쟁 병기들의 대결에 끼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할 일이 있었다. 루드비히와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왕자의 무덤으로 언데드들이 몰려 왔기 때문이었다.
“호님을 위하여!”
“호! 호! 호!”
“알르드 포에버!!!”
부서진 문의 잔해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통로에서 방어진형을 만든 병사들은 부쳐가 포함된 언데드들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버 문들의 방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일반 병사들과 최악의 상성을 지닌 살덩이 부쳐 때문이었다.
엑스칼리버의 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그 수는 기껏해야 세 기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은 아군의 모든 화력이 루드비히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말과 동일했다.
“왼쪽 손! 파괴되었습니다!”
“오른쪽! 파괴!!!”
“으악! 적 마장기의 눈을 조심해! 마력포가……!”
통신구에서는 전투를 벌이는 마장기사들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섞이고 있었다. 루드비히의 양쪽 팔을 무력화시키며 무사히 전투 1 페이즈를 마쳤지만, 전투 도중 루드비히의 공격에 휘말린 마장기들이 몇 기 파괴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휘관으로써 전황을 파악하던 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난이도가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은데?’
뼈의 기사 풀리츠프와의 전투처럼 공략본에 나와 있는 내용보다 전투가 어려울 것을 대비해 계획을 세웠지만, 다행이도 아군은 루드비히를 상대로 크게 불리함 없이 전투를 치러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 시간 가량이나 계속된 전투의 승패가 결정이 되었다.
띵동.
-SS급 던전 흑왕의 무덤의 ‘흑태자 루드비히’를 물리쳤습니다.
-전투성과를 결산 중입니다. 3…… 2…… 1. 결산완료. 이번 전투의 등급은 S랭크입니다. 경험치를 455680 획득했습니다.
-총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니다.
-SS급 던전 흑왕의 무덤을 완벽하게 클리어했습니다. 경험치 100000 을 획득했습니다.
-‘공포의 무덤 청소’의 업적 보상으로 경험치를 15000 획득했습니다.
“무사히 끝났군.”
호가 눈앞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말했다.
다행히도 흑태자 루드비히는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나와 있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후우. 고생했어요.”
“너야말로. 다친 곳은 없어?”
“네. 하지만 데스 사이더가…….”
호의 물음에 시진이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펄럭이는 망토 사이로 데스 사이더의 팔 하나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브로리의 코우랄라와 함께 루드비히와의 전투에서 전위를 맡던 도중 루드비히의 기습적인 공격에 파괴되고야 만 것이다.
“저 정도야 뭐. 수리하면 되는데.”
“알르드에는 마족의 마장기를 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없잖아요?”
“하하하! 간만에 타임리스 상단의 밴더빌트도 볼 겸 부르면 되지.”
호의 웃음에 시진이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피해는 곧 집계가 되었다.
4만 이상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고, 마장기도 열기가 넘게 파괴가 되었다. 하위 난이도의 던전을 돌며 실전 경험을 키웠다고는 하지만 조종 실력이 아직 미숙한 까닭에 피해가 컸다.
목숨을 잃은 영웅은 총 여덟 명으로 S등급의 영웅이 두 명이나 끼어 있었다.
“좀 더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겠어…….”
보고를 받은 호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이로써 SS등급의 던전 두 개를 클리어한 셈이었다. 게다가 잃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띵동.
-던전의 전리품 수급이 끝났습니다.
-SS급 던전 ‘흑왕의 무덤’에서 922210리스와 1855350의 식량을 획득했습니다.
-SS급 던전 ‘흑왕의 무덤’에서 아이템…….
메시지를 확인하며 호가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실버 문 하나가 자신이 메고 있는 장검 크기의 열쇠를 양 손으로 안고 오는 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어어? 왠지 키마라이의 핏빛 열쇠와 생김새가 비슷한 게 설마……?’
이어서 아이템의 정보창을 연 호는 침을 꿀꺽 삼켜 넘겼다.
[루드비히의 검은 열쇠(SSS등급 유니크)
효과–드릴 루드비히 소환(인간 전용)
전장 29m, 무게 약 94톤의 대형급 마장기로 과거 바라테이온의 영광을 이끌었던 흑태자 루드비히의 전용기이자 A+등급의 마장기인 드릴 루드비히를 소환하는 열쇠입니다. 드릴 루드비히는 드릴 손을 이용해 상대 마장기의 장갑을 손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으며 가슴에 부착된 거대한 마력포로 원거리 및 공성전에서도 뛰어난 위력을 보이는 강력한 마장기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크기 탓에 드릴 루드비히에는 마나를 다루는 실력이 뛰어난 SS등급 이상의 영웅만이 탑승할 수 있습니다.]
“미친…….”
호의 얼굴에는 놀랐다는 표정이 가득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했지만, 눈앞의 거대한 열쇠는 정말로 마장기의 시동키였다.
‘A+등급의 마장기라니?!’
그것도 A+등급이라는.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는 등장도 하지 않는 마장기였다.
실제로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적혀 있는 흑왕의 무덤에서 획득할 수 있는 드랍 아이템에 루드비히의 검은 열쇠와 같은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마 이거…….”
“맞아. 마장기의 시동키야. 우리가 상대했던 드릴 루드비히를 소환할 수 있는 열쇠지.”
시진과 눈이 마주친 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고, 호의 말을 들은 시진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루드비히의 검은 열쇠에 대해 소문을 들은 영웅들은 눈에 불을 켜고 전리품들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런 영웅들 중에는 최강 로리라 불리는 브로리도 빠지지 않았다.
“이게 뭐지?”
“커다란 구슬? 아니, 공인가?”
야구공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동그란 구체를 보며 브로리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 빗자루를 탄 브뤼헤아 비쉬들이 가지고 놀던 공으로 그녀가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빼앗은 것이었는데 겉면에 새겨진 별 무늬 모양을 제외하면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구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루드비히의 검은 열쇠와 같은 엄청난 아이템이 등장한 만큼 별 볼일 없는 전리품 하나라도 허투루 취급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리 줘봐. 내가 확인해 볼게.”
그리고 공 모양의 아이템을 가지고 끙끙거리는 브로리를 향해 호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으스대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브로리와는 달리 호는 정보창만 확인하면 눈앞의 구체가 어떤 아이템인지 손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 녀석 느낌이 온단 말이지…….”
호의 관심에 브로리가 말끝을 흐리며 호의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보더니 천천히 공 모양의 아이템을 넘겨주었고, 호는 곧바로 정보창을 열었다.
[은하수 볼(SS등급 유니크)
우주에서 떨어진 희귀한 보석으로 만들어진 별들이 박혀 있는 공으로 대륙의 보물창고 깊숙한 곳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견인들에게 전설로만 내려오는 환상의 공인 은하수 볼은 소유자가 견인 영웅과 함께 공을 가지고 놀 경우 견인 영웅에게 우주의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다 준다고도 합니다. 단, 깨달음은 가장 처음으로 공을 가지고 논 견인 영웅만 얻을 수 있습니다.]
“뭐, 뭐야 이건?”
은하수 볼의 황당한 설명에 호는 자신이 들고 있는 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문득 외알 안경을 쓴 견인 영웅을 떠올렸다.
“뭔데? 뭔데? 좋은 거야?”
심상치 않은 호의 반응에 브로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재촉하듯 물었다.
하지만 호는 입을 다문 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답보다 알르드의 중요 영웅, 로우덴 셰필드의 승급과 관련된 정보를 찾는 게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로우덴의 SSS등급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 중 은하수 볼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호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은하수 볼은 브로리의 허리케인 글로브와 마찬가지로 로우덴의 승급 아이템 중 구하기가 가장 까다로운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루드비히의 검은 열쇠처럼 흑왕의 무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아이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