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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23화 (323/522)

# 323

리그너스 대륙전기 323

“제길! 세비트리의 마력이 부족해요! 이대로라면 저 뼈 기사 놈보다 제가 먼저 쓰러지겠어요!”

“뭐라고?!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비전력도 아니고 마장기의 마력이 부족하다니? 라스엘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보고에 호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세비트리는 단단한 방어력이 장점인 마장기일뿐, 마장기 중 가장 하위 등급에 속하는 C등급 마장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C등급 마장기의 단점 중 하나에는 동일한 마정석에서 뽑아낼 수 있는 마력의 연비가 좋지 않아 A, B등급의 마장기와 비교해 기동시간이 떨어진다는 점이 있었다. 게다가 엘 라스엘의 세비트리는 풀리츠프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기체의 출력을 한계까지 높이고 있기도 했다.

“어쩔 수 없지. 한시진!”

“알았어요!”

척하면 척. 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데스 사이더가 방향을 틀었다. 그런 시진의 모습에 속으로 짧게 감탄하던 호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39, 40 실버 문 부대는 마정석을 준비한다!”

“마력이 부족한 마장기들은 두 기씩 짝을 이뤄서 뒤로 후퇴. 보급을 마친 후 재 출진한다!”

“장기전이라고 생각해! 무모하게 마장기의 마력을 낭비하지 마라!”

“방어선이 넓다! 마장기의 행동반경에 맞춰서 진형을 좁힌다!”

이런 호의 명령은 일선의 지휘관들에게 신속하게 전해졌고, 명령에 따라 넓게 포진되어 있던 아군의 진영이 차츰차츰 좁게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려오는 언데드들로 인해 각개격파를 당할 것을 우려한 호의 이런 명령은 넓은 지역을 커버해야 했던 마장기사들의 부담 역시 줄여주었고, 이는 일반 병사들에게는 치명적인 적인 부쳐를 막아내는 것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언데드들이 병사들이 진영을 좁히며 생겨난 틈 사이를 꾸역꾸역 채우며 병사들을 압박했고, 사방은 어느새 스켈레톤과 좀비와 같은 언데드들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

콰콰쾅!

“젠장. 일반 몬스터들이 왜 이리 많아?!”

마력 폭탄을 터뜨리면서 족히 천은 되는 스켈레톤과 좀비 계열의 몬스터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호가 짜증난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따르면 뼈의 기사와의 전투는 함께 풀리츠프와 함께 그의 부하들을 동시에 상대한다고 나와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략본에는 풀리츠프의 부하들을 상대하는 법에 대해서는 마장기를 포함시키면 끝이라는 말로 짤막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 그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SSS랭크의 병사들과 A, B등급으로 이루어진 마장기 편대가 뒤로 밀릴 정도로 언데드 대군이 끝이 없을 정도로 몰려온다는 말은 한 마디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것도 이레귤러인가?’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전황이었다. 돌아보니 SSS랭크의 병사인 실버 문과 브뤼헤아 비쉬들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아내고 있었고, 라이온레인과 엑스칼리버와 같이 A, B등급의 마장기에 탑승한 마장기사들도 자신들의 화력을 뽐내며 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어선 곳곳에 언데드들의 침입을 허용해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부쳐 무리의 공격에 몇 기의 마장기가 묶여있기도 했다. 그에 반해…….

콰지직!

순간 호의 귀로 무언가가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만큼 높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확인해보니 데스 사이더의 낫이 풀리츠프의 뼈마디 하나를 대각선으로 깎아내리며 잘라 내고 있었다.

그리고 풀리츠프는 잘린 자신의 뼈를 복구하지 않고, 아니 못하고 있었다.

“저 녀석! 몸체를 이루고 있는 마력이 다 떨어진 모양인데?”

“그대로 밀어붙여서 박살내버려! 그래야 사방에서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

통신구를 통해 전해지는 브로리의 말에 호가 즉시 대답했다. SSS랭크로 이루어진 병사가 십만이 넘었고, 마장기 역시 수십 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던전의 일반 몬스터들을 상대로 수에서 밀리고 있었다. 아무리 SS등급의 던전이라 해도 이상한 상황이 분명했다.

“좋아! 나만 믿으라고!”

그리고 호의 말뜻을 알아차린 브로리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어서 코우랄라가 빨래를 다듬이질하듯 풀리츠프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자신의 곤봉을 휘둘렀다.

쾅쾅거리며 서로의 거대한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던전 내로 크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풀리츠프가 브로리의 공격을 막아내는 순간 후위에 있던 마장기들도 공격을 개시했다.

풀리츠프의 크기는 라이온레인의 두 배 이상이나 되었지만, 라이온레인의 마력 폭탄은 그 정도의 크기의 적도 단숨에 고꾸라트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쾅! 콰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풀리츠프의 박살난 잔해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날카롭게 부서진 뼈가 몬스터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곳에 떨어지며 끔찍한 광경을 연출해 내기도 했다. 응축된 마나가 만들어내는 위력적인 폭발이 연달아 터지자 풀리츠프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나 풀리츠프는 처음과는 달리 부서진 뼈들을 다시 복구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 공격!”

그 뒤로 추가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브로리와 한시진의 근접무기가 통나무보다도 두꺼운 풀리츠프의 뼈다귀를 박살내거나 잘라냈고, 엑스칼리버의 마력포가 풀리츠프를 관통했다.

라이온레인 편대는 마력 폭탄을 넓게 퍼뜨려 도망가려는 낌새를 보이는 풀리츠프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아군의 공격 움직임을 돕고 있었다.

“으아아악! 나, 나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는데……!”

결국 비명과 함께 풀리츠프의 커다란 동체가 땅속에 처박히기 시작했다. 몸을 이루고 있는 짙은 검은색의 마나가 사라진 풀리츠프의 모습은 어느새 새하얀 백골로 변해 있었다.

“끄아아아악!”

“깨에에에엑!”

그와 동시에 맹렬하게 아군을 향해 달려오던 언데드들이 비명을 지르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스켈레톤이나 좀비와 같은 녀석은 물론이고, 징그러운 살덩이인 부처도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끄, 끝났네요.”

“간단한데? 저 커다란 언데드 기사 녀석만 물리치면 이기는 싸움이었잖아?”

승리의 짜릿함에 취한 마장기사 하나가 속 편한 목소리로 말했고, 통신구를 통해 마장기사의 말을 들은 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이야 쉬울지 모르겠지만, 풀리츠프와의 전투는 결코 쉽게 이긴 싸움이 아니었다.

다수의 고 등급 마장기를 투입한 풀리츠프와의 전투 역시 브로리나 한시진, 엘 라스엘과 같은 유능한 오너가 아니었으면 전투가 상당히 길어졌을 테고, 풀리츠프의 부하라고 나오는 던전의 일반 몬스터들은 SSS랭크와 마장기 편대로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공략본의 내용과는 일반과 하드모드 수준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나는데…… 이거 공략이 쉽지 않겠네.”

첫 번째 준 보스급 몬스터인 뼈의 기사 풀리츠프만 따지고 본다면 골든 크로우에 위치한 폭풍 바람의 신전보다도 난이도가 높아 보였다.

하지만 혼란스럽게도 두 번째, 세 번째로 나타난 던전의 준보스급 몬스터들은 공략본에 나온대로 그냥 지나가는 수준 정도의 몬스터들에 불과했다.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야?”

그렇게 흑태자 루드비히가 잠들어 있다는 던전 내의 공간이자 왕자의 무덤이라고 이름붙인 장소로 연결된 문을 앞에 두고 호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이미 흑태자 루드비히의 공략 계획은 전부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에 루드비히가 공략본에 적혀 있는 내용보다 강하다면?’

당황스러움을 넘어서 목숨마저 위험할지도 몰랐다. 적어도 마장기 몇 대가 부서지고 아군 영웅 한둘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호가 뒤의 영웅들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에게 휴식 명령을 내리고 계획을 다시 짜야겠어.”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찍찍. 대륙을 위시했던 영웅의 영혼과 그의 마장기라니. 괴물 중의 괴물이겠군요.”

“과연 그 흑태자라는 녀석이 이 코우랄라와 브로리 님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까?”

닫힌 문을 향해 한 마디씩을 내뱉는 영웅들을 뒤로한 채 호는 꼬박 하루 동안 원래 세웠던 계획에 마장기를 추가하거나 브뤼헤아 비쉬의 보조 마법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작전을 보완했다. 현재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전력의 전부를 사용한 계획이었다.

곧 영웅들에게 계획이 하달되었고, 전투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굳게 닫혀 있던 왕자의 무덤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쿠웅!

마장기의 힘에 의해 열리기 시작한 문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에 닿는 순간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문이 박살이 났는데?”

“찍찍 어째 느낌이 좋지 않은데요……? 마치 문 밖으로 도망쳐도 소용이 없다는 말 같잖아요.”

“꼬꼬댁, 꼬꼬. 도망칠 필요 없이 상대를 제압하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겠지.”

그렇게 박살난 문을 지나쳐 왕자의 무덤으로 영웅들이 하나, 둘씩 들어설 때였다.

끼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빙그르르 도는 강철의 드릴이 선두에 있던 브로리의 코우랄라를 향해 날아왔다.

“브로리!”

“알고 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드는 드릴을 피해 코우랄라가 허리를 꺾으며 옆으로 회전했다. 날카로운 드릴의 끝에 실린 마력이 굉장히 매서웠던 터라 막아내기보다는 회피를 택한 것이다.

“뒤, 뒤에!”

그리고 한시진이 비명이 가까운 외침을 질렀다. 전신이 흑색으로 도색된 거대한 마장기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브로리를 노린 강철의 드릴은 마장기의 왼쪽 팔과 굵은 와이어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거대한 마장기는 양팔이 드릴처럼 되어 있었다.

“저게 바라테이온의 전성기를 이끌며 대륙을 진동을 영웅 흑태자 루드비히의 마장기인가?!”

“팔끝이 뾰족한 무기로 되어 있다니! 저거 완전 사기잖아!”

“게다가 빙글빙글 돌아가기까지 한다고! 세비트리도 잘못 걸리면 동체가 박살이 나겠어!”

“여기의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저렇게 다들 거대한 거야?!”

라이온레인이나 엑스칼리버처럼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인간족의 마장기와 판이하게 다른 적 마장기의 모습에 영웅들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작전대로! 탱커는 브로리와 한시진 맡는다! 라스엘은 둘 중 하나가 교대를 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지원을 부탁해!”

“알겠어요!”

“네!”

마장기의 장갑만큼은 엘 라스엘의 전용기인 세비트리가 코우랄라나 데스 사이더와 비교해 더욱 두껍고 단단했다.

하지만 루드비히의 마장기를 상대로는 장갑의 단단함이 크게 유리하게 적용될 것 같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도는 드릴의 관통력에는 아무리 두꺼운 장갑이라도 버텨내지 못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장갑의 단단함으로 적의 공격을 막느니 기동성이나 무기를 이용한 방어로 상대의 공격을 쳐내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게 호를 비롯한 마장기사들의 생각이었고, 그렇게 계획이 세워진 것이다.

“상대는 원거리에서도 공격이 가능하다! 원거리의 마장기 편대는 그 점을 유의하면서 움직이도록! 그러면 공격!”

그리고 호가 루드비히를 상대하는 데 있어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공격 명령을 내렸고, 가장 앞서 있던 코우랄라의 곤봉이 자신을 공격했던 드릴을 쳐내 땅에 떨어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흑왕의 던전 최종 보스인 흑태자 루드비히와의 전투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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